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휴가 보드게임
아이들 넷과 함께 급작스럽게 1박2일 남해로 간단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오후를 보내고, 숙소에 와서 식사를 하고 나니 모두가 기진맥진..
저도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우리 언제 게임하지?"
좀전까지만 해도 게임하자고 하던 둘째도 눈좀 붙인다며 들어가버렸습니다.
할 수없이 패잔병(?)같은 다섯이서 막내가 골라온 딕싯을 돌립니다.
카드 가져올 힘도 부치는데다 긴장감이 없는 게임이다보니, 소소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올림픽 보며 늘어져있다가 둘째가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나니 좀 활기가 돌았습니다.
"한 밤의 늑대인간 비슷한 게임있는데, 해볼래?"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 한 두판 해보자며 식탁에 앉혔습니다.
한 판 해보더니, "오.. 오 이런거구나." "다시!"
제가 한번 빨간팀에 역할 'signaler'를 잡았는데 옆에 신호줄 같은 편이 없다보니 금세 제 정체가 들통하게 생겼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역할인 것처럼 속였죠. (역할을 속여본 건 거의 처음)
막내가 그거 자기 역할이라며 눈을 부라리며 달려드는데, 이를 악물고 저도 계속 우겼습니다.T T
결국엔 졌지만, 역할을 속이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죠.
6판 정도를 한 뒤 마무리했습니다.
다음날, 여행 계획을 대략 짜고 출발하는데
천 마스크라서 입장 불가/코로나라서 쉽니다/예약마감입니다... 등등 갈만한 곳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근처 카페를 뒤져 겨우 여섯 자리를 찾았습니다.
"게임말고는 할게 없네."
막내는 어제 했던 원나잇 레볼루션을 다시 하자고 우겼지만, 일단 디크립토를 먼저 하는걸로.
아내+첫째+세째가 같은 편, 저+둘째+네째가 같은 편이 되었는데 알고보니 O형:B형의 대결이었다는.
첫판은 O팀이 두 번 코드 전달에 실패하면서 끝.
이 때 우리편인 둘째가 이상한 힌트를 주더군요. 아침에는 '아이더', 지붕엔 '지령', 후라이팬엔 '후시딘'
의미상 연결은 되었지만, 단어의 첫자를 일치시킨 것 같아 '규칙상 이런건 안되겠다'라고 했죠. (룰북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둘째는 이게 왜 안되냐며 따지고, 다른 사람들은 안되는 이유를 대느라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2번째 게임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다시 "이 힌트가 안될 이유가 없어."라며 또 논쟁을.. T T
첫째 왈, "마피아 게임하는데, 남이 움직이는 소리 듣겠다며 눈감은채 옆 사람 앞에 귀를 갖다대는 것과 같은거야. 규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어도, 게임의 본질을 망가뜨려."
두번째 판은 힌트가 훨씬 더 애매해졌습니다.
결국 두 팀 모두 팀내 전달에 한번씩 실패하고, 남의 코드를 한번 맞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우리팀이 졌습니다.
두 판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이젠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막내가 자기가 원했던 원나잇은 못했다며 울상을 짓자, 첫째를 자취집에 데려다주는 그 한 시간동안 차에서 하면 된다고 설득을 했죠.
결국 아내가 운전을 하고, 저는 아이들과 다시 원나잇을 합니다.
맨 앞자리 앉아 뒤를 돌아보며 하려니 멀미가 나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게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게임에 익숙해지니 이제 ID는 물론이고 역할까지 속이는 것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나 도둑인데, 네 것이랑 바꿨어." '네 것 봤는데 빨강이더라." 나중에 보면 모두가 거짓말..
observer가 할 일이 없다며, 남의 ID를 드러내는 새로운 역할 revealer로 교체해서 했습니다.
5판 정도 하고 나니 첫째 목적지에 도착했고, 모두가 만족한 상태가 되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전 이제 driver로 역할 교체를 하고 집으로 출발~
"여행계획이 엉망이 되어도 보드게임만 있으면 염려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