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주사위, 그리고 운

[G]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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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16 오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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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망이유서 쓰기 전에 손도 풀 겸 잡담도 하고 또 보드라이프 트래픽도 갉아먹으려 합니다.

보드게임에서 사람들이 취향이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이 협력인가 경쟁인가(언젠가 협력게임의 호불호에 대해서 한 번 끄적이고 싶네요.) 인터랙션이 강한가 약한가, 주사위가 중요한가 안 중요한가.

개 중에서 사람들이 극극극혐하는 게임들 중 하나가, 운빨망겜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사위가 있단 것 만으로도 손사레를 치시는 분도 봤습니다. 아마 보드라이프에서 활동하시는 유저분들 가운데에서도, 주사위게임-특히 성공 여부를 따지는 피규어 게임-에 대해서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않은 분들도 분명 계시리라 봅니다.

한 번은 왜 그리 주사위게임(그 때 했던게 아마 마앤미였을겁니다.)를 싫어하시느냐 여쭤봤더니, 내가 하는 행동의 의미가 사라진다. 유로게임이면 네명이 제각각 자기 전략을 하는데 이건 한 명이 혼자 주사위 굴리는 거랑 네 명이 각각 굴리는 거랑 뭔 차이냐, 하다못해 카드뽑기면 그나마 낫다. 뭐 이런 논조였습니다.

사실 글룸헤이븐이, 랜덤 요소가 의외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사위가 없는 전투라는 점이 홍보 문구중 하나일 정도면 얼마나 주사위라는 요소가 호불호가 갈리는지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보드게임에 왜 운 요소를 싫어할까, 생각해보니 그건 그거대로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실력이 반영 안 되기 때문이겠네요.

일반적인 여타 다른 게임-스포츠, 비디오 게임-등은 피지컬, 메카닉적인 실력이 들어갑니다. 스포츠야 말하면 입만 아프고, 비디오게임도 롤,FPS,레이싱등이 반사신경이나 손이 빠르면 유리합니다.

예외는 턴제 전략게임정도? 그런데 이런 게임은 보드게임과 무척 유사하죠.

요는 보드게임은 순전히 자신의 수읽기나 전략 싸움이 됩니다. 그리고 주사위는... 그걸 망치죠.

제가 수읽기가 가장 어려웠던 게임은 트라야누스입니다. 1번 해봤고, 그게 첫 만칼라게임이니만큼 자세하게 안다던가 깊게 팠다고는 말하진 못하겠지만, 이 다음 내가 할 액션 3개를 미리 짜놓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였습니다. (듣기로 오부족은 더 어렵다고) 그런데 만약, 만칼라를 다 계산해서 했는데 "액션을 수행하기 전에 주사위를 굴리고, 1이나 2가 나오면 실패입니다. 만칼라를 취소하고 턴을 넘기세요" 이렇게 써있었다면?

게임할 맛 참 안 날겁니다. 아니, 그냥 애매하게 웃으며 내심 "얼른 끝내고 딴 겜은 하자 해야지" 이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운요소가 강한 게임은 깔깔 웃으면서 10분 안에 끝나는 파티게임 정도로 족하다, 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운요소가 없는 게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보통 사람들이 운요소가 적다고 말하는 테라 미스티카, 푸에르토 리코, 촐킨, 러레같은 빡빡한 유로게임이 더 운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리 생각하냐, 하면 전략과 전술, 선, 그리고 스노우 볼링. 요 세가지 때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세 가지라곤 했지만, 저것들은 사실 다 얽히고 섥힌 하나라고 봐도 됩니다. 일단 어제 한 푸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가위바위보로 선을 정하고, 제가 꼴지였습니다. 푸코는 4인플 기준으로 1,2등은 인디고 농장, 3,4등은 옥수수 공장을 받습니다. 그리고 3등이 옥수수를 다 가져가면서 저는 옥수수를 다 못 받거나, 선적에서 불리하거나, 그랬습니다.

물론 제가 푸코를 유달리 못하기는 합니다만, 진짜 유달리 왜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갈정도로 못하긴 합니다만...ㅋㅋㅠㅠ 옥수수 2농장을 먼저 가져갔는데도 타일이 옥수수가 1개만 나오거나, 선장을 먼저 내줘서 선적에서 불리하거나 하는 점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러레같은 일꾼놓기는 아예 선을 가져가는 것 자체로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1액션 손해라고 생각까지 합니다.

윙스팬도 했습니다. 정말 예쁘고 핵잼...은 아니지만 적당히 재밌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룰을 가르쳐주시고 선을 정했는데, 제가 꼴지였습니다. 4인플 기준 윙스팬이 4라운드동안 8액션, 7액션, 6액션, 5액션을 합니다. 저는 선으로 한 액션이 5액션밖에 안 됩니다.

사실 견제요소가 매우 약한 게임이라 별 의미는 없습니다만, 이것도 제가 운이 없어서 3액션을 좀 손해본 거 같긴 하네요.

이런 류는 전략이 겹쳐 선점당해 스노우볼링이 굴러가고 굴러가 지는 경우도 저는 꽤 많이 경험했습니다. 선이라는 이유로 꽤 유리하게 게임을 가져간 경우도 있습니다. 퍼클이 좀 그랬던 거 같아요.

갑자기 게임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지역마다 길에 일꾼 박아서 꽉 차면 도시에 자기 일꾼 놓고 이득먹고, 먼저 도시에 일꾼 박은 사람이 점수먹는 게임도 그랬고요.

운이 작용할 수 없으니, 한 번 밀리면 쭈욱 밀려버립니다. 그 동안은 내내 발버둥쳐도 별 의미가 없고요. 역전이 힘들어지는겁니다. 주사위 하나로 시종일관 유리한게 싹 뒤집어 엎어지는 것도 별로지만, 1라운드 몇 액션에 이미 게임의 승패가 결정나는 것도, 별로입니다.

또 플레이어 성향도 있습니다. 공격적인 플레이어 둘 덕에 어부지리로 이기거나, 거꾸로 서로 방어적으로 나갈 경우 유리한 플레이어가 어그레시브한 세명이랑 게임을 하니 제 역량을 발휘 못한다던가.

저는 선이 어떻게 정해지냐, 어떤 성격의 플레이어랑 게임을 하게 되냐, 서로 어떤 전략을 택하냐, 이런 것도 운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깐요.

거꾸로 완전 운빨 주사위게임... 이를테면 버건디, 마르코 폴로같은건(주사위가 중요한 전략 경쟁 게임은 주사위 일꾼놓기 외엔 또 뭐가 있을지 잘 안 떠오르긴 하네요.) 되려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게임 전체를 보면,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6이 나온 갯수랑 1이 나온 갯수. 운이라는 요소가 결국 플레이어를 공평하게 만들어줍니다. 반면, 전술한 운 요소가 적다고 하는 게임이 여타 다른 요소(선, 전술 선택등)에서 지고 들어가버리면 뒤집기가 힘듭니다. 푸체거가 한 번 밀리면 걷잡을 수 없다는 이유도 이것때문이고요.

음, 그래요. 사람들은 대체로 운의 요소가 너무 강한 게임을 싫어합니다. 왜 싫어할까요? 그건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가 자신의 전략을 망쳐서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운의 요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임들은, 사소한 운요소가 크게 작용해버립니다.

그래서 적당히 운요소가 들어간 게임이, 더 공평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끔 샤이닝 드로우나 골든 핸드로 게임을 역전하면 짜릿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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