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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 참여기

2,771 조회

2022.06.12 15:38

오늘은 조금 독특한 후기를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몰랐던 사실인데요. 젬블로를 통해 국내 여기저기에 멘토-멘티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 함께 보드게임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보드게임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있다고 해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개암나무님의 수업에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함께 하고 미래의 보드게이머 디자이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거라 생각했는데...

리뷰를 종종 올리는 리뷰어로써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물으시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어어- 하다가 제 생각을 함께 나누었네요 ㅋㅋ

그런 의미로 오늘은 조금 독특하게

게임 후기

생각 나누기

게임 후기

생각 나누기

...

하는 식으로 게임 사이사이에 나누었던 대화를 끼워가며 살짝 공개합니다.

철저히 제 기억에 의존한 글이고요. 당시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의견/근거는 이 글에서 살짝 더 보충했습니다.

말 그대로 생각을 나누는 자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이렇게 까지 경고했는데 만약 제 글에 반박하신다면... ㅡ_ㅡ

여러분이 절대 맞습니다.

그리고 많은 초보 보드게이머들이 보드게임 디자인 경험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데,

"초보자"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듯 하여 예비 디자이너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후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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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오프닝 게임으로 독특한 작품을 골랐어요.

코보게에서 발매한 월드 체인저스라는 게임입니다.

자신의 앞에 다양한 조건이 적힌 위인을 모아 점수 크게 불릴 수 있는 조합을 만들어내는게 목적이예요.

개암나무님께서 게임이 태어난 배경, 룰의 변화, 규칙의 특징 등 간략하게 설명해주시고 바로 게임 시작!

월드 체인저스에서 가장 독특한 규칙을 꼽으라면 "테이블에 놓인 카드 공급처에 카드가 3장 미만이 되면 3장이 될 때까지 내 패로 채워넣는다" 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 규칙이 꽤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주긴 싫고 내가 쓰기엔 방해만 되는 카드가 있다면? 그런데 그걸 남이 쓰도록 카드 후보에 되돌린다고?

듣자마자 이건 골치 아픈 딜레마를 안겨주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언제나 그렇듯 첫 게임은 '궁금한걸 해결한다'는 생각을 품고 카드를 내려놓았습니다.

역시 게임은 쉽지 않더군요. 플레이어들을 조각배에 태워 아마존의 급물살에 흘려보내 듯(...) 매 라운드마다 미칠듯한 변화와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플레이어에게 계속 던져댑니다.

남의 카드에 손을 대는 것은 기본이요.

내가 이미 모아둔 카드를 카드 공급처로 되돌리거나.

이미 사용한 능력을 또 쓰거나.

남에게 카드를 건네주거나.

그걸 뺏어오거나.

상대방을 강제로 패스하게 하거나.

이기는 사람에게 독이 될만한 카드를 뿌리거나.

그걸 막으려고 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카드를 쓰거나.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죠. 이 정도로 난리가 나는 게임은 이노베이션 이후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 듯 전체적인 긱 점수 또한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더군요. 확실히 호불호가 있을만한 게임이예요.

전 굉장히 재밌게 했습니다. 이노베이션 내성 덕분일까요? 위에 언급했던 다양한 깊이의 딜레마 속에서 선택의 기로가 즐거움으로 다가왔어요.

게다가 카드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관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카드를 어떤식으로 가져가고 내려놓느냐 (서순이라고 하죠?)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2~3인플은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네요. 인원이 적을수록 수읽기 느낌이 강해지겠으나... 인원이 많을수록 손패를 버리는 순간의 딜레마가 더 세게 다가오는 특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게임이었어요.

=== 생각 나누기 ===

예비 디자이너분으로부터 제 글을 보시고 40대 중반일거라 생각하셨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보니 굉장히 젋어서 놀라셨다고 해요 ㅋㅋㅋㅋ 저는 아직 한창입니다!

게임을 접한 후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게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더군요.

게임의 흐름, 인상, 차별점, 특징, 일러스트 등 예비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생각을 펼치는 것을 보고

'우와 이런 식으로 의견을 나누는구나... 난 1~2판만 해선 아직 잘 모르겠는걸.' 하며 듣고만 있는데,

갑자기 날아온 개암님의 일격.

"너굴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가지 생각이 자리를 못잡고 둥둥 떠다니고 있던 타이밍에 호명되는 바람에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방금 언급했던 딜레마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렸습니다.

"게임 디자인의 나쁨을 이야기 할 때 1~2판만 해보고 게임이 나쁘다고 말하는건 쉬워요. 스스로에게 여러번 물어보세요. 정말로 나쁜 게임인지. 누군가에겐 그게 장점일 수 있어요. 단정 짓기 전에 조금 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라는 비루한 조언과 함께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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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게임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만칼라였어요.

갑자기 등장해서 꽤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만나게 될 만칼라 시스템 기반의 게임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의 시작인 만칼라를 직접 경험하는게 분명 도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칼라를 해본 뒤 트라얀(aka 트라야누스)를 가르시치더군요. 만칼라는 이 게임을 가르치기 위한 밑밥이었던거죠.

게임 설명 및 지도하시는 방식을 보며 아주 재미난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개암님과 저는 거의 반대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더군요.

개암님은 콤포넌트의 품질이 게임에 중요하며 업그레이드도 열성적으로 하시는 반면, 저는 게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한 콤포넌트는 게임의 본질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개암님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세밀한 붓터치도 알아볼 수 있는 예민한 눈을 가지고 계시지만,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저 사용자 편의성만 고려하는 편입니다.

개암님은 다양한 시스템이 녹아있는 게임을 통해 여러가지를 한번에 가르치시는 반면, 저는 가능한 적은 요소들이 얽혀있는 게임을 하나씩 가르치는 편이고요.

개암님과 예비 디자이너님들처럼 멘토 멘티 관계가 국내 여기저기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팀은 어떻게 가르칠까? 만약 내가 예비 디자이너들을 가르친다면 어떤 스타일로 가르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타오롱도 좋은 후보였을지도?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게임의 선택은 아주 좋았어요.

예비 디자이너님들도 만칼라의 핵심을 이해하셨기 때문에 바로 게임에 적응하시더군요. 동시에 다른 게임에서 보게될 자잘한 요소들도 동시에 접하시고요.

이런 콤포넌트는 보고 만지고 할 때면 입이 떡 벌어지긴 하지만... 저는 기본판의 종이타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 같아요 ㅋㅋ

=== 생각 나누기 ===

이 날 예비 디자이너님 중 한 분이 굉장히 통찰력 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텍스트로만 적힌 효과. 아이콘으로만 표현 된 효과.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이었는데요. 으아ㅡ 제가 받아본 질문 중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일단 대답을 먼저하자면 전 텍스트 쪽을 더 선호합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1. 시선을 게임 안에서 붙잡을 수 있는 힘이 좋습니다.

아이콘이 즐비한 게임의 경우 참조표가 별도로 동봉되거나 룰북 뒷면에 정리 되어 있습니다. 낯선 아이콘을 이해하려면 필연적으로 시선이 분산 될 수 밖에 없어요.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 "어디 나왔는지 모르겠어" & "어디 나도 한번 보여줘" 같은 대화와 함께 참조표나 룰북이 게임 위 가로지르며 여기저기 이동하죠. 이러한 행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면 사람들이 온건히 집중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개인보드에 아이콘이 요약되어 있다면 시선이 게임 내에 붙잡혀 있기에 비교적 괜찮다 여깁니다.

아이콘이 너무 난해하면 게임의 몰입감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깔끔하고 명료한 아이콘을 쓸게 아니라면 차라리 텍스트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2. 아이콘을 배운다는 것은 가끔 언어를 배우는 것 같아요.

아이콘은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미 새로운 게임을 배울 때 규칙의 장벽이 있는데. 거기에 아이콘의 장벽까지 생각해야 하니 피로도가 상승하죠. 섬세하게 디자인 된 아이콘은 긴 설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트라야누스가 그 좋은 예죠. 아이콘의 나타내는 바가 아주 간단한데다 아이콘의 조합이 별달리 없다보니 직관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문제예요. 온갖 예외 상황을 설명하려고 아이콘을 배합하기 시작하는 순간. 로망스어의 무궁무진한 동사패턴을 배우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런 게임은 한번 하고나면 지쳐나가 떨어지기 쉬워요. 제대로 도구를 다루지 못한 부작용을 제대로 겪게 되죠.

이런 점에서 누구나 <일단은>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카드에 짧은 에세이(?)를 써두는건 곤란하지요 -_-;;

하지만 아이콘이 가진 압축의 힘. 속도의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호불호만 있을 뿐 여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어느 것이 나은가?" 라는 질문보단 "어느 쪽이 이 게임에 더 적합한가?", "어느 쪽으로 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가?" 쪽이 더 좋은 답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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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식힐겸 이번에 잠깐 즐겨본건 개암나무님의 지우개 레슬링이란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주 즐겼던 지우개 따먹기를 레슬링으로 표현해낸 게임인데요. 젓가락을 이용해 레슬러(지우개)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상대방의 체력을 깎아내는 게임입니다.

꽤 흥미로운 요소가 섞여있는데요.

지우개에 앞뒷면이 존재합니다. 엎드린 자세로 상대방을 눌러야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지우개의 동선을 생각하며 움직여야 합니다.

단순히 팔락팔락 지우개를 뒤집어대다간 애매한 위치에 놓이며 상대방에게 역습을 당하니 심리전도 들어가죠.

또한 손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레슬러를 조종하기 때문에 미묘한 힘조절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콕! 눌렀는데 핑! 하고 날아가 장외 피해를 받거나,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대방 레슬러 위에 안착하는 등 돌발 상황도 자주 벌어져요.

리뷰를 제대로 써볼 생각입니다. (느껴지나요? 극호의 기운이? ㅋㅋㅋ)

지우개 레슬링 포함 총 3개의 작품을 선보이셨기 때문에 속단하긴 어렵지만 개암나무님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해보았던 어린시절 게임을 현대식으로 재해석 하는 힘을 가지고 계세요.

핸드켓은 동전 농구를. 지우개 레슬링은 지우개 따먹기를. 야구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어떤 놀이에서 영감을 받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가족게임에 중심을 두는 저로썬 이러한 접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원작을 모르는 어린 친구들에겐 국민놀이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도.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점에서 국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죠.

실제로 이 날 참가하신 예비 디자이너분들은 지우개 따먹기가 무엇인지 모르셨어요. 서로 다른 두 세대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죠.

또 하나의 특징!

게임을 처음하는 어린이도 어른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개암나무님의 게임은 지적 능력보단 오감의 활용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유리한 점도 많아요.

극단적인 예지만 아이가 저를 상대로 아그리콜라를 얼마나 자주 이길 수 있을까요?

.......-_- 제 초라한 전적을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꽤 자주 이길 수 있겠네요. 다른 예를 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저를 상대로 리코쳇로봇을 얼마나 자주 이길 수 있을까요?

이건 정말 쉽지 않을겁니다.

저는 말이죠. 이래봬도 짧은 시간내에 최적의 경로를 찾는 리코쳇로봇은 게임은 정말 잘하거든요.

그런데 지우개레슬링은 손기술의 영역인데다 미묘한 힘의 차이로 돌발상황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에 아이에게 지는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요.

실제로 개암나무님께 처절하게 털린 아이가 필사적으로 지우개레슬링을 연습해서 개암나무님을 이긴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유일한 1패라고... ㅎㄷㄷ)

자신의 손기술에 따라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는 개암나무님의 게임은 아이에게도 '나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코코너츠, 도블, 할리갈리 같은 게임이 아이 및 가족에게 인기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 생각 나누기 ===

개암나무님의 팀에는 두 명의 다른 배경을 가지신 분이 멘티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한 분은 디자인 경력 가득. 보드게임 경험 전무. 하지만 굉장히 독창적으로 들리는 게임(본인은 겸손하게도 게임이라 표현하지 않았지만요)을 포트폴리오 제출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프로필을 가지고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셔요.

또 한분은 상당한 보드게임 경험을 가지고 복잡한 게임을 많이 접하고 비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셨어요. 그렇기에 좀 더 체계적이고 익숙한 시스템이 담긴 게임을 구상하시고 계시더군요. 실제로 자신이 설계한 게임의 장단점을 상세히 파악하고 계시더라고요.

완전히 상반된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한 멘토 밑에서 수업을 받다니!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풍부한 상상력을 더욱 살릴 수 있는 방법. 풍부한 경험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

멘토로써 이런 장점을 어떻게 더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누군가를 멘토링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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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피날레. 카네기였습니다. 설마 이 게임을 여기에서 하게 될 줄이야... -_-;

일단 한번만 즐긴 입장에서 뭐라 평을 하긴 어렵네요.

많은 분들이 푸에르토 리코를 언급하시며 유사함을 비교하시는걸 보았는데 납득되더군요.

다만 푸코의 향이 생각보다 굉장히 옅게 나서 놀랐습니다.

푸코에 일꾼을 배치하는 개념이 있다면, 카네기에는 배치 + 이동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자신의 건물에 다양한 능력의 건물을 짓고 일꾼을 배치하며 효과를 발동시키는데... 생각할 거리가 한층 더 늘어나서 좋으면서도 한켠으론 꽤나 부담스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선택할 액션을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액션을 제때 못하는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하더라고요. 물론 3점짜리 특수토큰을 소비함으로써 한번은 실수를 무마할 기회를 주긴 하지만... 역시 꾸준하게 신경써야 하는 것은 꽤 지치는 일이었어요.

게다가 다양한 트랙위에 놓인 토큰을 움직이며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랴, 지도에 토큰을 배치하며 도시를 채우랴, 능력을 개발하랴, 꾸준하게 기부를 하며 사회에 환원(승점 조건)을 만들어가랴... 정말 생각할게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게임 자체는 꽤 부드럽게 흘러가서 놀랐어요. 각 액션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벌어지고 챙겨야 하는 일이 다소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진행이 참신하고 즐거웠습니다.

특히 사회 환원(승점조건 추가)를 하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 과정이 기분 좋았어요.

라스트윌에서도 비슷한 원리로 돈을 펑펑 써야 하는데요. 그건 사리사욕을 위해 쓰는 느낌이다보니 카네기와는 다릅니다.

열심히 벌어서 한방에 쏟아낼 때 카네기가 실제로 사회 환원을 했던 당시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더라고요.

차세대 푸코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습니다.

좋은 게임이예요. 하지만 누가 이걸 나랑 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뜻 구매는 못하겠더라고요. 전 아레나에서 간간히 즐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

=== 생각 나누기 ===

예비 디자이너님들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예비 디자이너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신다면?"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이 날의 Dog빡센 질문 No.2 였습니다 ㅋㅋㅋ...

정말 한참 생각하다가

"일단 이것은 저 개인적인 견해예요.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으니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세요."

라고 말한 뒤,

"전 좋은 게임과 잘 팔리는 게임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일단 저는 보드게임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보드게임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들의 고충을 10%나 알고 있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도와 노력이 들어가는지 상상 할 수도 없어요.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엄청 노력하실거예요.

수 많은 시스템을 공부하고. 다양한 게임을 접하고. 작품에 녹이려 시도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형마트에 걸려있는 게임을 보면 "이게 왜?" 싶은 작품이 많이 걸려있어요.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캐나다에는 도블, 우노(원카드), 모노폴리, 클루, 쏘리!, 인생게임, 이름 모를 트릭테이킹 카드 게임, 커넥트 4, 카드를 뽑아서 지시를 따르는 간단한 게임이 많습니다.

아, 최근엔 부리또를 던져라는 게임도 자주 보이더군요. (말 그대로 게임 도중 부리또 쿠션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게임입니다 ㅋㅋ)

이런게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어요. 실제로 해보세요. "음~ 굳이 이런 게임을?;;; 저 사람은 왜 저런 게임을 하지? 더 나은 게임이 있는데? 왜 시간낭비를 하지?" 싶을거예요.

저도 예전에 도블을 해보고 "아니... 정답을 확인하기도 전에 상대방이 내 카드를 덮어버리는데?? 이런 엉성한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고?? 서로 정답 확인도 못하는 이런 게임이 돌아가긴 하는거야?" 하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지요.

헌데 이런 게임이 팔리더라고요.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팔려요.

저는 장보러 갈 때 게임코너를 슥 둘러보곤 하는데요. 여러분도 매장 한 켠에서 누가 게임을 사는지 종종 살펴보세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보드게임을 고르고 있는 부모님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게임 뒷면의 글을 읽고. 아이들에게 어떤 게임인지 설명해주고. 아이 반응이 좋으면 장바구니에 쏙! 들어가죠.

"그야 노잼인데도 노출이 많이 되니까 많이 팔리지!!" 같은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전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

가끔은 우리가 지식의 저주(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추측하여 발생하는 인식적 편견)에 걸린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어요.

푸코, 카네기, 쓰루, 메이지나이트, 버라지, 아콜... 어마어마하게 좋은 게임들을 접하다보니 자연스레 눈이 높아지며 이런 대형마트용(?) 게임이 가진 매력을 얕보는 거죠.

세상엔 엉성한 규칙을 가진 게임이어도 재미만 있으면 친구, 이웃, 가족과 즐겁게 하려고 구입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그리고 최근 다양한 업체의 이야기와 게임 이미지와 다른 실판매량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 속이 뒤죽박죽 되었죠.

난 좋은 게임이라 잘 팔린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판매량이 그게 다라고?

아니, 이런 작품이 판매량이 그만큼이나 된다고?

왜 이 좋은 게임은 안팔리고 저 허접한 게임은 잘 팔리는거지?

"좋은 게임"이 대체 뭘까?

그럼 "나쁜 게임"은 뭐지?

나쁜 게임이라 부르는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 그건 좋은 게임인가?

좋은 게임이라 생각하지만 1년에 1번 할까 말까하여 꺼내지도 못한다면 그걸 좋은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건가?

나쁜 게임을 재밌게 즐기는 사람들을 두고 "너희는 뭐 그딴 게임을 하냐? 차라리 더 좋은 게임을 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쁜 게임이고 뭐고 그 사람들이 좋아서 한다는데?

머리 속에선 이런 폭풍이 일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생각을 정리해서 제 생각을 전달 했습니다.

"일단 이것은 저 개인적인 견해예요.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으니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세요. 전 좋은 게임과 잘 팔리는 게임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심오한 테마와 전략성을 가진 좋은 게임? 물론 좋죠. 그런 게임을 만든다? 최고죠! 하지만 뭔가 어설픈데도 잘 팔리는 게임을 살펴보세요. 작품성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람들 생각하는 좋은 게임의 기준은 다 다른 것 같아요. 제게는요. 무겁고 깊이 있지만 1년에 한번 밖에 못하는 게임보다 아무때나 막 꺼내서 할 수 있는 게임. 추천을 받고 아무데서나 쉽게 살 수는 그런 게임. 다소 바보 같아도 즐거운 게임이 좋은 게임이예요. 그래서 제 개인적인 호불호와 작품성을 떠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드게임 문화를 전파하기 쉽다는 점에선 코코너츠, 딕싯, 러브레터 같은 게임이 카네기보다 훨씬 뛰어난 게임이라 할 수 있어요.

전 사람들이 쉽게 들고다니며 언제든 짧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이 언젠간 결국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좋은 작품을 접하게 될 재목이 되겠죠. 기업 입장도 마찬가지일거예요. 상업적인 이야기지만, 예술성 있는 하나의 게임보다 보드게임 저변을 확대하며 예비 고객층을 확보 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을 찾고 있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깊이 있고 뛰어난 게임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금은 힘을 빼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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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후기는 여기까지!

단순히 게임을 소비하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비 디자이너님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폭이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아요.

비록 이번 기회에 두 분의 예비 디자이너님들만 만날 수 있었지만,

그리고 비록 그 분들의 작품에 한스푼의 피드백을 넣어 드릴 순 없겠지만,

좋은 작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열심히 성장하고 계실 예비 디자이너 분들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멋진 국내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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