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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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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떻게 망하는가?

1,646 조회
2025.12.16 18:57
23
8

[아스모디에서 후기작성을 조건으로 게임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미트>는 1850년부터 2060년까지, 산업혁명 이후 인류 문명을 7세대에 걸쳐 시뮬레이션하는 보드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한 국가의 수반이 되어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로 사회가 반응하며, 국제 사회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3단계 페이즈를 반복합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것은 1972년 로마클럽의 메도즈 보고서 "성장의 한계"와 그 기반인 World3 모델입니다.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진리를 게임은 단순하면서도 냉정하게 증명해냅니다.



 

합리적 선택이 만드는 집단적 파국

게임을 시작하면 모든 플레이어는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합니다.
5개의 영토, 재생 자원2, 산업 자원1, 군사자원1, 그리고 화석 연료8.
첫 세대는 너무나도 평화롭습니다.
시작 카드인 '학교 교육'을 내려놓으면 인구당 1원을 지불하고 사회 계급 하나의 생활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공공 지출' 카드는 인구당 1원을 내고 사회 불안을 1단계 낮춥니다.
사회 단계의 '호황'은 생활 수준을 올려주고 돈이 되어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산업화' 카드는 생산 큐브의 위치만큼 돈을 지불하고 산업 또는 군사 생산을 1단계 올릴 수 있습니다.




사회 페이즈가 시작되면 게임의 냉정한 본질이 드러납니다.
먼저 인구당 1개씩 재생 자원을 소비해야 합니다.
부족하면? 먹일 수 있는 만큼만 먹이고, 못 먹인 인구 단계마다 인구 1단계 감소, 생산 시설 1단계 감소, 사회 불안이 3단계 증가합니다.
다음은 인구 증가. 중산층(계급 C)의 생활 수준이 1-2단계면 인구가 1단계 자동 증가합니다. 
그리고 산업 자원 소비. 중산층이 2단계면 인구의 한 단계 아래만큼, 3단계면 현재 인구만큼, 4단계면 한 단계 위만큼 소비하비다. 부족하면 생활 수준이 떨어지고 사회 불안이 치솟습니다.

세금 징수.
중산층 생활 수준에 따라 인구당 2~5원을 세계은행에서 가져옵니다. 부유한 자본은 더 많은 정책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 중산층이 2단계면 재생·산업 생산이 각각 1단계씩 자동으로 증가합니다. 3단계면 산업 또는 군사 중 하나를, 4단계면 둘 중 하나를 감소시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규칙이 강제합니다.

초반에는 이 모든 것이 걱정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그러나 4세대쯤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인구가 20명 수준(5단계)으로 증가하면서 재생 자원 소비가 20개로 급증합니다.
산업 자원 생산을 4단계 이상으로 올리면 생산할 때마다 화석 연료를 소모하고 오염 토큰을 받습니다.
5단계 생산이면 화석 연료 1개 소비에 오염 1개, 6단계면 2개씩입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더"를 외치며 생산 시설을 확장하고, 시장에서 자원을 사들이며, 군사력을 키웁니다.
승점 계산식은 명확합니다.
영토 1개당 5점, 인구와 생활 수준의 곱, 그리고 돈.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국력이 승리의 척도입니다.

 

공공질서, 그리고 폭발하는 사회

사회 페이즈의 마지막 단계인 '공공질서'는 게임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순간입니다.
사회 불안 지표의 큐브 위치에 따라 세 가지 상태가 결정됩니다.

가장 왼쪽 두 칸에 있으면 '호황'입니다.
중산층 생활 수준이 1단계면 생활 수준 1 증가에 5원, 2-3단계면 생활 수준 1 증가에 10원, 4단계면 그냥 10원을 받는다.
국민이 행복하면 경제가 도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가운데 7칸에 있으면 '발전'입니다. 생활 수준이 1올라갑니다.
문제는 가장 오른쪽 두 칸인 '반란'입니다.
중산층이 1단계면 인구보다 2단계 아래, 2단계면 1단계 아래만큼 군사 자원을 소비해서 반란을 진압해야 합니다.
3단계면 인구당 2원, 4단계면 3원을 잃는다. 탈세와 내전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군사 자원이 부족하면? 진압 가능한 만큼만 진압하고, 못한 인구 단계마다 생활 수준이 1 감소합니다/
인구 20명(5단계)인데 중산층이 2단계고 봉기 상태라면, 4단계(10명)만큼인 10개의 군사 자원이 필요하다.
8개밖에 없다면 3단계(5명)만 진압하고, 생활 수준을 1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세대에 중산층이 1단계로 떨어지고, 인구는 다시 자동 증가하며, 산업 자원 소비는 줄지만 세금도 반토막 납니다.

더 악랄한 것은 '계층 갈등' 단계입니다.
최상위 계급(A)과 최하위 계급(E)의 생활 수준 차이만큼 사회 불안이 올라갑니다.
만약 A가 4단계, E가 1단계면 차이가 3이므로 사회 불안이 3칸 오릅니다.
이미 오른쪽 끝에 가까우면? 올릴 수 없는 칸마다 불안정화 토큰 1개를 받습니다.
불평등이 클수록 국가는 불안정해집니다.
점수와 정치단계의 이득을 위해 최상위 계급의 생활 수준을 올리면, 필연적으로 사회 불안이 치솟게 됩니다.
모두의 생활 수준을 똑같이 유지하면, 이 사태를 막을수 있으나.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위기의 연쇄, 그리고 공멸의 시작

게임의 진정한 매력은 위기 시스템에 있습니다.

오염 예비 카드의 오염 토큰이 0개가 되면 환경 위기가 발생합니다.
현재와 과거 세대에 쌓인 환경 위기 타일 개수만큼 모든 국가의 재생 자원 생산이 줄어듭니다.
첫 환경 위기면 1단계, 두 번째면 2단계 감소입니다.
가장 많은 오염을 보유한 국가 기준으로 인구 1단계 감소, 사회 불안 3 증가, 최상위 계급 생활 수준 1 감소, 그리고 영토 1개를 잃게 됩니다.

영토 상실이 치명적인 이유는 재생 자원 생산이 영토 개수를 초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토가 5개에서 4개로 줄면, 재생 자원 생산이 5단계(20개)였다면 강제로 4단계(10개)로 내려갑니다.
다음 세대에 인구 20명을 먹이려면 20개가 필요한데 10개밖에 생산하지 못하게 되어 식량 부족이 발생하게 됩니다.

세계 은행의 돈이 바닥나면 금융 위기가 옵니다.
인구당 1원씩,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금융 위기 타일 개수만큼 곱해서 잃습니다. 
인구 30명에 두 번째 금융 위기면 30×2=60원을 잃습니다.
잃고나서도 가장 부유한 국가는 불안정화 토큰 2개를 받습니다. 동점이면 각각 1개씩. 부자였던 나라의 금융위기는 더욱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불안정화 예비 카드의 불안정화 토큰이 0개가 되면 군사 위기가 터집니다.
모든 국가가 현재 인구보다 1단계 아래만큼 군사 자원을 소비해야 합니다.
인구 20명이면 10개를 써야 합니다.
부족하면 앞서 설명한 군사 자원 부족 효과가 터집니다.
가장 많은 불안정화 토큰을 가진 국가는 인구가 1단계 감소합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가 최하위 계급 생활 수준을 군사 위기 타일 개수만큼 낮춥니다.

놀라운 것은 이 위기들이 플레이어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5세대쯤, 테이블 위에는 이미 환경 위기 타일 2개와 금융 위기 타일 1개가 쌓여 있습니다.
모두가 "이제 그만 생산해야 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자신의 턴에는 산업화 카드를 내려놓거나 다른 플레이어에게 영토 병합과 같은 카드를 사용합니다.
생산을 멈추는 순간, 인구를 먹여 살릴 자원이 부족해지고, 사회 불안이 치솟으며, 생활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옆 국가-다른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공장을 돌려 상품을 생산하고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을 체험하다

<리미트>가 저의 취향을 저격한 이유는 "공유지의 비극"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구체적 경험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6세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오염 토큰이 바닥나 오염 과다 토큰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환경 위기는 3번째를 맞게 됩니다.
재생 자원 생산이 3단계나 하락하면서 식량 부족이 일상화됩니다.
공급하지 못한 인구 단계마다 인구가 줄고, 생산 시설이 멈추며, 사회 불안이 폭발하며. 국가의 곳간은 바닥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플레이어들은 깨닫습니다.
우리가 경쟁하는 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이 지구의 한계였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4번째 위기 타일이 놓이는 순간 게임이 종료됩니다.
7세대를 채우지 못한 채, 문명이 붕괴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게임 종료 후 점수를 계산하면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비슷한 점수를 받게됩니다.
영토와 군사력, 돈으로 얻은 점수는 오염과 불안정화 토큰, 위기 토큰이 깎아버립니다.
그리고 지속 가능성 실험.
게임 종료 시점의 상태로 공급-소비-생산 단계를 한 번 더 돌려보는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자원 부족으로 추가 피해를 입습니다. 결국 승자는 "가장 덜 망한 국가"였습니다.

 

카드 한 장에 담긴 현실



정치 카드 시스템은 게임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사회 덱은 교육과 복지를, 군사경제 덱은 시장과 전쟁을, 생산 덱은 산업과 환경에 관한 카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 세대마다 자신의 사회 계급 A(최상위층)의 생활 수준에 따라 뽑을 수 있는 카드 수가 달라집니다.
1-2단계면 5장 중 1장, 3단계면 5장 중 2장, 4단계면 무려 10장 중 2장을 선택합니다.
손패 제한도 5장에서 8장으로 늘어납니다. 부유하고, 생활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더 많은 정책 선택지를 갖는다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구 효과 카드들입니다.
"친환경생산"은 산업 생산을 1단계 낮추는 대신, 이후 산업 자원을 생산할 때마다 오염을 1개 덜 받습니다.
단기적 손해를 감수한 장기 투자 개념입니다.
"집약 농업"은 재생 자원 생산 시 화석 연료 1개를 소비하고 오염 1개를 받지만, 생산량이 1단계 위로 취급됩니다.
화학 비료로 수확량을 늘리는 현대 농업의 딜레마 그 자체입니다.

이 카드들은 언제든 회수할 수 있습니다.
"집약농업"을 회수하려면 재생 자원 생산을 1단계 낮춰야 하고, 화석 연료가 부족하면 강제로 회수됩니다.
지속 불가능한 정책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메커니즘으로 구현했습니다.

"아웃소싱" 카드는 냉소적입니다.
상대 국가에게 그들의 산업 생산 단계만큼 돈을 주고, 그들의 산업 시설로 자원을 생산합니다. 
내가 자원을 가져가고, 화석 연료는 내 재고에서 빠지지만, 오염은 상대가 받습니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짓고 환경 오염은 떠넘기는 현실을 한 장의 카드로 압축했습니다.
상대는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씁쓸한 점입니다.

"시장접근" 카드는 최상위 계급(B)이 생활 수준 2에 도달하면 영구적으로 손에 추가되는데, 이 카드로 시장에서 자원을 사고팔 수 있습니다.
자원을 사면 가격이 오르고, 팔면 내려갑니다.
"투기" 카드는 돈 10원을 세계 은행과 자신의 주머니에서 각각 5원씩 내고, 원하는 자원 가격을 한 칸 움직인 뒤 거래합니다.
누군가 화석 연료를 대량 구매해 가격을 올려놓으면, 다른 국가들은 생산 비용 증가로 고통받습니다. 시장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대량 파괴" 카드는 최상위 계급이 생활 수준 4에 도달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최소 10개의 군사 자원을 쓰고 불안정화 토큰 2개를 받아 공격함니다.
상대가 같은 양의 군사 자원을 내지 않으면, 상대는 영토 1개를 잃고, 산업 또는 군사 생산 1단계 감소, 그리고 오염 토큰 3개를 받습니다. 핵무기의 메커니즘입니다. 가장 발전한 문명만이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

 

동맹이라는 희망, 그리고 배신

선택 규칙인 동맹 시스템은 게임에 미묘한 긴장을 더합니다.
군사 동맹은 군사 자원 부족 시 서로 도울 수 있고, 경제 동맹은 자원과 화폐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군사 동맹을 맺으면 비무장화가 발생해 군사 생산이 최저 단계로 떨어지고, 그 대신 산업 생산이 증가하며 사회 불안이 감소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협력을 통한 평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5세대쯤 되면 누군가는 동맹을 깨고 군사 생산을 재개합니다.
영토 병합 카드로 상대의 영토를 빼앗거나, 군사 작전으로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 점수를 올리는 빠른 길이기 때문이죠.
배신한 국가는 불안정화 토큰을 받지만, 얻은 이득이 더 큽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뒤따라 재무장을 시작합니다. 
파멸적인 군비 경쟁은 다시 시작되고, 냉전 규칙에 따라 군사 자원 15개 이상을 보유한 국가는 불안정화 토큰을 받습니다.
평화는 짧았고, 파멸은 가속화됩니다.

 

필연을 시뮬레이션하다



<리미트>는 불편한 게임입니다.
플레이하는 내내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규칙과 승리 조건이 강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교육에 투자하고 싶지만 당장 생산 시설이 필요하고, 오염을 줄이고 싶지만 화석 연료 없이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으며, 평화를 원하지만 다른 국가가 군비를 증강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합리성이 집단의 비합리로 귀결되는 과정을 게임을 7라운드 동안 체험하게 만듭니다.

게임이 끝나고 오염 토큰과 불안정화 토큰이 가득한 보드를 바라보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이것은 게임이지만 동시에 예언이라 그런게 아닐까요?
1972년 메도즈 보고서가 경고했던 것들이 2025년 현재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자원 고갈, 경제 불안정, 지역 분쟁. <리미트>는 그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변화가 어려운지, 그리고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제작자 알렉상드르 푸아에가 성장의 한계를 보며 느꼈던 충격을 게임으로 풀어냈듯,
플레이어들도 게임을 통해 그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필연을 받아들이면서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게임 속 국가들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 게임은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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