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합작게임 스파이시 제작과정 3편
- 오늘은 스파이시 펀딩의 마지막 날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3차 스트레치 골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래 내용은 와디즈 새소식 란에 3차와 4차로 나뉘어 연재된 글을 합친 것입니다.
3. 제작 – 가장 번쩍거리는 보드게임을 만들거라고?
스파이시는 독일에서 먼저 제작이 진행됐습니다.
한국출시는 해외 판매가 충분히 이뤄지고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
한국 시장은 외국에서 인정받은 게임에 대해 훨씬 더 호의적인 현실을 고려했습니다.
2019년 여름에는 여행을 겸해서 가족과 함께 하이델베어사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하이델베어가 위치한 밀텐베르크는 독일의 남쪽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인구 9000명의 오래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고성을 중심으로 수백년된 오래된 건물들로 중심가가 구성된 아름다운 곳입니다.
<밀텐베르크를 가로지르는 마인강과 백조들, 그리고 야경 >
서울사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강원도 사람, 충청도 사람 나름의 특징이 있는것처럼
독일도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이 다릅니다. 남독일은 마치 이탈리아 사람같은 여유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건 하이델베어라는 회사의 문화와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밀텐베르크 중심가의 식당에 붙은 공지를 보고 웃겨서 찍었습니다. 오늘은 너무 더워서 문닫고 수영하러 가니 손님들은 다음에 오라는 내용입니다. >
평생 서울에서 살다가 부산에 내려가 살면서 빨리빨리 일하는 문화가 싫어 우보(소걸음) 이라 회사이름을 지었던 저희와 일맥 상통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00년 된 건물 사무실에서 테스트 인쇄를 위한 스파이시 출력물을 보여주며 만족해하던 하이델베어사의 대표는 그 자리에서 제게 스파이시를 너무나 번쩍거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쯤 다 쳐다보는 게임으로 만들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색 보정을 위해 출력한 원화>
<패키지 초안 샘플.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말을 듣고 저는
하이코 대표가 제게 한국 민화로 게임을 만들자는 말을 들었을때와 똑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Heiko, Are you Serious?” (Heiko 는 하이델베어사 대표의 이름입니다.)
3달이 지난 후 2019년 에센 슈필메세에서는 스파이시 샘플을 볼 수 있었고, 정말 번쩍거리는 게임이 테스트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독일이 보드게임 강국이 되는 기반이된, 독일 보드게임 산업을 움직이는 몇 가지 시스템이 있는데그 중 하나는 성격이 뚜렸한 대형 전시회들의 역할입니다.
매년 가을 독일의 에센이라는 도시에서는 슈필(또는 슈필메세)이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보드게임 콘벤션이 열립니다. 4일간 22만명정도가 관람하는 전세계 보드게이머들의 축제 입니다.
<에센 슈필메세 전경 이런홀이 일곱개 정도 사용됩니다.>
에센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게임이 소개되고 나면 그 다음해 1월~2월에는 뉘른베르크에서 대형 장난감 전시회가 열립니다. 그 안에 보드게임 회사들도 참여하는데 이 전시회는 오로지 비즈니스관계자만 참가 가능한 행사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슈필메세에 출시된 게임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업체들간 큰 거래가 이뤄집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전시회들이 독일 보드게임산업을 움직이는 엔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뉘른베르크 전시장에서 보드게임 회사들은 그해 그들의 최고 기대작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2020년 1월, 뉘른베르크 전시회에서 하이델베어가 전면에 내세운 게임은 스파이시였습니다.
바이어들을 만나는 회의실 벽면에는 스파이시의 세마리 호랑이가 걸려있었습니다.
<스파이시 배너>
뉘른베르크 전시회를 통해서 12개국에서 스파이시를 출시하게 되었고, 스파이시는 하이델베어가2019년 아스모디로부터 독립한 이후 가장 크게 성공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해에 보드게임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상인 독일 올해의 게임 (Spiel Des Jahres) 가족 부문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 26개 국에 출시 되었습니다. 조만간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독일에서의 제작과정이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년에 수백종의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공장입장에서도 이런 종류의 카드는 처음 생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지역 판매를 위해 한국에서 생산을 하며 그리고 그 어려움은 한국에서도 반복됐습니다. 공장이 달랐기 때문에 노우하우를 공유할 수 없었고 제작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고스란히 저희 쪽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뮤니티 게시판을 통해서 스파이시의 카드가 금박이라 혹시 쉽게 벗겨지지 않냐는 질문을 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럴염려는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금박을 입히는 가공과는 다릅니다. 다른 종이에 후가공으로 금박을 입힌 것이 아니라 원래 저런 재질을 사용 했다고 보시면 오히려 사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은 안전에 대한 걱정과도 관련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파이시는 유럽안전기준 CE와 한국시장을 위한 KC 인증마크를 모두 받았습니다.
인증 과정에서 나쁜 재질이 검출되지는 않는지 테스트를 전부 거칩니다. 물에 넣어 우러나는지 보기도 하고 불에 태우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입에 넣어서 빨 때 해로운 물질이 분리되거나 우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게 코팅이 벗겨지거나 하진 않는지도 검사대상입니다.
스파이시 제작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내구성문제보다는 색깔의 문제였습니다.
일반적인 종이에 같은 기계와 잉크로 인쇄를 해도 상태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 과 관련된 클레임중 가장 흔한 것은 카드 뒷면의 색깔이 달라서 뒷면으로 카드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경우입니다. 게임의 어뷰징이 가능해지고 결국 게임 플레이 전체를 망칩니다.
이런 색깔의 문제는 인쇄기의 문제이기도 하고 숙련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습도 등 여러가지 외생변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금박 재질의 종이에 디자이너가 설정한 색깔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사람의 힘으로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색깔을 찾아서>
특히 가장 어려운 부분은 흰색을 표현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인쇄된 색은 바탕인 금색종이의 영향을 받습니다. 검은색이나 푸른색 붉은색은 잉크의 배합을 통해 조종할 수 있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흰색입니다. 아무리 잉크를 바꿔봐도 배경에 있는 금색의 영향을 받아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더구나 한국버전은 일본판과 같이 생산되기 때문에 적어도 일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기존에 각각 다른 공장들에서 출시된 제품들을 비교하며 방법을 찾아나갔습니다.
<각국의 버전을 비교하며 색을 설정하는 과정>
여러가지 조건을 바꿔가며 생산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샘플들이 가마니로 쌓여갔습니다.
<버려지는 샘플들>
색깔을 찾아내고, 인쇄를 하여 가장 낫다고 생각되는 샘플을 독일 / 일본에 보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과정이 두달동안 반복됐습니다.
결국에는 페인트의 문제가 아닌 어떤 공정을 바꿈으로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독일, 일본, 저희 모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완성된 카드들>
이때 흥미로웠던 사실은 한국의 공장측과 저희가 발견한 공정상의 노우하우를 독일에 전달하자
독일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일종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일단 일본에 수출되는 수량을 먼저 제작 완료하고 지난 8월달에 발송을 완료했습니다.
한국 내수용은 제작중이며 펀딩이 끝나고 추석 연휴가 끝난 후 발송 예정 입니다.
첫 협업 프로젝트였던 스파이시의 성공에 힘입어
하이델베어의 차기작들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한국에서 게임을 발굴하여 신작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자주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는 스파이시의 성공이후 시작된
각국의 문화를 소재로 하는 메탈릭 박스 시리즈인 Cultural Radiant Series 게임들과
알라카르테와 네이버 웹툰 작가와의 협업,
그리고 하이델베어 게임즈의 IP를 활용하여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디지털 게임등
스파이시의 성공을 기점으로 시작된 향후 계획을, 준비중인 신작 게임 위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