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날 학원 아이들과 보드게임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수학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입니다.
2월 말이 겨울학기 종강날이라 아이들과 신나게 논 사진들, 후기 남겨봅니다.
(노는데 정신팔려서 사진이 많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중학생(14살)이면서 반 아이들이 10명씩 되다보니 웨이트가 거의 1에 수렴하는 파티게임들 위주로 놀았어요.
그 중에는 어른들과 해도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게임도 있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마운틴 고트>
마운틴 고트는 작년 겨울 구매 후 꼭 해보고 싶었던 게임인데 4인 정원이라 학생들과 어떻게 하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학생수가 7명인 반(저포함 8)이 있어서 둘 씩 짝지어 플레이했습니다.
한 명은 주사위 굴리고 한 명은 염소 옮기고 하니 2인 1조로 해도 괜찮더군요.
마운틴 고트는 처음 나왔을 때 주사위로 등반하는 테마가 똑닮은 캔트스탑이랑 비교가 많이 되었는데 이쪽은 푸쉬유어럭 장르가 아니라서 지향하는 방향 자체가 다릅니다.
오히려 라스베가스와 견주는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돼요.
둘 다 주사위도 마음대로 안나오고, 점수(돈)도 뜻대로 못가져간다는 점에서 운7기3이긴 한데ㅎㅎ 딱 패밀리 게임 난이도에 부합하는것 같아요.
아무래도 라스베가스는 테마가 카지노다 보니 아이들과 하기에는 마운틴 고트가 더 적절했던것 같아요.
어른들과도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싶어 바로 가족들과도 해봤는데 다들 너무 재밌어해서 5판 내리 했습니다...
고득점을 얻으려면 정상까지의 칸수가 적은 9, 10산에 올라야 하는데 칸수가 적다는 말은 곧 왕좌를 금방 뺏긴다는 뜻이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높은 숫자의 토큰이 적어서 초반에 신경 안쓰면 금새 남들이 다 가져가버려요...
운7기3의 게임에서 기3의 전략을 굳이 살려보자면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게 최선인것 같아요.
점수도, 칸수도 애매한 7, 8산이 은근히 노른자땅인게 누군가 정상에 있고 내 염소는 산 밑에 있으면 오를 엄두가 안나서 아예 포기하게 돼요.
그럼 정상에 있는 사람만 계속 이득보게 되는것이죠. 사진 속 노란 염소처럼요.
5,6은 눈금이 작아서 오르기 쉽고, 반대로 9,10은 거리가 짧아서 올라봄직 한데 7,8은 출발할 결심이 잘 안서더라구요 ㅋㅋㅋㅋ
어쨋건 어른들끼리 하기에도 너무 좋은 게임이었고 저는 라스베가스 보다 더 재밌게 즐긴것 같습니다.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다음은 파티게임의 최강자 <코드네임>과, 제 마음속 언제나 1등인 <탑텐TV>입니다.
코드네임은 진짜 명작인게 설명하기도 쉽고, 칠판 하나만 있으면 구성물도 위에 찍은 색깔표를 제외하곤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단어들도 굳이 카드 보지 않고 아이들이 즉석에서 던지는 말들로 적었어요.
알아서 팀 나누라고 하니까 들어가는 반마다 전부 남녀로 나누는..ㅋㅋㅋ
어른들 모임에서는 굳이 팀을 성별로 나눠본적은 없는것 같아요. 오히려 신박한 아이디어일지도?
코드네임의 재미는 말이 필요 없죠. 다만 아이들은 아직 어휘력이나 단어끼리 연결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한번에 3, 4를 부르진 못하고 대부분 1개아니면 2개씩 불렀어요.
그리고 리더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틈틈히 선생님 연애썰(?)도 풀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쉬는 시간 없이 계속 하자고 하는거 보니 재미는 있었나봅니다!
칠판에 적힌 단어들을 보면 요새 중딩들의 관심사가 조금은 보입니다.
뉴진스, 아이유, 방탄, 축구, 농구, 조던 ㅋㅋㅋㅋ (조던은 나때도 좋아했는데..?)
다음은 '탑텐TV'입니다.
이 게임은 저와도 연이 많은데 자세한건 생략하고, 그냥 제가 엄청 좋아합니다. 개인적인 올타임 넘버 원이에요.
저는 비단 학원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과 게임할때도 보드게임에 낯선 일반인, 특히 다수를 상대할 일이 많은데
전략 게임은 고사하고 패밀리 게임들도 인원수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근데 그럴때 마다 이 게임이 참 효자에요.
할리갈리, 뱅 이런것들은 일반인들도 다 접해봐서 시시해하는데 탑텐TV는 희소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명작입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참 돋보이죠?
아이언맨의 새로운 직업에 트로트가수, 에버랜드 직원은 정말 듣자마자 뿜었습니다 ㅋㅋㅋㅋㅋ
토니와 소울리스좌의 조합이라니.. 상상조차 안가네요 ㅋㅋㅋ
탑텐TV는 협력게임입니다.
먼저 PD를 한 명 고르고, 모두 1~10이 적힌 숫자카드를 한 장 뽑아요.
그리고 주제에 맞는 답을 던지면서 자신의 숫자가 얼마인지 PD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PD는 모두의 답을 듣고 1부터 10까지 오름차순으로 정렬해야 해요.
조금 쉽게 접근하기 위해 PD가 5를 뽑고 먼저 기준을 정해주기로 했습니다.
유튜버 아이언맨이라,, 나름 적절히 기준이 세워진 것 같죠?
이 게임의 힘이 참 묘한게 아이들 상상력도 엿볼 수 있고, 협력심도 깨워주고,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오름차순 나열에 성공했을 때의 희열도 다같이 느낍니다.
어제 하루종일 중 딱 한번 있었는데 제가 더 뿌듯하더군요.
아이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건의하면서 게임의 흐름이 잡혀가는게 공부도 이렇게 열의것 하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아차차;; 보드게임 후기였지.. 공부생각은 잠시 접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은 카드게임 젝스님트입니다.
룰이 심플하고, 폭탄(6줄)만 피하자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 아이들이 금방 몰입하고 적응했습니다.
목표라기 보단 오히려 살아남기 위한 저항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전략을 잘 세워서 고득점을 내는 게임들도 당연히 동기 부여가 되지만
사람이라면 '저 폭탄을 내가 먹으면 큰일난다'라는 피해를 보느냐 마느냐 식의 1차원적인 생존의 문제 앞에 더욱 자극되는것 같아요.
학기중 산만하던 아이들도 5장씩 놓인 카드들 앞에선 이세돌 뺨치는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3분 설명하고 저는 잠시 빠져서 쉴 수 있었네요.
하루종일 수업하는것 보다 게임해주는게 더 지칩니다 ㅋㅋㅋㅋ 물론 웃고 떠드느라 그런거겠지만요.
이상으로 학원에서의 보드게임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