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초 감상평입니다.
위대한 로렌초입니다. 최근 이노에서 한글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해외 판을 구한 지 오래되서 한글판을 들어가야할 지 고민 중인데요.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좀 괜찮다 싶은 게임이라면 그냥 국내 출판사를 믿고 기다려도 될 듯 싶네요. 이슈화 된 것은 거의 찍어주니깐요. 게임하기 참 좋은 시절입니다.
로렌초는 서양사에 있어서, 인문과 예술 그리고 과학의 부흥기라고 일컫는 르네상스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엄숙한 신 중심의 세계에서 생동감 넘치는 인간 중심의 문화로 꽃 피우는 시기라서 그런가 봅니다. 게임 내 일러스트를 보면, 딱딱하고 사각에 갇힌 전통적 건물과 곳곳에 배치한 발랄한 인간들의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을 벗어나 봄을 맞이하는 소소한 생명들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적으로 일꾼 놓기 게임입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각 일꾼의 가치를 고정해 놓고, 일꾼들이 가치에 맞는 장소에 들어갔을 때, 자원을 얻거나 카드를 얻습니다. 물론 자원을 교환하고, 교환된 자원으로 승점을 뽑아내거나 하는 것들도 있구요. 그리고 각 일꾼들의 가치를 보정할 융통성도 마련해 놓았구요. 턴 순서에 따라서 그때 그때 자기에게 유리한 것들을 가져와 조합하면 되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유로 게임의 전형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게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신앙심과 군사력 처리로 보았습니다.
르네상스 시기라 하더라도 신앙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상당히 높았는데. 신에 대한 자발적 동기가 아닌 사회적 통념과 기준안에서의 신앙심은 일종의 강제성이 동원된 법과 같습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숭고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을 순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통제된 것이라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 점을 테마로 삼은 것이 너무 좋았어요. 실제로 게임 안에서. 2라운드 4라운드, 6라운드에 요구하는 개인의 신앙 목표치가 꽤나 높게 느껴지는데요. 게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가중되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만약 그것을 채우지 못할 경우 정말 사회적으로 암매장된다고 할까요? 정말 엄청난 수준의 고통이 찾아 옵니다. 아그리콜라의 밥 먹이기 고통과는 한 차원 격이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이 생산하는 모든 자원에 -1을 한다던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이 전부 - 승점이 된다던가..정말 끔찍한 수준의 형벌들..덕분에 게임 내내 신앙심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성경에서 말하는 겉보기식 신앙인들의 표본, 바리새인들과 같아 보였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신앙을 획득하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거든요.
이 기본 구조안에서 일꾼으로 표현되는 주사위들의 가치가 만약에 낮게 나온다면 정말 극악의 상황이 펼쳐지죠. 하지만 그 가치란 것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가치라서 그렇게 불평등하거나 속상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극기 훈련을 완수했을 때처럼 속 시원한 해방감을 줍니다. 공평한 조건이라면 그것이 설령 '불편'할 수 있을지언정 전혀 '불쾌'하지 않은 법이거든요.
두 번째는 군사력을 승점으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일단 각자 열심히 군사력을 올립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일꾼이 특별한 보라색 카드를 얻게 되면 승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 카드를 가지기 위해서는 카드가 요구하는 적정 군사력이 있어야 합니다. 조건을 갖추었다면 자신의 군사력을 본인 스스로 낮출 수 있습니다. 이때 그 낮춘 가치만큼 승점이 생기는데. 이 점이 재미있더군요. 힘들게 올린 군사력을 내리면서 점수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만약에 기존에 자신의 군사력이 높았다면 훨씬 더 큰 폭으로 군사력을 낮추면서 큰 점수를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평화를 위한 감축이란.. 이미 가지고 있는 군사력에서 스스로 힘을 낮추는 행동일텐데, 더 큰 군사력을 가질수록 평화에 대한 의무가 더 크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솔선수범할 때 더 큰 박수를 받는 것처럼요. 암튼 어렵게 꼬거나, 규칙이 충돌하지 않은 채, 시원시원하게 진행하는 맛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식물의 넝쿨이나 잎사귀들을 얽혀 장식하는 것을 아르누보 양식이라고 하는데,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로 부터 시작한 비정형의 곡선적인 장식이 19세기 말에 널리 사용된 기법입니다. 아마도 귀족적인 소품을 만들기 위한 좋은 소재였던 것 같은데요, 로렌초의 박스아트 전면부에 과감히 사용 했더라구요. 하지만 내용은 귀족적이지 않죠!! 실상의 게임은 아르누보처럼 전혀 고상하거나 우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중한 육체노동과 함께 마음에 있지도 않은 신앙심을 드러내려 애써야만 했던 서민들의 고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인 것 같아요..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