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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보드게임 아레나에서 번역가 및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는 ufm입니다. 조회수를 위해 제목을 도발적으로 지은 점에 대해 미리 양해 부탁드리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__) (참고로 이 글은 비단 한국의 보드게임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수많은 보드게임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코로나 이후 보드게임 아레나를 비롯한 온라인 보드게임 플랫폼 이용량이 급증하면서 보드게임 아레나의 게임 수는 400개를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한국 보드게임 퍼블리셔에서 발매한 게임은 지금까지 오직 1개, '지킬 대 하이드'뿐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 더 늘었지만요.
제가 게임 이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왜 그런지 궁금하긴 했어도 딱히 신경쓰지 않았었지만 게임 이식을 하다보니 왜 그런지, 그리고 왜 그럴수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게임 이식 후기인 셈 치고 게임 이식을 시작한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느낀 점을 조금 적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아레나의 게임 이식 과정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 작성한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https://cafe.naver.com/boardgamearena/294
게임 이식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면, 게임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퍼블리셔에서 보드게임 아레나로의 게임 이식을 원하지 않거나 게임 이식에 적극적이지 않음 2. 퍼블리셔에서는 게임 이식을 하고 싶어하지만 개발자를 구하지 못함
1번은 이미 별도 앱이나 플랫폼 등 자체 디지털 이식 또는 수익 모델이 있거나 기타 사유로 라이센스가 거부된 게임이 대부분입니다만 (주로 하스브로 게임), 간혹 게임 이식을 하겠다고 나선 개발자가 있어도 퍼블리셔가 미적지근하게 대응해서 개발자가 개발을 포기하는 상황도 나옵니다. 게임 이식의 제작, 승인, 정식 공개 모두에는 퍼블리셔의 빠르고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데, 간단한 질문의 답 하나 받는데에 주 단위의 시간이 걸리면 아무도 그 회사와는 일하고 싶지 않겠죠. 심지어 구성물 이미지나 규칙서도 전혀 제공하지 않고 질의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개발자 내에서 기피대상이 된 곳도 있을 정돕니다. 그 외에는 굳이 보드게임 아레나에 자사의 게임을 이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이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2번을 생각하기 전에, 보드게임 아레나에는 어느 게임이든 위의 글에서 언급한 조건만 맞으면 등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보드게임 아레나에서 게임을 이식하는 개발자의 수는 꽤 적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드게임 아레나에서 개발자를 찾으려면 전세계의 모든 게임 중에서 개발자의 눈길을 끌 정도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아래의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A.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이식에 도전해볼 개발자가 많은 게임 B. 이식하기 쉬우면서도 독창적인 게임 C. 해당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가 직접 개발 D. 퍼블리셔 측에서 적절한 보상을 제시
A는 개발자는 있어도 라이센스가 막혀서 못 나오는 1번이 대부분이므로 넘어가겠습니다.
애초에 만칼라 메커니즘을 이용한 게임 자체가 보드게임 아레나에 거의 없고 (현재 과일섬 타이쿤을 포함해 3개), 개발 시간도 짧게 예상된데다 (제가 전업 프로그래머가 아니지만 1주일 내에 코딩 다 끝낼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웨이트도 가볍고 솔로 모드도 있어서 많은 사람이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킬 앤 하이드도, 보드게임 아레나에 트릭테이킹은 엄청 많지만 '2인 트릭테이킹'으로서 준수한 게임은 찾기 힘들었는데 그 부분을 잘 채웠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유명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식이 어려운 게임은 개발자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보통 없습니다. 특히 컴포넌트(주로 카드)마다 제각각 특수 규칙이나 별개 행동이 있는 게임은 웨이트만 낮지 실제 이식 난이도는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에 기피대상입니다. 그리고, 라이센스 목록은 외부에 직접 언급할 수 없지만 보드게임 아레나에서 개발이 허용된 게임 중에는 소위 '짝퉁' 게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 게임들은 이식해봐야 카피캣 소리만 듣고 성취감 느끼기도 힘드니 개발자들은 당연히 그런 게임을 이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부분은 국내 게임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출시한 게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짝퉁 및 지뢰 게임의 수는 해외 게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래서 개발자를 구하지 못했다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정말 운 좋게 얻어걸리는 C, 혹은 아예 돈을 주고 개발자를 구하는 D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사실 최근에 갑자기 유명한 게임(주로 아스모디산)이 쏟아져나온 걸 보고 눈치채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 받고 일하는 보드게임 아레나의 프로 개발자들은 이미 거의 대부분이 다른 프로젝트에 묶여있습니다. 그래서 개발자 포럼에는 현금 보상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를 구하지 못하는 게임이 생각보다 꽤 있습니다. 또는, 개발자 역시 시간을 공짜로 들이는 건 아니므로 원하는 보상액이 있을테고, 그 결과 제시 비용이 퍼블리셔의 예산 한도와 맞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런 모든 부분을 종합하면 한국 퍼블리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세 보드게임 회사에서 내놓는 게임은 개발자를 구하기 힘듭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왜 보드게임 아레나에는 심심하면 쓰잘데기없는 트럼프 게임이 자주 올라오냐'는 불평글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게임은 전부 라이센스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려있어서 따로 판권사와 상의할 필요도 없고 구현도 쉬우니 심심풀이로 해보기 좋으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이 때문에 비용을 들여 개발자를 고용할 여유가 없는 회사는 주로 TTS를 비롯한 별도의 코딩이 필요없는 곳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지간히 유명하거나 기대작인 게임이 아닌 이상 올라온 게임은 개발자에게 선택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네요.
새해 첫날부터 묘한 분위기의 글을 쓰게 되어서 약간 죄송스럽기도 합니다만, 아무쪼록 한국의 보드게임이 번창하길 기원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