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라는 불꽃놀이" - 바이오스 메가파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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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스 제네시스의 시대 끝자락에서, 박테리아로부터 새롭게 탄생한 편형충은 이제 본격적인 종들간의 생존 경쟁에 발을, 아니 짧은 편모를 들여놓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편형충 종은 2천 만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고 멸종했습니다.-_-;;;;
바이오스 메가파우나는 이렇듯 다른 종과의 경쟁과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종의 진화와 분화를 테마로 하는 게임이죠.
일단 오늘도 먼저 박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바이오스 3부작을 모아 놓으면 이렇습니다. ㅋ
노답 상자 3형제
이거 보면 보드게임 콜렉터들은 많이들 경악하실 것 같은데요. 시리즈인데 박스 사이즈 하나도 통일 안되어 있고 심지어 박스 모양도 직사각형, 정사각형 제멋대로입니다. ㅋ
그런데 박스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에는 왠지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종의 폭발적인 분화로 생물 다양성이 급증했던 시기를 다루는 메가파우나 박스가, 과할 정도로 가로로 긴 형태인 것은 확실히 작가가 노렸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박스 얘기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이오스 메가파우나는 고생대 초기인 오르도비스기부터 중생대를 거쳐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까지의 지구 생물의 진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게임 준비
게임은 고생대 5라운드, 중생대 5라운드 후 칙술루브 소행성 사건 카드가 나올 때까지 진행된 후 종료되고, 각 플레이어들은 버섯(세포골격), 달팽이(유체골격), 전갈(외골격), 도마뱀(내골격)을 하나씩 맡아 게임이 종료될 때까지 자신의 문(phylum)을 널리 널리 퍼트려야 합니다.
왼쪽부터 버섯(세포골격), 달팽이(유체골격), 전갈(외골격), 도마뱀(내골격)
각 라운드는 다음과 같은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사건 처리
2. 행동
3. 확산
4. 매장
먼저 첫 번째 단계인 사건 처리 단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건 카드는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외계 사건 카드와 지구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카드가 있습니다.
왼쪽이 외계 카드, 오른쪽이 지구 생태계 카드
사건 단계에서는 위와 같이 외계 카드와 지구 생태계 카드를 조합하여 대륙의 이동을 처리하고, 각 사건 아이콘들을 순서대로 처리하게 됩니다.
전 이 사건 단계가 정말 재밌었습니다.(?)
아이콘이 나타내는 것은 대부분 아래 이미지의 지구 환경 현황표(비축고 보드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왼쪽부터 차례대로 산소 농도, 구름 양, 기온을 나타내기도 해서 현황표라고 ㅋ)와 대륙 간에 특정한 색깔의 디스크를 옮기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시기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특정 위도에서 식물이 폭발적으로 번성하게 되는데, 이 경우 산소 칸에서 초록 디스크들을 대륙 타일로 우르르 이동시켜 숲이 번성한 것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러면 식물이 급증했으니까, 산소 농도가 (빠진 디스크만큼 저절로) 파바박!! 올라가게 됩니다.
또는 산불 사건이 발생하면, 대기의 디스크를 구름으로 이동시켜 재구름이 형성된 것을 표현하는데 이로 인해 태양 입사량이 줄어들어 기온이 (이동한 디스크만큼 저절로!!) 내려가게 됩니다.
또 대륙이 이동하다 충돌하여 산이 형성되거나 뭉친 대륙들이 판게아 분열 사건으로 다시 쪼개지는 모습을 보면, 거짓말 좀 보태서 왠지 그 사건 현장을 직접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ㅋ
두 번째 행동 단계에서는 플레이어 순서대로 각자 자신의 행동 포인트를 써서 변이를 구매하거나 보유한 변이를 업그레이드시키거나,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거나, 번식하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이때 재밌는 것은 플레이어의 행동 포인트가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동물 플레이어는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대사가 활발해져서 행동 포인트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식물 플레이어는 기온이 올라가면 행동 포인트가 늘어납니다.
동물 행동 포인트는 산소 트랙 가장 아래 보이는 검정 기어 안의 숫자, 식물은 대기 트랙 가장 아래 보이는 초록 기어 안의 숫자
세 번째 확산 단계에서는 두 번째 단계에서 번식시켜 놓은 자손들을 보드에 확산 포인트를 써서 배치하는 단계입니다.
한 생물군계(대륙 하나에는 7개의 생물군계가 있습니다.)에는 초식과 육식 2개의 종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생물군계가 비어 있으면 초식으로 들어갈 수 있고, 육식은 생물군계 안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초식 종이 있는 경우에만 들어가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초식보다 더 잘 진화한 종이라면 기존 초식을 멸종시키고 생물군계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포식자(육식)가 새로운 승자를 먹을 수 없는 경우 기존 초식이와 함께 멸종하게 되지요.
다양하게 분화한 종들의 배틀필드가 된 초기 대륙들
네 번째 매장-_-;; 단계에서는 세 번째 단계에서 경쟁에서 밀려 멸종 위기에 처한 종들을 제거합니다. (항온 기관(흰색 큐브)을 가지고 있는 종은 이때 빈 생물군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 라운드의 사건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진행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렸지만,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요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감정이 있는데, 변이를 업그레이드하다 보면 감정을 형성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때 말하는 감정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쁨, 슬픔, 분노 같은 개념이 아니라 동물의 신경계와 장기들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기본적인 신경 전달 체계가 쾌 또는 불쾌라는 단순한 반응으로 나타나다가 구체적으로 영역 본능에서 오는 분노, 성욕에서 오는 질투, 식욕 충족에서 오는 기쁨(포만감), 생존 본능에서 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분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쪽 문외한이라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분노와 질투라는 감정을 갖게 된 버섯-_-
특정 기관이 합쳐져서 이러한 감정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더군요.
그리고 게임에서 위 이미지처럼 3개 이상, 2종 이상의 감정을 형성하면 언어라고 부르고 추가 점수를 주는데, 이 언어라는 것도 우리가 흔히 의사 소통을 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더군요. 의사 소통과 언어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세포 단위에서 일어나는 물질 교환도 의사 소통이라고 할 수 있고, 언어는 단순 쾌와 불쾌로만 존재하던 상태를 분노, 기쁨, 두려움, 질투 등으로 분화해서 인식하고 개념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감정 중 보라색 감정은 호기심을 나타내는데 이것이 생기면 즉시 아래와 같은 도구를 하나 얻게 됩니다.
이 도구들은 특정한 형태(토굴형, 갑각형, 유영형, 비행형)의 종에 대항하는 아주 막강한 무기가 되지요.
아 또 공생 개념도 있는데 이것은 공생 아이콘이 있는 변이를 갖는 순간 같은 생물군계에 있는 종을 하나 가져와 숙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져온 미플들은 게임이 끝났을 때 내 미플로 계산하게 됩니다. 개이득! 아니 종이득!
물고기를 숙주로 낚아 어부가 된 식물 종
이밖에도 종의 크기, 독 특성, 괴물 토큰, 기생근 등등 놀랍고 재밌는 개념들이 많은데 하나하나 다 소개 드리기에는 리뷰가 너무 지루할 것 같네요. ㅠㅠ
전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개념들 하나하나도 신기했고,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사건 단계를 처리하는 메커니즘도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밌는 것은 이 게임을 통해, 실제 우주와 지구의 시간을 토대로, 가상의 생명, 가상의 지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말하고, 그물 던져 날아다니는 먹잇감을 잡는 버섯돌이가 탄생했습니다!!
특히 이 게임에서 한 플레이어는 식물로 출발할 수도 있는데, 게임 중에 기온이 점점 올라가 식물 종이 전 대륙을 장악하는 대목에서는, 식물 종이 동물 종을 지배하는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더군요.
호시노 유키노부 "2001 space fantasia" 열아홉 번째 밤 '녹색 별의 오디세이' 중
그런데 이 모든 생명체들은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질 때, 마지막 순간의 생명체들을 하나 하나 세고, 지난 시대의 화석을 하나 하나 기억하는 과정을 거쳐 게임은 끝나게 됩니다.
바이오스 제네시스 리뷰 마지막에 했던 질문,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전 이제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생명이란 찰나의 불꽃 놀이"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지구에서 생명이 생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인 에덴은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암흑의 우주를 배경으로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장식하는 생명의 모습이 딱 불꽃 놀이를 연상시키더군요.
그래서인지 이 게임은 재밌다 보다 오히려 아름답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바이오스 오리진에서는 생명에 대한 이 물음에 또 다른 답을 얻겠지요.
자, 편형충은 멸종했지만, 이제 감정을 가진 버섯이 새로 탄생했습니다. 이 버섯은 의식을 진화시켜 어떤 문명을 만들어갈까요?
다음은 바이오스 오리진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역시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