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성이 강하면서도 텍스트 의존도가 낮은 게임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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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3 22:52

안녕하세요, 제목 그대로 테마성이 강하면서도 텍스트 의존도는 낮은 게임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보드게임의 테마는 누구에게나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테마성이 강한 게임은 카드의 텍스트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더군요. 제가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의 작품들이나 <메이지 워즈>를 하면서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테마성 강한 게임만 내기로 유명한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의 게임 중에 텍스트가 적은 게임이 별로 없죠. 사실 반지의 제왕, 워해머, 크툴루 신화, 룬바운드, 스타워즈, 왕좌의 게임 등의 매력적인 세계관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카드에 자세한 설명을 보충할 수밖에 없을테니,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그리고 <메이지 워즈>...제가 정말 좋아하는 테마의 게임입니다. 마치 대전 격투 게임처럼 서로 다른 캐릭터를 골라서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1v1의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라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에 글씨가 너무나도 많아서 게임에 몰입이 제대로 되기가 힘듭니다. 뭐 저야 룰북을 한 번 읽고 게임에 임하는 거고 카드에 적힌 무수한 특수 효과들을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이 게임을 접하는 친구들은 여기에 제대로 몰입하기가 힘들지요. 이건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게임인 <서머너 워즈>에도 적용되는 문제점일 것 같습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다들 하는 것이 바로 "한글화"인데...전 그저 이 한글화를 손수 하시는 보드게이머분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한 장 한 장씩 인쇄하고, 오리고, 프로텍터까지 넣는 작업을...게다가 한글화 자료를 직접 만들어보니까 더 엄두가 안 나더군요. 직접 만들어본 카드 한글화 자료를 잘못 인쇄했다든가 하면 정말 좌절감이...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카드에 글씨가 별로 없는 게임을 고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또 카드에 글씨가 별로 없는 게임만을 찾아보면 많이 있긴 하지요. 근데 제가 흥미를 느낄만한 매력적인 테마는 쉽게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FFG의 게임들처럼 유명 프랜차이즈를 보드게임화한 작품이나, <메이지 워즈>처럼 플레이어들간의 인터액션이 강한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공격성이 강한 작품이 재밌어요. 이런 점에서 볼 때, <푸에르토 리코>나 <아그리콜라>는...다들 인정하듯이 정말 잘 만든 게임이지만 식민지 경영, 농장 운영이라는 테마가 저에겐 쉽게 몰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반면 <황혼의 투쟁> 같은 게임은 정말 괜찮죠. 냉전이라는 테마도 잘 살렸고 1v1의 하드코어한 게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근데 역시 마음에 걸리는 건 그 놈의 영어 텍스트죠.

이런 점에서 볼 때, 요즘 관심이 가는 게임은 <세키가하라>입니다.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드에 글씨가 거의 없는 것 같더라구요. 게임판에는 일본의 지명이 로마자로 써져 있지만, 그것만 빼면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운 게임으로 보입니다. 또 일본 전국시대를 게임의 테마로 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이 테마를 얼마나 잘 살렸냐를 설명하려면 크니지아 옹의 <사무라이>와 비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무라이>에는 글씨라곤 없지요. 텍스트의 압박이 전혀 없다는 게 저에게는 장점입니다. 하지만 두 게임 모두 중세 일본을 배경으로 했지만, <사무라이>를 할 땐 정말 게임의 테마에 전혀 몰입이 안 됐습니다. 그냥 담백한 추상 전략 게임이지, 일본이라는 테마는 억지로 입혀놓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이게 어쩌면 전형적인 유로 게임의 단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키가하라>는 제가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워게임으로 분류가 되는 만큼, 전국시대 전투의 느낌을 좀 더 잘 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카드에 텍스트가 별로 없으면서도, <사무라이>와 <세키가하라>를 비교했을 때처럼, 똑같은 테마를 다루더라도 좀 더 몰입감이 좋은 게임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앞에선 "1v1의 하드코어한 게임"이라고 언급했는데, 플레이어들간의 공격적인 플레이가 주가 되는 게임이라면 굳이 2인용 게임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물론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모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인원수가 적은 게임이라면 좀 더 좋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