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세이더 후기입니다.
11세기 말부터 서유럽은 그리스도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차례나 이슬람 국가들과 기나 긴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박스 아트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이들 군사는 하나같이 성스러운 복장과 십자가 표시를 갑옷에 새겨, 그들 스스로 십자군(크루세이더)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양의 고전, 손자병법을 보면, 큰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의 사기이며 그 사기의 핵심은 명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뚜렷한 명분없이 소소한 이해타산으로 징집된 병력은 오래가지 않아 스스로 분멸하기 때문입니다. 성지탈환을 위한 십자군 전쟁..
솔직히 신앙과 믿음으로 성화시켰을 뿐이지, 새로운 영토 확장에 대한 야망과 상인들의 경제적 이해가 복합된 식민지전쟁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슬픈 일이죠. 뭔가 거룩한 것으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그것과는 별개로 복합적이고 속물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벌어진 일이니깐요. 하지만 후대 역사가들은 이 또한 동서양의 문화적 융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니 역사란 결국 ‘좋고 나쁘고’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암튼 이 게임 크루세이더는 작가가 언급했듯이 다른 설정도 여러가지 염두했을 정도로 역사적인 고증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보드 판에 내려놓는 사라센인이나, 슬라브인 그리고 프루이센인의 근거지가 무작위로 배치될뿐더러. 지역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성전’이라 하지만 그것은 반대편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억울한 관점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큰 희생을 동반했던 역사 속 실재했던 전쟁이라, 게임 분위기는 자못 진지할 것 같은데 오히려 좀비들을 때려잡듯 파티한 분위기로 진행되어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합니다. 비약하면 이슬람민족에 대한 인권침해의 가능성까지 느껴지더군요. 차라리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나 유전자조작에 의한 괴물처럼 공감할 만한 인류의 적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좀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너무나 현재진행형의 갈등관계라 좀 부담스럽습니다.
게임은 나쁘지 않아요.
만칼라와 론델을 절묘하게 섞었습니다. 병력모집,이동,전투,건설,등 몇가지 액션으로 구분된 구획들이 동그랗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 구획에 놓여진 토큰의 수는 힘을 의미하고요. 자신이 원하는 액션을 선택하고 그 구획에 있는 토큰을 들어 시계방향으로 하나씩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토큰들이 만칼라처럼 원형구획을 돌아다니며 누적되면서, 좀 더 강한 효율을 가진 행동이 번갈아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코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맵상에 위치한 다양한 보너스를 누가 더 빨리 획득하냐라는 단순하고 간결한 목표의 게임입니다.
당연히 플레이어 상호간에는 직접적인 충돌은 없습니다. ‘성지탈환’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앞으로만 서로 달리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상대방이 잘라가는 경우나 먼저 달성했을 때 주어지는 보너스와 같은 간접적인 인터액션이 있을 뿐이죠.
어떻게 보면 보기에는 지도도 있고, 기사도 있고 하다보니 ‘워게임’ 같지만 실은 정서상으로는 ‘레이싱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레이싱게임도 결승점이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긴 하지만 코너와 같은 곳에서는 상대 자동차와 치열한 자리싸움을 하지 않습니까?. 그 중요한 순간에 부스터 맞고 달리는 정도가 만칼라의 누적된 토큰을 타이밍 맞게 잘 활용하는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덕분에 어렵지 않은 룰에 시원시원하게 진행하는 맛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만칼라와 론델을 이용한 입문형 레이싱 게임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단. 작가가 언급했던 것처럼 역사적인 사실에 너무 심취하지 않는다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