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플루토게임즈 주봉환 작가입니다.
<항로개척자> 펀딩이 어느 덧 3일 밖에 남지 않았네요.
사실 항로개척자는 2019년 말 쯤에 첫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던, 꽤 오래 묵혀둔 게임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변화들이 있었고, 그것을 한 번 정도는 정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번 펀딩을 계기로 간단한 개발 노트를 작성해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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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개척자>는 사회과부도에서 봤던 어느 항로도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도 위의 선을 따라 연결되는 위대한 탐험가들의 항로.
저는 항로를 눈으로 따라가며, 탐험의 여정을 상상하는 걸 즐겼습니다.
신대륙의 발견, 태평양을 횡단하는 모험, 이국적인 동방의 세계 견문 같은 것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역사 속 가상의 탐험가가 되어 나만의 항로를 개척하는 게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게임이 끝나고 나면, 마젤란, 콜럼버스 같은 탐험가들이 남긴 것처럼
'내가 개척한 항로'가 지도 위에 남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게임의 핵심 아이디어였죠.
그런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세 가지 큰 틀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 항로 개척의 시각적 표현
개척한 항로가 어떤 형태로 표시되고, 게임 종료시 어떤 비주얼을 제공하는가?
2) 항해 과정의 시스템적 표현
매 차례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의사결정을 유도하는가?
3) 탐험의 목적
이 모든 것들을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가?
이번 글은 이 세가지 큰 틀을 어떻게 풀어나갔는 지를 중심으로 작성해보겠습니다.
1) 항로 개척의 시각적 표현
개척한 항로가 어떤 형태로 표시되고, 게임 종료시 어떤 비주얼을 제공하는가?
'지도 위에 선으로 이어진 항로도'가 아이디어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실제로 지도 위에 펜으로 항로를 그리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1인용 게임이 아닌, 다인용 게임도 시도했습니다.
세계 지도를 각자 한 장씩 갖고 그려보기도 하고, 하나의 세계 지도 위에 함께 항로를 그리며 경쟁을 유도해보기도 했죠.
꽤 오랫동안 이 방식으로 게임을 디벨롭했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게임의 비주얼이 생각보다 멋지지 않다."
교과서에서 본 항로도 이미지와 달리, 펜으로 지도 위에 그어진 선들은 뭔가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게임이 끝났을 때 사진을 찍어서 자랑하고 싶은 비주얼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죠.
그렇다면 '그리는 행위' 자체에 시스템적인 필연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대체 가능한 행위였습니다.
결국 저는 펜으로 항로를 그리는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선박 마커'를 정박 지점마다 두는 방식을 채택했죠.
이 방식으로도 어디를 거쳐서 항해 해왔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고, 오히려 배의 경로에 대한 '트레이싱' 느낌이 나서 좋았습니다. 게임이 끝났을 때의 비주얼도 나쁘지 않았죠.
이 과정에서 '다인플' 역시 과감히 버리고 1인용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이 게임은 주어진 미션들을 잘 조합해서 최적의 항로를 계획하는 게임입니다.
그 고민에 오롯이 혼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향후 다인플에 보다 최적화된 버전을 출시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2) 항해 과정의 시스템적 표현
매 차례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의사결정을 유도하는가?
<항로개척자>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게임의 핵심 시스템은 거의 단번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학창시절 즐겨하던 KOEI社의 PC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는 출항시마다 물자를 분배하는데, 배에 실을 수 있는 적재량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한정된 적재량 안에서 물과 식량, 포탄, 교역품 등을 적절한 비율로 분배해야 합니다.
이렇게 물자를 배에 싣고 항구를 떠나고 나면, 당분간은 이 물자에 의지해 항해를 이어나가야만 하죠.
물과 식량이 충분하다면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포탄이 부족해져서 망망대해에서 만난 해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죠.
반대로 물과 식량이 넉넉하지 않다면, 항해 도중 선원들이 지쳐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떤 게 옳은 지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항해의 본질은 불확실성을 안고 바다로 나가는 일이니까요.
<항로개척자>에서 매 차례마다 하는 행동 역시, 이렇게 물자를 분배하는 일입니다.
무작위로 항해 카드 한 장을 뽑은 뒤, 카드에 적힌 물자량을 1) 항해 속도 2) 선원 행동력 3) 무장도에 분배합니다.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1) 항해 속도를 높여서 더 멀리 갈 것인가?
2) 선원 행동력을 높여 도착한 곳에서 다 많은 행동을 할 것인가?
3) 무장도를 높여 해적과의 전투에 대비할 것인가?
세 가지 모두에 충분한 물자를 분배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부분은 과감히 포기해야 하죠.
더군다나 해적과의 전투에서는 주사위가 사용되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더 커집니다.

이렇게 세 가지 항목에 물자를 분배한다는 시스템은 일찌감치 정해졌고 꽤 잘 작동했지만, 그것을 어떤 구성물로 표현할 것인가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볼 수 있듯이, 아주 초창기의 항해일지는 최종 버전 항해일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창작자로서 다소 '욕심'을 부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냥 숫자를 적는 게 아니라, 진짜 '선박' 모양의 구성물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죠.
배 모양의 개인 보드를 만들고, 그 위에 항해 속도를 나타낼 수 있는 '키'와 무장도를 표현하는 '대포알', 그리고 선원들이 일하는 '갑판'과 '특산품 창고'까지 모두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들여 프로토타입을 완성했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이 프로토타입이야 말로, 정말 순수한 마음의 창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인 창작자가 이러한 구성품이 담긴 게임을 제작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죠.
(제작 난이도는 물론 높은 비용까지)
'여기에 매달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현실을 자각한 뒤, 다시 원래의 항해일지로 돌아왔습니다.
단, 그렇다고 항해일지가 상대적으로 볼품없어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의 아트 디렉터를 맡아주고 있었던 '목성문고'의 목성 님을 잘 졸라서(?) 제가 원하던 앤티크한 느낌이 담긴 항해일지 아트를 완성할 수 있었죠.
제가 꿈꾸던 빅 스케일의 선박 개인보드는, 언젠가 <항로개척자>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세상에 나오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3) 탐험의 목적
이 모든 것들을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가?
게임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적절한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를 설정해주는 일입니다.
게임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플레이해나갈 것인가(장기 목표)와 지금 내 차례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단기 목표)가 적절히 잘 어우러져야, 플레이어는 갈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게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항로개척자>의 '장기 목표'는 게임 시작시 무작위로 주어지는 9장의 미션 카드입니다.
게임의 목표는 최대한 높은 명성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미션 카드에 표기된 목표들을 어떻게 해야 최대한 많이 달성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9장의 미션 카드를 받았을 때, 모두 달성하기 쉬워서도 안되고, 반대로 모두 달성하기 어려워서도 안된다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달성 횟수는 5장~6장 사이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미션들을 세계 지도 곳곳에 균형있게 퍼뜨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미션 카드의 종류 자체도 1)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항로 미션 2) 특산품을 특정 항구에 배달하는 교역 미션 3) 탐사지에 정박하는 탐사 미션으로 나누어 각각 일정한 비율로 분배될 수 있게 설계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최적의 동선으로 딱딱 맞게 잘 연결되는 미션 카드만 9장이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산해보았을 때 그 확률이 매우 낮았고, 또 그러한 카드들만 모두 받았다고 가정하여 테스트 플레이를 해보았을 때도, 다행히 터무니 없이 높은 점수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게임을 잘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9장의 미션 카드를 살펴본 뒤 '달성할 미션'과 '포기할 미션'을 잘 구분해 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단기 목표'로서, 앞선 2번 항목에서 설명한 것처럼 매 차례마다 적절한 물자 분배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이번 차례에는 너무 욕심내지 말고 저 항구까지만 가자' '이번에는 해적에게 절대 털리지 않겠다' 등)
마치며
저는 <항로개척자>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탐험가들에 대한 동경과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하며 느꼈던 항해에 대한 낭만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세계가 가진 깊이감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방구석에서 항해를 꿈꾸던 한 소년이, 창작자로 성장해 그 시대에 보내는 헌사로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로개척자> 텀블벅 펀딩은 11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펀딩 페이지를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tumblbug.com/unchartedpassage



레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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