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머 고인물의 라떼는] 렉시오를 통해서 보는 보드게임의 수요와 가격
[꼰머 고인물의 라떼는] 렉시오를 통해서 보는 보드게임의 수요와 가격
부제: 고인물의 한국 보드게임 시장의 역사
요즘은 한글판 보드게임이 한 해에도 몇 십 개씩 출판되어
어떤 게임이 출판되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든 것 같습니다.
굳이 아주 오래 전 얘길 하지 않더라도 몇 년 전만 해도
한글판이 출판된다 하면 원기옥을 모으듯이
너도나도 후원차원에서 몇 개씩 후원하곤 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입니다.
그리고 몇 년 사이 보드게임 가격이 크게 올라서
요새는 웬만한 게임은 10만원정도 하고 볼륨이 꽤 있다 하는 것들은 가볍게 수십만원 하기도 하네요.
제가 보드게임을 본격적인 취미로 가지기 시작했던 2000년 중반쯤 보드게임 가격은 보통 2~3만원 정도였지요.
당시 보드게임 시장상황은 좀 특이한 경우였는데,
2000년 초반 우후죽순 격으로 보드게임카페가 생겨납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당구장, 후반에는 PC방이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면
(이당시 유흥은 ‘남자’들이 주 소비층이었던 것 같네요.
당시 젊은 여자애들은 어디서 놀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들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ㅜㅠ),
2000년대 들어와서 보드게임카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됩니다.
그때 한번인가 보드게임 카페를 가 봤는데, ‘아 이게 인싸들이 노는 곳이구나’ 싶었죠.
암내나는 놈들이랑 일어나면 머리가 닿는 막걸리집 구석에서
고갈비에 막걸리주전자나 기울이는 것만 보다가,
샴푸냄새 향기로운 젊은 여자애들이랑 섞여서 하하호호 놀 수도 있구나... 싶어 가슴이 콩닥콩닥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해 본 게임은 완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알바가 가져다 준 건 그놈의 할리갈리와 젠가였고,
이걸 시간당 비용을 내고 한다는 게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니까 그곳은 내 취향의 놀이터는 아닌, 인싸가 되기 위해(여자애들 취향에 맞춰서) 감수해야 되는,
적성에 안맞다고 하면 촌티난다고 할 까봐 저어되는 뭐 그런 곳이었죠.
(렉시오 블랙버전)
그렇게 갑자기 늘어난 ‘방’은 만화방, 노래방, PC방이 그랬듯
치고 빠지는 프랜차이즈 인테리어업자들만 배불리고 2000년 중반쯤 되자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통되던 게임들은 대부분 프랜차이즈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종류는 한정적이고 수량은 넘쳐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가격이 만원~3만원 정도가 대부분이었고, 외국에 유통되는 게임들은 구할 생각도 못했고 방법도 몰랐죠.
새로운 보드게임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곳은 당시 ‘국제취미’라 불리던 인터하비랑 루비콘이라는 곳이 대표적이었고,
그 외에도 한 두 군데가 있긴 했지만 취급하는 게임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특이한 건 그때는 카드를 코팅해서 팔기도 했습니다.
할리갈리, 정글스피드 같은 게임은 카드가 훼손될 우려가 크기에 일부러 더 비싼 가격에 코팅버전으로 사기도 했었죠.
프랜차이즈 들이 대량으로 수입해 온 게임들은 몇 몇을 빼곤 보드게이머들에게 그리 어필하지 못했고,
그런 게임들은 대부분 덤핑처리해서 판매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엔 몰랐지만 긴 시간을 거시적으로 보면 당시 한국의 보드게임 가격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던거죠.
그때 루비콘에서 만원의 행복이라는 판촉행사를 했는데 대부분의 게임들을 만원에 처분했었습니다.
아마도 사업을 접는 단계여서 그랬던 것 같은데,
당시엔 그게 일반적인 판촉인 줄만 알았던 거죠.
그때 덤핑 처리되던 게임들 중 기억나는 것들이 AOS 한글판, 티그리스유프라테스 한글판, 1870 등이 만원에 팔렸고,
지금은 나의 콜렉션이 된 페이퍼이야기의 코스모스 2인 게임들 같은 게 대부분 만원에 팔렸죠.
그리고 내 보드게임 라이프에 불을 지폈던 사건이 있었는데,
인터하비라는 업체에서 재고처리용으로 bgkorea라는 사이트를 통해 재고나 박손품을 경매해서 판매하는 이벤트가 있었죠.
당시에 보드게임 가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덤핑이 일반적인 가격인줄 알던 시절이라 경매 낙찰가는 대부분 1만원을 넘지 않았고,
웬만한 코스모스 2인용 게임들 같은 경우 운 좋으면 3000원~5000원 정도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경매 마감시간에는 컴퓨터에 붙어 앉아 광클릭을 해야 낙찰 받을 수 있긴 했지만.
저의 보드게임 소장 역사에서 또 하나의 큰 사건이라 하면
당시 보드게임 카페들이 폐업하면서 보드게임들을 대처분 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제와서 고백하자면 한달 월급을 몽땅 털어 보드게임 카페에 가서 9인승 갤로퍼 한 가득 보드게임을 싣고 오곤 했었죠.
얼마 되지 않았던 한 달 월급으로도 보드게임 100~200개정도는 싣고 올 수 있었죠.
그 중에 기억나는 건 2만원쯤에 샀던 어콰이어 1999년판이 나중에 그렇게 가격이 치솟을 줄 몰랐었죠.
(렉시오 와이트버전)
당시에 렉시오는 대략 3만원정도 했던 거 같은데 화이트와 블랙 두가지 버전이 있었습니다.
특이한 건 당시에 ‘안녕, 프란체스카’라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렉시오 블랙 프란체스카 버전’이라는 걸 판매했는데 이것도 블랙버전이었죠.
그런데 당시 보드게임 시장이 크지 않았던 탓에 최소 수량을 제작해도 수요에 비해 재고가 넘쳐났고
프란체스카 버전은 보드게이머들에게 정품보단 외전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당연히 보드게이머들은 더 희소성이 있는 ‘렉시오 화이트’를 선호했고
블랙이었던 프란체스카 버전은 상당히 낮은 가격인 2만원안팎에 거래되었습니다.
(렉시오 안녕, 프란체스카 블랙버전)
그러다가 점점 보드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렉시오도 재고가 소진되어
2010년쯤 되자 중고장터에서 더 이상 렉시오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뛰기 시작해서 2015년쯤엔 10만원을 웃돌아 거래됩니다.
그리고 2015년 쯤 보드게임 긱에 렉시오 재판에 대한 이야기가 돌면서
렉티오라는 이름으로 재판이 되지만 저작권 소송으로 곧 판매금지가 됩니다.
(판매금지된 우보펀앤런의 렉티오)
그리고 2016년에, 정확히는 2015년에 재판을 했지만 배송이 늦어지면서 2016년으로 넘어갔던 것 같은데
화이트와 블랙버전 렉시오가 재판이 됩니다. 그런데 2018년에 블랙버전의 페인트 유해성 문제로 리콜이 됩니다.
그로인해 한동안 또 시장에서 렉시오를 구하기 힘들어지죠.
흥미로운 사실은 예전에는 희소성이 있는 화이트를 선호했던 소비자들이
재판이 되자 블랙을 더 선호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출시되는 렉시오 플러스는 블랙버전이죠.
아마 앞으로 렉시오가 절판되는 일은 없을 것 같긴 한데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고 가정하면 분명 언젠가 또 희소성이 있는 화이트를 선호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위에 올려놓은 사진들을 보고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렉시오의 박스디자인이 화이트는 구름, 블랙은 해, 이번에 출시되는 렉시오플러스는 별입니다.
나란히 꽂아 두고픈 욕심이 생기네요.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