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내의 랜덤성이 오히려 게임을 심오하게 만들어줄수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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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3:35

보드게임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런경험이 한번씩은 있을겁니다. 기껏 테크트리 다 타놨는데, 중요한 카드가 안떠서 지는 경우. 주사위값이 1,2만 안나오면 이긴건데, 거기에서 주사위의 반이상이 1이 나오는경우. 그외에 타일을 다섯개를 까는데, 원하는 타일이 하나도 안나오는경우 등등이요. 이럴경우 플레이어는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왠지모를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되죠. 자기잘못이 아닌데 졌으니까요. 전략적 판단으로는 커버할수있는 랜덤변수에 의해 승패가 결정이 났구요.

저역시 적어도 '전략게임'이라면, 이런식의 랜덤변수는 최대한 줄여야한다는 입장이였습니다만, 두차례에 걸쳐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첫번째는 전략성 자체라기보다는, 게임의 측면에서 랜덤변수가 더 재미가 있다는것이죠. 이는, 과도한 수읽기가 필요가 없다는 의미처럼 다가왔습니다. 게임을 할때, 상황상황에 맞춰서 임기응변으로 게임을 대처할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장고/수읽기로인한 머리아픔도 방지함과 동시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게임의 현황으로 인해 늘 흥미있게 다가온다고 봤습니다.

두번째는 좀 받아들이기 힘들수도 있는데, 바로 이 랜덤변수가 오히려 '전략게임을 더 전략적으로, 심오한게임을 더 심오하게'만들어주는 요소라는거죠. 가령 푸에르토리코를 한다고 쳤을때, 저희는 농작물 타일이 랜덤으로 깔리기 때문에, 어떤작물을 주력으로 미는게좋을지에대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만일 나올 타일이 고정되어있으면 수읽기를 통해서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했겠죠. 몇턴에 누가 거버너고, 그때 누가 세틀러를 잡고, 누가 이걸 가져가고 누군 저걸 가져가면, 나는 남는 그걸 가져올수있고... 이런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수읽기가 불가능한 랜덤변수때문에, 오히려 게임의 전략성 자체가 더 높아진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뭔소리냐면, 이러한 수읽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항상 '최선의 경우' 와 '최악의 경우'라는 두 가능성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하고,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도 대처가능한 안정적인 수를 찾아야한다는거죠. 한가지경우만 생각하면 되는것과 달리, 수많은 경우들을 모두 계산해야하고, 그 사이에서 가장 균형에 맞는 수를 선택해야한다는거죠. 결국 플레이어는 콘이 다섯개가 깔릴수도있는 상황에 놓이고, 반대로 커피만 세개이상 깔리는 경우에도 대비를 해야하는 채로 게임을 해야합니다. 훨씬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거죠.

사실 푸에르토리코의 농작물 타일은 그래도 경우의 차이가 크게 나지않습니다. 작물별 타일의 숫자가 비슷하고(물론 콘?인디고? 둘중 하나가 제일 많고, 각 작물의 갯수차이가 있는걸로 압니다만), 더미도 다섯더미나 되니까요. 이런 변수는 전쟁게임에서 특히나 생각을 깊게 만들어줍니다. 일반적으로는 공격하는 병력의 전투력이 더 높으면 이긴다고 볼 수 있지만, 이건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플레이어들은 '이렇게하면 여기 먹고, 저렇게하면 저기도 먹고...' 이런 단순한 산술계산이 아닌, '여기는 무조건 먹어야하니까 좀 더 투자하고, 여긴 뺏겨도 어쩔수없으니 병력을 좀 철수시키자' 이런식의 '전략적인 판단'이 추가된다는거죠. 그결과 보병셋으로 전차둘/전투기하나가 지키고있는 영토를 털어버리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주사위를 굴린 다음의 일이죠. 핵심은 '주사위를 굴린 다음의 결과'가 심오하다는게 아니라, '주사위를 굴리기 직전 플레이어의 판단'에 훨씬 심오해진다는거죠.

물론 이 랜덤의 요소가 지나치게 커지면, 그건그냥 파티게임이 되겠죠. 그럼 이 랜덤성이 '전략적인 심오함'으로 작용하는 정도는 어느정도일까요. 보통 주사위게임 자체는 즐기나, '주사위의 눈들을 활용할수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눈의 값 까지도 바꿀수있는'것을 원하시는거 같더라구요. 랜덤이되 통제가능한것을 원하는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게임을 누가 좋아할까요. 하지만 주사위/랜덤성의 진짜 의미는 바로 '통제 불가능함'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의미에서 랜덤성앞에서 더 심오해지는거라고 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