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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전 보드게임 잡담 #24 -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

1,869 조회

2022.03.30 14:28

안녕하세용 퇴근전 보드게임 잡담의 남자 개굴입니다.
얼마전에 BGG를 헤매다가 재미있는 포스트를 하나 봐서, 오늘은 거기에 썰을 좀 붙여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

30년쯤 되었나요? Atari 2600 이라는 비디오게임기로 액티비전(네, 여러분들이 잘 알고계시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그 액티비전입니다)이라는 회사에서 Dragster 라는 게임을 출시합니다.

이 액티비전이라는 회사는 이 게임에서 신선한 아이디어 하나를 도입하는데,

게임을 플레이하며 회사에서 지정한 조건을 만족한 후, 해당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액티비전으로 보내면 자그마한 패치를 증정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러한 패치는 가방이나 옷 등에 훈장처럼 부착할 수 있고, 다른 게이머들에게 자랑을 하는 역할을 했었죠.

▲ 이런 모양의 패치를 주면 이걸 가방에 오바로크 치는겁니다.

이 아이디어는 흘러흘러 MSN 게이밍존을 거쳐 2005년에 Xbox에서, 2008년에 Playstation에서 좀 더 정련된 시스템으로 정착되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업적(Achievement)시스템입니다.

게임 좀 하신 분들이라면 이 업적시스템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실거에요. 우리나라에서는 도전과제라는 단어로 더 익숙하던가요?

이 업적시스템은 게임 내에서 일정한 과제를 달성하도록 플레이어들을 부추기는 컨텐츠인데요,

주로 게임회사에서 게임을 출시할 때 "우리 게임에서 이러이러한 부분도 즐겨줬으면 좋겠어" 라는 내용을 목표로서 제시하는 시스템이에요.

단지 가방에 패치 하나 붙일뿐이었던 Dragster라는 게임과는 달리 현 시대의 업적은 자신이 게임을 즐기고있는 플랫폼의 아이디에 보유중인 게임의 업적의 달성 현황이 귀속되며,

이를 온라인으로 등록된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도록 하고있죠.

▲ 이런식으로 본인의 업적덕력현황을 만천하에 오픈할 수 있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한국랭킹 544위.

이러한 업적은 크게 아래의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게임을 진행만 해도 받을 수 있는 업적
2) 게임을 파고들어야 받을 수 있는 업적
3) 특이한 조건을 요구하는 업적

1번 유형은 빠지지 않고 등교만 해도 받을 수 있는 개근상 같은 개념이에요. 굵직한 챕터 하나 깨면 당연히 주는거고, 당연히 받는겁니다. 이런걸 고정간격강화라고 하던가요.
1번이 개근상이라면 3번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받게된 모범상같은 깜짝상 느낌입니다.

실제로 스나이퍼엘리트3 라는 게임에는 100M 밖에서 목표의 고환(...)을 맞추는 트로피가 있거든요? 이런식으로 왠지 유저가 할 법한 것들에 달리는 업적들이에요.

별 생각없이 낄낄거리면서 한 행동에 업적 팝업이 뜨면 의외의 선물을 받는 소소한 재미도 있고, 내가 할 행동을 제작사에서 예상했구나 라고 뒤통수 맞는 재미도 있어서 사실 세 유형중 가장 반가운 유형입니다.

그리고 2번 유형이 사실 업적의 가장 큰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건 교과우수상같은 개념입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꾸준히 했을때 받을 수 있는 업적이에요.

이는 게임의 컨텐츠 소모를 의도적으로 늘려주는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이를테면 아래처럼 비유를 할 수 있겠네요.

1번 유형의 업적이 "포켓몬 빵을 사서 스티커 한 장을 얻는다" 라면

3번 유형은 "코일을 세마리 모아서 레어코일처럼 붙인다" 이고,

2번 유형은 "모든 포켓몬 스티커를 모은다" 라는 느낌입니다.

대충 느낌 오죠? 제작사가 준비한걸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그 보상으로 참 잘했어요!! 라고 칭찬해주는 업적이죠.

이러한 업적시스템은 엔딩을 본 이후에도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뭐라도 더 꾸역꾸역 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일종의 메타-컨텐츠로 작용합니다.

업적에 신경을 쓰는 분들이라면 1번이든 2번이든 3번이든 업적 채우기 역시 게임의 컨텐츠가 되거든요. 컨텐츠를 늘리려는 시스템 자체가 다시 컨텐츠로 작용을 하는거에요.

저만 해도 대부분의 게임은 해당 게임의 업적을 올클리어 할 때 까지 어지간하면 다른 게임을 즐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올클리어 했을 때 비로소 그 게임은 제 나름대로의 마무리를 짓고 엔딩을 보는거에요. 보통 이정도까지 하면 그 게임에 대한 미련이랄까, 그런게 거의 없어집니다. 대단원같은 느낌이에요.

3.
이쯤되면 나오는 질문은 딱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거 꾸역꾸역 다 따서 뭐할건데?" 라는 질문요.

사실 그렇게 묻는다면 할 말은 없어요. 아니, 애초에 그런걸 물어볼거면 게임을 왜하냐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죠.

게임을 하는데 이유가 없듯이 업적을 따는것도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따는거에요.

▲ 업적따는데 이유가 어딨어요 그냥 따는거지

업적 100%를 채웠다는건 그런거죠. 요즘 핫한 포켓몬 스티커 전종을 다 모아서 사진을 보내면 닌텐도랑 샤니에서 포켓몬 마스터 배지를 준다, 그러면 당연히 다 모아보고 싶어지는거잖아요?

그 마스터 배지 멋지구리하게 사진찍어서 인스타에 올려보고 그러고 싶은거잖아요?
결국 업적이란 제작자가 "우리 게임 요런거 요런거까지 다 즐기셨나용?" 이라고 준비해놓은걸 모두 클리어한 일종의 제작사 인증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정도 덕후다", "나는 이정도까지 해봤다" 라는 훈장이자 자기만족, 그리고 나아가 과시욕의 충족인거에요.

이런 의미에서 태초의 업적시스템이었던 액티비젼의 패치 증정은 그 정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딴 업적을 자랑할 수 있도록 패치 형태로 준다? 당즈앙 업적작 하러 가야죠.

4. 보드게임에서의 업적

자, 비디오 게임 이야기는 요정도로 하고, 보드게임으로 이야기를 돌려볼까요?

팬데믹 레거시 시리즈의 경우 준비된 모든 게임이 끝나면 게임의 진행결과를 정량화하여 각각의 점수에 따른 평가를 해줍니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포켓몬 스티커를 예로 들자면 올해 12월이 지났을 때 포켓몬 스티커 보유 장수가 몇장인가, 그 중 풀타입 포켓몬은 몇장인가 등등 특정 기준을 마련해두고 그에 따른 점수를 부여하는 개념이에요.

이러한 팬데믹 레거시의 시스템은 상술했던 업적시스템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 팝업 시점이 게임 종료 후라는 부분도 그렇고, 사실 업적보다는 랭크 부여 쪽에 가까워요.
이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매뉴얼 뒷쪽에 체크박스처럼 업적을 제시해놓고 게임 끝날때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게 되어있는 게임을 최근에 하나 보긴 했는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건 제가 기억이 안나네요. 혹시 기억나는 분 있으시다면 댓글좀...

물론 보드게임은 온라인으로 동기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어플이나 스팀으로 나온 게임의 경우 충분히 가능하지만요) 무엇보다 비디오게임처럼 플레이어가 개입 불가능한 관리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서 유저가 직접 손으로 시스템을 조작해나가는 매체이다보니 신빙성을 확보의 문제 등 비디오게임에서의 업적시스템을 비슷하게 적용시킬 수는 없을겁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데요, 10년전(...) BGG에서 한 유저가 보드게임에서의 업적시스템을 주제로 포스팅을 하며 실제로 몇 가지 게임에 대한 업적을 제시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이걸 온라인으로 함께 공유하면서 자랑한다는 목적이야 달성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유저들에게 추가로 즐길 수 있는 목표이자 컨텐츠를 제공해준다는 의미는 그대로 지니고 있죠.

해당 포스트의 몇 가지 게임들의 유저 도전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reddit.com/r/boardgames/comments/10mfyw/board_game_achievements/)

[7원더스]
1) 불가사의 은행 - 50원 이상을 보유한채로 게임 종료
2) 길드마스터 - 모든 보라색 카드를 보유한채로 게임 종료
3) 왓 어 원더풀 월드! = 각각의 원더로 게임을 승리
4) 적어도 나에게는 닭고기가 있다고 - 15개 이상의 코인을 보유한 채로 게임에서 패배

[카르카손]
1) 영원의 도시 - 한 도시로 75점 이상을 획득
2) 계획짜기 마스터 - 200점 이상으로 게임을 종료
3)농부네이터 - 농부 하나로 7개 이상의 도시로부터 득점
4) 신학 마스터 - 3개 이상의 교회로 득점
5) 날강도 프린스 - 길에서 30점 이상을 득점
6) 기회주의자 - 다른사람과 공유점수로 5회 이상 득점
7) 적어도 나에게는 닭고기가 있다고 - 네 개 이상의 농부를 보유한채로 게임에서 패배

[도미니언]
1) 땅강도 - 한 턴에 두 개의 속주를 획득
2) 이 세계로는 너무 좁아 - 한 턴에 세 개의 속주를 획득
3) 완전한 지배 - 속주 아홉개 이상을 보유한 채로 게임 승리
4) 세기의 게임 - 100점 이상을 득점하여 게임 승리
5) 두 집의 저주 - 마이너스 점수로 승리
6) 공작령을 왼쪽으로 넘겨! - 한 턴에 세 개의 공작령을 획득
7) 마을이 필요해 - 한 턴에 10장 이상의 액션카드를 사용
8) 금마니 - 10장 이상의 금화 카드를 보유한채로 게임 종료
9) 은빛 섬광 - 13장 이상의 은화 카드를 보유한채로 게임 종료
10) 최고의 방어 - 10장 이상의 공격카드를 보유한 채로 게임 종료
11) 적어도 나에게는 닭고기가 있다고 - 세 장 이상의 공작령을 보유한채로 게임에서 패배

----------------이 아래는 댓글에 있는 업적들입니다.--------------

[아그리콜라 구버전]
1) 무지개빛 전사 - 파랑, 빨강, 녹색, 흰색, 보라색으로 한 번씩 승리
2) 고용난 - 직업카드를 내려놓지 않고 승리
3) 먹보 - 화로나 화덕 두개를 보유
4) 채식주의자 - 동물을 한 마리도 잡아먹지 않거나 동물을 농장에 배치하지 않고 승리
5) 언더독 - 한 장 이상의 구걸카드를 보유한 채로 승리

[일반]
렛잇비 - 협력 게임에서 다른사람에게 지시하지 않고 게임 종료
수다쟁이 - 다른 플레이어에게서 "조용히좀 해" 소리를 듣기

어떤가요? 괜찮은 것도 있고, 이걸 어떻게 깨지 싶은것도 있고, 저건 뭐지 싶은것도 있고 그렇죠?

개인적으론 댓글에서 언급되었던 렛잇비나 수다쟁이가 기발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이러한 업적의 경우 제작사의 센스가 발휘되는 또다른 영역인데, 몇몇 게임의 업적은 업적명에서 여러가지 요소를 패러디해서 넣기도 하거든요.

이를테면 위 포스트의 작성자가 제시한 모든 게임에는 "적어도 나에게는 닭고기가 있다고" 라는 업적이 있는데, 이건 유명한 MMORPG 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유저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아래는 저도 끄적여본 몇 가지 보드게임의 업적. 사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모든 캐릭터로 승리> 이런건 너무 심심하고....

특정한 상황에 빠졌을 때, 적어도 "오늘 이러이러했다?" 라고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것들로 꼽아볼까요?

▲ 위 짤은 음성을 지원하고있~~지 않~~습니다

[아크노바]
1)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봐요 - 한 게임의 모든 휴식단계를 본인이 직접 발동
2) 폭풍은 두번 친다 폭풍은 두번 친다 - 같은 액션을 2단계에서 연속으로 두 번 발동
3) 날 떠나지마 - 보호 프로젝트로 풀어준 동물을 다시 우리에 배치
4) 장사는 자리가 중요하쥬 - 한 개의 매점에서 6원의 수입을 달성
5) 무승부로...하지 않을래? - 최초 8장의 카드 중 첫 턴에 내릴 수 있는 카드가 없음

6)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 - 모든 액션카드에 상태이상 토큰이 부여됨

[티츄]
1) 딱뎀, 딱코 - 정확히 1000점으로 게임을 승리
2) 주토피아 - 용, 봉, 개, 새를 모두 손에 들고 시작하여 1위를 기록
3)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 14장 스트레이트로 티츄 성공
4)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 - 티츄를 부른 상태에서 꼴찌를 함.

[노땡스]
1)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 한 장의 카드에 칩이 15개 이상 누적시킨 후 획득
2) 빠빠빨간맛 - 게임 종료 시점에 30개의 칩을 보유한채로 승리
3)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 - 33, 35를 한 명이 보유한 상태에서 게임 종료시까지 34가 나오지 않음

[러브레터]
1) 목격자 제거 완료 - 광대로 내 패를 확인한 플레이어를 병사로 탈락시킴
2) 괜찮아 자연스러웠어 - 장군으로 병사를 넘기고 생존
3) 난 이미 죽어있다 - 모든 상대가 사제를 배치한 상황에서 마법사와 공주를 동시에 보유
4)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 - 첫 턴에 병사로 공주를 탈락시킴

5) 어딜 보시는거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 남작 두 장을 들고 상대를 탈락시키기

6)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 - 2인이 남은 상태에서 같은 카드를 들고 있어서 무승부
7) 죽는 꼴은 못 보겠지만, 지는 꼴도 못 봐 - 4인이 살아남은 상태에서 승리
8) 나는 사천왕 중 최약체지 - 남작과 병사를 보유 중인 상태에서 남작을 내고 비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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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전 이정도? 한 번 상상해 보자구요.

티츄에서 정확히 1000점으로 승리한걸 인증한다면 손가락 한마디만한 티츄모양상자에 1000이라고 금색으로 박혀있는 배지를 준다.

왠지 1000점 승리 달성에 성공해서 배지 받은다음 보드게임 가방에 달고다니고 싶지 않으신가요? ㅋㅋ

제가 할 이야기는 요기까지.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채워주시면 읽어주시는 다른 분들이 조금이라도 즐길거리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 이것또한 업적입니다. [개굴이의 글에 업적댓글을 단다] ㅋㅋㅋㅋㅋ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게임들에서 언급할만한 업적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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