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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순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 쎈 인터액션속 가려진 꿀잼은 두배로. 배틀쉽

1,395 조회

2022.08.30 10:09

0. 배틀쉽

여러분들은 Battle Ship 이라는 게임을 알고 계신가요?
10X10의 정사각 모눈종이에 비공개로 나의 배를 배치한 후, 상대의 바다에 포격을 가하면서 상대의 배를 먼저 모두 격침하는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고전게임입니다.

대부분의 고전게임의 기원이 애매하듯 이 게임 역시 정확한 오리지날을 언급하기는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만,1930년대에 등장한 후, 한동안은 종이와 연필로 게임을 진행했다고 합니다(롤없는 라이트 게임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 후1960년대에 이르러 밀튼 브래들리가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보드게임의 형태로 다듬고 이 회사가 하스브로에 인수되어서 현재는 하스브로에서 판권을 쥐고 있지요.

아마 현재 판매중인 "배틀쉽" 이라는 게임은 다 이 회사의 제품일거에요.

암튼 비교적 간단한 준비만으로도 즐길 수 있으면서 긴박한 심리전을 펼칠 수 있다보니 이 게임은 큰 인기를 얻고 여러 플랫폼으로 발매되었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종이와 펜으로 플레이하는 그 시발점부터 플라스틱형 보드게임, 그리고 비디오게임에다가 보드게임을 오마쥬한 동명의 영화까지 나오는 등 여러 플랫폼으로부터 인기를 얻고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嘘喰い라는 만화(정발제목 도박마)에서 나왔던 배틀쉽이 꽤 인상깊었네요.

오늘 이야기 해 볼 게임은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발매한 게임. 배틀쉽입니다.

...아 맞다, Battle shIp이 아니라 Battle shEEp입니다.

▲ (배틀쉽과 배틀쉽은 쉽게 혼동될 수 있는 관계로 여러분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이 리뷰에서 배틀쉽은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쉽지않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하 등장하는 배틀쉽은 배틀쉽이 아닌 배틀쉽을 칭하오니 배틀쉽은 잠시 기억의 저편으로 넣어두시고 배틀쉽만 생각하시며 읽으시면 조금 더 쉽게 읽으실 수 있쉽쉽쉽쉽...)

1. 어떤 게임인가?

Battle ShEEp(이하 배틀쉽)은 목초지에서 양들이 펼치는 전쟁을 다룬 게임입니다.

아니 순하디 순한 양과 전쟁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순한 양" 이라는 말은 양의 본성을 감추기 위한 집단에서 퍼뜨리고 있는 프로파간다입니다.

양은 사실 굉장히 거칠고 난폭하고 위험한 동물이죠.

중세시대 성의 문을 뚫기위한 공성추라는 무기의 영문명이 "Battering Ram" 라는 사실을 알고계신가요? 바로 "꼬라박는 양"이라는 뜻입니다. 아 이 얼마나 양의 본성을 잘 나타낸 무기인가요.

▲ 얼마나 불[량]한 동물이면 불[량]한 친구들을 [양]아치라고 부르겠습니까. 저 눈을 보라구요.

플레이어들은 헥스타일로 이루어진 모듈들로 번갈아가면서 맵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맵에 자신의 양 토큰을 한줄로 쌓아서 배치하고 게임을 시작하죠.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1) 양 토큰을 최소 1개는 남기고 원하는 만큼 쥐어서
2) 원하는 방향으로
3) 들이박을때까지 돌진하세요!!
4) 그리고 차례를 넘기세요.

간단하죠 정말? 이렇게 돌아가면서 플레이하다가 양을 움직일 수 있는 플레이어가 더 이상 없다면 그 즉시 게임을 종료하고, 더 넓은 목초지를 차지하고 있는 양이 이구역의 미친ㄴ...아니 양이 됩니다.

King of Sheep, 양아치중의 양아치, 쉽양아ㅊ....아니 왕아치가 되죠.

▲ 이 게임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2. 게임의 특징

어쩌다보니 비슷한 결의 게임을 연달아서 리뷰하게 되네요.

얼핏 보면 귀여운 양들이 뛰노는 말랑말랑한 게임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 게임의 뿌리 역시 "추상전략" 입니다. 그것도 헥스타일 보드를 차용하여 선택지를 대폭 늘린 매운맛의 추상전략이에요.

적잖은 플레이어가 규칙을 듣고 난 후 "오케이 이쯤이야 꼬!" 했지만 첫 판의 중반정도에 들어서서는 손발이 줄줄 흐르고 눈물이 덜덜 떨리는 증상을 호소(...)하며 이 게임의 무서움을 알게 되죠.

오목보다 조금 복잡한 정도의 규칙인 이 게임이 왜 사람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판 더! 를 외치게 할까요?

▲ 얼핏보면 삼각형이 아닌가 싶은데, 점을 면으로 선을 점으로 대응하면 배틀쉽과 동일한 구조의 보드입니다.

GIPF사의 동명의 게임라인, 깊프시리즈는 간단한 규칙에 깊이있는 전략으로 추상전략게임의 좋은 예로 많이들 언급됩니다. (~~탐스크? 그게 누구죠?~~)

이 깊프시리즈의 대를 이어오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헥스구조 보드입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추상전략게임인 오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요.

오목은 사각형 구조의 보드의 꼭짓점에 기물을 위치하는데요, 이 기물로부터 뻗어나가는 영향력은 상하좌우 총 4개의 방향이 있잖아요?

하지만 깊프 시리즈는 삼각형구조의 꼭짓점에 기물을 위치하는데, 이로인해 이 기물로부터 뻗어나가는 영향력은 60도씩 총 6개의 방향을 사용하게 되죠.

더군다나 배틀쉽의 경우 기물로부터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가 실질적으로 무한이다 보니 보드를 더욱 넓게 활용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이 커집니다.

막기도 쉽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것도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아요. 하지만 이런 부분만 있었다면 오히려 너무 자유도가 커져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펼쳐대는 게임이 되었을거에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프 시리즈는 말을 움직이는데 규악을 둔다거나(드본), 맵의 크기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간다거나(제르츠) 하는 식으로 대처해나갑니다. 즉 방향은 열려있지만 일종의 조건을 달아두는 식으로요.

▲ GIPF 시리즈의 DVONN의 경우 칩의 높이만큼의 칸 만큼만 이동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틀쉽은요? 배틀쉽은 원하는만큼, 최대한 이동하는 액션의 특성상 이동에 제약을 둘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택된 방법이 바로 보드의 제약입니다.

게임 준비단계에서 각 플레이어들은 육각형 4칸으로 이루어진 모듈을 차례대로 하나씩 배치하면서 이번 게임에서 사용하게 될 초원~~콜로세움~~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게 배틀쉽을 한 번 해보면 금방 깨닫게 되는 부분인데 보드에서 흔히들 말하는 "목"이 생겨요. 플레이하다가 이런데 잘 들어오면 확정적으로 몇 마리 정도의 양을 펼칠 수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니 보드 구성단계부터 각 플레이어는 각자의 플랜을 펼치게 되는데, 누군가 한 명이 대놓고 날먹을 시도하면 다른 구멍을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게임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정형화된 맵구조에서 벗어나도록 플레이어들을 유도하는거죠. 그리고, 이 덕분에 보드의 끝과 끝을 질주하는 플레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보드에 불규칙성이 생기니 자꾸 중간에 멈추게 되거든요.

▲ 자유롭게 맵을 구성하는 도중 목을 차지하기 위한 수싸움이 배치단계부터 발생합니다.

이 모듈형 맵 구성 시스템은 이후 플레이에서도 큰 존재감을 지니는데요, 플레이어마다 양 토큰을 16개 사용하는데 배치하는 모듈 역시 4칸짜리로 이루어진 4장, 즉 16칸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항상 양토큰과 빈칸이 1:1로 매칭된다는 얘기고, 이는 몇인이 하든 밀도가 비슷하다는 결론에 다다르죠. 물론 4인쯤 되면 네명이 아옹다옹하다보니 완전히 동일한 느낌은 아니지만요.

직전에 리뷰했던 광합성이 그러한데, 광합성의 경우 2인시 가장 바깥 칸을 사용하지 않도록 안내하고는 있지만 3인과 4인의 경우는 맵이 동일해서 상대적으로 3인은 좀 여유있는 느낌이 없잖아 있거든요. 배틀쉽은 이런 문제로부터 꽤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더불어 맵 구성부터 시작해서 스타트 위치까지 매번 다르게 구성되기 떄문에 매번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건 덤이구요.

3. 게임에서 받은 인상

배틀쉽은 제 게임 목록중 확고한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바로 "플레이어 그룹에 구애받지 않고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서의 위치 입니다.

누차 언급하지만 배틀쉽은 [내 양을 원하는만큼 집어서 갈 수 있을 때 까지 움직인다] 라는 원 아이디어 게임이에요.

[차례대로 놓아서 다섯줄을 만드는 사람이 이간다] 라는 원 아이디어로 가히 국민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오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아이디어는 게임에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일등공신입니다.

거기에 이러한 쉬운 규칙이 적절한 테마를 만나니 금상첨화죠. 8살 어린아이부터 80세 어르신까지, 보드게이머부터 보드게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까지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이에요.

▲우상단의 파란 양이 불필요하게 칸을 점유해 버려서 나머지 구역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

배틀쉽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레벨은 크게 [게임을 처음하거나][게임을 이해했거나][게임에 고였거나], 이렇게 3단계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요, 1에서 2로 넘어가기까지의 텀이 굉장히 짧은 편입니다.

대략 한 판정도면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할 일", "안전한 곳"과 "불안한 곳"의 구분이 서게 됩니다. 완만한 성장곡선을 지녀서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레벨을 올리고, 플레이어간의 실력차이가 큰 게임들에 비해서 이 게임은 쉽게 배우고 쉽게 익숙해지며 비슷한 스테이지에서 투닥거릴 수 있다는 얘기에요. 이 역시 영업용 게임으로서 가져야할 훌륭한 덕목이죠.

더욱이 아까 말씀드렸던 1:1 매칭되는 맵의 존재로 인해 플레이어간 인터액션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이 인터액션이 추상전략이라는 장르와 만나니 기묘한 이미지가 되어버리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많은 게임에서의 인터액션은 주로 "근접영역"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했어야 할 액션, 내가 들어갔어야 할 칸, 내가 먹었어야 할 카드 이런느낌으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더불어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어가는 추상전략 장르의 특성상 추상전략 역시 인터액션이 근접영역 내에서 일어나고요. 예를들어 체스에서 내 말이 갈 수 없는 상대의 말에는 영향을 끼치기 힘든 것 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 게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쪽 보드 끝에서 누군가가 의미없이 한 칸을 비워버리는 순간 메인보드 위의 모든 양 중 한 마리가 자신의 자리를 잃게 돼요. 그게 꼭 나라는 보장은 없지만 반대로 그게 나일수도 있으니까 다른사람의 한 수 한 수에 직관적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게임에서 루즈한 타이밍이 존재하지 않아요. 이런 부분도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른쪽의 파란 양이 아래로 내려와 검은 양을 막는것은 이른바 근접 인터액션이지만

왼쪽의 빨간양이 굳이 아래 두 칸을 놔두고 위로 올라가는 순간 전체 보드에서 2칸의 여유가 사라져버리는 형태의 인터액션이 발생합니다.

4. 마지막으로

어디 들이밀어도 재미있는 게임들이 분명 몇 있기는 해요. 근데 의외로 "여러 연령대가 혼재해있는 집단에도 무난하게 먹히는 게임"은 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먹힐만한 볼륨이 있는 덱스터리티게임은 어른들에게는 그정도의 매력이 없고, 어른들에게 먹힐만한 게임이라면 최대한 간단하게 정련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모두들 좋아하는 텔레스트레이션도 정작 고등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선생님 이 단어가 무슨뜻인지 모르겠어요"라는 상황이 심심찮게 발생하지 않나요?

그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배틀쉽은 앞으로도 제 책장에서 벗어날 일은 없을듯 해요. 좋잖아요? 어른과 아이가 같이 앉아서 게임해도 충분히 즐겁게 놀 수 있다는거요. 더불어 티나지 않게 판세를 적절히 조절해줄 수 있다는 부분까지 말이죠.

▲ 마지막으로 복습. 원하는 방향으로 부딪힐때까지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