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이머가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07-착지, 그리고 이상입니다.
안녕하세요. 보드게임 트레비 디자이너인 세하입니다. 꾸벅~
이번 글은 저의 첫 출판 작품인 트레비를 출판하기까지에 이른 과정 중 일곱 번째 마지막 글입니다.
그 동안 ‘보드게이머가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에 적극적으로 찾아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글을 시작한 목적에 해당되는, 길다면 길었던 여정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글입니다. 시작합니다.
07. 착지, 그리고 이상입니다.
‘트레비’란 게임이 출시되고, 펀딩 배송 끝내고나니 드디어 할 일이 끝났습니다....
...라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 개인 창작자에게는 그게 끝일 수가 없습니다.
펀딩이 엄청나게 성공하지 않은 이상, 최적의 비용을 찾기 위해 생산한 제품이,
산더미처럼 혹은 작은 언덕처럼, 혹은 아주 소량으로 재고품이 남기 마련이거든요.
제가 단언컨대, 개인 창작자에게 가장 큰 부담은
재미있는 게임개발, 멋진 상품디자인, 선명하고 의도에 맞는 인쇄결과물,
저렴하면서도 합리적인 비용, 많은 수량의 펀딩 성공... 따위가 아닙니다.
남은 재고품의 처리입니다.
왜냐면, 개인 창작자들은 개별유통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펀딩할 때가 아니면 추가로 물품을 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대형 유통몰에 아주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넘기거나,
혹은 각종 오프라인 행사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홍길동처럼 나타나서는,
목이 쉬어라 룰설명을 곁들인 열렬한 홍보과 시간투자 끝에 아주 찔끔(?) 판매하는 게 기회의 다거든요.
펀딩을 해보신 개인 디자이너시라면 다들 공감하시겠지요? ^^;; 저 혼자의 생각은 아니겠....쿨럭...
그나마 트레비는 가족용 게임을 표방하고 있어서인지,
조금씩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체험해보신 분들의 구매율도 높은 편이고,
보드게이머들에게도 조금씩 소문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ㅎㅎ
이런 중에 2019년 3월,
출판을 담당했던 퍼블리셔 측에서 문득 제게 뜻밖의 제안을 해오셨습니다.
그 제안이 뭔고 하니, ‘트레비’는 가족용 게임이긴 하지만,
연산 게임이다 보니 충분히 전략적인 요소로도 확장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근래 주변인들에게서 트레비가 더 전략게임으로 발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그러니 더 전략적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트레비가 둘이서해도 재미있는 게임인데, 아예 둘만 할 수 있는 모드를 만들면 어때요? 듀얼 만들어 봅시다~!”
헐...자기가 좋아서, 그저 느낌의 물결에 몸을 실어 무의식의 흐름대로 게임을 만드는
개인창작자인 저에게 제가 생각해본 적이 없는 형식의 게임기획을 제안한 겁니다.
‘아니, 내가 그럴 능력이...
그리고 이제 트레비 말고,
원래 만들려고 했던 위치스위치매치를...
이 게임 디자인도 이제 새로 그리고....어쩌고...’
이런 오만 생각이 스치는 가운데, 이대로 이끌려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 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넵!”
^^;;;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나약한 사람입니다. ^^;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뭔가가 스쳤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도 안돼 부랴부랴 프로토 타입을 만들었습니다.
부산 창작자 모임에 가서 게임을 돌려보니 전반적인 평이 이랬습니다.
“오~ 꽤 재미있는데 뭔가 별로네요.ㅡ.ㅡ;”
뭐..뭔가요? 이런 평이라니...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저는 대대적으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각기 다른 세트를 구성해서 세트마다 다른 결과물을 적용하여 복잡하디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쓸데없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되네요. 이러면 게임하는 사람들이 헷갈리거나 귀찮아할 것 같아요.”
란 평이 돌아오더군요.
이쯤 되면, 이제는 좋은 게임 창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집니다. 오기가 생기는 거죠.
‘그래? 그렇다면 이건 어때?’,
‘또 별로야? 자, 카드의 기능을 비슷한 듯 다르게 해보았어.'
'듀얼 카드 달성 시에 혜택을 일부분 통일시켰어. 이제 만족해?’
수많은 반복과 수정을 거치고,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면서, 창작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보게월’에서 진행하는
페스타에도 참여해서 시연을 하는 등 테스트 플레이를 거듭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반응도 보고, 카드의 기능이 번잡스러운 건 다시 더 다듬고 줄이고,
듀얼카드 달성 시에 얻는 혜택에 통일감을 주면서도 난이도를 달리 설정했습니다.
<몇 번의 수정작업을 걸친 프로토타입입니다.>
지속적으로 가지치기를 계속 하던 어느 날, 어느 시점에서 저와 퍼블리셔측이 동일한 반응이 나오더군요.
“어라? 이거 정말 게임이 괜찮은데? 정말 전략게임이 됐잖아? 푸하핫”
네, 그래서 듀얼을 완성하고, 트레비의 특징이 잘 살아나면서도,
카드의 기능이 잘 표현되는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위의 듀얼카드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완성을 향해 달려가던 날들의 끝에 텀블벅에 또 ‘트레비-듀얼’이라는 펀딩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근데 펀딩 기간이 짧아 시작이 곧 끝입니다. ^^;)
물론 ‘트레비’가 잘 알려진 게임도 아니고, 기껏 국내 개인창작자의 게임이라는 한계를 갖고 출발하는 것이니만큼
안타깝게도 ‘트레비-듀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래도 저는 보드게임 디자이너로서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고,
보드게이머로서 이 게임은 재미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 자신을 믿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창작품을 만들고 있지요.
그런 이유로 앞으로도 펀딩사이트에서 보드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제 이름을 끊임없이 수시로 보시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보드게이머였던 제가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되어가는 과정을
제 첫 출시작인 '트레비'를 매개로 경험담 위주의 글을 들려드렸습니다.
이 글은 이제 이상입니다!
아래부터는 저의 이상(理想)입니다!
보드게임의 수많은 명언 중에 “재미없는 게임이란 없다. 자기 취향에 안맞는 게임만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진리가 될 수도 있다면, 언젠가 제가 출시하는 게임들을 좋아해주는 보드게이머가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 게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해주시는 팬덤도 형성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제 저는 보드게이머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첫 발을 내딛고, 계속 걸어나가는 시점에서,
머나먼 세월이 흐른 뒤(사실 맘 속으로 가까운 세월이면 좋겠...^^;;) ‘트레비’란 게임에 대해 새롭게 조명되고,
보드게이머 사이에서 다시금 회자되는 황금기가 찾아올거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이렇게 기대하는 이유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혹은 헛된 희망을, 아니면 섣부른 착각을 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부산/경남 지역 어디에선가 저처럼 보드게이머였다가
보드게임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들의 창작게임을 열심히 설명하고, 부족함을 깎아내리고,
완벽함을 조언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마저 제공해주려고 발악(?)에 발악을 일삼는
열정 터지는 순수한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재미를 향해 점점 더 나아지길 바라는 그들과 함께하며 계속 디자이너로서 길을 걷겠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더 자주 뵙겠습니다.
그간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저의 경험담에 귀 기울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지루한 연재글을 읽어주시고, 마지막 글까지 찾아와주신 보드게이머 분들께 큰 절 올립니다. 넙죽~
부족한 글 솜씨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 덕분에
요 며칠간 제가 보드게임 작가가 아니라 글 쓰는 작가로 착각(?)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제 갑자기 작은 이벤트를 떠올렸습니다.
이 글을 지켜봐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 글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제 글에 댓글을 다신 분 중 한 분을 추첨하여
제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트레비 중 1카피를 작은 선물로 보내드릴까 합니다.
음, 공정함을 위해 오늘 12시 전까지 달리는 댓글까지만 해당되는 걸로 하겠습니다.
차후에 쪽지를 통해 주소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추첨은 공정하게 제 아들(순수한 10살임 ^^)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ㅎ
솔직히 제 맘으로는 이 글을 조용히 완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드리고 싶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
다음 작품을 위해서라도 돈을 아껴야 합니다. 많은 선물을 원하시면, 제 작품이 많이 팔려야 가능한 구조라.. ㅜㅜ
다음에는 다른 주제의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이미 과분한 관심을 주신만큼 부담도 되지만, 그래도 흥미로울만한 글을 남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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