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보드게임 후기: High Frontier 4 All
해당 글은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읽기 불편하시다면 원문(https://blog.naver.com/msy5600/223101818771)으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보드게임을 할 때 대체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웨이트는 3.0에서 4.0 정도다. 그리고 보드게임긱 웨이트 4.83...은 내가 선호하는 웨이트에서 아득히 벗어난 난이도다. 게다가 나는 과학이 싫어서 문과를 간 만큼 온갖 선으로 어지러운 보드판은 로망보다는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드게임에 도전한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이 자리가 아니면 이런 게임을 대체 어디서 해 보겠는가?'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이 게임은 내가 원했던 체험으로서의 보드게임이었던 것 같다. 이후 게임의 개요, 이날의 플레이 양상, 종합적 감상 순으로 내 주관을 가득 담아 플레이 후기를 써보려 한다.
- 게임의 개요
High Frontier 4 All 이란?
이 게임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룰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테마에 대해서만 간략히 이야기해보겠다. High Frontier 4 All(이하 하포올)은 한마디로 로켓을 만들어 우주 개발을 하는 게임이다. 지구에서 각종 특허 기술을 경매를 통해 구매한다. 이 기술들은 다시 돈을 받고 팔 수도 있다. 특허 기술들을 활용해 로켓을 제작한 후 우주로 쏘아 올려 행성과 소행성 등에 착륙시키고, 가능하다면 공장이나 콜로니를 지어 개발을 통해 점수를 내는 게임이다. 맵의 경악스러운 선들은 실은 다른 의미가 아닌 로켓이 이동할 수 있는 궤도를 의미하는 거다. 요약을 하자면 간단하게 요약되지만, 로켓을 쏘아올릴 때 무게와 추진력, 경로에 따른 연료 계산, 다양한 이착륙 방법과 에너지 채굴 등의 규칙이 현실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긱웨이트가 치솟았다. 그리고 룰을 다 보고 왔음에도 이러한 복잡한 규칙들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았다ㅠㅠㅋㅋ 어려운 게임의 초플은 어설픈 룰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경험하는 거겠지.
룰을 아는 것과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다르다
첫째로 내가 그나마 덜 헤매기 위해서, 둘째로는 같이 하는 분들도 상대가 너무 죽쑤기보다는 어느정도 상대가 돼야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에 룰을 무려 두 번이나 보고 왔다.
룰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dDMjg4sT8s)
이런 게임에 한국어 룰설명 영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물론 모든 룰을 완벽하게 익히지는 못했지만, 어느정도 돌아가는 과정은 알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룰마님께 헷갈리는 부분을 질문하자 더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심지어는 룰을 배우면서 이런 전략을 펼치면 좋겠다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기까지 했다!
아니, 이거 로켓 가벼운 게 너무 좋은데? 흠.. 일단 가까운 곳에서 공장 돌리다가 점점 멀리 나가면 되는 거 아님?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게임을 돌리면서 무참히 무너지게 된다...
- 이날의 플레이 양상
경매 괴물과 우주 해적
이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거의 유일한 언어요소, 기업 능력. 원래 이 게임의 경매 페이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카드를 세 장 이하로 들고 있어야 하지만, 이런 제약을 무시하게 해 준다는 심플하고도 강력한 능력이다. 카드 앞뒷면 기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뒷면의 능력은 토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복잡한 능력이라 어려워 보여서 심플한 기업으로 선택했다. 다른 분은 총 추진력을 높여주는 기업이고, 또 다른 분은 오브젝트가 지어질 때마다 아쿠아(화폐 단위)를 받는 능력, 또다른 분은 경매 입찰가가 같을 때 무조건 이기게 해 주는!(원래는 경매 주최자가 승리하고, 주최자 외의 사람들이 동률이라면 주최자가 결정한다) 우주 해적 같은 기업이었다.
나는 내 능력을 바탕으로 남들이 경매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허들을 쓸어가고 이득을 보겠다는 얌생이같은 계획을 세웠지만... 누구나 계획은 있었다. 뚜까맞기 전까지는.의 상황이 되었다... 경매 관련 기업이 두 개나 되다보니 경매 페이즈가 상당히 치열하고, 뒷거래가 암암리에 이루어졌다. 전에 이 게임을 해보신 분의 말씀으로는 게임의 양상이 너무나 다르다고 했다ㅋㅋ 저번에는 "이거 가지세요" 하는 식으로 양보하는 경매였다고. 이번에는 블랙기업이 둘이다 보니 게임의 1/4 이상을 경매로 흘려보냈다.
가벼운 게 최고지만 이것저것 담고 싶어!
앞서 룰설명을 들으며 로켓 가벼운 게 너무 좋다고 생각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가벼우면 이점이 이것저것 많다. 많은데... 너무 싣고 싶은 게 많아! 내 생각에는 공장을 지어야 비로소 우주 개발의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장 짓기가 좀 어려운가. 공장을 지으려면 필연적으로 무게가 무거워지는 상황! 게임 내내 (죄송하게도) 공장 짓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다른 분들께서 좀 나눠서ㅋㅋ 지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구나.. 나눠서 지으면 되는구나! 정말 당연한 사실인데 너무 늦게 깨달아버려서 다시 뚜까뚜까 추진체를 모으고, 공장 부품을 모으며 경매를 열심히 진행했다.
밥을 왜 먹어야 하지? 로켓 날려야 하는데...
과몰입의 현장. 밥 먹을 시간이고 배고픈 건 맞는데 지금 밥 먹을 때가 아니라니까. 어떻게 해야 조건에 맞게 로켓을 날려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야되는데 밥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어 한켠에 카드를 두고 이리저리 맞춰보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다ㅋㅋ
공장에서 생각보다 이득을 보지 못해 우주 미아가 되다!
저 난리를 쳐가며 마참내 감격스럽게도 우주의 한 위성?에 공장을 건설하고 콜로니까지 지었다. 이제 여기서 아쿠아도 뽑아내고, 기술 업그레이드도 하고, 이 공장을 거점으로 해서 주변 소행성들도 개발할 수 있겠지?라는 큰 그림을 그렸으나...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내 예상과는 달리 조건에 맞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카드들이 거의 없었고,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로켓을 새로 재조립해 쏘아올리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던 거다. 특히 업그레이드의 이득을 거의 못했다는 점이 엄청나게 절망적인 요소였다. robonaut을 업그레이드하면 등급이 높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newbie miscalculation으로 딱히 등급이 높지 않은 로보넛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정적인 실수로 중반부에 게임의 동력을 잃어버리고 대체 뭘 해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조금 게임의 흥미를 잃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그만둘 수 없으면 끝까지 뭐라도 재밌게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고 게임을 시작한 거고! 그래서 나는 다시 가벼운 로켓을 만들어 작은 행성들에 뿌슝빠슝 총을 쏘며 탐사를 시도해 보려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천문 관련해 지식이 조금 있었으면 어느어느 구역이라고 실감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질 못해 대충 게임판 위쪽 소행성대?를 건드려 보겠다고 하겠다)
이 게임은 누군가 탐사에 실패하면 다른 사람들이 도전할 수도 없이 실패 토큰이 영원히 남게 된다. 나 혼자 남긴 건 아니지만... 게임 초반부와 비교했을 때 무수한 실패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가? 실패를 통해 배운다! 인류도, 나도...
우주 미아, 부족한 실력을 운으로 커버하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이 게임에서 탐사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ISRU 등급 조건 이외에도 특수한 조건이 하나 있다. '주사위 굴림값'이 '행성 크기'보다 작아야 한다는 거다. 이 행동에는 어떠한 주사위 보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탐사를 시도한 소행성대가 지구에서 대단히 멀지 않음에도 사람들이 오지 않은 이유가 있다. 행성 크기가 1,2 따위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성공 확률이 극악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턴을 낭비하지 않는 거지. 하지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었기에 이런 곳에라도 간 거다. 그리고...
크기 2짜리 행성에서 주사위 2를 굴려 탐사에 성공하고, 그 다음에는 무려 크기 1짜리 행성에서 주사위 1을 굴려버리는 무친 운빨을 보여준다ㅋㅋㅋㅋㅋ 보드게임의 신이 나를 가엾이 여겨 주사위 운이라도 준 게 틀림없어.. 크기 1짜리 행성을 탐사한 것만으로도 이 게임에서 내가 할 몫을 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행동으로 탐사를 성공해내며 7시간+a짜리 게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여담인데,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어 있어 깜짝 놀랐다. 방금 밥 먹으면서 로켓 조립한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다고? 하는.
- 종합적 감상
이런 사람들에게 비추천!
단도직입적으로 하포올의 무시무시한 웨이트를 보고 운 요소라고는 전혀 없는 하이퍼리얼리즘 시뮬레이션 유로실력게임을 상상하는 사람에게는 비추천한다. 하이퍼리얼리즘 시뮬레이션에는 어느정도 부합하고, 기본적으로 유로게임인 만큼 실력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참혹한 이벤트', '인명 희생', '적을 돕다', '뉴비의 계산 실수'. 이 칭호들은 각각 2점씩의 가치를 지니며, 투표를 통해 지급된다ㅋㅋ 이렇게 칭호로 주어지는 2점은 이 게임에서 제법 큰 점수인데(내 총점은 10점이었다), 이런 적지 않은 점수를 계량적 지표에 의해 지급하는 게 아니라 투표에 의해 지급한다ㅋㅋ
위험한 부분을 지날 때는 무려 '주사위'를 굴려서 생사를 결정하고, 어떠한 행성을 탐사할 때 성공 여부, 결함을 수리할 때 부서지는 부품 같은 것도 주사위 운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여기서 주사위를 조절할 수 있는 그 어떤 장치도 없다.(단 하나, 위험 체크에서의 생사결정은 아쿠아 4를 지급하여 확정 성공이 가능하지만) 주사위 롤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주사위를 통제할 수 없다는 규칙은 많은 유로게이머들의 상식에 부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 능력을 남들에게 줄지 말지를 결정하기, 내 카드를 행동 없이 싸게(비싸게) 사고팔기, 우주 미아가 된 사람에게 보급픔을 지급하기 등을 플레이어 재량과 협상에 의해 '상식선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높은 웨이트에 기대하는 부분은 플레이어의 개입이나 협상보다는 게임 자체에 내재된 시스템에 의해서만 통제가능할 것, 운 요소가 적거나 운 요소를 통제할 수 있을 것 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웨이트만 보고 이런 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게임을 추천하지 않는다ㅋㅋ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
1) 보드판을 보고 심장이 격하게 뛰신 분
이런 분들은 내가 뭐라고 했든 게임이 얼마나 어렵든 이미 도전욕구로 가득 차 있을 거라 생각한다.
2) '체험으로서의 게임'을 원하는 분
이전 '보드게임 관련 이런저런 생각들(https://blog.naver.com/msy5600/223096662336)'이라는 글에서 내가 보드게임의 재미를 느끼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보드게임 그 자체를 경험하고 그 안에 담긴 시스템, 테마 등을 체험해보는 데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리고 체험의 측면에서 보드게임을 좋아하고, 경험을 위해서라면 웨이트를 불사하겠다는 분들에게 이 게임을 추천할 수 있겠다.
실제로 우주개발을 할 때 예상은 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운으로 인해 실패할 수도 있는 따름이고, 특허를 개발할 때 정직하게 돈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뒷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지 않는가? 노벨평화상을 줄 때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정량적'인 기준이 있는가? 내가 식견이 좁아서 든 예시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ㅋㅋ 테마에 깊이 몰입해서 플레이하면 유로게임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이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라그랑주 포인트'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기억의 흐릿한 저편에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몰랐는데 이 게임을 통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켓을 조립하고, 궤도를 계산해 연료를 채워넣고, 방사능 이벤트를 겪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교하게 구현되어 있어 과학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만약 항공우주공학, 천문학 등에 조예가 있는 분들이 이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더더욱 재밌게 플레이하지 않을까 싶다. 유로게임적인 편견을 갖지 않고, 웨이트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체험으로서의 게임
나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한번쯤은 해봄직한 게임이라 생각해서 도전했고, 앞으로도 한두판 정도 더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바보같은 업그레이드 실패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음에는 더 잘 해서 공장 여러개를 건설해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좋다면서 겨우 한두판?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새로운 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새로운 게임을 추구하는 유형이므로(앞선 링크 참고) 기준점이 다름을 밝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당연하게도)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드게임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해봐야 하는 게임!으로 꼽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의 측면에서 아주 인상적인 게임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런 게임에 도전해볼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 게 꽤나 행운이었던 것 같다고 느낀다! 다소 두서없게 작성했으나 이 글의 내용이 읽는 분들께 잘 가닿았으면 하는 바다. Special thanks to 룰영상 업로드해주신 까르마님, 제 무한 질문을 받아주신 룰마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