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 어떻게 이길지보다 어떻게 패배하는지가 더 중요한 게임
최근 드디어 공식 플레이를 했던 마리아입니다.
지면 튜토리얼 이기면 공식전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다룬 게임으로, 3명이서 플레이하는 워게임입니다.
게임의 주요 배경이 되는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의 여제로 우리가 잘 아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입니다ㅇㅅㅇ
PC게임 문명에서 오스트리아 문명을 선택하면 이분이 나오더라구요. 문명 특성 유닛은 훗사르!(기병대인데 이 게임에선 오스트리아의 견제장치로 작동합니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을 쉽게 설명하면(어렵게 설명 못해서 그러는거 아니다) 오스트리아(함부르크왕조)에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이 아빠가 죽어서 여자인 마리아가 왕권을 물려받게 됐는데 오스트리아의 꿀땅을 호시탐탐 노리던 프로이센이 "감히 여자가 왕이라니!"를 시전하며 오스트리아를 뺏으러 달려듭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나도 같이먹자 하면서 오스트리아에 달려들게 되구요, 영국은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로 가는걸 보고 "약한 여자를 괴롭히다니!" 라는 기사도적인 마인드로, 하지만 실제로는 프랑스가 힘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제후국들과 함께 연합군을 만들어서 오스트리아편에 섭니다.
여기에 협력국인 작센, 바이에른이 있지만 이 구도까지 설명하면 머리아파지니 넘어갈께요.
즉 큰 구도는 오스트리아를 둘러싸고 위쪽에서 내려오는 프로이센, 왼쪽에서 넘어오는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를 견제하고자 프랑스 위쪽에서 내려오는 국본연합(영국등)의 그림으로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납니다.
방금 설명한 나라만 4개인데 왜 3인 게임이냐? 라고 궁금해하신다면.. 프로이센 플레이어가 국본군을 같이 조종하기 때문입니다 ㅎㅎ 위 사진처럼 전장이 크게 두개로 나뉘어있는데 프로이센과 국본군은 서로 반대편 전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이런 구도로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국본군,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프랑스 이렇게 크게 2가지 전선을 형성하게 됩니다. 프로이센과 국본국은 각각 다른 전장에서 전선이 형성되서, 결국 플레이어당 2개의 전선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대립구도의 줄다리기가 조금만 놓치면 게임을 뒤집을 수도 있을만큼 팽팽하게 유지됩니다.
이러한 구도는 세 명이 둘러서서 한 손에 줄을 하나씩 들고 3인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한쪽에 힘을 주기 위해서 한쪽의 힘을 빼면 그 방향에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 당겨서 중심을 무너트릴 수 있게되죠.
이 힘의 구도가 빡빡하다면 빡빡하게 유지되게끔 디자인이 되어있어서 룰만 알고 플레이하던 초반엔 순식간에 힘이 뒤집어져 게임이 끝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게 바로 마리아만의 특징인 "협상" 입니다.
게임 룰북에는 룰을 벗어나지 않는 어떠한 종류의 협상도 가능하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이동 규칙을 무시할 순 없지만 니네 이 장군이랑 저 장군을 저기로 좀 이동시켜줘 라고 할 수 있다는거죠.
그럼 넌 저 요새에서 저 장군좀 빼줘 라고 주고받을 수 있구요.
게임이 익숙해 질 수록 협상의 빈도가 적어지는걸 느끼기는 하지만 예기지 못한 전투의 결과나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힘이 한쪽으로 쏠릴때는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차피 게임의 승자는 한명이기 때문에 약소국을 같이 치자! 이런 협상은 지려고 플레이하는게 아니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ㅎㅎ
"지금 프로이센 두턴이면 승리각이야,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뭔가 해야해!" 라는 상황이 일반적이죠.
(정치 현황판 및 난장판)
협상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바로 정치 현황 때문인데요, 매 턴마다 공개되는 정치카드에는 특정 세력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이벤트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본인에게 유리하게 정치현황을 조절하기 위해서, 혹은 잘나가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조절하기 위해서도 협상은 일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당장 무너질'것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중장기적인 힘의 균형도 협상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전투방식 입니다. 많은 워게임이 전투의 승패에 병력 + 주사위의 확률을 이용한다면 마리아는 병력 + 카드를 사용합니다. 즉 더러운 카드빨 카드가 잘 나올 수록 전투를 이길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면 높은 카드 많이나오면 게임을 이길 수 있는가? 하면 그렇게 말하긴 또 애매합니다. 국가마다 비대칭적인 전술카드 수입(카드 뽑는 장수)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카드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내가 더 좋은카드가 많은 줄 알고 때려 박았는데 상대방이 상상 못할 정도로 높은카드만 있었다 라고 하면 더러운 카드빨 뽑기 운에 심각하게 좌절 할 수는 있지만요.
카드보다 그 카드를 사용하는 전술이 중요한건 아래 요소들 때문입니다.
1. 요새를 보호할(혹은 전투를 할) 지형을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하다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먹으려고 애를 쓰지만 은근 쉽지 않음ㅇㅅㅇ)
마리아의 카드는 트럼프 카드와 같은 문양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보드판엔 보시는것처럼 트럼프 마커가 배치되어있죠. 전투가 일어날 때 장군이 위치한 지역에서는 위치한 칸에 맞는 문양의 카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격자/ 방어자 각각 적용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양의 카드로 싸우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강한(=해당 문양의 카드가 많은) 장소를 전장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공격하는 장군이든 방어하려는 장군이든 장군의 배치에 따라서 어떤 카드를 쓸 지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혹은 상대방이 어떤 지역에서는 공격할 수 없고, 나는 내가 편한 지역에서 방어할 수 있도록 미묘하게 수비병력을 배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주로 어떤 지형에 장군을 배치했는지, 내가 가진 카드를 봤을때 모든 장군을 한 문양의 지역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분산해서 여러 전투를 대비해야하는지 배치에 세심함을 기울일 수록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2. 얼마나 패배할지는 패배할 사람이 정할 수 있다.
제목에도 써놨지만 마리아는 어떻게 이길지보다 어떻게 패배하는지가 더 중요한 게임입니다. 모든 전투에 이길 순 없지만 또 모든 전투에 이긴다고 전쟁에서 승리하지도 않습니다. 전투에서 카드의 사용 권한은 카드와 병력의 총 합이 마이너스인 플레이어한테 주어집니다. 그래서 전투를 종료할 시점도 내가 그 마이너스의 수치를 조정해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게 되면 그 수만큼 병력도 잃거니와 진 칸만큼 이긴쪽이 진쪽을 후퇴시키는데 그렇게 되면 보급을 못받아 계속되는 전투에서 굉장히 불리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에서는 위의 룰 때문에 '최소한'의 손실로 패배하는 것이 선택 가능한 전략이 됩니다.
예를 들면 전력차가 -5인 상황에서 내가 8인 숫자카드를 내서 계속 전투를 이어갈거냐 혹은 4인 카드를 내서 -1로 패배를 선언할거냐 결정할 수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높은 카드가 많은것도 좋지만 낮은 카드가 많은것도 한편으론 안심이 됩니다.
처음 게임을 배울때는 한 전투라도 지지 않으려고 서로 카드가 바닥날 때까지 싸우다가 결국 카드가 동나는 쪽이 크게 패배해서 탈탈 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전투에서 남은 카드가 없어서 털리고 악순환이 반복되죠. 하지만 전투와 게임에 익숙해 질 수록 지면서 이기는 방법 혹은 질때 지고 이길때 이기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게임의 재미가 점점 깊어졌습니다.
(국본군과 오스트리아가 프랑스 본토까지 밀고들어왔다. 1번 프랑스 장군(빨간색) 은 위치선정을 잘못해서 한칸만 후퇴해도 전병력이 날아가는상황)
첫 '공식전' 인 가장 최근 플레이에서는 제가 프랑스를 맡았는데, 판단 실수와 오스트리아/국본국의 동시 공격으로 본토까지 탈탈 밀리게 된 상황이 있었습니다. 바로 위에 사진도 "이게 내 패배의 시작일듯" 이라고 하며 찍어놓은 사진이구요ㅎㅎ
그 전투에서 너무 손실이 커서 그 뒤의 수많은 전투도 게임이 끝날때까지 단 한번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손실로 최소한의 패배를 계속하면서 빼돌린 병력으로 결국 프로이센 요새 한개와 오스트리아 요새 한개를 한 턴에 먹으면서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전투는 졌지만 전쟁은 이겼다는 말이 와닿는 상황이 또 있을까 했었죠 ㅎㅎㅎ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거든요(결국 자기자랑ㅋㅋㅋㅋ)
(정치승리마커와 전투승리마커가 놓이는곳 - 프랑스는 전투승리가 텅 비었다)
마리아는 막상 플레이 해 보면 룰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룰북의 난이도는 좀 있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작센의 변절이나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합병 등과 같은 정치적 상황은 다소 처리 단계가 복잡하게 느껴져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게 게임에 미치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게임에 익숙해지고 전장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질 수록 점점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접근성을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질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컴포와 작은 실수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템포, 협상을 통해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점, 져야할지 이겨야할지 어디서 져야할지 단순한 전투 룰 속에서 고민할게 많다는 점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게임입니다. 고전 워게임보다 접근성도 훨씬 낮은편이라 워게임에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포지션이고 또 주사위를 굴리지 않고 카드를 전략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전술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 가격도 저렴한편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즐겨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평소에 로그인도 잘 안하긴 하지만.. 소개하고 싶은 게임이 있어 글을 남겨봤습니다.
그새 또 소개하고 싶은 게임이 생겨서 조만간 3인 워게임전쟁테마게임으로 뵙겠습니다!(내일 이기면요 ㅋㅋㅋ)
<별첨> 지난플레이의 명대사들
"아 형은 무슨 다이아가 그렇게 많아요!" - "저 이거 전부 다이아예요"
"어? 여기 클로버야??? 스페이드인줄알았어!"
"이번 정치 제가 꼭 먹을테니까 제가 저거 조절해주면 1TC(전술카드수입) 주세요" - 결국 정치에서 졌다고한다.
"제가 프로이센 병력 본국으로 다 돌려보낼테니까 보급 살려주시죠" ... "싫어요"
"-1로 질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