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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세력 전쟁 - 라 파밀리아 리뷰

2,079 조회

2024.04.15 19:38

1. 프롤로그

지난 번 헤게모니를 마친 이후, 라 파밀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바이마르부터 이어진 4인 테마게임에 잔뜩 열이 올라 그런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 게시글을 얼핏 눈으로만 보았던 게임이었다. 그저 인연 없는 게임이겠거니 싶었지만, 이번에 구했다는 주녕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거 마피아들끼리 전쟁하는 게임이라던데 어떨런지 모르겠다는 대화를 나눈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 실제로 그 게임을 할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 몇 년간 보드게임과 동떨어진 삶을 보냈지만 올해 들어 급격하게 보드게임을 즐기는 생활이 어색하기만 하다. 손에 떠나니 잡히는 삶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지만.

워게임을 동경하지만, 언제나 현실과 타협했던 보드게임 라이프. 워게임 또한 자생의 길을 찾은 듯 다양한 테마와 시스템, 그리고 화려한 컴포넌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룰도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변모해 갔다.

일전 세키가하라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워게임의 변화는 꽤나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탐탁지 않을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과연 이걸 워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은 느낌.

허나 매니악한 워게임도 존재하되, 이렇게 심플한 워게임은 또 그 나름대로의 길을 개척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듯 하다. 시대의 흐름에 함께 변화해가는 보드게임. 특히 마이너 중 마이너 장르인 워게임의 가지가 하나 더 늘어난, 워게임계의 긍정적 다양성이라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조심스레 든다.

2. 세가지 감정

내 기준에 워게임은 테마가 주는 무게감이 다른 것 같다. 같은 시스템으로 게임을 만들어도 세계대전이 주는 무게와, 동네를 가르는 석전이 주는 무게가 다른 것 처럼 말이다.

팍스파미르가 분명히 좋은 게임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이유는 테마의 영향 또한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과 그레이트 게임의 역사를 배우지 않는 우리에게는 당시의 알력다툼이 어떠한지, 그리고 전투 양상이 왜 이렇게 일어나는지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아무렴 어때.

또한 게임 시스템과 당대의 상황이 얼마나 부합하느냐도 게임에 내리는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가령 패스 오브 글로리에서 이루어지는 전선과 당대의 참호전은 마치 실제 전황과도 같이 어우러져 극찬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시스템과 테마를 어떻게 비벼놓느냐, 그리고 그 테마가 얼만큼 흥미로우냐는 워게임이 가진 재미 및 흥행과도 궤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연장하여 부연하면 라 파밀리아는 내게 그리 와닿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 아니었다. 나온지는 1~2년 정도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회자 되는 걸 못 본 느낌이다. 내가 요즘 보드게임 판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보통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려면 한글화에 대한 떡밥이나 여타 이슈 메이킹을 받을만한 여건이 필요하다. 뭐, 불운하게도 출시와 동시기에 다른 대형 이슈가 터지면 해당 게임의 화제성이 묻힐 수도 있겠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게임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워게임이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을 법한 테마가 전면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피아 간의 전쟁이라는 테마가 우리나라 게이머의 관심을 얻기는 어려울텐데, 그것도 시칠리아 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니. 우리에게는 한참 동떨어진 내용이라 더욱 그렇다. 나 또한 어디선가 예전 마피아에 관한 글을 읽었던, 교양 수업도 못되는 출처 불명의 지식 밖에 알지 못한다.

(대부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스테레오 타입)

유구한 역사의 시칠리아 섬은 본디 여러 침략으로 주인이 매번 바뀌던 곳 이었다. 게다가 본토와는 동떨어진 섬이라는 위치와 여러 도시국가로 나뉘어진 이탈리아 반도의 특성 때문에 전통적으로 거대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특정 가문의 영향이 커졌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이권을 확보하거나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치안활동을 전개 하였고, 이후 범죄를 비롯한 여러 활동으로 섬 내 세력을 불려가던 날들이 지속되었다 한다.

허나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집권하여 전국적인 지배를 확장하였고, 당시 섬에 뿌리내린 해당 질서를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시칠리아 섬에 살던 유력 가문은 미국 등지로 이민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마침 금주령이 시작되었고, 그 탓에 해당 세력은 시카고 등지에서 밀주로 엄청난 돈을 긁어모으게 되었다. 그리하여 알 카포네를 위시한 마피아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게 내가 아는 시칠리아 마피아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시칠리아 섬 내의 알력다툼이 테마라고 한다. 시카고 마피아가 아니라고? 내가 이 게임 테마에 몰입할 수는 있을까?

그리하여 이 게임을 접한 인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엔 워게임이라는 설렘, 그리고 시칠리아 마피아 간의 전쟁이라는 테마의 난해함, 마지막으로 알록달록한 보드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게임을 마주하며 이 세가지 다른 감정이 혼재된, 복합적인 감정이 한 번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3. 라 파밀리아

이 게임은 특이하게도 2:2 팀전으로 구성된다. 공통의 이권을 가졌지만 독자적 승리조건이 있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완벽한 팀전인 것이다. 요새 이런 게임을 보기는 참 어려운데, 작가가 어떤 이유에서 이런 승리 조건을 택했는지 궁금하다. 아마 특정 패밀리의 유불리를 잘 상쇄하라는 뜻이었을까.

여튼 게임은 크게 두 페이즈로 구성된다. 계획을 세우고, 세운 계획을 토대로 플레이한다. 그게 이 게임의 전부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하다. 주녕은 이 게임에 왕좌의 게임이 보인다 표현했는데, 과연 그랬다. 왕좌의 게임도 여러 알력 다툼 후에 토큰을 뒤집어 놓고 모두 펼치며 어떤 기준에 따라 차례로 플레이하게 되는데, 이 게임 또한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방금의 설명과 같이 게임은 매우 단순해 보이나, 게임 컴포넌트의 보충과 플레이 방식에서 약간씩 변주가 있다.

보드는 크게 게임 보드와 개인 보드로 나누어지는데, 게임보드는 시칠리아 섬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 보드에는 각자 큐브나 자동차, 배 등을 놓을 수 있고, 공장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개인보드는 여타 게임처럼 자신의 현재 세력이 가진 업그레이드 상황 등을 표시할 수 있는 상황판이 있고, 그 뒤에는 가림막이 놓여있다.

(시칠리아섬 보드와 개인보드가 살짝 보인다. 좌측 상단은 액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디스크.)

이 게임은 같은 팀이 나란히 앉아 시계나 반시계방향으로 플레이하지 않는다. 게임 보드에 친절히 8자 모양을 그리며 게임을 플레이하라고 표시되어 있다.

자신의 턴에 할 수 있는 일은 디스크를 아래의 행동칸으로 옮기며 해당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오더 토큰을 놓을 것인지, 증원할 것인지, 수익을 얻을 것인지, 업그레이드를 할 것인지 등. 몇 가지 선택지 중 비어있는 칸에 디스크를 옮기게 되는데, 자신의 색깔 디스크를 옮기거나 회색(중립) 디스크를 옮기며 액션을 수행하면 아무 패널티가 없지만 다른 상대의 디스크를 움직이게 되면 그 상대에게 돈을 1원 지불해야한다.

그렇다면 뭐하러 상대의 디스크를 옮기느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외로 옮겨야 할 때도 있다. 그 이유는 액션 행동 열에서 디스크를 움직여 수행하는 액션 대신 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행동 때문이다. 이는 막대한 금전을 지불하여 재판소나 공권력 등을 포섭하는 액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만일 이 업그레이드를 수행하려면 해당 열에 표시된 금액 이외에도 현재 열에 놓여있는 디스크 수량만큼의 액수를 지불해야 하며, 또한 각자의 색깔 디스크를 가진 사람들에게 돈을 모두 1원씩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그 액션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상대에게 1원을 주는 행동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1열에는 상대 디스크가 1개 남았고, 2열에는 내 디스크와 회색 디스크 총 2개 남아있다. 눈치를 보니 상대는 2열 업그레이드가 급한 것 같다. 만일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2열에 있는 회색 디스크를 가져가서 어떤 액션을 수행하기 보다, 1열에 있는 상대 디스크를 사용하고 나의 다음 차례 사람에게 2열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욱 이득일 수 있다.

한편 이 게임은 워게임이니 만큼 병력(조직원)의 선발과 배치 또한 중요하다. 이 게임은 큐브박스에서 자신의 조직원으로 포섭하는 액션과 시칠리아 섬 내에 배치하는 액션이 따로 구분되어있다. 물론 액션 내에서는 둘 다 어느 정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구현되어 있지만, 이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당장 인원을 배치하고 싶어도 우리 조직에 가용 큐브 수량이 없다면, 병력을 배치할 수도 없다. 반대로 가용 조직원은 많아도 정작 시칠리아 섬 내에 배치가 되어있지 않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래서 해당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꽤나 중요해 보였다.

조직원 큐브 이외에도 전투에 큰 도움을 주는 자동차, 해양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선박, 그리고 조직의 자금줄이 되는 공장이 있고, 액션을 통해 이를 보드에 놓을 수 있다. 공장에서 무얼 생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게임에서 가장 핵심적인 액션이 있다. 바로 명령 토큰을 메인 보드에 놓는 행위이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토큰이 많다 해서 모두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명령 토큰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 것인지가 꽤나 큰 고민이 된다.

(보드 위에 놓인 명령 토큰들)

명령 토큰에는 크게 공격을 위한 토큰과 보급을 위한 토큰이 있다. 보급 토큰은 우리 조직에 이득이 될만한 행동을 수행한다. 공장을 짓는다든지, 조직원을 더 배치한다든지, 방어력을 높여준다든지. 공격 토큰은 총으로 대변되는 공격 마크나 여러 특수 마크, 그리고 부가적 행동이 적혀있다. 만일 총 아래 해골과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면 기습 선제공격으로 상대 큐브를 숫자(업그레이드 한 숫자 포함)만큼 먼저 제거할 수 있다.

만일 토큰에 폭탄이 그려져 있다면 자동차를 이용한 테러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 자동차에 폭탄을 실어놓고 날리는 액션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내 자동차를 상대 진영에 날리고 엄청난 폭발력으로 상대 조직원을 증발 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을 점령하지는 못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토큰 좌측 상단에는 숫자가 쓰여있어 통상 낮은 숫자 먼저 수행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꽤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내 비장의 명령이 상대의 명령으로 막히는 상황. 나는 이미 테러를 계획했는데, 상대의 선제공격으로 계획이 어그러지는 상황들도 수 없이 벌어진다. 그래서 이 액션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명령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 그것이 이 게임의 큰 재미 포인트 중 하나이다.

(좌측 하단에 보이는 명령토큰들)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면 내 큐브 2개를 먼저 희생하고 1:1 대응으로 토큰을 제거할 수 있다. 압도적인 수량으로 밀어부친다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꽤 재미있는 매커니즘으로 상대와 승부를 가리게 된다. 모두는 각각 상대 큐브를 내 큐브로 바꾸는 포섭 카드, 큐브를 하나 줄이는 카드, 큐브를 두 개 줄이는 카드 총 세장을 가지고 있다. 상대와 나는 각자 이 중 한 장씩 선택하여 뒷면으로 내려놓고 공격자 부터 상대의 카드를 가져갈지 그대로 둘지 선택한다. 선택이 완료되었다면 카드를 공개한 후 카드에 지시된 대로 수행한다.

말로만 설명하면 단순한 매커니즘으로 보이지만, 요 요망한 것이 전투를 한 치 앞도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드는 신선한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상대와 내가 동일하게 큐브 두 개를 줄이는 카드를 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상대가 내 카드를 가져가고, 나는 상대의 카드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상대는 순식간에 큐브 4개를 잃는 것이다.

전투의 쫄깃함은 바로 여기서 온다. 상대가 무슨 카드를 냈을까? 포섭? 제거? 가져가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카드를 낼까. 어찌보면 가위바위보와 같이 꽤나 단순한 매커니즘이지만 이게 생각보다 피 말린다. 오묘한 심리전을 거치면 특히 불리한 상황에서는 선택에 따라 충분히 역전을 할만한 변수를 만들기도 한다.

(우측 하단에 놓인 포섭 카드)

좌우지간 이 게임은 이런 상황을 4라운드 동안 반복하다 지역을 더욱 많이 점령한 팀이 승리하게 된다. 만일 동률이라면 핵심지역 브론테를 점령한 팀이 승리하게 된다.

4. 흥미로운 게임

거대한 보드를 가진 게임을 보면, 협력 게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개인전이 많다. 팀전 게임도 간혹 있긴 하지만, 비슷한 이해관계를 지닌 개인의 의기투합 정도에 가까운 게임이 더욱 많았던 것 같다.이렇게 본격적인 팀 게임은 그런 의미에서 놓고 보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상대팀의 명령 토큰이나 맵 등은 따로 제공된다. 그래서 입을 슬쩍 가리며 너가 이쪽을 공격하면 나는 이쪽을 공격할 게 등과 같이 여러 전략을 세울 수도 있다. 이 토큰으로 이렇게 해줘 라든지, 나한테 돈을 얼마 주면 어떻게 할게 등 다양한 전략 또한 세울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난다. 협력게임의 단점, 알파 플레이어가 등장해 모든 것을 좌우하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다른 한 사람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은 꽤나 복잡하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전략적인 그림은 그릴 수 있어도 모든 그림을 혼자서 그릴 수는 없다. 당장 나 할 것도 많은, 아주 벅찬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협의 자체도 그리 지나치지 않게 게임을 맛깔나게 하는, 적절한 양념처럼 버무려질 수 있었다.

이 게임은 후반 명령 토큰이 어우러질 수록 고민이 생긴다. 나보다 숫자가 낮을까? 나는 방어를 해야하나, 아니면 무리해서 공격을 해야하나. 그리고 이런 선택이 곧 눈치싸움으로 이어진다. 선후공이 명확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토큰으로 이루어진 동시 진행 매커니즘의 장점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의 테마도 상당히 잘 녹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워게임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테러나 포섭 등의 다양한 공격 패턴 때문이다. 차량을 이용하여 함께 공격할 시에는 공격력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폭탄테러 토큰을 사용한다면 차량만 보내어 압도적인 기습공격을 가할 수 있다. 또한 상대를 포섭한다면 전력차를 순식간에 뒤집는 행위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두번 공격한다거나 하는 자기 진영만의 독특한 명령 토큰도 존재하여, 진영 간의 명확한 갈래도 함께 부각된다.

이러한 게임 시스템 덕에 꽤 재미있는 상황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A 플레이어가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려고 조직원과 차량을 대기해두었다. 상대편 B플레이어는 이를 눈치채고 차량으로 폭탄테러를 준비했다. A 플레이어의 동맹인 C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B플레이어의 지역을 선공하기로 결정했다.

(파란 토큰이 모인 위에 노란 토큰 소수 병력이 있고, 또 그 위에 검은 토큰이 있다.)

이 상황에서 명령 토큰을 공개하면 실행 순서에 따라 몇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만일 ABC 순서라면 A는 이미 공격을 끝낸 뒤기 때문에 B플레이어는 오히려 C에 테러를 가하게 된다. 순서가 BAC라면 B플레이어는 테러를 A 지역에 먼저 수행하여 상대를 궤멸시키고 A는 명령을 수행할 조직원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C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재미있게도 CB의 순서로 플레이가 되었다. 당연히 C 플레이어는 B 지역을 공격하였다. 그렇다면 B플레이어는 그대로 계획이 어그러지느냐?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비록 다수가 공격해온 상황에서도 전투를 잘 치르면 B플레이어가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토큰이 공개되고 검은 조직이 다수의 조직원으로 선공을 하였으나, 노란 조직이 공격을 막아내었다. 노란 조직은 그대로 파란 조직에게 테러공격을 감행, 파란 조직원을 일망타진하였다.)

하지만 전투에 이긴다고 해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곳에 여러 큐브가 몰려있는 것 보다, 여러 곳에 분산 배치되는 것이 명령을 수행하기도 유리하다. 그리고 지역을 점령하면 보너스 액션을 얻을 수 있다. 이게 나름 쏠쏠하다. 약간의 비용으로 자동차를 얻을 수 있다든지, 기습공격에 더 유리하다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의 승리 조건이 지역 점령이기 때문에, 상대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다른 내실은 다 제쳐두고 일단 공격하려는 무리수도 발생한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꾸준히 세를 확장해 두어야 한다.

(몇차례 유혈 사태 후 정리된 보드)

5. 아쉬운 점이 있을까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이 없는 게임은 세상에 없는 법. 일반 유로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시간적 제약이 있다. 4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돌아갈만한 볼륨의 게임. 의외로 생각의 골도 깊으니 장고도 많아질 법 하다. 어느 것이 더 유리한지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턱턱 막히는 느낌도 들 것이다. 하지만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생각해 둔 것이 어그러질 수 있다. 난제다.

역으로 게임이 4라운드라 아쉬운 면도 있다. 다시 말하면 게임에서 전투는 단 4차례 발생하고 끝나는 것이다. 지는 상황에서는 상당히 아쉬울 수도 있다. 조금만 더 기회가 있었다면 어떨까 싶은 느낌. 게임이 길다는 것에 부담이 있지만, 4라운드면 끝이라 아쉽다니. 참 아이러니다.

팀전에서 오는 부담도 있다. 우리 팀이 이기면 기쁨도 두배지만, 패배한다면 알게 모르게 미안한 감정도 함께 들었다. 이 게임이 롤 처럼 5:5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나마 2대 2 팀전인 만큼 꽤나 치열하면서 협동도 할 수 있는, 하지만 제한적인 승부가 펼쳐진다. 아쉬운 점을 굳이 뒤져본다면 반대로 정치와 협잡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도 있다. 마피아에서 정치와 음모, 그리고 배신이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반대로 적대 세력의 선명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게임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게임의 배경인 시칠리아 섬이 우리에게 잘 맞지 않는다. 차라리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마피아 갱 간의 전투라면, dlc로 경찰 팀이 따로 등장해서 영화 '언터쳐블'과 같은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좀 더 흥미로운 게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스카페이스1920과 많이 겹치는 면이 생겼으리라 생각하니, 그 방법은 요원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아쉽다.

(업그레이드 되는 개인보드와 늘어나는 시칠리아 섬 내의 조직원들)

또한 각 패밀리 간의 밸런스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테러 전문, 공장 전문, 기습 전문 세력 등 여러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특히 세력을 업그레이드하게 되면 얻게 되는 토큰마다 능력치가 다르다보니 그에 따른 강약은 분명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자신에게 맞는 패밀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세력에 대한 아쉬움이 들 법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의 전투나 명령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기어코 명령 다 짜놨는데, 상대의 한 수에 아무것도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는 그림이 꽤나 자주 나온다. 정말로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렸던 명령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강력한 상호작용의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불호가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병력을 만들어두고 쳐들어가질 못하니)

6. 마무리

지친다거나 진이 빠진다고 표현하기에는 4라운드가 짧게 느껴졌다. 흡인력 있는 한 판. 다음에 또 해보면 잘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마저 들었다. 다음에는 이런 플레이를 해봐야지 싶은, 맵고 맛있는 재미.

이 게임 커플끼리 하면 재미있겠다. 의외로 단합도 많이 필요하고, 손발도 맞아야 한다. 게다가 소곤거리며 작전을 구상하는 모습이 상대의 눈에는 눈꼴 시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지면 책임지기 어렵지만.

잘 비볐다. 게임 내 여러 조직의 쟁탈전이 큐브로 간결히 이루어진다는 것도 흥미롭고 알록달록하니 멋드러진다. 특히 큐브를 이용한 맵의 배치 등은 마치 예전 게임 중 쇼군(발렌슈타인)을 하는 것 같았다. 전투 방법은 좀 많이 달라도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은 그 탓이리라.

한글판 게임이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게임 내 문자가 거의 없다. 아, 지역 점령 시 얻는 혜택에 좀 있긴 하지만 위에 기호로 따로 표기되어 있으니 적응하면 쉽게 플레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글판이 출시되지 않는다 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다. 물론 나오면 더 좋긴 하겠다.

여튼 여러모로 재미있는 게임이다. 최근 바이마르나 헤게모니처럼 내치나 외치 가득한 게임을 즐겼다면, 이번에는 순수하게 정치 협잡 다 빼고 무력으로의 한판 승부를 본 듯한 느낌. 아쉬운 점도 있을 수 있지만 몇 번 더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임임에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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