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게임 <버스>
<버스>는 <푸드체인거물>로 유명한 작가 제로엔 도멘이 학창 시절에 디자인한 게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지난 고전임에도 최신 게임들과 충분히 견줄 만큼 탁월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로엔 도멘 작가는 신작을 낼 때마다 기존 게임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플레이 방식을 하나씩 선보이곤 하는데요,
<버스> 또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일꾼 놓기'라는 게임 방식을 고안해낸 게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 방식은 꽤나 간단합니다
일꾼 놓기 액션을 통해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도로에 자신만의 버스 노선을 건설하고
사무실, 집, 술집 중 한 곳으로 가길 원하는 승객들을 버스로 운송해 승점을 획득합니다
규칙은 10~20분 정도면 충분히 설명 가능할 정도로 간단하고 방식 또한 직관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다만 선택의 고민이 많은 편이라 잘 하기에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꾼 놓기 게임이다 보니 견제가 많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자기 버스 노선이 상대방의 것과 복잡하게 얽히는 필연적인 상황을 겪게 되기 때문에
'누가 먼저 새로운 노선을 확보하고 승객을 실어가느냐' 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결국 일꾼을 먼저 놓는 자리 선점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죠
다만 <버스>에는 이런 경쟁이 과열되지 않게 완화해주는 수단이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일꾼 선점 순서에 따른 혜택의 균형감입니다
<버스>에서 노선 확장 액션은 버스 노선을 늘려서 승객과 도착지의 선택 범위를 넓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게임에서는 이 액션의 선점이 가장 치열한데요,
작가는 이를 선점한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노선을 건설하게 하되 가장 마지막에 액션을 실행하게 하여 혜택의 균형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후턴은 노선을 한 개 밖에 건설할 수 없지만 먼저 놓을 수 있고 선턴은 노선을 많이 건설하는 대신 맨 나중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요소는 최근 다른 게임들에서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신기하다거나 하진 않습니다만, 두번째 요소가 재밌습니다
두번째는 일종의 훼방 놓기입니다
이 게임에서 승객은 라운드 순서에 따라 가고 싶어하는 곳이 바뀝니다
첫 라운드에는 사무실에 가고 싶다가 다음 라운드에는 술집에 가고 싶어하고, 매번 규칙적으로 바뀝니다 (전 승객 공통)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이번 라운드에 승객의 희망 도착지가 어딘지를 미리 확인한 후
노선 건설과 운행에 대한 플랜을 세워서 일꾼을 배치하게 됩니다
그런데 액션들 중에는 '시계'라고 해서 이러한 플랜을 모두 망치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시간을 한 라운드 멈추게 해서 다음 라운드의 도착지를 바꿔버리는 것이죠
누군가가 이걸 사용하면? 지금까지의 플랜이 모두 허사가 되거나 예상보다 적은 승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치는 남의 이득을 줄이는 대신 자신의 이득을 늘리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뜻대로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5인 플레이로 진행할 경우에는 거의 무작위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건 파티게임과도 같은 수단으로 해석을 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 라던가 내가 시간을 멈추지 않는 대신 너는 다음 라운드에 내게 뭘 해줄것이냐, 라는 식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본래 유로 스타일 게임에 가깝지만 이런 가벼운 장치를 넣어서 플레이 태도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점이 나름 신선했습니다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문득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고 감탄할 만큼 놀랍도록 영리한 게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글 한줄도 쓰지 않는 제가 이렇게 리뷰까지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버스>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놀람의 연속이었고 작가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만든 작품입니다
플레이 내내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정말 재밌었습니다
괜찮은 게임이예요
강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