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트레이더'라는 직업 들어보셨나요?

No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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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6 오후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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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프리뷰는 아무런 금전적 보상 없이 작성한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요새 부탁으로 글을 작성하는 일이 조금 있다보니 이런 문구를 추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ㅁ'... 말 그대로 좋은 게임이 선주문을 앞두고 있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글 하나 작성해 봅니다.

1. 게임의 제목은 왜 '커피 트레이더'인가?

'커피 트레이더'라는 직업 들어보셨나요?

게임 이름이 '커피 트레이더'라길래 그냥 커피를 만들어서 사고 파는 게임이고 그런 과정을 거친 플레이어들을 지칭하는 말이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커피 트레이더'라는 직업이 따로 있더라고요. 그리고 커피 트레이더는 커피의 역사만큼 전통 있는 직업이고,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굉장히 전문적인 직업입니다.

좀 더 개념을 넓혀 볼까요? 그럼 '트레이더'는 어떤 직업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주식 쪽 '트레이더'가 아닐까 싶습니다. 6살 나이에 콜라를 팔다가 11살 나이에 주식에 뛰어든 워렌 버핏이 대표적인 '주식 트레이더'일 텐데요. 이렇게 생각해 봤을 때, '트레이더'의 본질은 이윤을 내기 위해 '어떤 것'을 파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주식이나 채권이 될 수도 있고 상품(금, 석유, 원자재, 그리고 커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커피 트레이더'라는 직업은 '커피'를 가지고 이윤을 내는 직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게임에서 의미하는 '커피 트레이더'란 카페를 운영하면서 커피를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물론 이런 사람들도 커피 트레이더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커피 생두'를 커피 원산지에서 사서 그 '커피 생두'가 필요한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이 게임을 대하는 입장이 '커피를 맛있게 볶아서 많이 팔아서 돈 벌어야지'가 아니라, '커피 생두를 잘 생산하도록 투자해서, 필요한 업체나 카페에 공급해서 이윤을 남겨야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투자 경영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벨기에의 앤트워프 항에 위치한 트레이드 회사를 운영하는 '트레이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점이 생겨요.

2. 왜 벨기에인가?

커피 원산지 많이 들어보셨죠? 에티오피아, 브라질, 과테말라,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등등. 하지만 커피 트레이더는 이런 원산지에서 활약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원산지에서 커피를 수확하면 생두로 가공하게 되고 각 대륙에 보급하기 위해서는 '허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벨기에의 앤트워프 항구는 각 원산지로부터 수확되고 가공된 '커피 생두'의 50~70%가 거쳐가는 무역 허브입니다. 자연스레 이런 곳에서 '커피 트레이더'가 흥하겠죠.

자, 그럼 커피 생두 잘 받아서 돈 좀 벌어볼까요? 게임 판을 보자. 오 1970년, 1975년, 1980년 3라운드로 진행되나보군. 게임 흐름은 개인판에 잘 나와있네. 1. Work phase 커피 밭을 일구고, 2.Workers Phase 일꾼 배치하고 3. Trader&Contractor Phase 커피 생두 계약하고 4. Harvest Phase 수확해서 5. Contract Phase 업체랑 계약해서 이윤을 남기면 되겠구나! 아니 근데 가만있어보자,

3. '커피 트레이더'인 내가 왜 커피 밭을 일구고, 일꾼을 배치하고, 건물을 지어야 돼?

커피는 언덕 지형에서 잘 자라는 탓에 대부분 수공업으로 진행되고 그로 인해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수레와 나귀가 필요하고, 일부 지역만 트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산지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중남미, 아프리아, 남아시아 등 상대적으로 후진국, 그리고 시설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재배되기에 좋은 생두를 문제 없이 얻기 위해서는 생산지에 대한 투자가 필수입니다.

표지에 있는 이 아줌... 이 분은 그러니까 커피 트레이더가 아니라 커피 농부(coffee farmer)이고 자신이 수확한 이 커피 콩이 훌륭한 듯 우리, 커피 트레이더에게 어필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농부 지니는 코리스타입니...~~

이왕 얘기한 거, 실제 표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상단에 있는 '공정 무역 커피의 기원을 밝히다(Discover the origin of fair trade coffee)'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요, 공정 무역, 오늘 날에 말이 많지만 어쨌든 취지는 경쟁에서 뒤처진(저개발국) 생산자들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더 나은 무역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공정 무역 제도로 들어간 노동에 비해 벌어들이는 수확이 역전되는 현상을 막아주는 취지인 것이죠. 커피 생산이 특히 저개발국에서 많이 일어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 공정 무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는 그걸 내세우고 있네요.

좀 더 아래쪽에 보면 NET WT. 70 OZ 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NET WT.는 실제 무역에서 많이 쓰이는 단위를 수식할 때 많이 쓰이는데, Net weight가 풀어쓴 말이고 net은 순- (net profit은 순이익을 뜻합니다), weight는 질량이니 순중량, 실질 질량, 즉 포장 무게를 제외한 상품의 무게를 말합니다. 70OZ를 환산하면 약 1.984kg 정도니 실제 게임 무게를 뜻하는 거 같기도 하죠? ㅎㅎ

아무튼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그렇기 때문에 밭도 일궈주고 일꾼도 공급해주고, 생산 가공 공장, 생산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 보호 차원의 공정 거래소(공정 거래소를 지은 사람에게 커피하나 더 주는 건 사회적 풍자를 표현한 걸지도), 심지어는 병원까지 지어주면서 생산지 환경에 신경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게임에 개입되게 되는데,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내가 어떤 지역에 내 밭을 투자했다고 해서 온전히 그 수확물이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는 나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 지역에서 나는 커피는 해당 지역에서 계약을 잘 수행한 트레이더들에게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들이 게임 내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수확을 하게 되면 계약한 커피 생두들이 차곡차곡 우리 회사의 창고로 쌓이게 되고, 그리고 이제 우리 트레이더들은 이 생두들을 B2B(업체)로 팔지 B2C(개인 카페)로 팔지 정해야합니다. B2B로 팔 경우에는 금전적 보상 외에 기타 시설 등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지만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고, B2C로 팔 경우에는 금전적인 보상 밖에 없지만 오픈 마켓이라 다른 트레이더들과 경쟁하여 선점해야 합니다.

이렇게 밭 투자부터 계약까지 종료하면 한 라운드를 마친 셈입니다. 이걸 3번의 라운드를 거쳐 진행하지요.

게임을 몇 차례 하고 난 소감을 두서 없이 적어보겠습니다.

- 게임은 처음에 밭는 계약 리스트, 그리고 마일스톤 세 종류 정도의 랜덤 요소가 다라서 몇 번 하다보면 질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워낙 다양한 곳에 점수가 흩뿌려져 있고 어느 한 곳에 올인하다기 보단 모든 것을 다 챙기면서 점수를 잘 먹어야 하는 게임이다 보니까 무작위 요소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매 판 다른 방향으로 플레이하게 되고 매 판마다 느낌을 받았습니다.

- 설명할 양이 꽤 되고 페이즈마다 규칙이 일관되지 않아서 규칙을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렵긴 한데 규칙만 잘 이해했다면 막상 플레이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막상 처음 플레이를 시작하면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느낌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영문 규칙서가 꽤나 불친절하고 잔규칙들에 대한 설명을 잘 적어놓지 않았는데, 이번에 나오는 한글판에서는 그 부분도 수정되어서 나온다니 걱정 없을 듯 합니다.

- 아라비카 트랙이나 동물 토큰, 카운터 트랙 등 게임 시스템을 위해서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요소들이 조금 걸리지만, 다른 요소들이 워낙 긴밀하게 테마와 잘 맞아 떨어져서 커피 트레이더라는 테마를 아주 잘 살렸습니다. 멋진 구성품들은 덤이고요.

제가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접해보지 못한 무언가를 간접 경험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의 쾌감(?)인데요, 커피 트레이더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테마와 밀접히 잘 구현된 게임을 만나면 상당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커피 트레이더라는 직업을 이 훌륭한 보드게임에서 한 번 체험해보시겠습니까? ~~체험! 삶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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