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따뜻한집님의 "근래 보드게이머로서 느껴지는 변화들"을 읽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래 따뜻한집님의 '근래 보드게이머로서 느껴지는 변화들'을 읽고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엔 댓글을 달다가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냥 새글로 옮겨오게 되었어요.
저도 따뜻한집님의 글을 쓰신 맥락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건 아마도 예전 다이브다이스 시절, 지금보다 보드게임계가 조금 더 마이너했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게시판에 누군가 글을 쓰면 그 분이 누구인지 직접 알지는 못해도
한 다리 건너면 대충 어느 모임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정도는 알 만큼 작은 판이었죠.
그러다 보니 확실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취미동호회들 보다는
조금 더 오프라인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했을 겁니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사실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던 보드게임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적어도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기본적으로 어느정도씩 있을테고
또 보드게임 자체가 온라인 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서로 얼굴보고 정을 주고받으며 하는 취미생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들 느끼다시피 지금은 산업규모도 커졌고, 업체도 많아지고 동호인도 그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었죠.
그래서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다들 느끼고는 있을겁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예전과 다른 분위기에 대해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 꽤나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지만 지금 이 현상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어떨까 해서 말이죠.
첫번째로 한글판 출시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에 있어 조금 정이 없어진 감이 있다고 느끼는 건 비슷한데요.
저는 그것이 아쉽다기 보다는 꽤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업체들이 그 '정'이나 '동료의식'에 기대어 판촉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결과는 꽤나 실망스러웠습니다.
한번은 펀딩을 했는데 제가 집에서 도화지에 칼로 만든 핸드메이드 보다 못한 게임을 받은 적도 있었죠.
그래서 적당히 이해해주고 덮어주는 것보다 어쩌면 정확한 시장반응이 있어주는 게
전체 시장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한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죠.
혹시 시장이 너무 작아서 자국의 시장이 경쟁력이 없을 때 보호정책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보호정책은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소비자가 나서서 업체입장에서 고려하면서 소비해 주는 건 오히려 시장에 독이 되는 것 같다는 거죠.
한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업체를 대하는 소비자의 태도'와는 반대로
'소비자를 대하는 업체들의 태도'에 대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한글판을 출시만 해줘도 감지덕지라 업체의 태도 역시
"우리도 남는 거 없고, 다 유저들의 위해 우리가 희생하는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대놓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업체는 정당하게 가격을 받고, 경쟁력 있는 게임을 가지고 와야 할 것이고, 또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품질이나 가격에 불만이 있어도 '보드게임계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 좋게좋게 넘어 갑시다.'라는 이야기가 게시판에 공공연하게 올라왔었죠.
당시에도 홍위병이니 하는 논쟁이 있었기도 했고, 분쟁을 각오하고 쓰자면...
마치 경제가 어려우니 저소득자들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고통분담하자는 것 같았습니다.
파이를 키우자는 얘기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을 왜 소비자가 희생해야 한다고 얘기하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지금은 업체들도 그때에 비해 조금 더 경쟁력을 갖추었고,
당시 자체 개발 게임 한두개씩을 가지고 출발했던 업체들이
이제는 수십 개씩의 국산게임 라인업을 가지고 있고 어쨌든 중소기업 형태는 띠게 되었으니까요.
펀딩에 1억정도 모이는 것이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웬만큼 인기있으면 10만원짜리 게임 1000개는 하루만에 품절되죠.
그렇다고 그게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거라는거죠.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요즘 분위기가 예전에 비해 정이 없는 것 같아 삭막하다...라는 느낌에 대해 제 생각은,
예전에는 수요에 비해 물량이 달리는 관계로 물량을 가지고 있는 업체가 '갑'의 입장에서 갑을간의 정이 있었다면,
요즘은 그냥 평등해진 관계에서 입장이 재정리되는 느낌이랄까요.
평등해진 관계에서 '정'이 다시 쌓여야 더 좋은 관계가 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두번째는 한글화장인들에 대한 향수인데 예전에 여러 장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더랬죠.
돈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자료를 만들고 무료로 배포해주고 하던 분들 덕분에
보드게임 취미생활에 있어서 커뮤니티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였죠.
사실 그건 요즘도 마찬가지고 여전히 그런 분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 역시 지금껏 이 취미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잊혀져 간다는 얘기에 공감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글판 내는 업체들도 룰북을 공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영문룰의 경우는 업체에서 게임 런칭전에 홍보용으로 먼저 공개하기도 하고
그것이 게임 판촉에도 긍정적일텐데 유독 한글판의 경우는 룰북공유가 상당히 드뭅니다.
한글판이 나오기 전에 이미 영문판을 산 분들이 한글룰북을 공개하면 한글판을 사지 않을까봐 그런 것일까요?
안일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한글룰북을 공개하고 그로인해 새로 동호인이 늘어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파이를 키우고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하긴 내가 업체 입장이라도 미래의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당장 내 회사의 게임 한 개 더 파는데 관심이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세번째로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인데요.
아 이건 그동안 커뮤니티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해왔어서 얘기하자면 길어질것 같아서
따뜻한집님이 언급하신 부분에 대해서만 제 생각을 얘기해 볼게요.
동호인들끼리의 유대감이 많이 사라지고 보드게임만 남은 상업화된 느낌...이라는 생각에 저 역시 마찬가지로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굳이 분석해 보자면,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동호인의 수가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다 보니 친목의 느낌이 적어진 것도 하나의 요인인 것 같구요,
또 하나는 제가 누차 강조했던 '보드라이프'의 커뮤니티에 대한 철학의 문제...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이번 업데이트에서도 명확히 보이듯이 보드라이프는 기본적으로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따뜻한집님이나 저 같은 구닥다리, 아날로그 감성의, 올드, 고인물, 꼰대들에게는 커뮤니티가 무척 중요하죠.
어쩌면 커뮤니티 때문에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나와 함께 게임을 해주는 '사람들' 말이죠.
보드게임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정 없으면 플레잉카드 하나로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몇 십만원짜리 한정판 게임이 부럽겠습니까.
(좋은사람들과 몇 십만원짜리 한정판 게임을 하면 더 좋죠.;;;)
마지막으로 보드게임 정보글보다 자신의 컬렉션 홍보나 과시만 남은 듯 해서 아쉽다는 느낌에 대해서는
사실 저는 조금 다른 관점입니다.
저는 커뮤니티에 자랑글이나 과시글, 하다못해 뻘글이라도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것저것 모으기 좋아하고 제가 모은 것들을 다른 분들에게 보여주고 자랑도 하고,
몇 년동안 모은 컬렉션에 대해 격려도 받고 싶고 그러는 데요.
원래 덕질이라는 게 그런 것까지를 포함하는 거 아닐까요.
단지 뉘앙스가 재수없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그것까지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이니 넘어가줘야죠.
저는 누군가 피규어도색을 근사하게 해서 사진을 올리면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부러워해 줍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저 사람이 가졌다고 박탈감 가질 일이 아니라
우리는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인으로서 보드게임에 대해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구하기 어려운 게임 하나를 구해서 "여러분 저 이거 어렵게 구했어요." 라고 하면,
그냥 "와 대단하네요. 부럽습니다." 라고 해 주는 게 같은 동호인으로 뭔가 힘이 날 것 같아요.
(이쯤에서 제가 종종 판본 리뷰를 올리는 게 재수없는 자랑질로 보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너그럽게 봐 주세요.)
따뜻한집님의 글을 보고 저도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제 생각을 댓글로 적어보려다가 글이 길어졌는데요.
정확히는 글쓴분과 반대의견을 쓰려고 했다기 보다는
따뜻한집님 덕분에 요즘 보드게임커뮤니티에 대한 제 느낌을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혹시 꼬투리잡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또 혹시 다른 의견에 기분나쁘신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