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몰] 브금레터 24th 9월호

루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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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4 오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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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레터 9월호

24번째 교신

- 얼어붙은 지구로부터 -

안녕하세요. 미지의 행성 개척 사업은 잘 되어 가시는지요.

지금쯤 베이직-4156을 떠나 새로운 행성에 다다르셨을까요. 착륙선 회수는 순조로운지, 레이지 수잔이 적합한 조각을 내어주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얼어붙은 지구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지금은 서기 7023년 8월 6일.

지구는 한 번 멸망했습니다.

[기획자 노트]

언 땅을 뚫고 피어나

<리바이브>

2022년 여름 무렵

<랩터>의 제작-배급사인 Matagot로부터 메일 1통을 받았습니다. 제작 프로젝트가 거의 완료되어 가는 어느 한 작품에 대한 검토 제안서였습니다. 꽤 재능있는 디자이너 여럿이 함께 협업한 야심 찬 프로젝트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말이죠. 첨부된 제안서를 열고 각종 자료를 열람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역시 박스 이미지를 비롯한 아트워크였습니다.

처음에는 생경해서 놀랐습니다. 남극이나 툰드라를 연상하는 황량한 벌판, 그 주위를 둘러싼 형체 모를 물질, 그사이에 피어난 노란 송이 한 송이 꽃…. 참조로 보여준 여러 캐릭터와 구성품 아트워크 역시 이 게임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과연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인간인 듯 아닌 듯한 종족과 캐릭터, ‘에일리언’을 떠올리게 하는 타일과 ‘프리더 우주선’을 연상하게 하는 듀얼 레이어 보드까지…. 첫 눈에 ‘이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소한 캐릭터와 구성품 아트워크에서는 그 고유의 성격을 담아내려는 섬세한 노력이, 각종 기호에는 유저 편의성과 테마를 결합하려는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생소할지언정 결코 허술한 게임은 아니다…’는 직감이 들었고, 편견을 최대한 제거해 게임 시스템과 규칙을 검토해 봤습니다. 머릿속에서 유로 게임의 여러 메카닉을 새로운 관점과 시도로 재해석한 <리바이브>가 펼쳐졌습니다.

며칠 후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에센 슈필에서 자세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실제 견본을 함께 보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 에센 슈필에서 <리바이브>는 첫날 매진되었고, 이후 일정을 예약 판매로 치르게 됩니다.

에센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의 수화물에는 50종이 넘는 신작 보드게임이 실려있었습니다. <리바이브>는 그중 가장 먼저 개봉돼 펼쳐진 게임이었고, 플레이 테스트를 거친 뒤 테스터들의 만장일치로 한글화가 결정됐습니다.

2022년 에센 슈필 게이머스급 신작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게임 중 하나가 <리바이브>일 것입니다. 보드게임긱에서 4,800명 참여로 평점 8.2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순위도 꾸준히 올라 8월 현재 300위 안쪽으로 진입했습니다. 긱 웨이트는 3.42입니다.

리바이브 세계관

포스트 아포칼립스

<리바이브>는 지구에서 인류가 종말하고 5,00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말 이후 지구는 온통 얼음으로 뒤덮였고, 살아남은 인류는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고립된 채 수천 년을 살아가면서, 각 그룹은 인류가 멸망한 원인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재건 방식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사상 체계를 만듭니다. 그룹마다 서로 다른 사상과 생산 양식을 가진 역사는 결국 신체적인 변화로도 이어져 인류는 이제 그룹에 따라 외관으로도 구분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단순한 그룹이 아닌 ‘종족’ 차원으로 분화하게 된 것이지요.

생태적 복원을 주창하는 나데어, 부의 올바른 분배를 주장하는 포미카, 도덕성 회복을 부르짖는 호프스타터리안, 그 외에도 나름의 사상과 특성을 가진 종족이 총 6개 등장합니다. 게임에는 일종의 튜토리얼 캠페인 5개가 들어있는데, 각 캠페인을 마칠 때마다 새로운 종족이나 새로운 게임 요소가 공개됩니다. 참고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은 필수는 아니지만, 캠페인을 완료할수록 <리바이브>를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설원 너머 펼쳐진 세계 – 폐허와 황무지

얼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하면서, 각 종족은 동굴을 빠져나와 이제 다시 대지 위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종족을 조우하게 됩니다. 또한, 5천 년 동안 밟지 못했던 대지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유물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 유물은 다른 종족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강력한 모뉴먼트이자, 모든 계획과 행동의 주요한 모멘텀이 됩니다.

탐험

설원을 탐험하면 새로운 개척자를 만나게 됩니다. 게임에서 개척자는 자원을 확보하거나 전략의 기본적인 빌드업을 수행하는 일꾼 같은 존재입니다. 같은 일꾼(개척자)이더라도, 어느 타이밍에 어떤 아이템과 함께 사용하는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한 번 사용한 개척자를 다시 사용하려면 동면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최적의 타이밍에 사용해야 합니다.

인구 늘리기

또한, 곳곳에 폐허가 등장합니다. 종말 이전에 거대한 도시였던 곳들이죠. 이곳에는 정착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정착지가 생기면 인구가 늘어나고, 인구가 늘면 지성이 확대돼 결국 종족이 지닌 기술이 강화됩니다. 게다가 이곳저곳에 정착지가 많으면 남들보다 탐험과 개척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건설

황무지에는 건물을 지어 생산력을 늘릴 수 있습니다. 생산력이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강력한 기능을 가진 엔진을 보유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엔진을 사용하는 데는 전기가 필요하므로,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면 그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멸망 후 세계에서 전기를 얻을 방법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효율적인 운용과 판단이 필요합니다.

경쟁

한편, 다른 종족을 마주하면서 경쟁은 필연적으로 벌어집니다. 그러나 전쟁이나 폭력은 <리바이브> 세계관에서는 결코 그 누구도 행해서는 안 되는 금기입니다. 아무리 종족과 신념이 달라도, 예전 인류가 자행했던 파멸적인 경쟁은 절대로 반복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종말 이후 인류의 DNA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지요. 그래서 경쟁은 폭력이나 강탈이 아닌, 선점과 우위로 이뤄집니다. 자기 종족의 우월성은 전쟁과 파괴가 아니라 복원과 재생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리바이브>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액티브한 유로 전략 게임

리바이브

<리바이브>는 기본적으로 유로 전략 게임이지만, 그렇다고 메카닉과 계산만 난무하는 정적이고 무미건조한 게임은 아닙니다. 일단 미지의 땅을 탐험한다는 설정 때문에, 일종의 어드벤처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탐험할 때마다 영역 타일이 새롭게 뒤집히는데 그때마다 어떤 지형적 요소가 새로 공개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뒤집히지 않은 영역 타일에도 앞면에 어떤 핵심 요소(거점이나 호수)가 있는지 정도는 미리 알려져 있으므로, 뽑기 캡슐(Gacha)이나 완전 무작위성의 탐험은 절대 아닙니다. 마치 탐험하기 전 ‘저 너머에 호수가 있대!’라는 식의 정보가 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탐험의 결과는 반드시 새로운 동료(개척자)의 조우와 영입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개척자는 카드로 구현됐는데, 카드를 슬롯에 꽂아서 사용한다(=일을 시킨다)는 메카닉과 발상도 참신합니다. 슬롯을 강화하기 위해 부가 기능 토큰을 꽂을 수 있다는 점도 신기한 부분입니다. 같은 카드를 상단 슬롯에 꽂는가, 하단 슬롯에 꽂는가에 따라서도 다른 효과를 유발하며, 슬롯을 확장해 주는 카드에 다른 카드를 추가로 꽂아서 콤보 효과를 터트리는 쾌감이 있다는 점도 재미를 주는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