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많은 시대에 불편함을 대하는 태도
* 먼저, 이 글은 불편함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주제이지만
철학적 사유의 바탕에는 함께 사는 사회, 즉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철학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어
다소 정치적인 견해가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의 댓글로 게시판 갈등 유발을 원하지 않으니
정치글에 특히 민감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부탁드립니다.
1.
근래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갈등의 층위가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떤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인지까지는 팩트로 이야기하기에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한국사회에서 여러 갈등이 끊임없이 확대됨으로써 이득을 얻는 이들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전 한국사회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갈등은 지역갈등이었고,
그 지역갈등은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정치인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지역갈등을 유발시켜서 그 지역사람들이 타지역사람들에게 배타적으로 만들고,
그로인해 '우리가 남이가' 등 지역 이기주의 심리를 만들어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이겠죠.
(오해가 있을까 싶어 말씀드리면 저는 TK지역 출신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지역갈등의 허구성과 얄팍함들에 대해
예전에 비해 조금은 더 합리적이고 성숙한 시각을 찾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는 근래의 한국 현대정치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예전에 비해 약간이라도 더 올바름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아무튼 더이상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라서 정치인들의 이유없는 지역갈등 유발에
그다지 휘둘리지 않게되어 소위 약발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사회에 새롭게 몇 가지 갈등요소들이 주목되었습니다.
젊은이들과 노인들, 남자와 여자, 기성세대와 청년,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외국인...
그런데 이들 갈등요소들은 사실 이때 처음 생긴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다양화되고 복잡화됨에 따라 다양한 갈등요소들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논의를 위한 프레임으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자주 다른 주요 이슈들에 대한 물타기용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보니
정말 필요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항상 소모적인 논쟁으로 끝나고
매번 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방식의 논란만 부추키다 결론없이 다른 이슈로 또 옮겨가는 식으로 소비되는 것 같습니다.
2.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다난한 정치적 계산과 손익계산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개인적 소신을 유지해야 할까요.
이럴 때 "나는 정치적인 거 신경쓰기 싫어요. 나는 중립입니다." 라는 말은 사실 그리 유용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논쟁적인 이슈가 제기되었을 때
"이야기하지 말아라.", "가만히 있으라.", "논쟁이 보기싫다." 라는 것은 중립적인 태도가 아니라
분명 새로운 이슈를 가져오는 이들에 대한 반대입장입니다.
만약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불편러"라고 치부한다면
사실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나 새로운 개혁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의 악습이나 폐단, 적폐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하여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말 필요합니다.
불편러가 한 명도 없는 사회, 저는 그 사회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잘못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건강한 사회겠죠.
그런데 문제는 예전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비해 나의 불편함을 보다 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면서
저마다 불편함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 불편함이 너무 많아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모두가 불편한 것을 바로바로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뒤에서 욕을 할 수는 있지만 굳이 내가 기분나쁜 것을 공론화해서 공감대를 요구하지는 않았던거죠.
지금 우리사회에는 똘레랑스가 거의 없어보입니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고, 더이상 참기 싫다. 왜 내가 불편함을 참아야 하나...
지금껏 나만 참고 살았던 이슈들에 대해 저마다 청와대청원을 올립니다.
사실 그것들 중에서 서로 상충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슈 같은 것들이 그렇죠.
정규직들은 그 많은 비정규직들이 자신들과 같은 정규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입사할 때 경쟁도 달랐고 힘들게 지금의 위치에 왔고 겨우 작은 권리를 얻었는데
그 작은 권리를 기득권이라고 내려놓으라니 억울할만 하죠.
제가 보기에 비정규직 문제에서 중요한 갈등요소는
사용자측과 비정규직의 갈등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입니다.
이건 명백히 상충되는 가치라서 양보와 상생의 방식이 아니면 해결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3.
'불편함'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부분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불편함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이것이 개인적인 것인지
공론화해서 사회적인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기분나쁨으로 누군가를 저격하는 글'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으며
본인이 불편한 것을 상대방과 알아서 해결하면 될 것을
굳이 게시판에 올려 여러사람이 같이 기분나쁠 필요가 있을까 싶죠.
무엇보다 그러한 부정적인 글들이 게시판에 많아지면
커뮤니티를 찾는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커뮤니티에 방문하지 않겠죠.
반대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라는 것이 공동체라는 부분에서 함께 고민해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소수의견이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의 안하시는 분들도 다수 계셨지만, 예전에 어느회원의 회원자격 박탈과 관련해서
제가 운영진의 비합리적인 일처리에 대해 여러번 지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기대와는 다르게 게시글의 댓글들에서 벌어진 결과는
사실 다른 논쟁거리들에서 일어나는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온라인에서의 토론이란 게 기대와는 다르게 생산적인 의견교류가 되기 보다는
남의 말은 안듣고 제 말만 하기, 주제와 상관없이 말꼬리잡기, 인신공격 등으로
물타기에 휘둘려 주제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감정만 남는 언쟁으로 그치고 마는 게 현실이죠.
하지만, 그것은 토론에 임하는 태도와 자격에 대한 문제일 뿐
문제제기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라는 것이 정확히 개인적인 감정일 뿐인지
사회적인 시스템에 대한 부분인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는 합니다.
대부분은 그 두가지가 섞여있기에 저 조차도 냉정하게 나의 기분나쁨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지만
그런 것들은 친한 친구와 함께 실컷 욕하면서 술자리에서 푸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누군가의 문제제기, 불편함에 대한 의견을 접하는 우리들의 태도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종류의 관용이 필요합니다.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거나, 또는 그 때문에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들에게 너무도 절실한 것이라면
내가 조금 불편해도 감수할 수 있는...
요즘같은 때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독일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를
여기에서 인용하는 것은 다소 비약일 수는 있지만,
나는 공산주의자도, 사회민주당원도, 노동조합원도, 유태인도 아닐지라도
그들이 (불편함을) 주장할 때 보기싫다고 말하지 않는 관용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라고 주장하면 또 '나치'의 인용에 대한 부적절함에 대한 댓글만 줄줄이 달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바쁜 와중에 이 주제에 대해 한번은 얘기를 짚어봤으면 해서 급히 글을 써서
글이 다소 허술하더라도 부디 손가락 끝이 아니라 달을 보아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