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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영업맨들을 위한, 보드게임 설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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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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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3 오후 8:45
IP: 121.157.***.***

텔레스트레이션

리스보아

0. 개괄
저는 보드게임을 취미생활로 하고있는 보드게이머입니다. 동시에 교육을 업으로 삼고있는 고등학교 수학교사기도 하죠.

설명을 듣기보다는 하는쪽이며, 배우는 쪽보다는 가르치는 쪽이고, 목소리를 삼키기 보다는 내는 직업입니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영향도 있지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보드게임을 함에 있어서 설명하는일이 잦고, 이를 즐기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설명을 끼깔나게 잘하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같이 게임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야말로 평택의 에러플의 상징이자 대부입니다. 심지어 갤러리스트는 3년동안 에러플을 했죠.

하지만 거시적인 부분에서 적어도 좋은 설명은 무엇인지와 교육적(...)으로 지양하고 지향해야 할 설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없으면 큰일인데요...직업이 직업인지라. 

  >> 초고때에는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썼는데 퇴고하면서 보니 아주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군요.

 

한 2년쯤 전 부터 이 글은 꼭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오늘은 "보드게임 잘 설명하기" 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물론 다른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여러분들의 방법도 옳을거에요. 어디까지나 가이드일뿐, 바이블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네요. 

 

날이 따뜻해져서 수업하기 좋은 날씨죠? 그럼, 환기 한 번 시키고 수업을 시작해볼까요?

 

▲ 저란 남자, 루트를 판서로 설명하는 남자.

 

 

 


1. 규칙을 알고 게임을 할 필요는 없다.
 

당연하게도 모든 게임에 통용되는 설명법이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두 개로는 나눌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플레이에 앞서 규칙설명이 필요하냐 아니냐의 여부입니다.

의외로 적지않은 게임들은 굳이 플레이하기 전 규칙을 주지시킬 필요가 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텔레스트레이션입니다.

텔레스트레이션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그려서, 넘기고, 받아서, 쓰고, 넘기고, 받아서, 그리고의 반복이죠. 하지만 텔레스트레이션이 아무리 쉽다 한들, 이걸 설명하려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아요. 

 


▲ 이것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눈 앞에 있는 노트패드를 받으신 후, 카드를 한 장씩 받으실거에요. 카드는 노란면과 파란면이 있는데 노란면이 더 쉬운거고 파란면이 어려운건데 뭐로 해 볼까요? 네 그럼 노란 면으로 할게요. 카드를 받으면 주사위를 굴려서 해당 눈에 써있는 단어를 맨 앞장에 적으실건데요, 만약에 밑줄이라면 해당 주제의 자유단어를 쓰시면 됩니다. 우리는 홀수니까 그대로 다음장으로 넘겨서 옆으로 전달하게 됩니다. 전달 받으신 분은 방금 전 페이지를 펴서 그림을 그리고요, 이를 넘겨서 다시 옆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렇게 해서 돌리다 보면 본인의 노트가 다시 자신에게 올텐데요, 그럼 게임이 종료되고 승점 획득 규칙은 블라블라 어쩌고 저쩌고" 

 

아니죠. 저런 설명을 하고 플레이에 돌입하게되면, 특히 8인 꽉 채워서 하고있다면 아마 90퍼센트는 첫 카드 받고 주사위 굴린 다음 "그래서 뭘 어쩌라고요?" 라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물론 이런 경험은 보드게임 설명하면서 자주 겪는 일이실거에요. 저도 매번 겪습니다. 하지만 이걸 텔레스트레이션에서 겪을 필요는 없어요. 저는 텔레스트레이션을 설명할 때 아래와 같이 진행합니다. 

 

"여러분~ 이 노트를 하나씩 받으세요. 그리고 이 카드도 한장씩 드릴게요"
(배부)
"잘 받으셨죠? 노트에 이름들 쓰세요~ 이름을 쓰셨다면 카드의 노란색 면을 보시고요, 이 주사위를 굴리겠습니다."
(또르륵)
"자, 눈이 3이 나왔네요. 그럼 여러분 카드의 3에 해당하는 단어를 1페이지의 정답란에 쓰세요"
(쓰고)
"쓰셨으면 한 장만 뒤로 넘길까요? 그리고 그걸 오른쪽 사람에게 전달해주세요"
(전달받고)
"받으셨죠? 그럼 한 장만 다시 앞으로 넘기면 방금 전 사람이 쓴 답이 있을겁니다. 그걸 이제...그려주세요!!"
(웅성웅성 대환장 그림파티)
"자 그럼 이제 이걸, 한 장 뒤로 넘긴 뒤, 오른쪽으로 전달하세요."
(전달받고)
"그럼 이제 이걸 뭘 하냐, 앞으로 한 장, 딱 한장만 넘기세요. 그럼 방금 전 사람이 그린 그림이 있을거에요. 그럼 이제 그게 무엇인지 맞춰주세요!!" 

 


▲ 그야말로 설명과 플레이가 하나인 갓- 게임.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시작부터 풀악셀로 텐션이 올라갑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이미 이 시점에서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이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나아가 어느 부분에서 이 게임이 빵터질지에 대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어요. 굳이 밑줄 친 단어에 대해 설명할 필요 없이 질문이 들어오면 설명해주면 되고요, 굳이 언제 끝니는지 설명할 필요 없이 마지막 두 차례 전에 "이제 지금 받으신걸 그리고, 답을 쓰면 한바퀴가 돌게되어 게임이 종료됩니다!" 라는 말을 해 주시면 됩니다. 굳이 규칙설명이라는 단계를 겪지 않아도 바로 돌입할 수 있는 게임인거죠. 

 

반대의 예를 들어볼까요?

비슷하게 그림을 그리는 게임중에 듀플릭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사회자가 그림 카드를 뽑고, 그 그림카드를 다른플레이어들에게 묘사하면 다른플레이어들은 들은 바에 의거해서 그림을 그리고요, 시간이 종료되면 미리 정해져있던 평가요소(예를들면 옷에 단추가 몇개냐, 운동화의 끈이 리본모양으로 묶여있냐 등)를 얼마나 만족했냐에 따라 점수를 주는 게임이에요.

듀플릭을 위와같이 플레이한다면, 다시말해 사회자 한명에게 "설명하세요. 그럼 저희가 그릴게요" 라고 얘기하고 시간이 다 된 뒤 채점을 시작하는 식이겠죠. 과연 이게 괜찮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첫 판을 완료한 뒤 만족감을 느낄 수 없을거에요. 

 


▲ 작대기가 위로 향해있는지, 발 끝의 공은 몇 개 인지, 손의 인형이 메롱을 하고 있는지. 듀플릭은 이런 디테일을 주목하는게 메인입니다.

 

그럼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게임인데 왜 텔레스트레이션은 되고 듀플릭은 안될까요? 그건 두 게임은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가 온전히 게임의 경험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듀플릭이라는 게임의 재미는 생각보다 괴상망측한 채점기준으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자는 온갖 디테일을 다 설명해야 하고, 그 와중에 누락된 디테일을 플레이어가 어떻게 우연히 잡아내는가 라는 부분이 중요한거에요. 이 말인 즉슨, 듀플릭을 플레이할 때, 플레이하며 배운다는 이야기는 온전한 플레이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설명해야 할지, 뭘 그려야 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텔레스트레이션은 이런 견지에서 보면 조금 다르죠. 텔레스트레이션은 활동 자체가 재미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심지어 이 활동은 방과 방 사이니, 고요속의 외침이니 등의 예능프로그램으로 롱런하고 있는 아이디어죠. 당연히 텔레스트레이션에서도 주지하고 있어야 하는 포인트가 있긴 하지만 이 포인트를 알건 모르건 어차피 두 장 전은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텔레스트레이션은 규칙을 알고 시작을 하는지 아닌지가 온전한 플레이경험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도 이런 예가 있을까요?

협력형 건설게임인 라보카도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토큰들을 나눠주고, 첫 플레이어를 정하세요. 그리고 그 플레이어의 토큰을 뒤집게 하고요, 둘을 마주앉히고, 카드를 한 장 뽑아주세요. 그리고 말하는겁니다. "지금부터 서로 보이는 카드에 있는 그림이 되도록 블록을 쌓으세요. 규칙은 두가지입니다. 바닥의 4X4 공간 안에만 배치하고, 블럭의 아래에 빈 칸을 만들지 말 것. 그리고, 빠르게 완성할 것. 그럼 시작합니다!" 점수계산은 완성시킨 후 직접 점수를 부여하면 알게됩니다. 앞에 나눠준 토큰들의 의미도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두 차례만 돌면 자연스럽게 알게될거고요. 

 


▲ 역시 시작과 동시에 텐션 MAX가 가능한 게임인 라 보카

 

그러니 규칙을 설명하시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생각보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이런 진단에서 걸러집니다. 위에서 설명한 텔레스트레이션이 그렇고, 라보카가 그렇죠. 스틱스택같은 덱스터리티도 그렇고요. 브레인토피아(구 시냅스챌린지)의 경우도 비슷하죠? 퀴즈 여덟개를 다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같은 카드 두 장을 모으거나 다른 카드 세 장을 모으면 뇌 토큰을 줄거에요. 이걸 네 개 모으면 이깁니다" 만 설명하시고, 퀴즈는 미리 여덟종류를 예시로 빼두시고 나올때마다 설명하세요.

 

이런 게임들의 대부분은 꽤 <가벼운> 게임들이 많고요, 이런 <가벼운> 게임들은 높은 확률로 <영업용> 게임이 되죠. <영업용> 게임이라면 당연히 코어게이머가 아니라 일반인을 타겟으로 할거고, 그 일반인들에게 규칙설명을 듣는 것은 부담이 꽤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을 줄일 수 있다는건 더욱 좋은거에요. 빠르게 좌중을 휘어잡고, 은근슬쩍, 그리고 능청스럽게 게임에 돌입하세요. 어차피 앞에 앉아계신 분들 중 대다수는 "놀고싶어서" 앉은거지, "자웅을 겨루기 위해" 앉은게 아닐테니까요. 배워가면서 놀고, 놀면서 배우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자 놀이입니다. 

 

▲ 저...저기 자는 친구들 좀 일어나 줄래...?

 

 

 

2. 만만치 않은 녀석들의 설명


그렇다면 저런 게임이 아니라 코어게이머를 대상으로 하는 룰북이 약 20페이지가 넘는 무거운 전략게임을 설명하는 일은 어떨까요? 이 때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다 보면 알게돼요" 라는 말은 금물이에요. 맞으면서 배운다는 말이 격언이 되어있는 시대, 저 말은 그 피드백이 바로바로 오는 100초짜리의 격투게임에서나 먹히는 얘기입니다. 두 시간동안 맞으면서 배우는건 배우는게 아니라 고통을 받는거죠. 발견학습이 중요하고 능동적인 학습이 중요한건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교육의 관점이지, 우리에겐, 그리고 우리 친구들에게는 재미있고 신나는 께임들이 많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절벽에서 새끼를 밀어버리는 어미사자의 마음으로 강하게 다른 플레이어들을 키웠다가, 여러분들의 소중한 월급으로 구매한 께임, 개봉 1회플로 벽장에 들어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멘탈이 티타늄급인 사람들이라면 그런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테니 최대한 모난 정을 준비하시고 땅땅 때려주면 되지만, 우리 친구들의 멘탈은 티타늄이 아니라 순두부일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아무튼, 설명을 듣는 분들이 "아 몰랐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알려줄 필요는 없어요. 지금부턴 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 겉으론 얼큰해보이지만 숟가락만 대도 푹푹 끊어지는 그런 아기 순두부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가시죠.

 

 

 

1) 가장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 사람은 설명하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에요. 스터디그룹에 참여해보셨다면 제목만 보고서도 금방 아실 수 있겠지만, 당연히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특히나 보드게임은 가르치는 게임마다 규칙이 다른데, 게임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밑도 끝도 없이 배우셔야 하죠. 다른 분들께 설명드리기 전에 최소한 룰북 정독은 하셔야 하구요, 가능하다면 다른 분들께서 설명해주신 영상을 보시면서 직접 게임을 놓고 연습을 해 보세요. 유튜브 영상은 선생님이고요, 룰북은 교과서고요, 여러분들 앞에 놓인 실물 게임은 실습용 도구입니다. 유튜브만 보시는건 인강 틀어놓고 보고만 있는것과 같고, 룰북만 보시는건 교과서만 보는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교과서를 확인하는 동시에 실물을 사용하여 학습하는 것이 효율이 가장 좋은것은 말할 것도 없죠.

 

이 과정은 단순히 여러분들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룰을 숙지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게임을 잘 배우는 방법이 아니라, 게임을 잘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계신거잖아요? 사전에 게임을 살펴보는 과정은 게임의 흐름을 파악해보시고, 설명을 할 때의 로드맵을 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상세한 규칙 역시 룰마가 정확히 짚고있어야 할 덕목이지만, 무턱대고 룰북만 보고 익히신다면 적지 않은 에러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여러분들의 고통과 듣는분들의 고통은 정확히 반비례합니다.

 

일단은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부터, 우리가 어디를 어떻게 구성해서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최소 한 번 이상은 되도록 실물 게임을 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세요. 분명 어떤 게임이든 잘 드러나지 않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런건 직접 게임 놓고 만져봐야지 알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대표적으로 칸반 EV같은 경우 신드라가 이동하며 길을 막아버리는 매커니즘이나, 역으로 플레이어가 이동하며 신드라를 건너뛰게 하는 매커니즘은 직접 플레이 하기 전에는 쉽게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저 같은 경우 규칙을 설명함에 있어 에러플이 많이 발생하냐, 발생하지 않냐를 가름하는건 대부분 실물로 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느냐 아니냐의 차이에서 벌어졌기도 했어서 이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 흐름 쪼개기
자, 배우자 혹은 동거하는 가족들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테이블 한 상 게임을 올리고, 이에 대한 연구를 마쳐 게임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이 되셨다면 이제 배운 내용을 다시 전달할 수 있도록 가공을 하실 차례입니다. 교재연구를 통해 교수학습방법을 구성하는 것과 비슷한거에요. 가장 먼저 하실 작업은 여러분들이 설명을 준비하시면서 밟았던 과정과 마찬가지로 규칙의 흐름을 쪼개는겁니다. 학생시절 설명을 잘 하시는 선생님들을 떠올려주세요. 바로 설명을 시작하는게 아니라 오늘 할 내용에 대해 전반적인 브리핑을 하시고, 해당 내용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여 흥미를 유발시킨 후 설명에 돌입하시죠? 그리고 중간중간 흐름을 잃지않게 유도해 주시며 끝나고나면 깔끔하게 총정리. 이 흐름을 보드게임으로 그대로 가져오시면 됩니다.

 

이 흐름을 짚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건 서두를 여는 것인데요, 세팅이 끝난 후 제일 먼저 하실 이야기는 해당 게임에 대한 소개입니다. 대부분의 전략게임이라면 테마가 그 시발점이 될거고요, 테마가 딱히 없는 게임이라면 장르로 말문을 열어주세요. 이것만으로도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게임을 하며 겪게 될 상황에 대해 나름의 이미지를 갖고, 해당 이미지로 집중력을 국한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할 이야기가 바로 게임 단계의 흐름에 대한 언급입니다. 전체적으로 게임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언제 끝나는지 설명을 해 주세요. 예를 들어볼까요?

 

(1) 아그리콜라
" 한 차례씩 돌아가면서 보유중인 일꾼을 놓으면서 액션을 할 거에요. 일꾼이 없다면 자동으로 패스하게 되고요, 모든 플레이어가 일꾼을 배치한다면 라운드가 종료되어 다음라운드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총 13라운드를 진행한 후 승점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2) 아크노바
"한 차례씩 돌아가면서 액션을 하실거에요. 그러다 보면 이 보호점수마커와 매력점수마커가 각자 조금씩 이동하는데요, 누군가의 차례에 그 사람의 마커가 교차하게 된다면 나머지사람들이 한 차례씩 더 하고 승점이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3) 웨더머신
"한 차례씩 돌아가면서 액션을 하실거에요. 모든 플레이어가 액션을 마쳤다면 마지막으로 라티브가 액션을 할 거고요, 다음 라운드로 넘어갑니다. 이 과정을 겪다가 누군가 노벨상을 획득하거나, 기후 타일이 바닥나거나, 정부영역 혹은 R&D영역이 가득 찼다면 해당 라운드까지 게임을 진행하고 최종점수를 계산하여 승점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4) 가이아 프로젝트
"한 차례씩 돌아가면서 액션을 합니다.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면 패스를 선언하시고요, 패스 순번에 따라 다음라운드의 순번과 보너스가 정해집니다. 전원이 패스를 한다면 한 라운드가 끝나고요, 이렇게 6회의 라운드가 끝나면 최종점수 계산을 해 가장 높은 점수의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5) 리스보아
"한 차례씩 돌아가면서 액션을 합니다. 누군가의 차례 종료시 잔해세트 2세트를 완성했거나, 카드더미 중 세 개가 바닥나면 1시기가 끝나요. 간단한 정리단계 후 2시기가 시작될거고요, 역시 한 차례씩 돌아가며 액션을 하다가 누군가의 차례 종료시 잔해세트 4세트를 완성했거나, 카드 더미 중 세개가 다시 바닥나면 2시기가 끝나고 승점 계산을 하여 가장 높은 승점의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6) 세 자매

"선 플레이어가 주사위를 굴려 론델보드에 주사위를 배치시킬거에요. 선부터 돌아가며 원하는 주사위를 가져가며 액션을 진행하고요, 나머지 플레이어도 주사위를 가져갔다면 두 개가 남을 텐데 이중 낮은 수로 다 함께 액션을 진행합니다. 그 후 이벤트, 그 후 선마커를 옆으로 돌리고 다음라운드로 이행하구요, 이렇게 8라운드가 끝나면 가장 높은 승점의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무슨 느낌인지 감이 오시나요? 수업시간에 미리 로드맵을 그려주는 것, 영화대 영화에서 코너 시작 전 10~20초가량 대략적인 줄거리를 훑어주는 것, 뉴스에서 보도 시작 전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는 것. 이 모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주시고, 이를 통해 설명을 듣는 플레이어들이 대략적으로 설명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과정을 겪냐 안겪냐가 중간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라는 상황에 빠지는지를 가름합니다.

 

3) 큰 줄기에서 작은 가지로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렸다면 이제는 각각의 작은 갈래를 설명하실 차례입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설명 시간을 할애하게 되죠. 차례마다 할 수 있는 액션을 이 타이밍에 설명하되, 이 역시 큰 줄기에서 작은 줄기로 나누어 설명을 해 주시는게 중요합니다. 음...이건 하나의 예를 쪼개서 설명을 해 볼게요.

 

[리스보아]

"그럼 게임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차례가 되면 네 가지의 액션 중 하나를 골라서 할 수 있습니다. 액션을 하실 때 손에서 카드 한 장이 소모되게 됩니다. 그리고 액션을 하신 다음에 메인보드의 네 개의 더미 중 하나에서 카드를 뽑아서 손 패를 다섯장으로 유지한 채로, 다음 사람으로 차례가 넘어갑니다."

 >> 구체적인 액션에 앞서, 액션을 하며 카드를 쓰고, 액션을 한 후 카드를 뽑는게 차례의 전부다 라는 큰 줄기를 읊어줍니다.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액션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는데요, 포트폴리오 액션은 카드를 개인판에 추가하고, 왕궁과 국고액션은 카드를 메인보드에 던집니다. 나머지 하나는 패스인데, 진짜로 할 게 없으시다면 카드 한 장을 버리시고 조커 자원인 금 하나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 액션 네 개를 다시 세 개로 분류합니다.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고 간단한 패스는 이정도에서 다뤄주면 됩니다.

 

"포트폴리오 액션은 말씀드렸듯 개인판에 카드를 추가하면서 하는 액션입니다. 카드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요, 귀족카드를 꽂는다면 개인보드의 위쪽에, 국고카드를 꽂는다면 개인보드의 아래쪽에 카드를 슬라이드 해서 끼워넣죠. 어느쪽이든 슬라이드 할 때에 가려지는 부분의 혜택을 받으시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꽂은게 국고카드, 즉 하단에 끼워넣은 카드라면 끼워넣을때의 보너스에 추가로 국고마커에 표시된 돈을 받고, 국고마커를 한 칸 내릴겁니다. 귀족카드면 그냥 보너스만 받아요"

 >> 포트폴리오 액션을 다시 두 개로 분류하되, 공통적인 부분은 한 번에 설명합니다. 위에서 액션을 한 후 카드를 뽑는다는 설명을 한 번에 한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포트폴리오에 카드를 추가하시고 보너스를 받았다면, 두 가지 액션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판매 또는 귀족과의 거래 액션이에요. 판매를 하신다면 여러분들의 상품을 배로 옮겨서 대금을 받게 될 거고요, 귀족과 거래를 한다면 여러분들의 상품을 귀족에게 바치고 여기에 나와있는 여섯가지 액션중 두 개를 골라서 하게 됩니다."

 >> 해당 액션을 수행했을 때 추가로 수행하게 되는 액션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마찬가지로 간략히 언급하여 흐름만 소개하고 자세한 내용은 이후에 다루면 됩니다.

 

"상품을 판매한다면 여러분의 배, 또는 다른 사람의 배의 빈 공간에 여러분이 소유한 상품을 적재하면 됩니다. 상품의 금액은 메인보드 우하단에 표시되어있고요, 배의 종류에 따라 추가로 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빈 공간이 없다면 해당 배에는 상품을 적재할 수 없으며, 어떤 배가 꽉 찼다면 해당 배의 소유주의 턴 시작때 그 배가 비워지면서 해당 플레이어가 승점을 가게 됩니다. 즉 여러분은 돈을, 배의 주인은 승점을 받게 되죠."

 >> 자세한 설명은 이 단계에서 하면 됩니다. #1

 

"귀족과의 거래 액션은 메인보드의 이 부분을 보시면 됩니다. 메인보드를 보시면 아이콘이 총 아홉개 있죠? 위의 세 개는 왕궁을 방문할 때 사용하는 액션이고 귀족과의 거래 액션은 이 아래의 여섯가지 아이콘을 보시면 됩니다. 거래하기로 선택하셨다면 이 여섯개의 아이콘 중 두 개까지 비용을 소모하여 액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두개는 도구를, 이 두개는 책을, 이 두개는 비단을 소모하여 액션을 수행하게 되고요, 금은 일종의 조커로 어느 액션이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후 여섯개의 액션 설명) 

 >> 자세한 설명은 이 단계에서 하면 됩니다. #2

 

"자, 포트폴리오 액션에 대해서 설명드렸어요. 한 번만 정리할께요. 카드를 개인판에 꽂으면 가린 부분의 보너스를 받고 물건을 팔거나, 귀족과 거래할 수 있어요. 물건을 판다면 남의 배 위에 상품을 싣는거고, 귀족과 거래한다면 여기있는 여섯개 중 두개의 액션을 자원을 내고 하시는겁니다. 액션은 차례대로 설계도따오기, 공무원배치하기, 선박만들기, 생산하기, 주교이동하기, 총애토큰 받기 였습니다. 그럼 다음 설명으로 넘어갈께요?"

 >> 자세한 설명 후 다음 규칙으로 넘어가기 전 규칙을 크게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일단 이 정도에서 끊어볼까요? 설명에 20~30분 이상이 걸리는 무거운 전략게임의 경우 가장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설명을 듣다가 앞쪽 규칙이 차근차근 증발(...)되어버리는 상황이에요. 다들 겪어보셨잖아요? "그래서 이게 뭐라고요?" 라는 상황 말이에요. 이 문제를 근절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요, 소싯적 학교에서 성적으로 한가닥씩 하셨던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 만으로는 완전학습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수업현장은 1대 1이 아니라 교사1에 학생 다수가 붙는 상황이므로 학생 하나하나의 상황에 즉각적인 피드백을 할 수가 없거든요. 왜 다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달라고 손을 번쩍 들기는 어려웠던 적 있으시죠? 저는 오늘도 그런 친구들을 수십(...)명 봤어요. 그러니 수업시간 전 예습을 하고, 이를 통해서 학교 수업에서 더 집중해야 할 내용을 파악하여 학습하는 것이 효율적인 학습방법입니다.

 

보드게임 규칙을 설명하는 현장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설명을 맛깔나게 하더라도 처음 설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걸 완전히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고 이걸 그 자리자리에서 다시 확인해서 설명하는 분의 맥을 끊는건 왠지 모르게 실례라는 느낌이 들죠. (저는 오히려 중간에 확인해주시는 쪽을 환영합니다만...) 그러니 설명하실 때 듣는 분들이 내용을 지속적으로 상기할 수 있도록 큰 줄기에서 작은 줄기로, 지금 설명이 어디인지 항상 주지시켜주세요. 실제로 위에서 든 예시에서, A규칙을 설명하고 B규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주고, 차츰차츰 디테일한 규칙을 잡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렇게 하며 자연스럽게 앞의 내용이 교차되게 되고, 어디쯤 듣고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거든요. 

 

4) 시작 전 모든걸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자, 설명을 듣는 분들이 여러분의 설명만으로 완전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단계를 쪼개서 규칙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 까지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가 모든 것을 설명하란 얘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요, <게임 세팅 과정>과 <각종 아이콘>이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게임을 다른 분들이 처음으로 플레이하는 시점이라면 여러분들은 파티의 호스트고 다른 분들은 게스트입니다. 게스트가 호스트의 손님맞이 준비를 도와 줄 수는 있지만, 그 준비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호스트가 없듯이 보드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싸리 그냥 세팅하는 동안 물이라도 마시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오시라고 하세요. 여기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몇장깔려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구태여 주석을 달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세팅은 설명 과정에서 한 번씩 스포트라이트가 가게 되어있거든요.

 

또 하나가 게임의 아이콘입니다. 게임 설명하는 분들 보면 이걸 게임 전에 미리 다 설명을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이렇게 설명하는걸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 때 그 때 나올 때 마다 설명해주세요. 만약에 개인승점카드등이 비공개 정보라서 게임 도중 알려주기 어려운 경우, 최대한 메인이 되는 아이콘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만 설명해주시고 (이 표시는 위쪽 조건을 가장 많이 달성했다면 이 점수를 주지만 공동 1등이라면 옆의 적은 점수를 준다는 표시에요. 등의) 차라리 참조표를 옆에 놓고 알아서 보라고 하세요. 어차피 나오는 카드만 쓰는 시점에서 전체를 다 설명하는 것은 시간과 집중력의 낭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꼭 하나 추천드리고 싶은게 있는데요, 개인 승점 카드나 최종목표 카드 등의 컴포의 경우 배부 시점이 게임 세팅시 일지라도, 실제 배부는 설명이 끝난 후 게임 시작하기 전에 주세요. 그걸 먼저 주고 설명을 들었을때의 이점이라고 해 봤자 <카드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으며 본인의 승점카드와 관련된 내용을 유심히 들을 수 있다> 정도인데 애초에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 부터가 불필요합니다. 설명을 우선 주우욱 끝내주세요. 그리고 게임 시작 전에 목표타일을 뒤집으면서 "그리고 자, 이게 우리가 이번 게임이 끝났을 때 받는 목표점수고요," 카드를 나눠주면서 "이게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입니다. 잠시 살펴보셨다면 게임을 시작할까요?" 라고 해 주세요. 훨씬 자연스러울테니까요.

 


 

 

3. 마치며

 

남들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교사라는 직업과 보드게임을 취미로 하는 취미인의 교집합에 자리잡은지 거의 10년, 저에게는 남들에 비해 좀 독특한 관점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보드게임 규칙서가 교수매체로서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는 관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좋은 게임을 가르는 여건에 "매뉴얼을 보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익힐 수 있느냐" 라는 기준이 들어갔거든요. 당연하고 안타깝게도 보드게임 규칙서를 쓰는 분들은 가르침이 업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규칙서를 발견하는 일은 그렇게 자주있는 일은 아닙니다. 어떤 규칙서는 마치 선생님과 대화나누듯 자연스럽게 술술 읽히고, 한 번만 읽더라도 바로 게임에 돌입할 수 있는 규칙서가 있어요. 하지만 어떤 규칙서는 반대로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고, 심지어 무슨 내용을 찾으려면 어디를 봐야하는지 조차 난해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죠.

우리의 문화는 놀이문화잖아요? 하지만 이 놀이는 슬프게도 접근성이 좋지가 않은데, 이런 이유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현대의 놀이는 그 어느때보다 짧은 호흡의 것들이 성행하고 있고, 우리의 놀이는 이 짧은 호흡이라는 기준에서부터 흔히 말하는 "입구컷"을 당해요. 그리고 쉽게 익히기 어렵다는 데에서 확정으로 거절당하죠.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길어서 그만두기엔 너무 아까울정도로 우리의 놀이는 그 무엇에도 지지 않을 재미와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요. 저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놀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고 떠들면서 고민하고 환호하고 아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동아리도 그 소망이 작게 피어난 결과물이고요.

 

좋은 게임을 만들어주는건 디자이너들이죠? 이걸 우리 앞으로 가져다 주는건 유통사들이고요. 그리고 이것들을 다른 분들이 온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는건 바로 우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재미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찍먹할 수 있도록 지금도 룰북을 잡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분들께, 이 부족한 수업을 바칠게요 :)

 

▲ 자 이제 화장실들 다녀오세요!

 

 

 

 

덧1) 다 쓰고나서 퇴고하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보드게임 설명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저는 여러분들께 좋은 설명을 했는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ㅋㅋㅋ
덧2) 아마 이 글을 읽는 평택모임 분들은 박장대소중이실듯.......ㅋㅋㅋ 앞으로 더욱 열심히 규칙 읽어오겠습니다. 에러플 없는 그 날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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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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