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 Vanguard 10시간 플레이 후기(스포 X)
들어가면서
미지의 물건은 늘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킥스타터라던가, 매월 소식지에서 발표하는 신작들이 그렇죠.
AR은 이런 점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본격적으로 설레게 만들 수 있는지 잘 아는 회사입니다.
꿈꾸는 듯한 아트웍, 매력적인 세계관, 거기에 더해 잘 빠진 조형의 미니어쳐까지..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게임마다 한 두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 늘 아쉬움을 자아내지만, 또 AR의 신작 소식에는 저도 모르게 펀딩 페이지를 클릭해서 보고 있습니다.
저 역시 ISS Vanguard 펀딩을 넣었다가, 취소 수수료를 물고 뺐다가, 결국은 AR의 농간을 이기지 못하고 발송 즈음 되서 주소 이전을 받아 쓴 값비싼 후기입니다.(눈물)
보다 구체적으로는, ISS Vanguard 튜토리얼 행성, 쉽 북 매니지먼트, 3번 행성까지, 약 10시간 가까이 솔로로 플레이하고 난 후기입니다.
때문에 완전히 게임의 모든 것을 다 본 게 아니며, 주로 초반부 경험에 집중되어 있는 후기인 것을 감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저씨의 마음을 흔드는 아트웍. 일러스트 한 장 만으로도 '미지의 행성으로의 모험'이라는 키워드가 느껴집니다.
게임을 받아보고 언박싱해보면 정말 무겁습니다. 이 무게의 대부분이 카드에서 옵니다.
처음에는 정리할게 꽤 많아서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 방법이 설명되어 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별도의 오거 없이도 자체적으로 카드 트레이 및 디바이더가 있어 카드 구분 및 찾기가 꽤 편하게 되어 있고, 세팅도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라 이 정도 규모의 게임을 손쉽게 꺼낼 수 있는건 상당한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튜토리얼 진행중인 사진. 이후에 좀 더 추가되는 요소가 있지만 게임 세팅 시간은 꽤 준수한 편입니다.
게임의 흐름
게임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탐험할 행성을 선택 -> 착륙선(Lander)을 이용해서 행성에 착륙 -> 행성을 탐사하면서 발견물(Discovery)을 모으고, 행성에서의 미션을 수행합니다.
미션 목표를 달성하고 다시 착륙선에 모두 모여 정상적으로 행성을 빠져나올 수도 있고, 탐사대원 하나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는 등 미션을 더 수행하기 어렵다 싶으면 긴급 탈출(EVAC)로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행성 탐사가 끝나면 수거해온 발견물을 ISS Vanguard 모선에 풀고, 상처입은 대원들을 의료실에 데려다놓은 뒤, 다음 일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발견물에 따라 새로운 기술이 열리기도 하고, 랭크업 조건을 잘 달성했는지에 따라 대원들의 랭크도 상승하고 경험치 토큰을 이용해서 주사위도 사 올 수 있죠.
함내에서 새 탐험을 준비하며 신규 대원을 모집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함내에 닥친 이벤트를 해결하기도 하는 등의 과정이 쉽 북(Ship Book)이라 불리는 바인더를 이용해서 진행됩니다.
자체 카드 트레이, 디바이더, 섹션 덱박스 등이 잘 되어 있어 플레이가 쾌적합니다. 몇몇 필요한 악세사리만 추가해서 쓰면 충분합니다.
게임의 두 가지 페이즈, 그리고 사용된 메커니즘
위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게임은 크게 두 가지 페이즈로 나뉘게 되는데요,
행성을 탐험하는 Planetory Exploration 단계, 그리고 Vanguard 함선을 운용하고 관리하는 Ship Management 단계입니다.
행성 탐험 단계에서는 주로 주사위 관리가 플레이어 행동 메커니즘의 핵심이 됩니다. 거기에 더해 지역을 탐험할 때는 Log Book(또는 앱)과 랜덤 카드를 뽑아서 배치하는 방식(7대륙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령, 한 지역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 주사위를 굴려 결과값을 따지고 이를 보정하여 최종 결과를 처리한 후, 그 결과를 보는 방식입니다.
내가 어떤 선택지를 선택했으며, 실패 또는 성공 여부에 따라 이후 전체적인 상황이 바뀌게 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함선 관리 단계는 크게 메커니즘이라고 할만한게 없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액션 포인트 시스템..? 자원 관리 정도?
이 쉽북은 일반적인 보드 게임에서 테마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카드와 바인더 등 실물을 이용하되, 비디오 게임에서 기지를 관리하는 느낌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바인더로 된 쉽 북. 보드 게임의 문법보단 X-COM 등의 비디오 게임의 기지 관리와 더 유사한 느낌입니다.
게임의 몇 가지 요소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뛰어난 몰입도 feat. 전용앱
원래는 Log Book을 이용해서 테티그처럼 지시된 부분을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고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패드가 있으면 꼭 앱으로 진행하시라 하고 싶네요.
Log Book 책 재질이 크게 좋지 않고(어디 회사 교육 받으러 가면 내어주는 유인물 같은 재질입니다.), 내용도 깨알같이 텍스트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에 테마를 느끼기에는 좀 아쉽네요.
이전에 나온 테티그는 링바인더로 꽤 책자처럼 만든데 비해 뱅가드는 이와 비교하면 좀 부실해보이는 감이 있습니다. 아마 제작사에서도 앱을 더 미는 것 같습니다.
앱은 Log마다 일러스트와 함께 나오고, 무엇보다도 여러명의 성우로 이루어진 풀 더빙 + 사운드 이펙트가 첨가 되어서 현장감과 몰입도가 상당히 좋습니다.
또 게임 진행 과정 따라 부분부분 저장해주는 기능이 있어 상당히 편리합니다.
아직 진행도가 초반이니만큼 스토리의 서사를 완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지역에 도사린 위험, 예상치 못했던 지역 및 요소의 발견 등 곳곳에서 미지의 행성을 탐험하는 느낌이 물씬 납니다.
어느 지역에 도달하면 그에 맞는 이야기가 풀 더빙(앱)으로 흘러나와 몰입도를 더해 줍니다. 번외로 이런 링바인더 노트 타입 보드 꽤 마음에 듭니다.
컴포 품질은 최상 수준
카드, 보드, 쉽북, 미니어쳐 등 여러 부분에서 AR이 작정하고 빡세게 준비한 것 같습니다. 자체 트레이도 충실하고, 세팅 편의성 부분에서도 신경을 쓴 흔적이 제법 보입니다.
아직까지 진행하면서 특별히 서드 파트 악세사리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네요. 테티그랑 네메시스가 내부 트레이로 불만 좀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합니다.
카드 아트웍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특히 대원 캐릭터 카드가 상당히 많은데, 죄다 다른 인물 그림을 쓴거 보면 감탄할 정도입니다.
각 지역 카드 아트웍에도 멋진 풍경 일러스트가 가득하지만, 아쉽게도 각종 아이콘이나 텍스트 때문에 눈에 막 잘 들어오진 않습니다.
다만 수납에 대해 몇 가지 단점을 꼽자면,
카드 양에 비해 카드 트레이가 충분히 넓지를 못합니다. 때문에 슬리브를 씌우는 건 거의 불가능해보이고, 카드를 뺄 때도 손가락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 좀 어렵사리 빼야합니다.
7대륙처럼 자주 카드 트레이에서 카드를 찾아 빼야 하는데 공간이 좁게 배치된 카드들을 빼는게 좀 많이 거슬립니다. 그렇다고 다 펼쳐놓고 하긴 어렵고..
몇몇 카드를 제외하곤 셔플이 필요한 카드가 별로 없어서 전 슬리브는 안 씌울 예정이라 큰 문제는 안되는데, 슬리브 씌울 분들은 좀 애먹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섹션 펫이라던가 퍼스널 파일 같은 확장들을 본판에 보관하기가 조금 애매하네요. 넣으려면 억지로 넣을 수는 있습니다.
멋지지만 귀찮은 미니어쳐. 썬드롭은 음...
테티그와 마찬가지로, 뱅가드에서도 미니어쳐의 조형은 멋지지만 딱히 필요하진 않습니다.
코어 박스 자체에 스탠디가 들었으니 그걸 활용해도 충분합니다. 무엇보다도 박스 하나 옆에 더 두고 미니어쳐 찾는 과정도 다소 번거롭고, 보드와 장소 카드는 작은데 커다란 미니어쳐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잘 보이지 않아 거슬리는 부분도 다소 있네요.
저는 주소 이전하신 분이 썬드롭으로 구매하셔서 처음으로 AR 썬드롭을 실물로 봤는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크게 비용을 더 주고 썬드롭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직접 썬드롭이나 도색을 하는 입장이라 그렇고, 우중충한 회색 플라스틱 덩어리 보다야 당연히 낫습니다.
게임 테마랑 어울리는 느낌이이라는 부분에서는 테티그나 에테르필즈 썬드롭이 훨씬 분위기를 살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썬드롭된 미니어쳐. 색상을 쑥색이 아닌 흑백으로 구성했으면 어떨까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클로즈 인카운터에 들어있는 미니어쳐들. 조형 자체는 디테일도 뛰어나고 멋집니다.
쉽 북 매니지먼트
일전에 읽은 해외 리뷰에선 쉽 북 단계가 거의 업킵 노동에 가깝다하여 좀 걱정을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단 더 간편했었습니다.
다만 별도의 룰북 없이 쉽 북 내용으로만 룰을 익히고 진행을 했어야해서 좀 헷갈리긴 했습니다. 관련 영상이랑 긱을 찾아보고 해결할 수는 있었는데, 아무래도 큰 흐름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없다보니 혼동이 좀 생긴 것 같네요.
한 번 전체적으로 진행해보면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이 차근차근 쉽북에 적힌대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쉽 북 단계가 자체적으로 엄청 재미난 경험을 준다기 보단 내가 가져온 발견물을 회수하고 정리한 뒤, 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이벤트를 해결하는 등 보조적인 성격이 강한 편입니다.
이번 단계에서는 어떤 행동을 할지, 또 행성에 누구를 내려보낼지 등을 고민하며 다음 탐험을 준비하고 있으면 제 스스로가 함장이 되어 결정을 내리는 듯한 몰입감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근하게 다가오는? 그런 매력입니다.
협동 게임으로서의 가치
비교군으로 같은 AR 게임인 테티그를 들 수가 있는데, 우선 테티그보다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뱅가드가 협동 게임으로서는 더 낫습니다.
테티그는 각 개인마다 발생하는 전투/외교 페이즈가 어마무시하게 길어서 도저히 멀티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오히려 혼자서 진득하게 전투와 탐험을 즐기는 편이 낫다 싶었죠.
뱅가드는 그에 비하면 행성 탐험 단계에서 각 개인이 처리하는 시간이 크게 길지 않기 때문에 다인플해도 다운타임이 크게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로그를 읽어주는 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 문제만 해소되면 충분히 여러 명이서 할 수도 있겠네요.
다만 게임 메커니즘 상으로 협력을 유도한다는 느낌보단 게임 진행에서 발생하는 의사 결정에 플레이어 간 논의 및 토의를 유도하는 느낌이라, 테마에 몰입하고 롤플레잉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에겐 꽤 매력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저같은) 사람들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행성 탐험에서는 같은 지역에 있는 플레이어가 주사위 테스트를 진행할 때 주사위를 빌려주는 요소를 제외하고는 시스템적으로 협동이라 할 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어디 갈까? 어떻게 할까? 서로 논의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되죠.
마찬가지로 쉽북 단계에서도 여러 가지 내용을 정할 때 논의가 필요한데, 굳이 이걸 토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서 플레이할까?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이거 할래? ㅇㅋ하고 진행할 것만 같은 부분이 꽤 많은데, 이건 사람 성향마다 다르고 제가 직접적으로 협동하는 걸 체험해본 부분이 아니라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다만 저에게 이거 코옵할래 솔플할래 누가 물어보신다면 전 100% 솔플이라고 대답하겠네요.
주사위로 모든게 결정되는 ISS 세상.
주사위 조정에 관해
사실 ISS Vanguard가 게임으로써 저에게 가장 어필하는 점은 주사위 조정이라는 매커니즘이었습니다.
종류도 많고,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랜덤으로 뜨는 주사위 값을 영리한 플레이로 퍼즐 풀 듯 헤쳐나가는 게임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진행한 결과, 솔직히 말해서 제가 원했던 기대값에는 좀 못 미친다는 느낌입니다.
초반 튜토리얼을 진행하던 당시에는 주사위 값을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습니다.
간혹 현재 가지고 있던 섹션 카드와 맞는 주사위를 굴리게 되면 카드를 쓰면서 재굴림을 할 수 있지만, 솔직히 너무 1차원적인 접근이라 생각되네요.
주사위가 주요 테스트 체크의 수단인 만큼, 운빨이 미치는 영향이 어마무시하게 큰 편인데 이에 대한 디자이너의 접근이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고민한 흔적을 잘 모르겠어요.
물론 아직 함선의 기술이라던가 장비 등 모든 부분을 제가 다 해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이 좀 섣부르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10시간 정도 했는데 아직 안 보여준거라면 이건 이거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완전히 모든 것을 다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완전하게 딱 잘라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메커니즘을 풀이한 방식은 많이 아쉽습니다.
오히려 테티그 카드 체인 메커니즘이 훨씬 재밌었어요. 테티그의 문제는 그게 어마무시하게 많이 나온다는게 문제였죠...
뱅가드 역시 다이스 체크가 어마무시하게 나오는 만큼 좀 더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톤 다운을 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퍼즐 요소도 너무 많이 덜어낸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행성을 갈고 부수고 탐험하는 뱅가드 4인방의 때깔은 영롱하여라.
현재까지의 인상
10시간 가량 진행한 경험을 점수로 따진다면 8점 정도 줄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후기를 다른 커뮤니티에 먼저 올렸었습니다. 두 후기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아실 테죠.
오히려 그 후기를 썼던 초반에는 다이스 갓의 미친 트롤링이랑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거기에 더해 튜토리얼이라 끝내지도 못하고 끝까지 가야하는 상황이 겹쳐 게임에 대한 인상이 정말 별로였습니다.
차라리 튜토리얼을 벗어나고 나니, 너무 위험해진다 싶으면 빨리 행성을 벗어나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 있어서 훨씬 더 낫게 느껴지네요.
핵심 메커니즘인 주사위 조정 부분은 아직 좀 불만스런 점이 남아있지만, 스토리텔링 및 모험 등의 요소는 상당히 좋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들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구요.
행성을 탐험하고, 전리품을 챙겨와 업그레이드하고, 다시 또 모험에 나서는 느낌은 마치 몬스터 헌터의 그것과도 유사하기도 합니다.
기대가 크다보니 아쉬운 점 위주로 글이 흘러가긴 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풍성하고 훌륭한 경험을 주는 게임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주사위를 각자 어떻게 대할지는 여러분의 몫이겠죠.
이번에는 완전한 홈런을 치는 줄 알았으나... 역시나 뭔가 2%가 아쉬운 AR의 ISS Vanguard 후기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