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게임 잘 만들기로 소문난 필 & 매트 에클런드 부자의 [팍스 르네상스] 2판을 해봤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은 [하이 프론티어], [팍스 파미르], [바이오스: 메가파우나] 등이 있습니다. 게임 규칙이 꽤나 복잡한데 뼈대만 간추려 보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은행가가 되어 역사의 흐름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게임의 주요 메커니즘은 카드 열에서 카드를 가져오는 오픈 드래프팅과 태블로 빌딩, 그리고 영향력입니다. 이 게임에서 영향력은 체스 기물로 표현되는데, 폰(상인 혹은 농노)을 제외하면 기물에 주인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이트(기병대: 공격 병력), 룩(귀족: 방어 병력), 비숍(이단심문관)은 플레이어 색깔 대신 소속 종교(카톨릭, 이슬람, 개신교)에 따라 색깔이 정해지며, 속한 국가의 체제 변환에 따라 주인이 바뀔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매 턴 다음 중 2개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 카드 구입: 카드를 카드 열에서의 위치에 따라 1~5플로린에 구입합니다. (앞의 카드들에 1플로린씩을 놓고, 카드 위에 돈이 있으면 함께 가져옵니다.)
- 카드 플레이: 핸드에 있는 카드를 플레이하며 일회성 효과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 카드 판매: 핸드에 있거나 또는 플레이된 카드를 2플로린에 판매합니다.
- 동방/서방 무역로 활성화: 무역로 위의 상인들이 돈을 얻고, 군대가 징집됩니다.
- 동방/서방 작전: 플레이된 카드들의 다회성 효과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 승리 선언: '활성화'된 승리 조건을 충족하면 즉시 승리합니다.
게임에는 다섯 가지 승리 조건이 있습니다. 게임 중후반부에 나오는 혜성 카드 구입을 통해 처음 네 가지 승리 조건을 '활성화'함으로써 또 다른 행동으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고, 카드 덱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승리 선언을 못하면 게임 중 아무 쓸모도 없었던 예술 태그가 가장 많은 사람이 승리하게 됩니다.
- 제국 승리 (왕정 후원)
- 르네상스 승리 (공화정 후원)
- 세계화 승리 (상업 후원)
- 신성 승리 (종교 후원)
- 후원자 승리 (예술 후원)
카드의 효과는 플레이 시 발동되는 일회성 효과('원샷')와 한번 플레이 하면 행동을 통해 매 턴 실행 가능한 다회성 효과('작전')로 나뉩니다. 원샷에는 대관식, 농민 반란, 음모, 종교 전쟁 등이 있는데 대부분 체제 변환을 불러오는 강력한 효과들입니다. 작전 중에서도 캠페인, 투표, 참수(암살)는 체제 변환을 불러오거나 한 플레이어의 지배 하에 있는 국가를 중립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원샷과 작전들의 메커니즘이 상당히 복잡해서 익숙해지기 전까지 계속 참조표를 보면서 플레이해야 했습니다.
오늘 3인플로 두 판을 연달아 했는데, 둘 다 한 명이 승리에 가까워지면 나머지 둘이 합심해서 잘나가는 한 명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식으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 어?' 하는 사이에 누군가 승리를 거머쥐어서 끝까지 방심할 수 없더군요. 둘째 판은 한 분이 제국 승리와 신성 승리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했는데, 혜성 카드 구입으로 승리 조건을 활성화하지 못하게 둘이 견제하다가, 결국 카드 덱이 떨어져서 제가 얼떨결에 후원자 승리를 했습니다. 예술 태그도 고작 1개였는데 무려 타이 브레이커인 돈으로 최종 승자가 결정되었네요. 초반에 너무 돈에 집착해서 초라한 태블로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는데, 그게 결국 승리의 요인이 된 거죠.
에클런드는 무거운 게임을 주로 만든다는 점에서 종종 비딸 라세르다과 함께 거론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두 작가의 게임 스타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라세르다 게임이 전형적인 헤비 유로게임이라면, 에클런드 게임은 헤비 테마게임 내지 시뮬레이션의 느낌이었습니다. 카드 열에 어떤 카드가 나오느냐에 따라 게임이 아주 크게 변하거든요. 그렇다고 운빨망겜이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복잡한 형세를 읽고 그때그때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게임입니다.
다다음주에 또 다른 고웨이트 게임인 [1862]를 하기로 했는데, 18xx 게임은 처음이라 이건 또 어떤 느낌일지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