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 화이트홀 미스테리 비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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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에 막 흥미를 붙이던 시절 보드게임카페에서 배웠던 화이트채플과 화이트홀입니다.
저는 진짜 마음에 드는 게임은 거의 구매해서 소장하는 성격인데, 두 개 포지션이 겹치다보니 화이트홀만 소장하게 되었네요.
먼저 솔직하게 말하면 이 게임은 앞서 리뷰했던 게임에 비해서 플레이 횟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이런걸 일일히 세지는 않지만 앞서 리뷰했던 게임 세 개는 못해도 50번은 했는데 이 두 게임을 합쳐서 50번이 조금 안되는 것 같네요.
전략게임 특성상 제가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리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미리 여지를 남겨봅니다.
제가 작성할 리뷰는 두 게임 모두 일대일로 플레이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쓸 예정입니다.
1. 이 게임만의 독특한 점
이 두 게임은 일단 흔하다고 하면 흔하지만 의외로 흔하지는않은 일대일 비대칭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비대칭의 정도가 꽤나 심합니다. 보통 다른 비대칭 전략게임의 경우 같은 게임을 각자의 특색에 맞게 게임을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들은 두 플레이어가 아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두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이 전혀 다릅니다.
이 특징은 게임을 설명할 때 깨닫게 됩니다. 일반적인 게임은 '게임 설명' -> '직업(종족) 설명'의 순서로 진행이 됩니다.
보통 직업 설명 페이즈가 그렇게 길지는 않고, '얘는 ~~하는 애다'하고 끝내면 되죠.
하지만 얘는 그렇게 설명을 못합니다. 비대칭 게임 중에서 가히 비대칭성의 정도는 탑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두 번째 특징은 매우 독특한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잭, 잭을 찾아내는 경관이나 수사관을 표현한 시스템은 적어도 제가 아는 게임 내에서는 화이트채플/홀이 유일합니다.
보통 보드게임을 배우다보면 '어 이거 ~게임이랑 비슷하다!'라고 하면서 게임을 이해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게임이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단지 제 보드게임 경력이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p.s 스코틀랜드 야드라는 게임이 이 게임보다 먼저 이런 시스템을 선보였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2. 두 게임의 공통적인 장점
저는 이 게임의 장점을 하나만 뽑으라고 하면 다른 보드게임에서는 절대 느껴볼 수 없는 압도적인 긴장감을 뽑을 것 같습니다.
다른 보드게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 게임 내내 따라다닙니다.
특히 잭 플레이어가 많이 긴장하게 됩니다. 혹시 발각되지는 않을지, 내가 내건 도박수가 통할지. 이 긴장감은 해보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잭보다는 덜하지만 경관 및 수사관 입장에서도 게임 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혹시 여기를 지나가지 않았으면 어떡할지, 제발 지나갔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저는 정말 이만큼 긴장되는 보드게임은 여태 한 번도 없었다고 장담합니다.
두 번째 장점은 사실 사람에 따라 단점으로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고, 실제로 어두운 면도 있는 부분입니다.
바로 게임의 엄청난 비대칭성입니다.
두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하는 행동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 게임은 사실 두 가지 재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됩니다.
잭도 잭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고 당연히 다른 포지션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습니다.
같은 게임을 두 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굉장한 테마 몰입감입니다.
사실 첫 번째 장점인 긴장감도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은 아주 구체적인 테마가 있습니다.
이 게임의 룰북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이 게임은 그 당시 역사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화이트채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실제로 잭더 리퍼가 죽인 것으로 확정이 된 사건은 5건입니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5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 5건은 1/1/2/1 순서로 일어납니다. 하루에 2명이 죽은 날이 있습니다. 게임에서 실제로 3라운드에 2명이 죽습니다.
게임의 룰북을 보면 작가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꽤 많이 했고 게임에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룰북에도 룰만 써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배경까지 기술하고 있을 정도이죠.
(개인적으로 이 게임의 룰 설명만 듣고 룰북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게임이 훨씬 재밌어집니다.)
이렇게 테마를 게임에 잘 녹였기 때문에 게임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으며 몰입이 굉장히 잘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당연히 화이트홀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이트홀도 룰북에 보면 역사 조사를 꽤 많이 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도망치는 잭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테마는 화이트채플이 조금 더 잘 살린 것 같습니다.
3. 두 게임의 공통적인 단점
이 두 게임의 단점은 사실 두 번째 장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비대칭성으로 인한 밸런스 문제입니다.
이 게임은 하우스룰이나 룰북에서 제공하는 추가룰이 밸런스에 너무도 필수적입니다.
게임을 처음하는 초보자들끼리 하면 잭이 너무도 유리하고 숙련자들끼리 하면 경관이 유리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물론 실제로 숙련자 경기에서 경관이 유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채플을 기준으로 저희 파티에서는 경관 승률이 최소 60% 이상은 나옵니다.
저같은 경우는 아주 극단적인데, 잭의 승률은 50%가 안되지만 경관 승률은 80%가 넘습니다.
어쩌면, 이는 단지 저희 파티에서 잭의 수준이 낮고 경관 수준이 비교적 높아서 생기는 변수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실제로 유리하던지 간에 밸런스가 좋은 게임은 아니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비대칭성을 이렇게 심하게 주니 밸런스를 맞추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긴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점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룰입니다.
잭은 경관을 뚫고 지나갈 수 없다거나 마차를 써야만 경관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거나 하는 잔룰이 많습니다.
보드게임 숙련자라면 이 정도야 문제 없겠지만 게임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이 실수하기 좋은 곳이 은근히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에러플이 많이 나는건 단점까지는 아닙니다. 그건 사실 룰 숙지가 미숙한 것이니까요.
이 게임의 진짜 문제는 그 에러플을 게임 내에서 눈치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잭이 에러플을 했을 때가 문제입니다. 노란 토큰을 실수로 안올렸거나, 잭이 경관을 뚫고 지나간 경우 끝까지 눈치채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이런 에러플은 대게 게임에서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화이트홀의 경우 화이트채플에서는 조금 복잡했던 긴장감 고조 페이즈 등이 사라졌기에 비교적 단순하지만 그래도 위에 언급한 부분은 모두 공통적이죠.
4. 두 게임의 차이
이제 결정적으로 두 게임의 차이를 언급해보겠습니다.
사실 두 게임의 시스템은 완전히 동일하고 두 게임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두 게임은 비슷합니다.
두 게임의 차이는 게임의 목표, 아이템, 게임 준비 단계, 맵 등의 구성요소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이템은 게임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으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게임의 목표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화이트채플은 4번 모두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공통적인 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적입니다.
화이트홀은 시작할 때 정해둔 4곳을 모두 찍는 것이 목적이죠.
개인적으로 이 목표가 두 게임을 사실상 다른 게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트채플은 4라운드 모두 동일한 목적지이기 때문에 1, 2라운드에서 경관은 상대방을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위치 범위를 축소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화이트홀은 3라운드 전에 범인을 잡으려고 노력하며 범인이 아이템을 소모하도록 만듭니다.
화이트채플은 초중반에 게임 승리 초석을 쌓는 느낌이라면 화이트홀은 처음부터 끝까지 승부가 이루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화이트채플이 조금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화이트채플에선 초반에 실수하면 집니다. 저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에 실수했으면 져야죠. 초반에 잘했으면 이겨야하구요. 그게 정상적인 게임입니다.
물론 역전의 기회는 있으면 좋지만 그건 그 이후 상대방보다 제가 잘했을 때의 이야기죠.
단순히 운적인 요소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 역전의 기회가 찾아오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화이트홀에선 초반의 실수보다는 3라운드가 훨씬 중요합니다.
게임의 시스템상 3라운드의 잭의 목적지가 이미 어디 쯤인지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라운드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끌려다니던 수사관도 3라운드에 적당히 찍어 맞춰서 승리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반면 경관 입장에서는 한 번 놓치면 잭을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차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경관이 현재 잭의 위치를 알았음에도 단순하게 마차 한 번 골목길 한 번 써서 저 멀리 도망버려서 도착하고
바로 마차 쓰고 마지막 목적지로 두 어번 이동해서 게임을 끝내는 그림이 간혹 연출됩니다.
저는 이런 말도안되는 역전 구도가 굉장히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 게임의 차이는 화이트홀에선 사라진 초기 세팅 부분입니다.
화이트채플에서는 초중반에 경관 말 배치, 범인 말 배치부터 엄청난 심리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룰은 경관 말을 하나 들추어보고 희생자를 옮기는 액션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 단점때문인지는 몰라도 화이트홀은 이런 배치 구도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저도 경관 말을 들추어보는 액션이 지나치게 룰이 복잡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부분을 완전히 없앤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룰의 간편함과 심리전 요소 모두 장점이기에 어느 시스템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룰이 복잡하더라도 화이트채플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 이 게임의 차이는 맵입니다.
화이트홀의 맵을 잘 보면 아셨을지는 모르지만 경관이 대놓고 길을 막기 좋은 곳이 있습니다.
강가 쪽인데, 다리가 몇 개밖에 없어서 길을 막기가 매우 수월하죠.
아무래도 잭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계속 돌아다녀야 하므로 일부러 이런 곳을 넣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화이트채플은 이렇게 대놓고 길이 막아지는 곳이 없습니다. 막히더라도 조금만 돌아가면 되죠.
화이트홀에선 저렇게 막아버리면 아이템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나룻배, 적당히 심리전을 건다면 마차 정도 써볼 수 있겠군요.
게임을 하면서 저는 이런 부분이 게임을 많이 단순화시키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룻배를 쓰면 상대방에게 자기가 강가에 있음을 뻔히 보여주게 되고, 경관이 위치 잘 찍어버리면 그대로 게임에서 패배합니다.)
게임을 하면서 경관으로서 사실상 반드시 해야하는 플레이가 있다는 점은 겜을 단순화시키는 요소입니다.
전반적으로 화이트채플은 화이트홀보다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적인 느낌이 강하고
화이트홀은 한 순간 한 순간이 중요한 느낌입니다. 어떤 순간의 선택으로 그대로 승패가 갈리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게 두 게임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5. 개인적인 평가
저는 이 두 게임을 다른 게임보다 압도적으로 재밌는 원탑 게임이라고까지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다른 게임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은 분명히 단점도 많지만, 흔히 말하는 '갓겜'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한 게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테마, 밸런스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게임의 완성도를 평가해보자면 저는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게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