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의 포션폭발
라이트게이머 무이입니다.
6월에 주문진에 놀러 갔는데요, 여행 전에 좀 바빠서 아이와 같이 할 보드게임을
깜빡했던 겁니다. 그래서 시간이 뜰 때 심심해 하는 아이와 뭘 할까 고민하다,
(장시간 이동할 때 유튜브를 보여 주려고 가져갔던 아이패드 미니로)
정말 오랜만에 포션폭발을 앱으로 플레이했습니다.
거의 1년 반만이었는데, 아이가 그사이 많이 성장했더군요. (이맘때 아이에게
1년 반은 엄~청 긴 시간이죠.)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하는 겁니다.
아이도 스스로 만족했던지, 틈만 나면 포션폭발을 하자고 했구요. 그러더니,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는 자신의 뛰어난 실력을 엄마에게 뽐내고 싶어,
앱 말고 보드게임으로 하자고 하더군요. 앱으론 AI만 상대했더니,
엄마 아빠랑도 같이 할 수 있다는 걸 몰랐나 봐요.
암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걸 대비해 ‘다섯 번째 재료’ 확장까지 구비해 놓은
보람이 있었네요. 앱에서 늘 보던 흰색 구슬을 처음 만져 본 아이는 흥분하며
솥에다 자기가 직접 배치하겠다고 하더군요.
- 가마솥에 배치한 흰색 구슬.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1. 물약 정하기
게임을 하기 전에 먼저 사용할 물약을 새로 정해야 했습니다. 앱에서 사용하던
물약은 아래 사진과 같은데,
두 번째 줄 오른쪽 끝에 있는 ‘라바만싱의 필터’는 아직 아이가 사용하기
버거운 거 같았고, 세 번째 줄 제일 왼쪽에 있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제조’는
뒷면에 아이가 극혐하는 깃털이 그려져 있어서 아이가 만지기 싫어했거든요.
- 제일 왼쪽 물약 뒷면에 깃털이 보인다. 사진 출처: 보드게임긱
이렇게 두 개를 뺀 빈 자리에 아이가 고른 두 개를 추가했는데, 플라스크에 있는
재료를 색상에 관계 없이 제조 중인 물약에 넣을 수 있는 ‘형형색색 기쁨의 물약’과
상대방 플라스크에 있는 재료를 훔쳐오는 ‘눈 먼 사랑의 묘약’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물약은 아이가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아빠! 다른 사람 거 훔쳐가는 그거 어딨어??”
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게임 중에, 아빠한테서 재료를 훔쳐갈 때마다
너무 즐거워했구요. 그래서, 물약은 아래 사진과 같이 정해졌습니다.
2. 규칙 변경
게임의 규칙은 예전에 보드게임으로 플레이할 때처럼, 아이는 (재료 분배기에서
재료를 하나 가져오는) 주행동을 한 번 더 하도록 변경했습니다. 자기 차례에
적어도 물약 하나는 완성할 수 있도록 나름 배려한 거였죠.
3. 폭발 연쇄반응
본격적으로 게임에 돌입했는데, 여행 중에 본 것처럼 아이가 (예전과 달리)
폭발 연쇄반응을 잘 일으키더군요. 한 번에 최소 다섯 개는 가져오는 겁니다.
엄마 아빠 차례에도 재료 분배기 한 곳을 가리키며 이거 가져가라고 훈수 뒀구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수님의 작은 도움을 받아, 연쇄반응을 가로막는 재료를
가져간 뒤 기어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까지 하더군요.
게다가, 완성한 물약도 능숙하게 사용했습니다. 한 번에 세 개의 물약을 연달아
사용해 물약 두 개를 완성하기도 했거든요.
4. 한계를 보인 플레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연쇄반응을 일으킬 때, 자기가 완성해야 하는 물약 두 개에 최적인 곳을
찾기보다는, 그냥 한 번에 많은 재료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을 찾더라구요.
검은 색이 많이 필요한데, 다른 색깔 일곱 개를 가져온다던지 말이죠.
완성한 물약을 안 쓰다가 한 번에 몰아서 쓰는가 하면, 교수님의 작은 도움으로
재료를 한 개 가져갈 때, (기특하게도) 다음 차례인 저를 견제하려고
나름 신중하게 재료를 선택하지만, 전혀 견제가 안 되더라구요.
5. 위축되는 아이
그런 모습이 좀 답답해 보였을까요? 아이가 신나게 연쇄반응을 일으키려고
재료를 집어 드는 순간, 아이 엄마가
“그.런.데, 거기말고 여기에서 가져가면 더 좋지 않을까?”
라며 더 나은 선택을 알려 주는 겁니다. (분위기에 편승해 저도 몇 번 알려 줬구요.)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기고만장했던 아이는 급격히 자신감을 잃어
점점 연쇄반응을 일으키지 못 했고, 급기야는 엄마 아빠에게 어디에서 재료를
가져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씩씩한 아이인 만큼
엄마 아빠 차례엔 열심히 훈수 뒀습니다.
6. 마무리
이번에 플레이하면서 새삼 느꼈는데, 포션폭발이 아이에겐 상당히 복잡한
퍼즐게임이더군요. 연쇄반응, 완성한 물약 사용, 교수님의 작은 도움, 견제 등을
동시에 모두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1년 반 전에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 한 걸 생각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되네요.
예전에 쓴 후기에서, 만 8세 이상 게임이라 당시 일곱 살(11월생이라 만 5세)이던
아이에게 무리였지만, 계속 반복 플레이하면 충분히 이해하면서 플레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썼었는데, 아직은 좀 무리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엔
(아이의 첫 번째 가족게임으로 제가 점찍은 포션폭발을) 진짜로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훨씬 다양한 게임을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P.S. 아이가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인공지능(Easy)을 격파했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력이 빨리 느네요. 앞으로 엄마 아빠랑
플레이할 때는 주행동을 한 번만 하도록 바꿔야겠어요. 대신에, 아이가
(완성된) 물약을 몇 개 가지고 시작하도록 바꾸면 엄마 아빠랑 밸런스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지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