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 스트리트] 에센 슈필 23 참가 후기
안녕하세요, 올린입니다!
올린스튜디오는 이번에 매년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보드게임 페어인 에센 슈필(Essen Spiel) 2023 에 참가했는데요, 올 겨울에 공개될 신작 보드게임인 웨일 스트리트(Whale Street)와 미플체스(Meeple Chess)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첫 공개되는 나스카(Nazca)와 그릴홀릭(Grillholic)까지 4종의 보드게임으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바로 포스팅을 올리려 했으나.. 체력 방전으로 이제야 적어봅니다. 독일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 초심자의 시선으로 다룬 에센 방문기,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출발! 머나먼 에센으로
10월 3일 오전 5시 반, 보드게임으로 꽉꽉 채운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집을 나섭니다. 인천 공항과는 거리가 좀 먼 곳에 사는 저는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4시간 반 전에 공항을 향해 출발했고, '어차피 10시간 넘게 타는 비행기에서 잠을 자면 되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전날에 거의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비몽사몽한 정신을 부여잡고 무사히 출국 수속을 클리어,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독일 에센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때는 몰랐다.. 이토록 험난할 줄은..)
(드디어 독일 에센을 향해 출발!)
한국에서 독일까지 가는 비행기는 보통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기내식은 2번 제공되며 기내식 취식 중간에 취침을 위한 전체 소등 시간을 6시간 정도 줍니다. 이 시간에 잠을 자지 않으면 시차 적응이 힘들다는 경험자 분들의 조언에 저는 이 시간에 푹 잠을 잤습니다. (사실 전날에 밤을 새서 기절했다고 보는게 맞겠습니다 ㅎㅎ)
독일에 도착하면 한식을 먹기 힘들테니 기내식은 의도적으로 한식 위주로 선택했습니다. 기대했던 기내식은 음.. 그렇게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이 없지는 않은, 딱 레토르트 음식 수준이었습니다.
(한식은 미리 먹어둬야지)
기내식을 잘 챙겨먹고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시간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약 13시간(말이 13시간이지 정말 힘들다..)을 지나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상공에 도착했지만, 현지 기상이 악화돼 착륙 사인이 나지 않아 무려 1시간 넘게 상공을 빙글빙글 돌게 됩니다. 결국 14시간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깐깐한 이미그레이션을 거쳐 드디어 독일에 입성! 미리 잡아놓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근처 숙소에서 기절을 하고 다음날 슈필 행사가 열리는 에센으로 출발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행사가 열리는 에센까지는 기차를 타고 약 3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요, 역시나 악명높은 독일의 기차는 출발 시간이 연착돼 1시간 반을 또 기다린 끝에서야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메인 역 - 연착되어 1시간을 더 체류하게 된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가기엔 너무나 길었던 여정 끝에 드디어 행사가 열리는 에센 메세(Essen Messe)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의 매우 깐깐한 이미그레이션과 수시로 발생하는 기차 연착에 소요된 시간을 합하면 거의 20시간 넘게 이동한 것 같네요. ㅠㅠ 말이 20시간이지.. 어휴, 에센은 정말로 머나먼 곳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Essen Messe)
피곤에 찌든 상태로 에센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도 스킵한 채, 바로 행사장으로 달려가 부스에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슈필 전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한국 공동관(Korea pavilion)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는데요, 한국관에는 저희 올린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게임올로지, 젬블로, 매직빈게임즈, MTS게임즈, 언더독게임즈, 디자인X플레이 등의 멋진 업체들이 함께 있어서 매우 든든했습니다.
(앞으로 4일을 보낼 Korea Pavilion 부스)
부스 세팅을 얼추 마치고선 한국 공동관에 참여한 분들과 함께 행사장을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래도 행사 전날이라 대부분의 부스들도 전시장 설치에 한창이었는데요, 모든 보드게이머들이 알만한 큰 업체들의 부스를 코앞에서 살펴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역시 회사 규모가 큰 만큼 부스도 큼지막하게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분주하게 준비중인 해외 업체들)
매우 피곤했기에 빨리 저녁을 먹고 해산하기로 하고 행사장 주변에 유명하다는 피자집을 찾았습니다. 피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엄청난 피자를 1인 1판 해치우고 일찌감치 잠에 듭니다.
(뭔가 엄청(?)났던 에센에서의 첫 식사)
◆ 1일차, 슈필 드디어 Start!
다음날 아침,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일찌감치 행사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초기 부스 세팅도 해야하고 알바생과 판매를 도와주실 분에게 설명도 해야 했기에 더욱 서둘러 행사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슈필의 입장 방식은 조금 특이했는데요, 미리 전시자에게 제공된 QR 코드를 문을 지키고 있는 스탭의 기기에 스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SPEIL 전용 앱으로 티켓을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분실 염려도 없고, 매우 간단하게 입장이 가능해서 참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슈필 공식 앱에 등록한 입장 QR 코드)
저희 부스에서 4일 간 게임을 설명해줄 현지 알바생들과 첫 인사를 나누고, 이번 행사의 메인 신작 보드게임인 웨일 스트리트(Whale Street)를 알바생들에게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영어로 게임을 설명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주화 작가님과 저의 개떡같은 영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훌륭한 분들이었기에 무사히 게임 설명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 발생하는 에러플들은 초반 2일 동안 잡아주어야 했습니다. 에러플이 있다면 게임에 대한 첫 인상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게임의 잔룰들을 숙지시키는데 주력했습니다.
(전시 준비를 끝낸 웨일 스트리트)
이윽고 10시가 되고, 본격적으로 슈필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슈필이 열리는 Essen Messe 행사장은 매우 매우 컸는데요, (총 6개관 사용, 1개 관이 코엑스에서 열리는 보드게임콘 크기 ㄷㄷ) 저희 부스가 있던 4관은 한국 회사인 Korea Pavilion 을 비롯, DiceTree(보드피아), 대만의 TBD, 일본의 Japon Brand 등이 있었고 킥스타터 부스와 함께 각종 보드게임 전문 제작 공장들의 부스가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선 주요한 게임사가 몰려있었던 3관과 6관부터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한 20분 뒤 부터는 4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우매우 커다란 슈필 행사장)
저희 부스에도 시작과 동시에 프리오더를 찾으러 온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만두게임즈나 플레이트처럼 큰 업체들의 전시 준비를 지켜보며 사전 홍보와 프리오더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저희도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보드게임긱을 비롯해 각종 SNS 채널 등을 통해 온라인 홍보에 주력했습니다. 유럽의 유튜버에게 시연용 카피를 보내 리뷰를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홍보가 통했는지 꽤나 많은 프리오더 주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웨일 스트리트, 미플체스 시연 부스)
웨일 스트리트의 시연 테이블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습니다. 약 45~60분 정도 걸리는 시연 시간에도 불구하고 테이블 웨이팅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긴 설명에도 끝까지 집중하며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게임을 체험한 후엔 웨일 스트리트를 1개 사고 싶다며 현장 구매를 하는 비율도 매우 높았습니다. 예상보다 빠른 판매 스피드에 저희 팀은 당황했고, 준비해 온 수량에서 프리오더 수량을 빼고 나니 오픈 3시간만인 오후 1시쯤에는 웨일 스트리트에 Sold Out 스티커를 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슈필 한국관에서 판매 운영을 맡아주시는 담당자 분도 이런 판매 스피드는 처음 본다며 놀라셨습니다.
(오픈 3시간만에 매진된 웨일 스트리트)
매진된 후에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를 계속 받았지만, 프리오더 수량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ㅠ 저희보다 하루 늦게 출국해서 행사 1일차(목요일) 밤에 에센에 합류하시는 김기웅 작가님의 핸드 캐리 물량을 기다리며, 첫 날의 슈필 행사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아 참, 도쿄 게임마켓은 5시에 행사가 마감되는데 에센 슈필은 오후 7시까지 행사가 진행되는 점도 특이한 부분이었습니다. 에센에 오신 여러 보드게임 작가님들과 함께 파스타와 피자로 저녁을 해결하고나니 그제서야 약간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시 1일차 저녁은 파스타와 피자)
에센에서의 밤은 그리 즐길게 많지 않습니다. 주변 상가는 저녁 10시만 되면 문을 닫고, 거리도 매우 캄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센의 밤은 호텔 로비에서만큼은 찬란하게 빛납니다. 슈필 행사 기간동안 행사장 근처의 호텔 로비들은 거대한 보드게임 파티장으로 변신하는데요, 전세계에서 모인 보드게이머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모여 앉아 낮에 구매한 보드게임들을 꺼내 밤새도록 보드게임을 즐깁니다. 이런 보드게임 나이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보드게임 매니아들은 비싼 값을 주고 이런 근처의 호텔에서 숙박을 한다고 합니다. (1박에 무려 50만원! ㄷㄷ)
(아틀란틱 호텔 로비의 밤 풍경)
행사장에서 사온 신작 보드게임들을 재밌게 즐기다보니 김기웅 작가님이 무거운 짐(소중한 웨일 스트리트 30카피!)을 이끌고 로비에 도착하셨고, 이주화 작가님이 사주신 생맥주(호텔 맥주라 매우 비싸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를 함께 나눠 마시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때 체험한 신작 게임들은 추후 후기를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 2일차, 비즈니스 미팅 Day
슈필 2일차 날이 밝았습니다. 지난 밤 김기웅 작가님이 무겁게 가져오신 소중한 추가 물량을 매대에 진열하고 그래도 오늘은 웨일 스트리트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게임을 드릴 수 있겠다며 한숨 돌리고 있었습니다. 전 날에 구매를 문의한 사람들에게 2일차 오픈 즉시 방문하면 구매할 수 있다고 안내했었습니다.
(지난 밤 추가된 웨일 스트리트)
그러나 제 예상과는 다르게 웨일 스트리트 재고 관리는 또다시 위기를 맞이합니다. 행사 시작 전이었기 때문에 타 업체의 부스들을 돌아다닐 수 있는건 전시자들 뿐이었는데요, 오픈 전부터 다른 게임사의 스탭들이 한국 공동관에 방문해 웨일 스트리트를 구매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연용 부스를 세팅하느라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는데, 10시에 가까워져 매대를 확인해보니(한국관의 매대는 7개 회사가 공동으로 판매하는 공동 매대였습니다) 웨일 스트리트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게 아닙니까?! 판매를 맡아주신 분께 여쭤보니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계속 방문해서 그냥 게임을 팔았다고 하셨습니다. 두둥!
오픈 직후 방문해주실 관람객들을 위해 10시까지는 팔지 말고 남은 물량은 홀드 시켜달라고 말씀드리고, 그렇게 대망의 2일차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시나 걱정했던대로 웨일 스트리트는 오픈 15분만에 추가된 물량까지 모두 완판, 또 한 번 Sold out 스티커를 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다시 Sold Out!)
이때부터는 시연용 카피라도 행사 종료 후에 구매할 수 없겠냐는 문의가 계속 들어왔지만 이미 시연용 카피도 임자가 있었기에(미팅 때 이미 파트너사에게 주기로 약속됨) 토요일 오후 2시에 프리 오더 미수령 물량을 판매하겠다는 안내를 하고 계속 돌려보내게 됩니다.
슈필 행사는 보드게임콘이나 게임마켓과는 달리 무려 4일 간 진행됩니다.(목,금,토,일) 행사 전에 미리 신청을 받았던 프리 오더는 원활한 판매를 위해 3일차인 토요일 오후 2시까지 수령해가지 않으면 자동 취소가 된다고 안내를 하는데요, 어떤 행사든 찾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Sold out된 게임들은 이때가 마지막 구매 찬스가 됩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문의했던 많은 분들도 토요일 오후 2시에 꼭 부스를 찾아오겠다며 약속을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 본격적인 비즈니스 미팅 시작!
사실상 2일차부터는 팔 물건이 없었기 때문에 부스 운영은 알바생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2일차 부터 시작되는 비즈니스 미팅 준비에 좀 더 집중을 하게 됩니다. 영어를 잘 하시는 김기웅 작가님이 합류해 하드캐리를 해주신 덕분에 각종 미팅들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보드게임 행사장에서 진행되는 미팅은 크게 4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1.자사 게임의 현지 유통 파트너 찾기
2.타사 게임의 한국 유통 판권 따오기
3.공장 부스에 방문해 신작 보드게임 제작 견적 의뢰하기
4.(작가라면) 퍼블리싱 계약을 위한 게임 피칭
저희 팀 (김기웅, 이주화, 올린스튜디오)은 주로 1번(디스트리뷰터 찾기)과 4번(퍼블리싱 피칭) 위주로 미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미팅의 큰 틀은 우선 웨일 스트리트를 먼저 피칭하되, 시간이 남으면 올린스튜디오의 다른 게임(그릴홀릭, 나스카)과 이주화 작가님의 신작 프로토타입을 설명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미팅 시간을 한계까지 사용해 최대한의 성과를 내려고 하였습니다. 미팅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영문 셀시트를 보여주며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셀시트)
미팅은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각 회사마다의 성향 차이를 알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명함을 교환하고 추후 이메일로 소통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미팅을 종료했습니다. (자세한 미팅 내용은 기밀이기에 본 포스팅에서는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 홀연히 사라진 시연용 카피
웨일 스트리트는 오전부터 매진 상태였기 때문에 부스 시연은 알바생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저는 마음 편하게 하루종일 미팅을 다녔는데요, 오후 미팅을 마치고 부스로 복귀했는데 무언가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왠지 모르게 1개의 웨일 스트리트 테이블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행사장에서 올린스튜디오에게 배정된 시연용 테이블은 총 3개였습니다. 2개 테이블은 웨일 스트리트를 시연했고 1개 테이블에는 미플체스를 시연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미팅 후 복귀해보니 텅텅 비어버린 시연 테이블)
저희에게 배정된 알바생은 두명이었고 교대로 1시간씩 점심 시간을 가졌는데 '점심 시간동안 한 테이블을 치워놓은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열심히 게임을 설명하고 있던 알바생에게는 바로 물어볼 수 없어서 설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후 점심을 먹으러 떠났던 알바생이 돌아와 두 알바생들에게 이 테이블은 왜 비어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테이블이 왜 비워져 있는지 둘 다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한 남자가 게임을 챙겨서 이동하는걸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남자가 누구인지, 왜 게임을 챙겼는지는 결국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ㅠㅠ 가뜩이나 판매할 수량도 부족하고 시연용 카피까지 타 퍼블리셔에게 주기로 한 상황이라 게임을 도난당하고 나니 한 동안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매진이라 구매도 못하고.. 너무 가지고 싶었나보구나, 이왕 가져간거 리뷰나 좀 써줘라..!' 라는 긍정 마인드로 멘탈을 회복, 새 제품을 뜯어 시연용 카피를 다시 세팅했습니다. 과연 대담하게 웨일 스트리트를 정리해 박스채 들고 간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그 심리가 참 궁금하네요!
◆ 3일차, 웨일 스트리트 추가 판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3일차인 토요일 오후 2시는 수령해가지 않은 프리오더 물량을 풀기로 약속했던 시간입니다. 게임을 구매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모두 '이 시간에 오면 재고가 있을 수도 있다' 라고 안내했기에 저희는 1시부터 남은 재고를 파악해 판매 가능한 수량을 추렸습니다. 남은 재고를 세어보니 총 12개를 추가로 판매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따로 준비한 인쇄물이 없었기에 아이패드를 이용해 급하게나마 추가 판매 안내 문구를 제작했습니다.
(아이패드로 급조한 추가 판매 라인 공지)
아이패드를 세팅하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시 30분부터 줄을 서고 계셨던 분을 시작으로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웨일 스트리트 추가 판매 줄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2시 알람이 울리고 남은 12개 카피는 줄을 서고 있던 분들께 즉시 판매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카피를 손에 넣은 분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네요. :D
웨일 스트리트가 슈필 현장에서 이렇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뿌듯했습니다. 이때 구매하지 못했던 분들은 저의 이메일 주소가 쓰여진 명함을 받아가셨고, 배송비를 낼테니 추후 한국에서라도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웨일 스트리트 막차 탑승에 성공한 선착순 12명)
한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실제로 구매 문의 메일이 오기 시작했고, 웨일 스트리트는 현재 EMS를 통해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미국, 캐나다 등으로 발송되고 있습니다. 특히 스페인어권에서 구매 문의가 많은데 아마 경제나 주식 테마의 게임이 스페인에서 인기가 많은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사인중인 웨일 스트리트 이주화 작가님)
생각해보면 웨일 스트리트는 첫 날 3시간 동안만 신나게 팔고, 남은 3일 간 매진 딱지만 붙이고 있었던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웠고 앞으로 에센 슈필에 참여하게 된다면 프리오더에 맞춰 수요을 예측해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실제로 도쿄 게임마켓은 프리오더 주문량에 비례해 수요를 예측해 가져갑니다.) 뭐, 이 또한 소중한 경험이겠죠? 이렇게 3일차도 무사히 마무리됩니다.
◆ 4일차, 본격적인 슈필 구경
4일 간 진행되는 에센 슈필은 3일차인 토요일에 관람객 피크를 찍고 일요일에는 매우 한산해집니다. 어차피 팔 물건도 없는 저는 부스를 알바생들에
게 맡겨놓고 전리품 획득을 위해 행사장을 배회합니다.
(수많은 인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던 전시장)
우선 궁금했던 부스인 DEVIR의 백로성(화이트캐슬)을 먼저 구경했습니다. 에센 슈필 최고 기대작인만큼 시연 테이블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글판 출시 소식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구매는 하지 않았지만 한글판이 출시되면 꼭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밌어 보이는 게임이었습니다. 원작사인 DEVIR는 전반적으로 예쁜 아트웍의 게임들을 잘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Yokai Sketch 를 비롯해 2인 게임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2인 게임은 선호하지 않아서 2-4인을 지원하는 Regine만 구매!
(에센 최고 기대작, 화이트캐슬)
2관에는 오잉크 게임즈를 비롯해 샤시, 잇튼의 합동 부스인 JAPAN REVOLUTION 부스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결을 가진 회사끼리 합동해서 부스를 내는 모습이 신선했고 한국에서도 여러 회사들이 연합해 부스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잉크 게임즈의 신작인 Whale to look 은 고래라는 단어가 겹치기 때문에 항상 SPIEL 공식 앱에서 나란히 검색이 되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친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재팬 레볼루션 부스 사진)
이외에도 스팀으로 재밌게 즐겼던 아이작 보드게임,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던 원피스 카드게임, 인기가 매우 많았던 노코스 다이스, 킥스타터 런칭한다는 헬로 키티 보드게임, 컴포가 매우 예쁜 CORAL, 스파이시로 익숙한 하이델베어 부스, 최고 인기 부스였던 디즈니 트레이딩 카드 게임, 반가운 코리아 보드게임즈, 포켓몬 스토어 등등.
(다양한 보드게임 시연 부스들)
정말 많은 부스들을 구경했지만 사진 찍는걸 깜빡해서.. 사진으로는 이정도만 소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너무 넓고 부스도 많아서 왜 행사를 4일이나 하는지 그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로는 전부 돌아볼 수 없습니다)
4일차가 종료와 함께 슈필 행사는 모두 마무리되었고 Korea pavilion 부스를 함께 운영한 회사들이 모두 모여 저녁 회식을 가졌습니다.
(충격과 공포의 맛이었던 레몬 파스타)
코스 요리처럼 다양한 요리들이 나왔는데, 기억에 남는건 충격적인 맛이었던 레몬 파스타였습니다. 레몬즙과 치즈의 조합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만큼 무시무시한 맛이었습니다. 즐거운(?) 식사 뒤, 함께 고생한 Korea Pavilion 팀의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에센 슈필 전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 (번외) 에센 슈필의 먹거리 후기
에센 현장은 크기가 매우 크고 관람객이 많은 만큼 다양한 푸드 트럭들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인기가 많은 가게는 길게 줄을 서서 음식을 구매해야 했는데요, 저는 이주화 작가님께 추천을 받았던 돼지고기 샌드위치를 먹으러 유명한 가게로 향했습니다. 인기가 많은 곳인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빠진다는 조언에 포기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손놀림이 빠른 직원들 덕분에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드디어 제 주문 차례가 되었습니다.
(길게 늘어선 유명(?) 음식점)
독일어로 쓰여 있어 샌드위치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냥 '포크 샌드위치'를 달라고 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말했더니 신기하게 잘 알아듣고 큼지막한 고기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내밀었습니다. 물론 제가 애정하는 제로콜라와 함께 말이죠!
(에센 명물(?) 포크 샌드위치와 제로콜라)
길거리 음식인 만큼 먹는 곳은 노상에 준비된 허름한 공용 테이블이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합석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습니다. 저도 빈 자리를 하나 차지해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고기는 잘 구워져서 매우 맛있었습니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빵이 조금 딱딱한 바게트 빵 같은 느낌이라 먹기에 불편했습니다.(저는 부드러운 빵을 선호..) 그래서 다 먹어갈 때 즈음엔 턱이 조금 뻐근하더군요. 그래도 한 번쯤은 먹을만 하니 혹시 에센에 가게 되시면 드셔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2일차에는 같은 푸드트럭에서 판매하는 고기 감자튀김 플레이트 같은 녀석을 도전해보았습니다. 전 날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서 다음날엔 저걸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기에(일단 딱딱한 빵이 없는게 장점!) 주문을 했는데요, 결론적으로는 고기가 좀 식어 있어서 차라리 샌드위치가 나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메뉴는 비추!
(2일차 점심으로 먹었던 고기 감튀 플레이트)
3, 4일차에는 같은 메뉴를 먹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케밥!
이틀이나 같은 메뉴를 먹었다는건 매우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다는 얘기겠죠? 이번에 에센 숙소의 룸메이트였던 베일 오브 이터니티의 Eric Hong 작가님의 추천으로 케밥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따뜻한 고기와 듬뿍 들어있는 야채, 그리고 소스에 절여져 촉촉하고 부드러워진 빵이 만족스러운 음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워낙 딱딱한 빵을 좋아하는 독일에서 이 정도의 부드러운 빵 메뉴는 드물기에 맛을 떠나 턱 건강에 좋은 음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물론 맛도 훌륭함) 이 메뉴는 매우 추천드립니다.
(턱 건강에도 좋은 맛좋은 케밥!)
이외에도 아주 다양한 메뉴의 푸드 트럭들이 많았지만 전시 부스를 신경쓰느라 멀리 돌아다니지 못해 다양하게 도전해보지 못한건 지금에 와서는 조금 아쉽네요. 혹시 에센 슈필을 관람하시게 되면 여러분은 꼭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시고 후기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맛난거 발견하면 정보 공유!)
◆ 여행 마무리, 그리고 귀국
행사가 끝난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룸메이트였던 Eric Hong 작가님과 소소한 독일 여행을 즐기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잔 후에 에센 중심가에 있는 파이브 가이즈를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5시간 웨이팅을 해야 먹을 수 있지만 독일 현지의 파이브 가이즈는 매우 한산했습니다.(독일에서는 롯데리아 같은 포지션일까..?) 더블 치즈버거+올더웨이 옵션으로 먹었는데.. 음, 글쎄요?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제 입맛엔 그렇게 엄청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잘 녹아 있지 않은 치즈에 마이너스 점수 20점!)
(약간 미묘했던 인생 첫 파이브 가이즈..)
거리를 거닐다 발견한 레고샵과 보드게임샵에도 들러 신박한 보드게임도 구매하고 한국에 가져갈 기념품들도 구매하고 나니 어둑어둑해지는 에센의 마지막 밤. 시원 섭섭한 마음을 맥주로 달래며 그렇게 에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오프라인 보드게임 샵)
드디어 귀국일인 화요일 아침이 밝고, 캐리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한 뒤 또다시 머나먼 귀국길에 오릅니다.
(사실 이 컵라면이 슈필 기간동안 먹은 모든 음식중에 제일 맛있었을지도..)
(바이바이 에센 - 공항으로!)
역시 깡 시골 동네인 에센.. 프랑크푸르트까지 다시 기차를 타고 3시간 이동, 10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그립던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일주일을 보냈기 때문에 밀린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쉴 틈이 없지만 그래도 귀국한 날 만큼은 푹 쉬며 독일 에센 방문은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시차 적응에 실패해 며칠간 좀비모드였던 건 안 비밀)
◆ 종합 후기
(진지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관람객들)
이번 에센 슈필 전시 준비는 도쿄 게임마켓 준비와는 차원이 다르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게임 제작도 물론 힘들었지만 에센 슈필에 가져갈 게임이 출국 3일 전에야 도착하는 등, 위험한 변수가 참 많았습니다. 모든 유명한 보드게임 공장들은 에센 슈필에 맞춰서 납품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는데요, 저희 게임의 생산은 유독 늦게 시작되었기 때문에 (생산 막차를 타기 위해 디자인 편집도 밤새서 진행 ㅠㅠ) 납품 기간을 간신히 맞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까딱하면 게임 없이 행사를 치를 뻔 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아찔하네요!
(기업 보드에 기술 카드를 추가하는 중)
에센 슈필 준비는 마치 총성 없는 전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세계의 보드게임 퍼블리셔들이 온라인(특히 보드게임긱과 유튜브, 그리고 인스타그램) 전쟁터에서 자신의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포스팅을 올립니다. 여기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저희 올린스튜디오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게임을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2~3달 전부터 홍보를 시작한 업체들에 비해선 리뷰 숫자나 프리오더의 기간 등이 매우 짧을 수 밖에 없었고 처음 슈필 홍보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무지했는지, 슈필 공식 앱에 저희 게임이 검색되게끔 세팅한 게 거의 행사 오픈 일주일 남긴 시점이었습니다. (타 업체는 2~3달 전부터 등록합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결과, 준비해간 수량을 모두 조기 완판할 수 있어서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 과정에서 만두게임즈나 플레이트, 젬블로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저의 기초적인 질문에도 귀찮은 기색 없이 답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미플체스를 즐기는 아버지와 딸)
이번 행사를 치르며 배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올린스튜디오도 슈필 참여를 통해 또 한 뼘 성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 참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세계 보드게임 시장의 수준을 온 몸으로 체감했고 어떻게 하면 이 시장을 두드릴 수 있을지 힌트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 통할만한 좋은 게임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년부터는 올린스튜디오도 본격적으로 퍼블리싱을 병행해보려 합니다.)
이로써 첫 에센 슈필 참가 후기를 마칩니다. 본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렸던 올린스튜디오의 에센 신작, 웨일 스트리트(Whale Street)는 조만간 펀딩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