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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규모의 게임, SETI 첫인상 (Feat. 콘택트 1997)

1,207 조회
2025.06.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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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의 박스 아트웍은 VLA을 모델로 하고 있다. 옥에 티라면 전파에 방해가 될만한 주위에 거대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데, 가시거리에 발사대가 있으며, 로켓을 발사한다는 것이...  (웃고자 한 이야기지지만) 사실 상징성을 생각하면 이보다 좋은 아트웍은 없다.]

 


조디 포스터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가? 칼 세이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에서 엘리 애로웨이 박사가 느꼈던 그 무한한 호기심과 외로움, 그리고 희미한 희망.





[Contact의 한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해보기, 헤드셋 거꾸로 쓰는 게 포인트, 예전에 살던 곳에서 10시간 운전해서 간 보람이!  최애 SF 영화 로케이션인 VLA라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루지다! ]


수 년 전 뉴멕시코의 Very Large Array(VLA)를 방문이 떠오른다. 사막 한가운데 27개의 거대한 안테나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각각의 안테나가 2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귀가 우주를 향해 열려있는 광경 앞에서, 나는 영화 속 엘리가 느꼈을 경외감과 고독함을 체험했다. 이거 거대한 구조물 앞에 인류가 얼마나 간절히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증거를 찾고 있는지!? 체코 게임즈의 SETI도 VLA에서 느꼈던 그 셀레이는 순간을 보드게임으로 재현한 느낌이었다.

 

현실과 게임이 만나는 지점
거대한 안테나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향하며 우주 깊숙한 곳에서 오는 신호를 포착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SETI 보드게임의 탐사선 배치 메커니즘을 떠올렸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신중하게 탐사선을 우주 곳곳에 배치하는 것처럼, 실제 천문학자들도 안테나의 방향과 주파수를 정밀하게 조정해 가며 외계 신호를 찾는다.

 

VLA, 제임스 웹 망원경, 그리고 세계 다양한 초기술이 카드 속에 접목되고 그에 대한 설명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것을 보면 현실로 옮겨놓은 듯했다. 게임의 엔진 빌딩 시스템이 단순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인류 과학의 끝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우주 탐사의 축적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게임의 핵심은 다용도 카드시스템에 있다. 138장의 카드는 각각 자원, 행동, 수입 (및 신호)로의 타이밍에 맞는 사용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있다. 마치 영화 속 엘리가 한정된 연구비와 장비로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해야 했던 것처럼, 플레이어들도 제한된 자원으로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 카드 한 장을 업그레이드 개발에 쓸 것인가, 자원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특별한 행동을 위해 보관할 것인가? 

 

 

회전하는 우주, 변화하는 운명
SETI의 가장 괄목할 만한 메커니즘은 태양계 회전 시스템이다. 게임 중 특정 시점에서 플레이어들은 세 개의 태양계 원판 중 하나를 회전시켜 행성들을 이동시키고 탐사선의 경로를 바꾼다.

 

신중하게 계획한 탐사선의 궤도가 갑자기 바뀌거나,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플레이어들은 우주의 운동을 이해하고 예측해야 하며, 때로는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

 

VLA에서 본 안테나들의 움직임이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간단한 실례로 지구가 자전하면서 관측 대상이 계속 바뀌고, 안테나들도 그에 맞춰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한다. 게임의 태양계 회전 메커니즘은 단순한 게임 요소가 아니라, 실제 우주 관측의 본질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우주라는 곳은 미지의 영역이며 그 만큼 예측하기 무서운 곳인지 모른다.


 

엔진 빌딩 그리고 변곡점
SETI는 전형적인 엔진 빌딩 게임이다. 초반에는 단순한 행동만 가능하지만, 기술을 개발하고 자원을 축적하면서 점점 더 강력한 연구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영화 속 엘리의 여정과 유사하다. 어린 시절 아마추어 무선기로 시작한 그녀가 결국 인류 대표하게 되는 천문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처럼, 게임에서도 작은 신호 하나에서 시작해 거대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지구 근처 행성 이후 더 먼 행성까지 탐사가 가능한 우주로 확장된다. 실제로 우주의 비밀은 고사하고 태양계의 비밀 일부조차도 밝혀지지 않았다. 인류는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우주의 신비를 피상적으로 알 뿐이다. 단순히 알아가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단순한 발견으로 때론 우리가 생각했고 가정했던 우주의 모델이나 가설이 틀렸다는 걸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시작이 더 먼 우주를 알아가고 발견하는데 더 깊은 인사이트를 주기도 한다.

 


콘택트에서도 '엘리'가 많은 노력 끝에 외계의 신호를 결국 탐지하게 된다. 그 신호는 인간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미지의 조우'를 위한 설계도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엘리는 우주를 꿈처럼 거릴 게 된다고 비유적으로 말해본다.



역시, 세티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단순히 '미지와의 조우'에서 끝나지 않으며 그 조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더 보여준다. 게임에서 가장 극적인 클라이맥스이며, 마치 1부와 2부 사이에 확실한 변곡점을 보여주는 이 점은 가장 놀라운 점이다. 그리고 미지가 과연 따뜻하며 우호적인 'ET나 줄스'일지, 아니면 우리에게 가혹한 시련을 가져다 줄 '에일리언이나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지 만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단 한 가지 변함없는 건, 그 역사적인 순간에 여러분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우주적 규모의 보드게임
영화 '콘택트'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나는 엘리처럼, 플레이를 마친 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우주의 광활함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작은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선사한다. 가장 SF 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영화, 나의 SF 최애 영화인 콘택트(1997)도 은하수가 밤 하늘에 수 놓은 이 계절에 추천해 본다.

 

나에게 SETI는 단순한 보드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칼 세이건이 꿈꾸던 과학의 경이로움을, 조디 포스터가 연기로 표현한 탐구자의 열정을,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구나 느끼는 그 설렘을 구현해낸 작품이다. "우주에 우리 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거야"라던 영화 속 대사처럼, 이 게임을 해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재미를 낭비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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