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해본 보드게임 중 TOP 20
23년에도 연말을 맞아 한 해 동안 했던 보드게임을 정리해 봤는데요, 늦장부리다가 1월이 끝나기 전에 부랴부랴 올려봅니다.
작년에 온-오프라인으로 한 번이라도 해봤던 보드게임이 총 166개인데요. 이 중 게임의 완성도, 매력, 그리고 23년도 플레이 경험으로 나눠서 (아주 주관적으로)점수를 매기고 총점을 기준으로 정렬해 봤습니다. 게임 코멘트는 인스타에 쓴 글을 복붙한거라 평어체인 점 양해 부탁 드려요.
- 20위 <엘 그란데: 빅 박스>
깔끔하게 매운 고전 게임의 정석. 5인이라면 한토토와 더불어 언제든 꺼내고 싶은 게임. 옛날 게임이라 룰에서 플레이어들이 낙오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가이드 해주는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영향력 게임의 원초적인 맛은 뚜렷하다. 보드판에 내 미플을 늘릴 것인가, 강한 액션을 선점할 것인가 양자택일의 딜레마 사이에서 최선의 수를 찾는 재미!
- 19위 <메시나 1347>
룰 복잡도, 보드판, 박스 크기 모두 컴팩트한 점이 가장 호감. 무려 700여 년 전 흑사병 테마이지만 최근 겪은 코로나 덕분(?)에 환자들 치료하고 격리시키고 때로는 집에 작업장 만들어 재택근무도 시키는 악랄함이 더 와닿았다.
- 18위 <타반누시: 우르의 건축가들>
룰북 읽을 땐 다소 챙겨야 할 게 많아 보였던 행동들이 막상 플레이 시엔 꽤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디자인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총 다섯 개의 구역에서 각각 스코어링이 일어나는데 어느 구역에서 몇 번의 스코어링이 일어날지는 게임마다 양상이 다르다. 각 구역에서의 스코어링은 대부분 퍼즐 맞추기 형식이고 각각의 퍼즐에 투자를 얼마나 하느냐가 포인트인데, 이를 위해선 주사위 눈금에 따른 일꾼 이동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이 일꾼 이동 메커니즘이 스코어링 트리거랑 조합이 되어서 꽤나 유니크한 재미를 준다 게임이 진행될 수록 보드판에 건물이 가득 건설되는 걸 보는 흡족함과 답답함(맛있는 데 하나도 안 남음ㅠ)이 공존하는 좋은 게임.
- 17위 <악마와의 거래>
4인 전용 게임에 앱을 써야 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게임에서도 볼 수 없는 비공개 거래 시스템이 정말 특색 있다. 인간 플레이어는 내 영혼 조각의 가치를 최대한 높게 팔아야 하고 악마 플레이어는 거부하기 힘든 거래를 제안해야 하는데 이들 사이의 말 없는 인터랙션이 핵심 포인트. 이 거래 단계가 굉장히 중요한 만큼 다른 메커니즘은 비교적 단순하게 만들어 놓은 점도 호감이다. 거기다 초중반 너무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면 마녀사냥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점이나 (악마든 인간이든) 평판을 잘 관리해야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요소 등 테마와 잘 어울리는 위트들도 맘에 들었다.
- 16위 <브라스: 버밍엄>
현시점 BGG Rank 1위! 의 아우라 때문인지 이상하게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뭔가 아껴먹고 싶은 마음일까? 23년에 겨우 한 번밖에 못 돌렸지만 24년에 보드엠에서 선주문 한 아이언 클레이 오면 신나게 돌려야지.
- 15위 <그레이트 웨스턴 트레일: 아르헨티나>
그웨트 자체가 너무 훌륭한 게임이지만 본판의 경우 북부행 확장을 넣으면 초반 보조행동으로는 거의 지점 놓기가 강제된다는 점이 살짝 불호요소였는데, 이 아르헨티나 버전의 경우 아직까지 내 경험으로는 밸런스가 잘 잡힌 느낌이었다. 소 카드를 노동력으로도 쓸 수 있는 점이나 숏컷의 존재로 인해 전략적으로 어떤 테크를 탈지 고민할 요소가 늘어난 점 등 본판의 재미는 유지하면서 살짝 변주를 준 부분이 좋았다. 비슷한 류의 게임을 여러개 가지고 있지는 않는 편이기도 하고 아레나에서 많이 돌리기도 해서 이 게임 구한 다음 본판(구판)은 처분했는데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 14위 <마라카이보>
23년에 고정 멤버로 캠페인 모드를 처음 시작했는데 상황이나 선택지에 따라 맵이 바뀌는 부분이나 인물이 새로운 카드 덱에 추가되는 지점이 꽤 몰입도를 올려준다. 이런 캠페인 모드나 레거시 게임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게임 자체가 물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마라카이보는 애초에 매 게임마다 전체 카드풀에서 일정 카드들만 랜덤으로 쓰기 때문에 리플레이성에서 좀 더 유리한 느낌이다. 그리고 게임의 양상이나 템포 자체도 어떻게 플레이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유동적이라 매 판 어떤 카드들로 어떻게 플레이할지 기대된다. 전형적으로 큰 그림을 정교하게 그리기보단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식 대처가 중요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게임.
- 13위 <에이지 오브 스팀>
이 게임은 처음 시작하면 초반 자본금도 넉넉치 않은데 수입은 쥐꼬리만하고 유지비용은 많이 나가니 매 라운드 적자라 다음 라운드가 시작하자마자 대출로 근근히 버티다 보면 이렇게 하는게 맞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다 중후반부쯤 되야 비로소 수입이 지출+유지비용을 뚫고 올라가면서 숨통이 트이는 시점이 오는데 이 시점을 얼마나 당기느냐가 관건이다. 때문에 초반에 경매에 비딩하는 1원, 선택 액션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한지라 첫 단추를 잘못 꾀면 고통만 받다 끝날 수도 있는 비정한 게임인데 그만큼 철도 운영을 잘 해서 6링크 배송을 성공했을 때의 쾌감도 크다. 게임이 끝나고 맵에 철도들이 예쁘게 만들어진 것을 감상하는 맛은 덤.
- 12위 <마라케시>
정말 테마는 성의로 존재하는 포인트 샐러드 게임인데, 액션 선택을 하는 과정이 신선하고 맛있다. 23년에 겨우 딱 한 번 해봤는데 재미에 놀라고 가격에 두 번 놀람. 올 해 정발될 것 같은데 살지말지는 출시 가격을 보고 고민해 봐야할듯. 그 전에 누가 좀 많이 시켜줬으면 좋겠다.
- 11위 <퓨덤>
(예전 설명 복붙)아마도 21년도에 BEST 게임을 뽑았다면 이 게임이지 않았을까. 퓨덤은 내가 가진 게임 중 룰 설명이 가장 긴 게임이면서(웨이트도 단연 1등) UI가 가장 불편한 게임이다. 한마디로 접근성이 가장 낮은 게임인데 신기하게도 내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이 단점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게임의 핵심인 액션 카드는 총 11장인데 마지막 열한 번째 액션 카드 설명에 들어서면 ‘아, 이제 길고 긴 설명이 거의 끝나가는구나.’라고 다들 생각하게 된다. 한데 이 마지막 길드 액션 카드 한 장에는 총 6개의 길드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3가지 액션이 기다리고 있다. 즉, 18개의 액션을 또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듣는 사람도 지치고 룰마도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룰마를 힘들게 하는 길드 액션이 또 이 게임의 굉장한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6개의 길드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순환 경제를 구성하는데, 각 길드에서 지위가 높은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열심히 생산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이 판의 흐름이 답답해지기도 하고 원활해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각 장소에서 치열한 영향력 싸움까지 하고 있으면 이 게임은 정말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거기다 메인 보드판을 보고 있으면 “심미적 완성도를 위해선 UI 따위 개나 줘버려”라고 하는 듯한 작가의 곤조가 느껴지는데, 이 점 역시 나에겐 너무나 매력으로 느껴졌다. 다른 보드게임에서 흔히 보기 힘든 개성 강한 아트웍과 시선 강탈 거인(이지만 귀여움이 포인트) 미플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에 이 게임 돌리게 되면 룰 설명할 때 영상 꼭 찍어둬야지!
- 10위 <테케누: 태양의 오벨리스크>
22년엔 4위였는데 23년엔 한 번 밖에 못 돌려서 순위가 조금 떨어졌다. 자세한 코멘트는 작년에 길게 썼으니 패스. 초반 자원 드래프트할 때 숙련자를 위한 챌린지 룰이 있던데 그 방법으로도 해보고 싶다.
- 9위 <월드 원더스>
연말에 한 번 해보고 완전 반함. 이 게임을 하면서 내가 타일 놓기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타일과 불가사의를 사 오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 독특했고 역시나 제한된 시장 풀 안에서 사 와야 하기 때문에 선 잡기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길 타일과 건물 타일 놓는 규칙이 뭔가 현실적(?)이라 타일 배치할 때 기분 좋게 머리가 아프다. 다양한 불가사의 건물들이 하나하나 예쁘게 도색도 되어있어서 자연스레 내 보드판에 불가사의를 하나라도 더 건설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데, 막상 불가사의가 엄청 큰 점수를 주는 건 아니라 타일 놓기의 기본인 테트리스를 예쁘게 하는 게 고득점엔 더 유리한 듯. 게임의 포지션이 왠지 코보게에서 정발하기 딱 좋아 보이는데 얼른 내 줘!(이 글 쓰고 묵혀놓은 기간 동안 11마존에서 수용 가능한 가격에 팔길래 질러버림. 신난다!!)
- 8위 <스타워즈: 리벨리온>
이 정도 규모(초플 5시간 정도?)의 게임에는 필연적으로 기승전결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게임 한 판을 하면서 하나의 서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스타워즈: 리벨리온을 하고 있으면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상영되는 느낌이다. 5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게임에 완전히 몰입해서 즐겼다. 스타워즈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봉한 영화들은 다 봐서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제국군 플레이어한테 인간적으로 X 치면서 표시할 수 있는 맵 하나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 요게 딱 하나 불만사항이었음.
- 7위 <칸반 EV>
23년엔 그동안 못 해본 비딸의 고 웨이트 게임들(온 마스, 웨더머신, 인벤션, 비뉴스2010)을 거의 다 해볼 수 있었는데 나의 비딸 게임 TOP 2에는 변함이 없었다. 칸반만의 간단하지만 오묘한 일꾼 놓기 메커니즘은 정말 매력적이다. 비딸이 가장 잘 하는 유로게임에 테마 듬뿍 끼얹기가 가장 적절하고 아름답게 구현된 게임.
- 6위 <클랭크! 레거시: 전리품 주식회사>
22년 10월에 시작해서 23년 1월에 엔딩을 봤다. 딱 세 번 모여 하루에 3~4 게임씩 진도를 나갔는데 한 번도 지루한 느낌 없이 너무 즐겁게 끝마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간 맵에서 다시 클랭크!를 해보고 싶다.
- 5위 <리스보아>
23년의 비딸 게임 베스트! 워낙 좋아하는 게임인데 작년에 충분히 돌릴 수 있었다. 대지진으로 망가진 리스보아를 재건한다는 테마에 걸맞게 초반엔 상점 건설하는 게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종반부에 우르르 짓기엔 좋은 자리가 남아나질 않는다. 공공건물이 어느 정도 들어설 시점에 꿀 같은 자리를 타이밍 좋게 차지하는 게 관건인 듯. (룰을 완벽히 이해했다면) 너무 큰 그림 그릴 필요 없이 바로 다음 턴에 뭐 할지 정도만 생각해 놓으면 되어서 딱 내가 좋아하는 난이도의 브레인 버닝 게임.
- 4위 <한자 토이토니카: 빅박스>
계속 4인플만 하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5인플을 몇 판 해봤는데 1.5배 정도 더 재밌다. 알박기 인터랙션이 게임 재미의 8할이라 상인들 밀집도가 높아질수록 게임의 재미가 배가되는 것 같다. 게임 양상에 따라 가치 있는 액션과 도시가 달라져서 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 간단한 세팅과 컴포넌트, 그리고 핵심 룰만 가지고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끈적한 인터랙션을 이끌어낸다. 고전 게임의 미덕을 두루두루 갖춘 좋은 게임(가격도 무지 착함).
- 3위 <오토배틀 챌린저스!>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오토배틀러를 보드게임으로 만들다니 상상만 해도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데 보드게임 페스타에서 체험을 해보고 완전 반해버림. 깃발 뺏기(숫자 높으면 이김!)와 벤치 자리 제한이라는 간단한 아이디어로 너무나 말이 되는 오토배틀러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누가 봐도 약한 덱이 운 만 좋으면 어떤 덱이든 이길 수도 있다는 랜덤성(운빨게임!) 덕분에 엄청난 중독성을 갖는다. 그리고 왜인지 ‘한 판만 더 하면 더 멋진 덱을 만들 수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갖게 하는 지점도 가벼운 게임성과 맞물려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듯. 하지만 역시나 (셔플을 빠르고 완벽하게 해주는) 보드게임 아레나에서 했을 때 가장 쾌적하다는 슬픈 진실..
- 2위 <웬디, 어른이 되렴>
작년에 머더 미스터리 보드게임을 참 많이 했지만 이 게임만 한 게임이 없었다. 게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스포가 될 수 있기에 뭐라 할 말은 많지만 아껴야 할 듯.
- 1위 <팍스 파미르>
재미없지만 23년 베스트도 22년과 마찬가지로 팍스 파미르다. 이 게임 덕분에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700페이지 짜리 중앙아시아 역사책도 찾아 읽고 더 좋아짐. 올해에도 이 게임을 충분히 돌릴 수만 있다면 상위권에서 안 내려올 것 같은데 (내가 이걸 매년 계속한다면)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야 할 듯.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