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L에 영감을 받은 PC용 워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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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8 12:17

경제활동과 (주로)육아노동으로 한동안 보드게임을 멀리하다가 최근에는 워게임 메뉴얼을 읽고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것으로 욕구를 잠재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독특한 PC용 워게임을 발견하게 되어 소개해 볼까 합니다. ASL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턴제 분대전술 워게임 <Tigers on the Hunt>입니다.

(상점 홈페이지)

아시겠지만, ASL은 분대전술 워게임 중에서는 입지전적이고, 괴물로 통하는 작품입니다. 보드게임이라는 물리적 한계로 당연히 턴 기반 게임이만, 복잡한 턴시퀀스를 도입하여 실시간으로 분대를 움직인다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규칙이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진입장벽은 한없이 높기만 하고, 입문작이라고 내놓은 스타터 키트도 긱에서 룰숙지 난이도 3.7을 찍는 수준입니다. 일단 규칙 자체가 방대하고 복잡하여 공들여 룰북을 읽어도,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난점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하여 이 게임에 도전합니다.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ASL이 일종의 ‘정점’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Tigers on the Hunt>는 PC용 워게임 개발사로 잘 알려진 Siliconsoft에서 개발하고, Matrix games에서 발매한 게임입니다. 대놓고 쓰여있지는 않지만 은근히 ASL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뒷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꽤 오래전 부터 Peter라는 사람이 ‘XASL’라고 해서 AI와 대전할 수 있는 PC용 ASLSK(Advanced Squad Leader Starter Kit)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은 1인이 제작한 인디 게임으로 시작했지만, 오랜 기간 개발을 거쳐 결국 상업적 발매가 이루어 졌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저작권을 해결하지 못하고 대신 저작권에 민감한 카운터 디자인과 규칙 용어들을 바꾸어 내놓은 듯 합니다. 결국에는 PC용 ASLSK 게임이 아닌 ‘ASL에서 영감을 받은’ 분대전술게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눈가리고 아웅인게, 당장 공식 포럼에 가보면 ASL용 카운터로 교체하는 모드와 ASL/ASLSK용 시나리오가 수없이 올라와 있습니다.(링크) 유저가 작정하면, 얼마든지 PC용 ASL/ASLSK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게임 화면을 보면서 좀 더 살펴봅시다.

제가 플레이한 게임의 초기 화면입니다. ASL/ASLSK 유저 사이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다는 ASLSK의 1번 시나리오 <Retaking Vierville>입니다. 미군은 지원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소수 병력으로 포위 공격하는 독일군을 저지해야 하며, 독일군도 속속 도착하는 지원병력을 투입하여 마을의 목표지점을탈환해야 하는 시나리오 입니다. 지원 무기도 없이 알보병만으로 이루어졌지만, 긴장감 넘치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펼쳐지기로 유명한 시나리오입니다.

시나리오 중반, 전투가 가장 활발했던 순간입니다. 제가 조종한 미군은 몇몇 분대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방어에 성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AI는 동쪽으로 주력군을 침투하려 했지만, 동쪽의 방어병력이 두터워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어가 어려운 서쪽에 좀 더 병력을 투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AI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게임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ASL/ASLSK와 거의 유사한 맵 아트웍과, 모드로 적용한 ASL/ASLSK용 카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풀 프라이스의 상업 게임으로서는 그래픽이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보드게이머를 만족시키기에는 아마 충분한(?)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플레이하면서, 머릿속에 개념만 빙빙 떠돌던 ASL/ASLSK의 복잡한 턴시퀀스가 명쾌하게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ASL/ASLSK가 이런 느낌으로 진행되는 구나, 하는 감이 온거죠.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 <Tigers on the Hunt>로 ASL/ASLSK의 규칙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워게임을 배우기 까다로운 게 각종 수정치를 적용한 주사위 굴림과 체크인데, 컴퓨터 게임으로는 그러한 과정을 전혀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게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Tigers on the Hunt>는 분대의 자세한 능력치나 각종 차트 데이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것도 아마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일 듯 한데, 아무튼 시스템의 구조를 볼 수 없고 아웃풋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ASL/ASLSK를 배우는 도구로서는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Tigers on the Hunt>는 ASL/ASLSK의 규칙과 시나리오로, ASL/ASLSK의 전술적인 재미를 AI 상대로 즐길 수 있다는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워게이머들 사이에서는 VASL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지만, 이조차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Tigers on the Hunt>는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수준의 UI와 AI를 제공하고 있습니다(훌륭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Tigers on the Hunt>는 충분한 숫자의 오리지날 시나리오와 시나리오 에디터 제공하여, ASL/ASLSK 요소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워게임입니다. 캠페인이 추가된 DLC도 발매되었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ASL/ASLSK용 시나리오만으로도 충분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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