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진정한 시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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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9 18:45

(뻘글 주의) 한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놓고 뜯지도 않은 게임들이 집에 몇 개인지 제대로 세지도 못하는데 게임을 이렇게 계속 사는 게 잘하는 일일까? 안 해본 게임이 없을 때에야 새로운 게임을 사는 게 현명한 거 아닐까? 하지만 이제 인정했습니다. 게임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기대하던 게임을 받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함께 플레이했을 때의 기쁨도 물론 참 크지만, 그리고 이게 가장 본질적이어야 하는 보드게임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이 게임이 좋은 게임일까 재미있는 게임일까, 이 돈을 주고 사면 싸게 잘 사는 것일까 나중에 더 할인을 하진 않을까, 이런 쇼핑 고민을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 택배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송장이 떴을 때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추적해보는 것도 큰 재미이고, 택배 상자와 보드게임 박스를 뜯어 찬란한 컴포넌트와 반질반질한 카드를 만져보고 지퍼백에 담는 것도 게임의 즐거움에 못지 않은 큰 기쁨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행지에 가서 느끼는 즐거움보다 여행을 준비하고 기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큰 것과 비슷하달까요. 땀을 뻘뻘 흘리며 방콕 왕궁이나 다낭 해변을 걸을 때보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을 향할 때의 순수한 설렘이 더 행복할 때가 있잖아요. 게임이 재미 없을 순 있지만 게임 쇼핑이 즐겁지 않은 순간은 없는 것과 같은 거 같습니다. 형, 게임 또 사요? 전에 산 건 했어요? 뜯긴 했어요? 그거 무슨 게임인진 알고 사세요? 요즘엔 이렇게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대답합니다. 얘들아, 나는 살까 말까 고민을 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거야. 내게 박스 개봉을 하지 않은 게임은 있더라도 노플인 게임은 없단다. 네, 그래서 언더워터 시티즈의 룰북을 아직 반 밖에 안 읽었지만 이미 플레이 중이에요. 꾸역꾸역 중고로 산 젠테스도 이미 오래 전부터 플레이해왔습니다. 에버델이나 에이언즈엔드는 이미 작년에 시작했는데 요즘은 뜸하네요. 킥스에 본판 빼고 풀세트로 들어간 아나크로니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그리고 요즘 저를 가장 들뜨게 하는 게임은 버라지와 파이프라인입니다. 후기를 찾아 읽고 한글판 출시 일정을 기다리고 룰북을 미리 다운받아 읽으면서 저는 마치 링 위에 올라가기 전의 복서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게임을 하는 중입니다. 가아끔 중고게시판에 매물이 올라올 때면 하, 16만원을 주고 그냥 영문 디럭스를 사버려?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건 자원 효율을 너무 낭비하는 액션이라는 생각에 전략적으로 참고 있습니다. 고독한 전략 게이머로서 이 정도 자원 카운팅은 참을성을 가지고 해야겠죠. 성베드로 대성당을 집기 위해 숨죽이고 있는 미켈란젤로처럼...! 이번 주말엔 광기에 저택을 실제로 플레이할 예정인데, 이미지 트레이닝만큼 재미있었으면 참 좋겠네요. 인천공항에서의 출국수속보다 저택에서의 하룻밤이 훨씬 더 재미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