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플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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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31 07:53

퇴근은 1시간 남았는데 일이 없네요. 이 기회에 보드라이프 서버를 잡담으로 야금야금 갉아먹을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드게임은 재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재미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시스템, 게임에서 오는 재미고 또 하나는 사람에서 오는 재미입니다. 사람에서 오는 재미는 그냥 누구랑 같이 놀면 즐겁습니다. 그냥 주사위 굴리는 운빨 피규어 게임이라도, 전략도 없이 5분만에 끝나는 빵빵 터지는 파티게임도 같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떠들며 느낄 수 있는 재미입니다. 시스템에서 오는 재미는 퍼즐을 풀 때의 성취감이나 적절한 전략, 수싸움에서 이기는 쾌감입니다. 상대의 전략을 예측하고 선수를 다투고... 추상전략에서 극대화되는 재미겠군요. 대체로 어디서 재미를 더 많이 뽑느냐에 따라서 웨이트가 바뀌는게 아닐까, 합니다. 시스템에서 오는 재미가 크다는건 다르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뭘 하든 어느정도 재미가 보장된다는 거고... 간접적인 인터랙션과 퍼즐이 가미된 요즘 유로게임 스타일이 이런 부류라 생각합니다. 거꾸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건 약간 시스템이 엉망이어도 주사위 덕에 빵 터진다던가 퍽퍽 얻어맞다가 나도 퍽퍽 때리고 난장판 되고 그런 재미가 있죠. 1인플의 경우는 시스템의 재미밖에 맛보지 못합니다. 나 혼자 하니깐 당연한 소리겠죠? 제가 예전에 1인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본 글이 있었습니다. 꽤 예전인데도 기억하는 이유는 반응이 꽤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럴바엔 PC게임을 한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랑 하는게 훨씬 재밌으니 의미가 없다... 그나마 나은게 룰 익히고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으니 좋다, 정도였네요. 그 이후에도 비슷한 글을 몇 번 봤는데, '1인플도 재밌다' 수준에 그쳤습니다. 아무래도 사람과 부대끼는 재미가 없는 1인플은 아무리 힘써도 여럿이서 하는 것보단 부족하고, 다른 사람을 꺾는 성취감등도 부족한게 원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또한 PC게임같이 보드게임보다 저렴하고 손쉽게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대체재가 있으니 보드게임을 혼자 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보드게임 모임 나가는건 별 말 안 하시던 아버지도 1인플하는 걸 보고 왜 혼자 노냐고 구박을 들었거든요. 혼자 컴퓨터게임 하는건 뭐라 안 하시던 당신이 보기엔 퍽 이상해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1인플의 기세는 날로 융성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엔 2~4명이 보드게임의 표준이라면 지금은 1~4,5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특히 킥스게임은 좀 무겁고 복잡해질라 치면 1인플을 지원하는 것 같습니다. 또 피규어 왕창 든 게임도요. 사실 제가 1인플 하는 이유는 모임에 가기 힘들어서 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얼마 안되는 가욋돈 쪼개서 교통비와 회비, 오고가는데 1~2시간이나 걸리니깐요. 거기다가 짠돌이 정신 탓에 한번 가면 맘껏 즐기고 싶어서 휴일을 온전히 노는데 쓰고 싶은데 한 두시간 있다 오면 아까워서 아예 말고 마는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 주변에 이런 무거운 게임은 해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진득하게 고민하는게 즐거워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수요가 있으니 1인플 지원 게임이 느는게 아닐까요? 요는, 1인플도 즐겁습니다. 따지고보면 혼자서 직소퍼즐을 맞추는 거나, 혼자서 마리오 오딧세이를 하는거나(꼭 해보고 싶은데 스위치가 없어요 ㅠㅠ) 다를 바 없으니깐요. 만지작대는게 카드인가, 마분지 조각인가, 조이스틱인가의 차이 뿐이니깐요. 여럿이서 하는 것도 즐겁고 거기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도 분명 있습니다. 레지스탕스 아발론에서 선동을 하거나, 머리를 쥐어짠 끝에 2점차로 이긴 한토토, 왁자지껄하게 웃던 후지 플러쉬에서 오는 재미는 분명 혼자서 주르륵 깔아두고 고민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고심 끝에 최적의 수를 찾아내고, 내 캐릭터가 혼자 세상을 구하고, 전례없던 신기록을 세우는 재미는 충분히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재미만으로도 가끔 혼자서 책상을 치우고 보드판을 세팅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요? . . . 쓰고보니 시간이 한참 남았네요. 여기까지 쓰는데 13분밖에 안 걸렸습니다. 자소서나 이리 술술 잘 쓸 수 있으면 좋겠군요. 팔백자 중 이백자를 유치원 때 자란 기억으로 때워야 했던 예전 자소서 연습할 때의 고통도 없었을텐데. 아무 영양가 없는 칼럼만 던지고 가기엔 소중한 여러분들의 전기나 보드라이프 서버의 용량이 아까우니 조금 더 유용한 정보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엇이 좋은 1인플 보드게임인가? 다인플이 아무리 재밌는 게임이어도 1인플 재미가 홱 바뀌어버리는 게임이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엔 데오윈을 뽑겠습니다. 넷이서 하니까 그렇게 재밌더라구요. 그런데 혼자서 서바이벌 느낌으로 하니 굉장히 심심했습니다. 요는 다인플 리뷰만 보고 "오, 이 게임은 1인플도 지원하는데 다인플 리뷰는 다들 꿀잼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잖아!" ...라고 구매를 했다가 피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게임이 1인플에서도 재밌을까요? 정답은 "규칙이 바뀌지 않을수록 1인플도 재밌는 게임" 입니다. 경험에서 나온 거기도 하고, 사실 규칙이 번잡해진다는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1인플 룰을 억지로 갖다 붙이다보니 룰이 조잡해지는 경우. 또 하나는 다인플을 재현하기 위해 룰이 복잡해지는 경우. 전자는 말할 것도 없고, 후자는 제가 썼듯 '사람과 부대끼는 재미'가 없기에 그다지 재미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1인플은 시스템에서 오는 재미가 위주가 되기 십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규칙이 애매해서 룰북 찾다보면 그냥 게임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로빈슨 룰을 익히기 전에 자주 겪던 현상이네요. 그냥 룰이 더해지면 익히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러니 1인플 추가 규칙이 최대한 짧은 게임이 좋은 1인플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리플레이성입니다. 누가 보드게임 사는데 리플레이성 고려 안 하냐 묻겠지만, 다인플보다 1인플은 쉽게 질릴 공산이 큽니다. 다인플은 어떤 사람이랑 하느냐에 따라 전략이 다양해지고 개개인의 성격-공격적인가, 수비적인가, 딴지가 적극적인가-이 나오니 똑같은 게임이 나올 일이 드물지만, 1인플은 세팅이 같으면 게임의 흐름도 엇비슷해집니다. 그러니 리플레이성도 충분히 고려를 하셔야 좋은 구매로 이어진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2. 1인플 시스템, 그것의 장단점. 1인플도 게임입니다! 그러니 이기는게 장땡이요, 지면 분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하는데 누굴 이기라는 걸까요? 물론 다 상대가 있습니다. 대체로 사전에 세팅된 카드 덱이나, 저번에 내 머리나, 아니면 운입니다. 사실 운이 큰 거 같습니다. 테포마 1인플 손패 안 붙으면 저어어어엉말 어렵습니다. 여기선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보겠습니다. a) Beat your score! 우베 아저씨가 자주 쓰는 수법입니다. 저번 판에서 내가 낸 점수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내면 승리, 못하면 패배입니다. 테포마도 사실 여기에 속합니다. 장점 : 자신의 실력상승이 눈에 띄입니다. 저번에 50점 받던게 계속 반복하니 200점이 되면 얼마나 기분 좋습니까? 거기다가 계속 자신을 시험하기에 반복 도전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단점 : 이론상 최고 점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218점을 못 넘는다, 이겁니다. 이러면 218점을 한 번이라도 달성하면 그 게임의 수명이 바로 끝나버립니다. 혹은, 그에 준하는 점수여도 이 이상은 이론적으로 이 카드 다음에 이 카드가 나오고... 이래야 하니까 사실상 불가능하다, 라는 결론에 이르려 현자타임이 와버립니다. b) beat system 시스템이 내준 조건을 달성하면 이깁니다. 팬데믹이 제일 대표적이네요. 치료제 4종 개발하면 승리! 장점 : 리플레이성이 높습니다. 미션카드 5장 중 2장/하드모드 3장을 달성하는 난이도라면, 최소 5C2+5C3의 스무판은 다 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습니다. 단점 : 이 시스템은 대체로 협력게임이 채용합니다. 협력게임은 참여 인원수와 난이도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인플의 경우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의 난이도가 나오거나, 그게 아니면 1인 2캐릭을 룰 상으로 강요하게 됩니다. 글룸헤이븐....처럼요. 흑흑 1인 2캐릭은 게임의 몰입감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쓸데없이 복잡하고 규칙을 헷갈리게 할 뿐만 아니라 잠깐 택배 받으러 간 사이 누구 턴인지 까먹게 만드는 해로운 시스템입니다. 1인 2캐릭은 나쁩니다. c)오토마 인공지능이 친구가 되어줍니다! 대신 말도 움직여주고 액션도 합니다. 최근 자주 보이는 시스템같기도 하고... 사이쓰가 대표적입니다..비티문화도 오토마와 게임을 합니다. 장점 : 성취감이 큽니다. Beat your score 보다 단계별로 업하는 그 기분... 150점에서 152점으로 오른 것보다 하드에서 베리하드를 클리어했을 때 더 기분 좋습니다. 의사적이긴 하지만 사람과 싸우는 맛이 납니다. 사실 알파고나 딥블루정도 수준이 된다면 사람과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단점 :룰이 복잡해집니다. 거의 대부분은 오토마는 특수한 룰을 갖고... 그에 따라 복잡해집니다. 잔룰도 생기고요. 잔룰 많은 게임은 1인플에선 좋지 못합니다. 복잡함 => 지침 => 게임 중간 접음 의 흐름을 탈 가능성이 크거든요. 또 행동이 예측됩니다. 어느정도 하다보면 대충 얘가 뭘 할지 감이 잡힙니다. 물론 랜덤성을 부여하거나, 다인플을 할 때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AI의 한계점, 특히 카드 수준에서 구사되는 인공지능에서 나오는 한계점은 명확합니다. 제 추천은 목표 달성 > 오토마 > 스코어 갱신 입니다. 아무래도 스코어는 한번 고득점을 달성하면 다시 잡을 일이 드물어지고, 오토마는 룰이 복잡해지는게 꽤 큰 단점으로 다가옵니다. 오토마 추가 세팅도 번거롭고요. 끝맺을 말은 정해뒀습니다. 퇴근이라 자러갑니다 ㅂㅂ 다들 주말에 즐거운 보드게임 라이프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