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왜 보드게임을 하는가
[칼럼] 나는 왜 보드게임을 하는가
1. 들어가는 글
아래 2등을 하고 있을 때 1등을 견제하는 플레이와
3등을 견제하는 플레이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투표가 있네요.
댓글을 작성하다가 글이 길어져서 따로 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제 생각에 이건 충분히 이야기 나눠 볼 만한 이슈고
두 가지 선택 모두 다 이해는 가는 상황인데
게임하다가 종종 이 문제로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몇 번 겪었었습니다.
나름 보드게임 모임을 꽤 오래했다고 생각하는 저도
이런 이유로 불편했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개인의 게임성향에 따라 충분히 서로 다른 생각을 할 만한 상황이고,
충분히 토론해 볼 만한 좋은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2. 선택상황에서의 플레이어의 성향
저는 일단 두 가지 플레이가 다 가능하다고 이해는 하는 편입니다.
가끔은 상대방의 플레이에 대해 '게임을 왜 그렇게 하냐'고 시비가 생기기도 하는데
저는 이런 시비가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상대방 플레이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경우에는
시비가 생기거나 적어도 빈정이 상해 테이블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적도 있었었죠.
제 경우에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면
제가 얻는 이익이 어느 쪽이 큰지를 먼저 따져본 후에
이익이 비슷하거나 또는 차이가 적다면 1등을 견제합니다.
사실 그 이유를 이야기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요.
여기에는 '제가 보드게임을 하는 이유, 그리고 보드게임에 관한 철학'이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자주 거론되는 보드게임 매너와 관련된 이슈들은
대부분 정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하면서 예의를 지킬 것, 컴포넌트를 함부로 다루지 말 것 등의 매너들은
보드게이머 대부분이 공감하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들이죠.
그런데, 바로 이와같은 상황은 갑론을박이 가능합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보드게임을 해 왔기에
많은 성향의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해 보았고 다양한 상황들을 겪어 왔지만
이 같은 경우는 거의 한쪽으로 결론이 난 적이 없습니다.
성향이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죠.
3. 다인플 인터액션에서의 이해관계
위와 같은 상황에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 경우 1등일 때 태클을 받는 사람은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대부분 수긍하는 편인데 반해,
3등인데 태클을 받는 사람이 그런 플레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꽤 기분이 상하고 게임 분위기가 안 좋아질 우려가 있습니다.
플레이뿐 아니라 농담, 비꼬기 등이 섞이면 제대로 기분상하기도 하죠.
더 문제는 저 경우 2등이 3등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턴에 3등을 견제할 수가 그다지 없거나
3등을 견제해서 얻는 이익이 적어서 4등을 견제하는 경우입니다.
당하는 4등 입장에서는 게임하기 싫어질 수 있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상황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1등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언플, 또는 협잡을 해서 2등으로 하여금 4등을 태클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흔하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A(남, 고인물), B(여, 뉴비, A의 여친), C, D
이렇게 네 명이서 플레이를 하고 있고,
현재 순위는 A, B, C, D 순입니다.
A, B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히 조금씩 챙겨주며 1, 2등을 하고 있습니다.
B의 턴에 A를 태클하면 본인은 대략 3점정도(A:-3, B:+3)를 얻고,
C를 태클하면 1점(A:-1, B:+1), D를 태클하면 4점정도(A:-4, B:+4)를 얻습니다.
A는 (본인이 태클 받을까봐) B에게 본인이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D를 태클하는 액션을 하라고 합니다.
C와 D는 B에게 1등을 위해 당연히 A를 태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A가 왜 4점을 얻는 선택이 있는데 본인을 태클하냐고 화를 내면서
C, D와 언성을 높이고 언쟁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저라면 제가 이익을 조금 덜 보더라도 1등을 견제하는 플레이를 합니다.
그리고 저 경우에 4등을 견제하는 플레이도 가능은 하지만
그런 플레이를 했을 때 4등의 싫은 소리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룰위반도 아니고 충분히 가능한 플레이이지만
4등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배려없는 플레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묘한 지점인데 혹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당하는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언쟁이 생기는 경우는
보통 다들 친한 분들끼리 게임을 하니 태클하면서도 농담하면서 하기도 하는데,
이런 때 빈정이 상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곤 합니다.
위의 상황은 확실히 게임 성향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특히 플레이에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4. 액션을 선택하기 위한 플레이어들의 판단기준들
여기서 각자의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는데
제가 그동안 비슷한 상황들을 겪어보면서
플레이어들의 논리와 성향들에 관해 생각을 해 본 결과
바로 이 지점에서 의견이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도 문제가 되곤 합니다.
A의 플레이를 보고 B가
‘너는 왜 이렇게 플레이하지 않는가.
모든 플레이어는 이 상황에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 말하면서
A와 B의 언쟁이 시작됩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실제로 제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기 때문에
왜 이런 경우가 생기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었습니다.
게임의 선택은 분명히 수학적인 계산으로 각각의 액션선택에서의 손익계산이 가능합니다.
그 계산의 결과를 두고 플레이어들은 여러 선택지중에 하나를 고르게 되죠.
이때 분명히 조건은 같은데 왜 선택의 결과가 플레이어에 따라 달라지는가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A의 오류는 ‘모든 플레이어가 나와 같이 조건을 계산해서 플레이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있죠.
그런데 실제는 모든 플레이어는 다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플레이성향이기도 하고,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 능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조건은 플레이어는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는 겁니다.
제 경우는 점점 나이를 먹다보니 카운팅을 해야 하는 게임들이 꽤 번거로와지더군요.
개인적으로 노화는 다름 아닌 귀찮음이 늘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하려면 할 수 있긴 하지만 꼭 그래야 하나 싶은 거죠.
그리고, 사실 바둑 같은 걸 둘 때 계가를 정확히 해서 둔다기 보다는
대충 어느쪽이 유리해보이는가 정도로 판단하고 하죠.
빨리 계가하는 능력이 없으니 오래 생각하기도 귀찮고 그렇게 하면 재미도 없어서 감으로 게임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감이라는 게 사람마다 꽤 차이가 커서
우리가 팩트라고 하는 선택의 조건이 각자에게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거죠.
이건 카운팅 능력, 계가 능력과도 관계가 있는데
‘너는 왜 이걸 카운팅 못했냐, 너는 왜 당연한 걸 계산 안하고 게임을 하냐’고
상대방을 지적하는 것은 사실 꽤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건 아니고, 더 문제는
같은 조건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선택의 가치는 확실히 다릅니다.
내가 3점을 얻는 선택과
다른 모든 플레이어가 –3점을 받는 선택이
같은 의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크트리 같은데 영향을 주는 상황이면 당연히 그럴테고요.
예를 들면 점수가 아니라 자원을 얻거나 잃는 상황이면
분명히 플레이어간에 손익이 다르겠죠.
단순히 점수에만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본인의 이익과 다른 플레이어의 손해는 플레이어의 성향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보드게임의 플레이가 단순히 수학적 시스템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의견인데요.
인간의 선택은 계산기와 같은 시스템이 아니고,
정서적인 부분과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의 과정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위에서 A와 같이 이야기하는 분들은 제가보기에 뭐랄까 공대감성 같다고 할까,
보드게임 플레이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쏙 빼고 한다고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5. 보드게임에 관한 철학, 나는 왜 보드게임을 하는가
가끔 위에서 든 예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
확실히 선택의 상황에서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가끔 개인의 성향에 따라 꽤 큰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큰 차이를 어떤 사람은 ‘트롤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각자가 생각하는 ‘트롤링’의 범위도 사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에 제게 게임을 배우던 한 학생은 점수에 상관없이 이쁜 카드만 모으던 적도 있었구요.
본인이 손해를 봐도 꼭 남을 해코지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학생들도 있었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드게임 매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서서
바로 이런 선택지의 부분에서 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트롤링’과 ‘킹메이킹’의 상황이 대표적인 부분이죠.
저는 이 경우에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1) 다른 사람이 나를 태클했을 때는,
‘룰에 허용되는 모든 플레이가 가능하다. 때문에 그 사람의 플레이를 비난할 수 없다.’라는 전제입니다.
그것이 비록 본인이 손해를 봐 가면서 굳이 나를 태클한 상황이라도 말이죠.
물론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을 강하게 표현하면 언쟁이 생기겠죠.
(2) 내가 태클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태클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판단조건에 추가됩니다.
아울러 더 나아가 제 경우는 확실히 액션의 선택지에
전체 게임의 흐름과 밸런스라는 것이 고려됩니다.
그러니까 전체 게임이 모두가 재미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느냐...
하는 것이 내 액션선택에 고려된다는 거죠.
‘게임이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는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가’,
‘이 게임의 결과는 각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하는 것 같은 문제들이죠.
결과적으로 누군가 심하게 태클을 받아서 꼴지 확정인 상황이라면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꼴지를 태클하지 않는 액션을 선택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가 바로 생각이 갈릴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데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수학적 손익 이외의 조건들이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옳은가
라는 문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내가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부분과 관계가 있습니다.
가끔 농담 삼아 하는 얘기 중에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 빡치라고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죠.
지금까지 제가 만난 플레이어들도 전부 성향이 제각각이었는데,
이런 성향은 바로 ‘각자가 게임을 하는 이유에 “이기기 위한 것”이라는 조건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함께 게임을 했던 분들 중에 호승심이 유독 강한 분들도 많았죠.
그런 분들 중 상당수는 ‘나를 태클하면 나는 그 사람만 방해할거야.’ 라고 하던가,
게임하면서 화를 자주 냅니다.
한 분은 블러핑게임하면서 어떤 분이 본인을 범인으로 몰자
화를 내면서 싸워서 분위기가 싸해졌는데
알고보니 그게 블러핑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결국 블러핑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게임이 끝나고도 분위기는 안 좋았죠.
모임의 한 분은 와이프가 보드게이머들의 이런 모습들을 유독 싫어해서
모임에 안 데려온다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저는 그 와이프 분의 기분을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생각해보니
제가 다른 모임 분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게임을 하는 목적에서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라는 조건이 낮은 포션을 차지하는 플레이어 중의 하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제가 그다지 게임을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고
(오랫동안 같이 모임하던 분이 예전에 제게 그랬죠. “형은 게임을 잘 못하잖아요.”),
귀차니즘도 하나의 성향이라면 성향일테고,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을 유기적인 스토리텔링 안에서 사고하려는
예술적 취향-지적 취향이 아니라-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보드게임을 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가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또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선택지에는 항상 내 플레이가,
그것이 비록 딴지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가 라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자칫 이 자체가 ‘트롤링’의 소지가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플레이 한다.’라는 명제가
보드게임 플레이어들 간에 암묵적인 약속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모든 플레이어가 다 같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 되거든요.
그 명제가 없으면 ‘룰’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져서
그야말로 트롤링이 난무해져서 그로인해 기분이 상하는 플레이어도 생기고,
결국 모두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1차 목적에 위배되니까요.
어찌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면 이것은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 플레이하는 사람과
모두가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의 선택지는
종종 미묘하게 차이가 납니다.
제 경우는 게임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이 ‘재미’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을 태클하기 보다는
각자의 성취도를 경쟁하면서 재미를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하죠.
사실 같은 사람이라도 파티게임을 할 때나 전략게임을 할 때
게임에 임하는 자세, 즉 게임의 목적이 다르죠.
그런데 제 경우는 전략게임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조금 더 ‘재미’쪽 비중이 큰 건 사실인 것 같더군요.
그리고 근래에 와서는 저의 이런 성향이
팀플레이 게임 같은 경우에는 어쩌면 민폐가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더군요.
확실히 어느 것이 옳다 하는 문제는 아니고, 취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어찌 보면 모든 사람이 보드게임을 하는 이유가 다 같을 수는 없겠죠.
모쪼록 바라건데 모든 사람들이
보드게임을 하면서 주변 분들과 오랫동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6. 맺는 글
요즘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잘 안 나서
거의 게임을 못하고 있기도 하고,
가끔 억지로 시간을 내서 게임을 하려고 해도 편한 상태로 게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보니
같이 게임하시는 분들에게 괜히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점점 더 게임을 안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재개발 논의 중이라
내가 언제까지 지금의 모임 분들과 보드게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허전해져서 지금까지의 제 게임인생을 돌아보게 되네요.
...는 개뿔 논문 쓰려고 앉았다가 논문은 안 쓰고 밤새 뻘글.
...은 내가 게임승률이 낮은 이유에 대한 핑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