나는 왜 경쟁을 싫어하는가
나는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하지만 경쟁은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보드게임 시스템은 경쟁을 기반으로 하기에 어쩌면 앞의 두 문장은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문장은 모두 참이다. 이 글에서는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왜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써보려고 한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 살아오면서 치열한 경쟁 문화를 접하고 그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내가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일상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경쟁을 하고 있고 경쟁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매일 술을 먹는 사람의 간이 아기의 간처럼 깨끗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나에게 왜 유독 보드게임에서의 경쟁은 부정적일까? 그리고 왜 피하려고 할까?
첫 번째 이유는 지면 느껴지는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 우리 사회는 사람의 다양한 능력 중 지적 능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잘하면 지적 능력과 결부시킨다.
“ 그 사람 똑똑해서 일을 잘하잖아.”
“ 그 사람 똑똑해서 운동도 잘하잖아.”
“ 그 사람 똑똑해서 보드게임도 잘해.”
나는 위의 모든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건 사실이 된다. 위 문장 중 마지막 문장이 참이라면 보드게임을 못하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라는 명제도 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드게임에서 지면 사람들은 나를 멍청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그 느낌과 기분이 싫다. 누군가는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그냥 게임일 뿐이라고, 아무도 그런 생각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은 내 문제다.
두 번째 이유는 나는 남에게 나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유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면 안 좋은 모습도 보일 수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속으로는 게임의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한다. 게임에서 지고도 차분한 말투와 어조로
“이 게임 어땠어? 재밌게 잘 만들었네.”
라고 말하고는 한동안은 그 게임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 게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쟁심에 불타 얼굴을 붉히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멋이 없다는 건 아니다. 다른 한쪽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순수하고 솔직한 멋을 가진 사람들이다.) 내 생각이 그러니 겉과 속이 따로 논다. 속으로는 분해 죽겠는데 겉으로는 초연한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안 그래도 많은 가면을 쓰고 있는데 좋아하는 취미에서까지 가면을 쓰려고 하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연기를 할 필요 없는 경쟁을 피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처음 하는 게임에서 결코 이긴 적이 없다. 운이 대부분인 게임에서조차도. 더 화가 나는 건 내가 룰을 설명하고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도 자주 진다. 이쯤 되면 경쟁이 자연스레 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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