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만드는 커플게임, 스노우맨(1)
보드게임을 개발할 때, 사람마다 개발단계가 다 다르죠.
시작은 영감이 규칙인지 테마인지에서 갈리는 것 같아요.
창의인재 멘티로 보드게임 개발교육을 들을때, 메커니즘으로 룰부터 만들고 테마를 입히는 개발자들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디자인이나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은 주로 테마부터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주로 테마,아니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되요.
1. 이미지
쉽고 간단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초판에 상상했던 이미지는 말판놀이 였어요.
동시에 일러스트를 활용한 아크릴 굿즈들도 상상해봤죠.
그 다음 단계는, 이미지에 맞는 행동들을 규칙화시키는 거에요.
규칙이 엉성해도 괜찮아요.
개발하기로 결심한 스노우맨의 규칙은, 처음엔 단 두개였어요.
-1. 눈사람을 그리는 게임.
-2. 눈덩이를 던지는 게임.
그러려면 이동하면서 눈덩이를 모아야겠다.
엉성한 규칙이 생기고 게임이 가진 비주얼을 더욱 구체화시키면서 구성물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눈덩이를 모을때 비즈로 눈덩이를 대체하면 어떨까?
눈사람을 그리는 대신 비즈로 눈사람 키링을 만들면 어떨까?
게임의 전리품이 생기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것 같다.'
2.구성물
인터넷 사이트를 전전하면서 눈사람 키링 재료를 알아보고 샘플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한 겨울에 하고 다니니 독특하고 예쁘더군요.
구슬을 이리저리 꿰어보며, 연구한 다음 예쁜모양으로 꿰는 설명서도 만들어 뒀어요.
구성물이 정해지니 몇가지 제약이 생겼어요. 제약은 뜬구름 같은 상상력을 구체화 시키고, 우유부단함을 떨쳐내게 하는 힘이있죠.
키링 재료가 무제한일수는 없으니 레거시 게임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롤앤라이트 PNP로 만들기로 결심.
비즈나 부자재가 꽤나 비싸서 3인용 이상의 키링재료를 넉넉히 넣었다간 게임성에 비해 꽤나 비싼 보드게임이 될 것 같아 2인용으로 만들기로 했죠.
주로 썸타는 사이나 커플들이 플레이하면 좋겠어요.
하지만 3인 이상의 베프들끼리도 우정키링을 만들어서 나눠가지고 싶어 할까봐,
4인까지는 비즈 재료를 추가해서 플레이 할 수 있게 만드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3. 게임 타겟과 상황, 게임의 분위기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직접만든(의미있는) 커플키링을 나눠같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커플이나 베프들, 서로 사랑하는 관계일것 같아.
창밖에 눈이 내릴때, 창가에서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면서 이 게임을 했으면 좋겠어.
라는 생각으로 살을 붙이기 시작했죠.
이쯤에서 카피라이팅도 한번 해봅니다..
<흰눈이 세상을 뒤덮은 겨울 어쩌고..>
이제 진짜 규칙을 만들어야 해요.
4. 규칙 초안
초안의 규칙으로 혼자 시뮬레이션을 몇번해보고, 수정하길 반복.
게임이 돌아가겠다 싶을 때 부터 인쇄해서 친구를 만날 때 마다 가지고 나가 보았습니다.
5.테플
처음 테플을 해준 사람들에게는 키링을 한개씩 쥐어줬는데 굉장히 즐거워 하더군요.
게임도 게임이지만 함께 키링을 만들고 키링을 가져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던 터라 좋았어요.
나중에는 테플할 키링 재료가 모자라져서 싸게 대량구매도 할 겸 동대문 종합시장에 들렸다 왔네요.
이제..키링은 주기 좀 그렇고, 뭐 또 가져갈 수 있게 해줄만한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PNP 종이를 엽서로 제작하기로 생각했어요.
6.수정
몇번의 테플을 통해 룰이 정리되고, 규칙서를 정리하는 단계에서 게임판을 그려냈어요.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경우에는 규칙을 온전히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게 디자이너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순서로 만들 수 없겠지만, 저는 비주얼적인 것들이 눈에 보여야 생각이 더 빨리 돌아가서
비효율적이지만 품을 들여서라도 일단 그림을 그려보며 수정하곤 해요.
게임판은 뜯어쓰는 아코디언식 엽서를 생각해냈어요. 4p 구성이에요.
앞면에는 점수판과, 개인판 2개, 공용판 1개를 배치했고, 뒷면에는 편지 쓰는 공간을 디자인 했어요.
그리고 눈사람 키링 만들기 참조표, 주사위, 색연필등을 추가로 넣었어요.
다음날, 만날 친구들에게 테플을 부탁해 볼 생각에 밤새 작업하여 인쇄 해뒀죠. (친구를 만날 기회만 있으면 테플을 부탁하게 되네요...)
근데..만들어보니까 일러스트 비주얼이 제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상상한 분위기가 아니었달까요.
7.테플과 수정의 반복
친구들이 집에 가자마자 룰 보완과 함께 디자인을 갈아엎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있을 테플을 위해 서둘러서 갈아 엎어야 했죠.
처음에 생각했던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손그림 느낌은 사라졌지만 이쪽이 완성도가 더 나은것 같아요.
엽서와 키링DIY세트, 주사위를 추가해 포장까지 완료! 게임의 이름이 스노우맨에서 롤 더 스노우볼로 바뀌었어요..
제 입엔 스노우맨이 더 잘 달라붙어서..계속 스노우맨이라고 부르긴 합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a4 한장 PNP 버젼도 만들었네요.
보완이 완전히 되지 않았지만..계속 수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1차 완성이었으니까, 이 단계의 PNP파일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냉큼 뽑아서 테플을 갔습니다.
테플은 드로우애니님이랑 실버건님이 도와주셨고요. 설명서 달인 실버건님한테 설명서 이렇게 쓰면 안된다고 혼났습니다.
그것 말고도 너무 정성어린 피드백들, 도움들 받았어요.
8.저장과 숙성
그리고 스노우맨 개발은 잠시 보류. 새로 피드백 받은 걸 고쳐야하긴 하는데...
그후에도 테플을 몇번 더 하고 어딘가 막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수정과 테플을 반복하는 사이에 겨울의 절반이 지나가면서, 첫눈오는 날의 설렘을 담은 제 게임을 계속 개발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아마도 새 겨울이 다가올때 쯤 중단된 개발을 다시 진행할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은 계속 들여다 볼게 아니라 잠시 쉬고 묵혀두기도 해야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이글의 2편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