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으로 시 창작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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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22:58

언젠가 한번 써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쓰게 되네요. ㅎㅎ

제목 그대로입니다.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를 창작하는 활동에 대해서 써 보려 합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실제로 보드게임을 활용한 수업들을 다양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한 연수에서 강의도 해오고 있고요. 좀더 많이 수업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써 봅니다. 중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초등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한 방법입니다. :)

시작하기 전에 문제 한번 풀어보시죠. ㅎㅎ

다음은 시의 일부입니다. (가)~(라) 중 기성시인이 쓴 작품은? (나머지 셋은 중학생이 쓴 작품입니다.)

(가)

구겨진 달빛을 먹는 새들을 생각했다

새들의 배 속에서 천천히 형성되는 알의 형상을 생각했다

내 새끼야 이 잔인한 내 새끼야

새들이 탈출구 없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죽어갔다

죽은 숨들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불 타 죽은 네가 떠올라 마음 아파하면 너는 다시 불타버렸다

(나)

감각의 나이에도 냄새가 난다.

냄새 나는 사회는 심장을 잔혹하게 죽였다.

심장을 꽉 움켜쥔다.

흐릿한 창문에 입술을 쓸쓸하게 누른다.

창문에는 분홍빛 입술 자국이 남아있다.

창문은 흐느꼈다.

(다)

아이들은 구름을 조각했고

아버지의 그림자는 고양이가 되었다

늑대는 새장에 부모를 가두었고

덩굴 같은 연인들은 서로를 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체스를 둔다

(라)

우주를 떠도는 그대의 어깨

불타는 물이 자란다

잔에 어둠이 넘친다

하얀 가면이 어둠을 감싸고

진실을 말하는 개

황금과 지네의 왕

그리고 여우의 꼬리가 부르는 노래

정답은 연재의 마지막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기성시인의 시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은 딕싯을 활용한 시 창작 수업을 들은 학생(중학교 1~3학년)이 쓴 작품입니다. 사실, 정답을 찾기란 꽤 어렵습니다. 위 작품들에는 모두 기발함에서 오는 충격이 존재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데서 오는 낯섦, 그것이 만들어내는 충격이죠. 때문에 이들은 어느 정도 시적 긴장감을 가지게 되고, 쉬운 말로는 뭔가 있어보이게 되는 거죠.

사실 이 수업 후에 학생들은 자신이 뭔가를 써 놓고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멋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시를 창작할 때, 어떤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서정시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시를 쓰도록 가르치고 있죠. 그렇지만 아직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시를 쓰게 하면, 학생들의 시는 시의 탈을 쓴 설명문이나 논설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는 설명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는 말하고자 하는 바나 느낀 감정을 담담하게 드러내거나, 그것을 숨김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뭔가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아무리 운율이 있다고 한들 그것은 좋은 시가 될 수 없습니다.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소설은 주제를 따라 가면 되고, 시는 표현을 따라 가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딕싯을 활용한 시 창작의 목적은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이 비유나 상징을 사용하게끔 유도하고 표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직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이니까요. 그런 학생들에게 주제를 주고 그 주제에 따른 시를 쓰도록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을 해 보게 하고, 멋진 표현을 만들어서 그에 따른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성취감을 통해서 시를 읽는 것이나 창작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우리 교육에서는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문장들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시집을 사서 읽는 분은 몇 분이나 될까요? 우리는 왜 시집을 읽지 않게 되었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