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칙 연산을 이용한 순발력 추리게임: 시크릿 넘버 리뷰
라이트게이머 무이입니다.
오늘 리뷰할 게임 ‘시크릿 넘버(Secret Number)’는 소거법 추리게임 중
특이하게도 순발력게임인데,
‘소거법 추리게임에 웬 순발력?’
이라고 하실 분이 계실까 봐, 먼저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0. 소거법 추리게임과 순발력
클루와 같은 소거법 추리게임은 철저히 논리에 기반하기 때문에,
자기 차례에 시간만 충분하다면
1) 그동안 나온 정보로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2) 게임을 잘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정답을 알 수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논리 체크 기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소거법 추리게임 후기에
부정적인 표현을 종종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나 기록을 잘하느냐를 다투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적인 노가다가 아닌가라는 ...”
“이걸 게임이라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런 게임이라 할지라도 막상 플레이할라치면 다른 분들
눈치보느라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게 되죠.
‘2분만 더 생각하면 알 수 있을 텐데 마냥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차례를 넘겨야 하나?’
생각할 시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 게임을 턴제로 진행하다 보니
생기는 애매한 상황인데, 이럴 때마다 의문이 떠오르더라구요.
‘소거법 추리게임은 차라리 실시간으로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시크릿 넘버’말이죠!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보드게임긱에도 정보가 거의 없는
게임인 만큼, 간단하게나마 4인플 기준으로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 게임의 목표와 흐름
이 게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구성물은 0부터 4까지 적혀 있는
숫자 카드입니다.
- 숫자 카드
숫자별로 두 장씩인데 (즉, 총 10장)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아래 사진처럼
각 플레이어가 두 장씩 받고, 남은 카드 두 장은 테이블 가운데에 놓습니다.
한 장은 공개로, 나머지 한 장은 비공개로요.
잔룰 1. 0만 두 장 받은 플레이어가 있으면, 숫자 카드를 다시 섞습니다.
눈치 빠른 분이라면, 여기까지만 읽고도 대충 뭐하는 게임인지
짐작하실 텐데요... 바로 테이블 가운데에 비공개로 놓은 저 카드가
뭔지 알아맞히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다른 플레이어가 가진 카드를 모두
알아야겠죠? 각 플레이어는 자신이 가진 숫자 카드 두 장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공개해야 할 테구요.
그래서, 게임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세 개의 라운드로 구성되고,
각 라운드는 다음 두 단계로 나뉘는 거죠.
1) 정보 공개 단계: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이 가진 숫자 카드
두 장에 관한 정보를 동시에 공개합니다.
2) 답 맞히기 단계: 공개한 직후, 각자 실시간으로 답을 맞힙니다.
3라운드가 끝나면 점수를 계산하고 게임이 끝나구요.
그럼, 두 단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 정보 공개 단계
어떤 정보를 공개하냐는 라운드마다 다릅니다.
(1) 1라운드
1라운드에선 우선 자신이 가진 두 숫자로 사칙 연산을 해 그 결과를
공개합니다. 예를 들어, 2와 4를 가지고 있다면,
할 수 있는 사칙 연산이
2+4=6, 4-2=2, 2*4=8, 4/2=2
이렇게 네 가지이니, 그 결과인 2, 6, 8 중 하나를 아래 사진처럼
공개하게 됩니다.
물론, 자신이 가진 숫자를 최대한 감출 수 있는 식이어야겠죠?
예를 들어, 만일 제가 8을 공개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제가 만든 식이
4+4=8 혹은 2*4=8 이렇게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으니 저한테
4가 적어도 한 장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6과 8 옆에
초록색 바탕 체크 표시 보이시나요? 큰 숫자를 공개하면 정보를
많이 공개한 대가로 체크 표시 개수만큼 보너스 점수를 받기 때문에
큰 숫자인 8을 공개하고 싶어지거든요.
한편, 자신이 만든 식은 게임 끝까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음 라운드에도 그 식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 네 플레이어가 1라운드 정보 공개 단계를 마친 모습
(2) 2, 3라운드
2, 3라운드에선 앞서 만든 식에서 사용한 연산 혹은 자신이 가진
두 숫자 중 하나를 공개하게 됩니다. 1라운드에서 자신이 만든 식이
2+4=6이었고 그 결과인 6을 공개했다면, 2라운드에선 +를,
그리고 3라운드에선 2나 4를 공개하는 거죠. (반대로, 2라운드에서
2나 4를 공개하고 3라운드에서 +를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 1라운드에서 2, 6, 8 중 하나로 공개했다면,
2라운드에선 연산을 공개할 수 있다.
- 2라운드에서 연산을 공개했다면,
3라운드에선 카드 한 장을 더 공개한다.
잔룰 2. 2, 3라운드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숫자를 공개할 때,
0은 (갖고 있더라도) 공개할 수 없습니다.
3. 답 맞히기 단계
동시에 정보를 공개한 직후, 모든 플레이어는 먼저 답을 알아맞히기 위해
3분 동안 집중하게 됩니다.
각 플레이어에게는 0부터 4까지 적힌 답 카드가 주어지는데, 2가 답이라고
생각하면 2 카드를 라운드 카드 위에 비공개로 올려놓는 거죠.
- 각 플레이어는 한 가지 색깔 답 카드를 가진다.
- 라운드 카드
- 1라운드 카드 위에 답 카드를 비공개로 올려 둔 모습
근데, 이 게임의 재밌는 점은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라운드에 답 카드 2, 4를 내고, 다음 라운드에 다시
1, 3을 내도 되거든요. 찍을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마구 찍으면 안 되겠죠? 게임이 끝나고 정답인 답 카드는
+1점이지만, 오답인 답 카드는 한 장당 –1점이니까요.
잔룰 3. 같은 라운드에 연속된 숫자를 답 카드로 낼 순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답 카드 2, 3을 같은 라운드에 낼 순 없습니다.
그리고, 3분이 지나면 이번 라운드가 끝나고 다음 라운드를 진행합니다.
여기까지 읽고서
‘왜 찍지? 나중에라도 정답만 맞히면 되지 않나?’
라는 의문이 떠오르셨다면 제대로 이해하신 겁니다. 이 게임을
재밌게 만드는 핵심 장치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거든요.
4. 보너스 점수
그 핵심 장치는 (정보 공개 단계에서도 언급한) 초록색 바탕 체크 표시로
나타낸 보너스 점수입니다. 가장 먼저 정답을 맞히면 (위 사진에서
FIRST라고 적힌 카드에 초록색 바탕 체크 표시가 두 개이니)
+2점이고, 1라운드에 정답을 맞히면 (역시 위 사진에서 1라운드 카드에
초록색 바탕 체크 표시가 두 개이니) +2점, 2라운드에 정답을 맞히면
+1점이거든요.
예를 들어, 1라운드에 가장 먼저 정답을 맞히면, 가장 먼저 맞힌
보너스 2점에 1라운드 보너스 2점을 더하고 정답인 답 카드도 원래
1점을 받으니 총 5점을 받게 되는 겁니다. 5점은 굉장히 큰 점수라,
비록 적은 정보만 공개되는 1라운드지만 긴장감이 확~ 올라가는 거죠.
또, 이런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1라운드에 1, 3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아냈다면, 다른 플레이어보다 빨리 0, 2, 4를 한 번에 내서
(5점에 오답 하나당 -1점이니) 3점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보너스 점수를 가져가는 걸 견제하는 동시에
3점을 확보하니 꽤 괜찮은 장사거든요.
잔룰 4. 모든 보너스 점수는 정답을 맞혀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5. 합산 점수가 높아야 승리하는 게임
이 게임에는 보너스 점수 외에도 한 가지 장치가 더 있습니다.
단판으로 끝나지 않고, 게임을 총 세 번 해서 합산 점수로 순위를
결정한다는 겁니다.
보너스 점수가 워낙 커서 1라운드에 찍을 수 있으면 과감하게
찍어야 하지만, 단판 승부가 아니니 지나친 리스크는 피하고
점수 관리를 하라는 거죠. 다시 말해, 모험을 걸지 신중할지
항상 고민하라는 겁니다.
6. 운빨 vs 실력
찍기와 점수 관리 둘 다 중요하기 때문에, 게임은 마냥
운빨게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실력게임도 아닙니다.
둘 사이에 밸런스를 잘 잡았다고나 할까요?
이런 점은 역시 사칙 연산을 이용한 교육용 순발력게임
‘파라오 코드’나 파라오 코드의 상위 호환이라 할 수 있는
‘러브레이스와 배비지’와 비교했을 때 큰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이 두 게임은 순발력이 좋은 사람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그야말로 실력겜이라 호불호가 심할 수밖에 없거든요.
7. 예시 문제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예시 문제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풀어 보세요 ^^
아래 사진에서, 왼쪽 플레이어는 숫자 카드 0과 3을 받았고,
3*0=0을 해서 그 결과인 0을 1라운드에 공개했습니다.
테이블 가운데에 비공개로 놓은 저 카드는 무엇일까요?
8. 결론
시크릿 넘버는 실시간으로 답을 알아맞히는 순발력 소거법 추리게임으로,
긴장감이 강한 1라운드에 가장 먼저 정답을 맞히면 그 짜릿함이
말도 못 하게 강렬한 멋진 게임입니다.
단순히 답만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그런지, 할 때마다 다른 상황을
경험했고 덕분에 다채로운 느낌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순발력 소거법 추리게임으로 체크포인트 찰리가
있는데, 저는 이 게임도 아주 재밌었지만, 상대적으로 단조로워서
시크릿 넘버에 비빌 수는 없습니다.
너무 장점만 이야기한 것 같아 단점도 꼽아 보자면, 규칙이 간단한
게임치고 잔룰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잔룰 네 가지를 위에
정리했던 거였구요. 그리고, 카드에 일러가 없다는 점도 아쉽네요.
제가 보기엔 너무 멋진 게임이라 한글판이 꼭 좀 나왔으면 좋겠는데,
혹시 관심 있는 출판사가 없으신지 모르겠네요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