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선장의 전쟁(Nemo"s War 2nd) 리뷰.

개뿔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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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5 오후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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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룰북을 만든 후 한 번도 플레이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 없는 게임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게 더 재밌었어요. 그렇게 새로운 게임을 탐독하는 동안 많은 좋은 게임들이 책장에서 썩어가고 있었죠. 어느 순간 현타가 왔습니다. 새로운 게임을 구입하면서 얻는 만족은 보드게임 산업이 망하지 않는 한 끝이 없는 것인데, 계속 새 게임을 사고사고 또 사지만 마음이 채워진다기 보다는 점점 공허하게 비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장에 쌓여가는 게임을 보면서 그 양에 행복하기 보다는 대부분 제대로 돌려보지도 못했다는 현실에 대한 염증이랄까요. 뭔지 모를 불편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작년 9월부터 시작한 보드게임 취미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정답을 찾았습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은 게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몇 개 안되는 게임이라도 제대로 몰입하여 즐기는 사람이란걸요. 요즘 쌓여있는 게임을 하나하나 해보며 느끼는 것은 어느 게임도 한 번 하고 말 것은 없다는 겁니다. 어떤 게임을 해도 내가 온전히 싫증을 느끼거나 또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캠핑 장비를 빌려 간 사촌동생이 "형 캠핑 장비 문 앞에 두고 갈게요"라고 문자를 줬습니다. 잠깐 들어와서 얼굴을 볼 만도 한데 모두가 최대한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요즘처럼 모임을 하기 힘들 때는 1인플이 최고죠. 물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아니고 정말 재밌어서 합니다. 지난 며칠은 매일 Darkest Night를 돌렸어요. 캐릭터가 29개다보니 정말 해도해도 끝이 없는 리플레이성입니다. 그러다가 어제는 오랜만에 네모 선장의 전쟁을 꺼냈습니다. 내가 이 게임을 정말 많이 해서 손에 아주 익은게 아니라면 플탐이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게임은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한국어 룰북을 만들긴 했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저도 게임을 한두번 해보고 만들었기 때문에 손에 익었다고 볼 순 없습니다. 게임을 시작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그런데 시작할 때의 망설임이 있을 뿐 시작하고 나면 지루한 것도 없이 시간이 정말 잘 갑니다. 30페이지의 룰북도 일단 게임을 시작하고 나면 잘 하고 싶어서 자연스레 열심히 찾아보게 됩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30페이지 룰북 저거 언제 또 읽나,,, 싶거든요.

아무튼 지난 밤 10시에 자리를 잡고 룰북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검수는 할때마다 다르다고 하는게 맞는것 같아요. 이미 여러번 읽었던 것인데 그래도 사소한 오타가 발견되네요. 이 부분은 수정해서 자료실에 올려 놓겠습니다. 룰북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네모 선장의 전쟁은 일단 예쁩니다. 게임이 끝날 때도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테이블이 난잡해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 이유는 게임의 주된 플레이가 주어진 자원의 활용과 카드의 해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한정적으로 주어지는 카드 구입의 기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플레이가 보드 내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 주변이 지저분해질 일이 없는 것이죠. 게임이 깔끔한 모습으로 유지되는 것도 제게는 큰 장점입니다.

게임의 테마는 소설 "해저 2만리"에 바탕을 두고 있고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네모 선장이 되어 1년간 세계를 항해합니다. 네모 선장은 본판 기준 4개의 항해 동기를 가집니다. 어떤 동기로 1년의 항해를 이끌어가냐에 따라 플레이가 달라집니다. 각 동기는 점수 계산에서 강점과 약점이 되는 요소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전쟁을 동기로 한다면 적군함을 많이 무찌를수록 높은 점수를 얻을 것이고, 탐사를 동기로 한다면 군함의 격침보다는 과학적 발견이나 경이로운 자연경관 등에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목표이지만 점수 계산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패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점수 계산 후 낮은 점수를 "패배"로 표현하기 때문에 사실 점수 계산의 기회조차 없이 지는 것은 그냥 게임의 종료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쉽게 말해 더럽게 못했다는 거죠. 점수 계산의 기회조차 없이 게임이 종료되는 조건은 3가지가 있습니다.

1.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호에 대한 악명이 전세계에 들끓어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는 단계.

2. 노틸러스호의 항해에 필요한 선박 자원(선장, 선원, 선체) 중 한 개의 소실로 인해 더 이상 항해를 이어갈 수 없는 단계.

3. 전 세계의 바다 공간이 모두 군함으로 가득차 있어 더 이상 항해를 못하는 단계.

이 세 조건 중 하나가 달성되면 게임은 즉시 종료되고 점수 계산의 기회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 조건을 피하면서 게임을 끝까지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그 후에 점수 계산을 통해 당신의 성과를 평가합니다.

내가 선택한 동기가 어떤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지를 항상 체크하고 그것에 맞춰서 플레이해야 합니다. 많이 모아도 내가 선택한 동기에서는 점수가 안되는 요소라면 거기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것이죠.

지금 가진 카드를 이 효과를 위해 정말 쓰고 싶은데 게임 끝까지 이 카드를 보유하고 있으면 큰 보너스를 주는 경우에는 참 골머리 아픕니다. 아껴두자니 게임이 그 전에 강제 종료되어 똥될 수도 있고 지금 쓰자니 이후 점수 계산에서 또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너 지금 선박 자원 쓸거야? 자신 있어? 실패하면 너 이거 잃는다. 어쩌면 2배로 잃게 될 수도 있고! 너 지금 선박 자원 안 쓸거야? 이거 없이 성공할 수 있어? 괜히 아끼다가 실패하면 뭔 소용이야. 너 이 카드 안 쓰고 계속 가지고 있을꺼야? 게임이 강제 종료되면 아무 소용 없는데? 지금이라도 카드 효과를 사용해! 너 지금 이 카드를 쓴다고? 결국 나중 점수 계산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게 목표인데 그럼 일단 가지고 있어야지! 게임 내내 자아끼리 지지고 볶습니다. 일단 전 이런 게임을 무척 사랑합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명 수치와 선박 자원의 관리입니다. 게임을 즉시 종료시킬 수 있는 조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각 모티브마다 악명 한계점이 있습니다. 악명 수치가 점점 쌓여 그 지점에 도달하면 게임은 즉시 종료됩니다. 그리고 악명 수치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현대화되고 강한 군함들이 게임 속으로 투입됩니다. 선박 자원은 일종의 베팅 자원입니다. 항해를 하면서 조우하는 여러 이벤트와 테스트의 해결, 그리고 공격, 수색, 선동, 수리 등과 같은 액션의 수행에 있어서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수치를 제공합니다. 성공한다면 괜찮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베팅했던 선박 자원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선박 자원을 점점 잃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면 게임은 즉시 종료됩니다. 따라서 선박 자원의 관리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목숨줄이라고 보면 됩니다. 선박 자원 없이는 항해를 절대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습니다.

침몰시킨 선박은 2가지 방법으로 활용됩니다. 하나는 매장시킴으로써 이후 점수 계산시 보너스를 획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양함으로써 그 선박을 이후 노틸러스호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박은 침몰시 악명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아무 선박이나 막 때려 잡는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선박들에 대한 공격은 기본적으로 2d6를 굴려 그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데 대부분 수치가 7-10으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공격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사위 값을 올려주는 선박 자원을 활용해야 하는데, 실패했을 때는 그 선박 자원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 선박 자원을 베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고민이 게임 내내 지속됩니다.

네모 선장은 반제국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육지를 떠나 자유로운 바다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죠. 물론 이 바다도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군함들이 노틸러스호를 잡기 위해 전세계를 누비게 됩니다. 네모 선장은 이 군함들을 피해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일반 선박을 공격해 침몰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이 건설한 식민지에 대한 해방 운동을 암암리에 진행합니다. 이렇게 그가 해방시킨 식민지의 수가 많을수록 점수 계산에서 유리합니다.

액션 포인트는 주사위 값의 차이로 결정됩니다. 고정된 액션 포인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턴마다 내가 굴리는 주사위 값에 따라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이죠. 재수가 없는 경우에는 0포인트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액션 포인트로 수행할 수 있는 행동은 이동, 공격, 수색, 모험, 휴식, 수리, 재장비, 선동이 있습니다. 이 행동들은 다시 그 수행의 성공 정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수행을 제대로 못하면 액션 포인트를 소모할 뿐만 아니라 페널티까지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한 행동에 대해 실패와 성공의 정도를 5개 구역으로 구분 짓고 있습니다. 실패/성공으로 단순화하지 않은 점이 게임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듭니다. 주사위 2개를 굴려 7-8이 나오면 성공은 성공인데 뭔가 하나를 잃어야 합니다. 이 행동들의 성공 정도를 높이기 위해 선박 자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주사위 값에 +1, +2, +3 을 더해 주는 것이죠. 그런데 선박 자원을 썼는데도 실패하면 그 선박 자원을 잃습니다. 그리고 내가 행동을 하는 지역에 군함이 있다면 주사위 값에 -1의 페널티가 자동으로 부여됩니다. 그래서 군함이 없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행동을 한다는 등의 선택지가 가능합니다.

이 외에도 게임을 재밌게 만드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지난 밤 10시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새벽 4시까지 했습니다. 보드게임긱 1인플 길드가 발표한 솔로 게임 랭킹에서 15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들을 보면 정령섬, 메이지나이트, 테포마, 에이언즈엔드, 사이쓰, 글룸헤이븐, 아컴호러카드, 로빈슨크루소, 반지의제왕카드, 투매니본즈, 7대륙, 비티컬쳐, 가이아, 오딘을위하여로 쟁쟁합니다. 비록 이 게임들에 비해 대중성과 다인플 요소에서는 밀리지만 적어도 1인플 기준으로는 매우 괜찮은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어 요소가 꽤 있는 게임이지만 한국어 룰북과 한글화 자료가 모두 올라와 있습니다. 룰은 간단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기 까지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게임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단계가 오면 그 때부터는 큰 무리 없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 게임에 관심을 갖고 직접 해 보신 분도 있겠지만 제대로 파고 들어 많은 회수를 플레이 해 본 분은 매우 드물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룰을 숙지하고 플레이하기까지 꽤 진입 장벽이 있어서요.

한국어 룰북을 만들고 확장 한글화 자료까지 만들면서 게임 구석구석을 꽤 꼼꼼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늘 10시간 정도 플레이 했습니다. 혹 이 게임에 관심이 있지만 플레이가 두려운 분이 계시다면 제가 아는 선에서 도움을 드릴테니 한 번 도전해 보세요. 경쾌하고 타격감이 있는 유형의 게임은 아닙니다.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하는 잘 정돈된 유형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이런 유형의 게임을 좋아하신다면 꽤 괜찮은 선택지가 아닐까 합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코로나도 조금은 주춤하는 듯 하네요. 다들 건장 잘 챙기시고 즐거운 보드라이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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