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의 기본] 공략 완성지은 기념 루트 리뷰
조금 전에 루트의 기본 16. 언더월드 맵편을 작성하면서 저는 이 게임에 대해서 더 논할 게 없어졌습니다. 그냥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걸 다 가르쳐드린 것 같아요. 기본을 넘어선 '심화편'은 직접 하면서 익히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근데 정작 제가 루트라는 게임 자체에 대한 리뷰를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이 뭔지 제대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 루트는 4명이서 하는 게임이다. = 때문에 인원 모자라거나 넘치면 하면 안 된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마작과 같이 루트는 4명이서 하는 게임입니다. 물론 제작사는 2,3,5,6까지도 할 수 있다고는 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생각할 때 루트가 아니라 다른 게임입니다. 루트는 4명이서 하는 게임이고, 저는 4명이 아닌 이상 이 게임을 할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이 게임은 그냥 4명이서 하는 게임입니다.
이유는 3명이면 군사 세력이 너무 세고 5명이상이면 군사 세력이 너무 약합니다. 2명이면 군사 세력끼리의 대결인데 상성이 너무 명확하고요. 밸런스, 플레이경험 뭘로 보나 루트는 4명이서 하는 게 맞습니다.
2. 루트는 대단히 상호작용이 강력한 게임이다. = 인터액션 기분 나쁜 사람이랑 하면 안 된다.
루트의 인터액션은 대단히 강합니다. 특히 세력마다 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는 게 더더욱 그렇게 만들지요. 완전 비대칭이기에 각 세력마다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그 상성구도도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때문에 루트의 상호작용은 극도로 불쾌한 특징을 보유합니다.
그냥 루트의 모든 세력이 다 불쾌해요. 고양이 후작은 그래도 착하다고요? 아뇨. 후작도 제대로 플레이하면 그야말로 불쾌함 그 자체입니다. 이 게임에서 불쾌하지 않은 세력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인터액션에 마음 상하는 사람 상대로는 이거 하면 안 됩니다.
3. 루트는 전략과 공식이 존재하며 즐겜형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 플레이어도 많이 탄다.
제가 루트의 기본 공략에서 거의 수십만 자를 써내려간 것만 봐도 알겠지만 게임이 이기는 공식, 공략이 분명합니다. 그 상호작용과 카드 공략을 다 꿰뚫고 있으면 대단히 이기기 쉽죠.
그런데 그 탓에 진짜 기분 나쁘다고 상대에게 반격하는 플레이어와는 게임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이 게임은 맞아도 이득일 수 있고 때려도 손해일 수 있는데 그냥 전쟁게임에 인터액션 강하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공격만 해대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게임을 못 이깁니다. '난 그래도 괜찮아. 게임에서 져도 이상한 상황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재밌어'라는 플레이어와는 절대 이 게임을 하면 안 됩니다. 루트는 적어도 4명이 승리에 진지하게 임한다는 전제에서만 게임이 돌아갑니다. 이건 게임의 참재미를 아예 못 느낀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루트는 서로 견제하면서 치고받는 게임이 아닙니다. 30점 점수 내서 이기는 게임이죠.
4. 루트는 알아야 할 게 많은 게임이다. = 루트를 할 거면 일단 많이 해봐야 한다.
루트는 사실 룰이 복잡하진 않습니다. 만약 세력 하나밖에 없었다면 정말 간단했을 겁니다. 그런데 룰이 많습니다. 루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기본 조건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세력+확장+카드의 모든 효과를 명백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 상호작용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때문에 루트를 접한 사람은 크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1) 처음 몇 판 해보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아무 견제도 받지 않은 사람이 이긴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이 게임은 협잡만 하면 이기는 망겜이다."
아마 루트에 나쁜 인상을 가지신 분들은 대충 이 단계에서 멈출 겁니다. 고양이 이어리가 치열하게 싸우다가 주목받지 않은 우드랜드 연합이 갑자기 한 차례에 15점 득점해서 게임 끝내는 거 보면 그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죠. 그래서 협잡겜이라는 인상이 깊게 남아 있고요. 누구나 거쳐가는 단계입니다.
2) 모든 세력을 다 해보고 상호작용을 대강 알게된 순간 "이 게임은 협잡이 불가능하다."라는 걸 깨닫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우드랜드 연합인데, 얘는 그 누구와도 협잡질이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상대가 누구든 자신이 할 플레이가 바뀌지도 않고 굳이 남을 견제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드랜드는 남들이 때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비대칭이다보니 붕괴한 것입니다. 자기 할 거 바쁜데 남 견제할 수가 없단 거죠. 도마뱀 교단은 방랑자가 아무리 강해져도 방랑자를 견제할 수 없습니다. 이어리 왕조와 고양이 후작의 평화협상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2단계에 진입한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즉 3단계에 돌입하는 거죠.
3) 게임이 협잡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이해한 순간 루트는 이제 "고인물이 무조건 이기는 실력 갓겜"이 됩니다. 고양이는 적극적으로 이어리를 막을 수 있는 요충지에만 건물을 짓고, 이어리는 과도하게 움직여서 파고듭니다. 우드랜드 위에 갑자기 고양이 후작이 병사 7명 올려두고 모병소 깔고 버팁니다. 방랑자는 아이템이 말라붙습니다. 이 지점에 돌입하면 1~2단계에 진입한 플레이어들 상대로는 절대 안 집니다. 왜냐면 어떤 세력이 무슨 플레이를 한 순간, 그 의도가 보이면 가서 밟아 죽이고 의도가 안 보이면 그냥 방치해서 자기가 더 빨리 득점하거든요.
그런데 모든 플레이어가 고인물이면 어떻게 될까요?
4) 자기가 어째서 약한지를 열심히 설파하는 "약자 코스프레 법정겜"이 됩니다. 각 플레이어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논리를 들이밀며 내 세력이 얼마나 약하며 지금 막아야 할 건 누구인지 열심히 설파하죠. 그 논리를 다른 고인물들이 엄밀히 검토한 다음 자신이 가능한 액션에서 남는 만큼 타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바람직한 플레이 지점이고 보통 여기서 갓겜이라고 느끼는데 사실 이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5) 최종단계. 치밀한 논리를 무시하는 주사위와 안 나오는 패에 "주사위 카드빨 망겜"을 외치게 됩니다. 결국 주사위로 견제하는 게임이다보니 논리의 극한에 이르면 카드와 주사위가 왔다갔다 하는 망겜이 되는 거죠.
전 그래서 루트랑 가장 비슷한 게임이 어떤 의미로는 마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작도 분명 고수와 초보가 있지만 비슷한 레벨이면 결국 패 잘 받은 사람이 이깁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못하는 사람이 뻔한 패에 쏘여주면 마작은 집니다.
루트도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고인물이 이길 가능성이 높고, 더 심한 고인물일수록 이길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이면 결국 운 좋은 사람이 이기는 거죠.
그래서 루트는 재밌습니다. 져도 억울하지 않고, 매 판 치열해요. 다들 목청 높여서 자신이 어째서 불리한지 열심히 설명하는 것도 아주 재밌고요.
4. 루트는 적어도 비슷한 멤버끼리 수십 판은 돌릴 의향이 있어야 구매하는 걸 추천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스팀 디지털판 기준 623시간을 하면서도 안 질렸습니다. 한 판에 평균 1시간 반 잡으면 400판은 했는데 전 아직도 이 게임이 재밌습니다. 매 순간 새로운 상호작용. 새로운 결과가 나와서 아주, 몹시 만족스러워요.
그런 이유로 루트는 여러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플레이어나 그런 성향의 테이블에에서는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루트의 숙련도 곡선은 대단히 높아서 그냥 몇판 하는 정도로는 솔직히 제대로 된 재미를 느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하나를 진득하게 파면서, 견제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손익계산한 다음 냉정하게 1승, 2승 거두면 루트라는 게임을 드디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5. 그런 점에서...
루트는 가격대가 워낙 비싸기도 하니까 일단 해보고 사세요. 그리고 한 5판 해보고 그 테이블에서 꾸준히 돌아가고+모두 성향에도 맞는다. 그래야만 드디어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디지털 모임을 하는 플레이어도 있으니 그런 온라인 테이블에 찾아가서 플레이해봐도 괜찮습니다. 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다들 뉴비를 좋아할 테니 적극적으로 반기고 설명해줄 것입니다.
루트 관련 게시글은 디지털 모임 후기 빼면 이게 마지막입니다. 다음 글은 머라우더 확장 정발되면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