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의 항구 : 점술가와 여관주인 플레이 후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다녀온 상인들의 항구 체험 후기입니다.
한창 펀딩 중에 있는데, 적당한 난이도와 비대칭 시스템 그리고 데블다이스 측의 적극적인 홍보에 힘입어 꽤 순항하고 있네요.
저도 처음 펀딩 페이지에서 비대칭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 이건 딱 내 취향이다! 했었는데, 가격이 적은 금액은 아니어서 고민하는 찰나 체험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냉큼 다녀왔습니다.
1. 게임 테마 & 비대칭성
게임 테마는 항구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상품을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서로 다른 직업을 골라 각자만의 방식으로 손님들에게 팔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처음에 직업이 완전 비대칭이라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꽤 걱정이 많이 됐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름 비대칭 게임에서는 유명한 루트가 저에게 생각보다 크게 재밌지 않았기 때문이죠.
비대칭 게임을 충분히 즐기려면 각자가 각자의 고유 방식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게임을 좋아하는 본인은 그게 가능하다 쳐도 플레이어 전원이 그 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죠. 그런 면에서 상인들의 항구는 비대칭이라는 점을 개성은 가져가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게 녹여냈다고 생각합니다.
론델(시간술가), 만칼라(용 조련사), 롤앤라이트(점술가), 주사위 굴리기(대장장이) 등 서로 방식만 다를 뿐
결국 상품을 만든다. 라는 골격은 같기 때문에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아주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차례면 저분은 빨간색 상품을 만들 수 있겠구나.' 이 정도 생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상품대만 봐도 누가 어떤 상품을 만들었는지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게임 플레이 방식은 펀딩 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었던 제가 플레이했던 직업을 위주로 리뷰해보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 체험을 두 번 해볼 수 있었고 제가 플레이한 직업은 점술가와 여관 주인입니다.
2. 점술가
점술가는 롤앤라이트 방식으로 상품을 만듭니다. 주사위만 굴리는 것은 아니고 주사위와 미플, 뼈다귀, 토큰 이렇게 다섯 개의 물건을 던져 행동을 결정합니다. 점집에서 점술가가 물건을 던져서 점을 치는 것처럼 말이죠.
점술가는 차례 시작마다 반으로 나뉜 점술 접시에 앞서 말한 물건들을 뿌립니다. (실제 이렇게 뿌리는 행위가 정말 점술가가 된 것처럼 테마에 몰입하게 하더라고요!)3
접시에 던진 물건이 어떻게 모였냐에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서 주사위 두 개가 같은 곳에 있으면 숫자를 채워 그에 맞는 물건을 얻을 수 있고, 주사위와 뼈다귀가 같은 칸에 있으면 별자리를 채워 상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점술가에게 가장 안 좋은 경우입니다. 주사위 모두 1에 토큰은 해골 모양...그런데 꼭 이렇게 두 번 정도 나오더군요ㅠ)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 가장 어려운 직업이긴 합니다. 차례 때마다 나온 물건에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운이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합니다.(저는 이게 좋아서 제 최애로 꼽았습니다.)
물론 주사위눈을 바꿔주거나, 물건 위치를 바꿔주는 아이템도 있어서 어느 정도 이 부분을 보완해주긴 합니다.
점술가의 메인이벤트 격인 '예언' 액션입니다.
시계 트랙에서 플레이어가 미플이 그려진 칸을 지나면 주머니에서 손님을 뽑아 원하는 배에 놓습니다. 이때 점술가는 몇 차례 안에 어떤 색의 손님이 뽑힐지 '예언'할 수 있습니다. 빠른 차례 안에 내가 예언한 색의 손님이 들어오면 좋은 상품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방식입니다.
미플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나온 숫자를 보고서 확률을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절대 안나와요^^) 이렇게 직업이 메인 보드의 항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점이 좋더라고요. 실제로 다른 플레이어도 점술가의 예언을 인식하면서 미플을 뽑게 됩니다.
노란색!! 초록색!!
점술가가 게임에 없다면 이런 풍경이 안 생기겠죠?
설명만 들어도 점술가는 운에 많이 좌우됩니다. 차례 행동에도 운이 필요하고, 예언에도 운이 많이 따릅니다. 물론 저는 이런 점이 좋아서 다음에도 점술가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의외로 중박은 치는 직업인것 같습니다. 비록 4인플로 두판밖에 하지 않았지만 두판에서 모두 점술가가 2등을 했습니다. 직원분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분은 예언이 너무 잘맞아서 1등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3. 여관 주인
제가 두번째로 해본 여관 주인입니다.
여관주인은 다른 직업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법니다. 말 그대로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항구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여관에 맞이해서 돈을 버는 직업입니다.
상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손님들을 재울 침대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항구에는 세 개의 부두가 있고, 여관에도 세 개의 침실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은 부두마다 가장 많은 손님과 같은 색의 침대를 마련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관주인도 항구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라운드 후반부에 항구에 손님이 쌓이는 것을 보고 그것에 맞는 색의 침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는 직업입니다.
여관주인이 없던 판에서는 누구나 내가 물건을 비싸게 팔 수 있도록 손님을 놓게 되는데, 여관주인이 판에 끼니까 다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여관주인을 인식하면서 손님을 놓게 되더라고요.
물론 저는 그래서 좋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직업에 유무에 따라 게임이 바뀌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차애 직업입니다.)
여관주인에게 도움을 주는 조수 행동입니다. 특히 두 번째의 조수 행동은 이미 놓은 침대의 색을 바꾸거나, 위치를 옮기게 해주어 필수입니다. 이 능력을 일찍 뚫어놓는다면 침대를 잘못 만들어 놓아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면 침대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고 라운드 끝나기 전에 조수 행동으로 바꾸면 되지 않나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침대 색만 맞춘다고 높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라운드 끝에 성공적으로 손님들을 재울 때마다(색을 맞출 때마다) 단골 손님이 생깁니다. 개인 보드판에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들이 단골손님이죠. 똑같은 색의 손님을 또 재워야 돈을 많이 줍니다.
저는 노란색과 파란색에 단골 손님을 몰아넣었는데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노란 손님과 파란 손님을 퍼트려놓으면 답이 없습니다. 참 외로운 직업이죠.
4. 직업 간의 밸런스
풀박스까지 하면 총 8개의 직업이 있는데 의외로 밸런스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플레이어 간의 실력 차이도 있겠지만 제가 처음에 1등이었던 직업이 두번째 판에서는 가장 적은 점수를 내기도 했으니까요. 견제를 많이 받을 것 같던 여관주인으로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손님을 항구에 과정에서 1등 플레이어가 만든 상품을 보면서 견제도 가능합니다. 같은 색의 물건을 많이 만든 플레이어들끼리 힘을 합쳐서 항구에 원하는 손님을 많이 유추시키는 경우도 나오기도 하고요.
점술가나 여관주인처럼 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시간술사처럼 변수가 적어 내가 짠 계획을 올곧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직업도 있어서
운을 좋아하는 사람과 운을 싫어하는 사람이 직업을 선택할 때 취향대로 고를 수 있게 한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5. 리플레이성
리플레이성도 만족입니다. 풀박스를 구매했을 때 기준으로 8개 직업을 돌아가면서 해도 확실히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도적 카드였습니다. 항구에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손님 외에도 회색(도둑? 도적? 해적?)이 있습니다.
도적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 회색 손님은 아무 물건도 사지 않는 그냥 꽝입니다. 그러나 게임에 어떠한 도적 카드를 사용하냐에 따라서 이 회색 미플이 조커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을 내쫓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시크릿 스태시에 포함된 모듈도 다른 느낌을 줄 것 같고요.
6. 전체적인 느낌
현재 보드게임긱에서 웨이트가 2.78로 나오는데, 2.82인 에버델과 비교했을 때 절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44인 윙스팬보다도 저는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우선 텍스트가 전혀 없이 아이콘으로 충분히 모든 액션과 카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피로도가 덜합니다.
그리고 좋은 상품을 만들자! 내가 원하는 손님을 내가 원하는 부두에! 라는 명료한 목표에서 뻗어 나가는 느낌이라 테마 몰입도 잘되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부두에 손님을 데려오는 과정에서는 파티파티한 느낌도 충분히 담았고요.
플레이타임 얘기를 하자면 저는 특이하게 두 번 모두 4인플로 했는데 한번은 설명 제외하고 2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한번은 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라운드 중간에 페널티를 얻고 액션을 더할 수 있는 칸이 있는데 첫번째 판은 모두 페널티를 감수하고 액션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해서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룰에 익숙해지거나 3인에서 진행하면 더 짧아질 듯싶네요. 누구는 '이 정도 웨이트인 게임에 2시간을 써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실 텐데. 저는 아직 전략 게임도 힘들고 2시간 정도 걸리는 게임도 안 해본 사람들에게 2시간의 익숙함(?)을 주는데 괜찮은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략게임을 좋아하는 저에게도 적당히 머리도 쓰고, 적당히 견제도 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확실히 자리가 많이 필요합니다.
항구 보드를 가운데에 둘 수 없어서 아예 플레이어 옆으로 두었는데, 제가 바깥쪽에 앉았는데 텍스트가 있는 게임은 아니어서 플레이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항구 보드를 가운데에 두고 할 만큼 테이블이 넓거나, 항구 보드를 옆에 두고 할 만큼 긴 테이블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게임은 매우 만족스러웠고 첫번째 체험 이후에 바로 들어갔습니다. 가격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그냥 15만원이라는 금액이 높다는 얘기지, 많은 구성품과 구성품 완성도를 따졌을 때는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