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 옛날 일 생각하는 건, 나이먹었다는 증거다 - 우리집 서열1위 -
우주티비에서 발행하는 보드게이머즈에 2025년 가을 게임마켓 참관기 게재 제안을 받고, 사진을 정리하던 중, 10년 전 처음 게임마켓을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남겨둔 메모를 바탕으로 글을 다시 써보았는데,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사장 가는 길. 어떻게든 오게하겠다는 주체측의 의지
당시에는 오다이바 빅사이트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중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다가, 이후 오다이바 빅사이트의 공사로 인해 현재는 마쿠하리 멧세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속에 길이 진짜로 있다. 없으면 못간다.
그때도 지금처럼 카탈로그가 판매되었는데, 당시에는 그것 자체가 입장권 역할을 해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카탈로그는 온라인이나 서점, 그리고 현장 판매를 통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인원 관리와 본격적인 온라인 예매 시스템 도입, 운영 효율성 개선 등의 이유로 현재는 카탈로그와 입장권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들뜨고 좋기만 했다.
2015년 5월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쿄 오다이바 빅사이트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원래는 아내와 함께 갈 예정이었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가방과 캐리어, 그리고 이 줄을 보고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개장 전에 나름 서둘러 갔는데도 국제전시장역에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상상 이상의 인파에 순간 아찔했습니다. ‘설마 이 사람들이 전부 게임마켓에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행사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바깥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뒤로 겨우 자리를 잡자마자, 제 뒤로도 긴 줄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미리 카탈로그 티켓을 함께 구매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기대는 어리석기 그지없었습니다.
회장에 들어서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벼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곧 차분히 발걸음을 옮기며 행사장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한 꾸중은 건강에 좋다.
아내가 갖고 싶어하던 '튤립 버블'을 찾아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이미 품절되어, 명함과 전단지만 받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튤립 투기 버블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투자·경매 게임으로, 세련된 디자인과 준수한 게임성 덕분에 정식 출판을 거쳐 3쇄까지 이어졌습니다. 몇 년 뒤 운 좋게 2쇄를 구입했지만, 그 무렵에는 아내의 보드게임 관심이 거의 사라져 결국 저 혼자 즐기게 되었습니다.
카탄 판매 부스에서는 확장판인 '상인과 야만인', '탐험가와 해적'을 주력으로 선보였고, 구매자에게는 도둑 채색 피규어를 사은품으로 증정했습니다. 당시의 단촐한 판매 테이블을 보며, 현재 GP의 대형 부스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한탕의 유혹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11시부터 하비재팬에서 추첨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탈락자가 없는 추첨이라 기대하며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중고시장에 정신이 팔려 시간을 조금 놓치고 말았습니다. 서둘러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저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경품은 2등부터 스플래쉬와 포트로얄, 1등은 미스터리 익스프레스와 아틀란티스 라이징, 특상은 아쿠아스피어였는데, 마치 퍼주듯 풍성하게 나누어 주더군요. 떨어지면 다시 올려주는 방식이라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 앞에서 추첨이 종료되어,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진행 방식이 다소 미흡해 이런 상황이 생기곤 했지만, 지금은 사전에 티켓을 배포한 뒤 추첨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같은 불편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진열의 수준이 매상을 좌우한다.
하비재팬 부스입니다. 당시 주목받았던 '캐쉬 앤 건즈'와 '7원더스 바벨' 확장이 눈에 띕니다.
'아트 오브 워'는 일본의 프로덕트 아트에서 제작한 2인용 카드 대전 게임입니다. 캐릭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망설임 없이 구매했는데, 나중에 아내가 한 팩을 더 구입하면 4인 플레이도 가능하다고 알려주더군요. 당시 가격은 개당 1,500엔이었지만 두 개를 함께 사면 2,000엔이었기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캐릭터 디자인은 '블러디 인', '후지', 최근작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염소'로 유명한 베베르손 산티아고가 맡았습니다. 이 게임은 이후 '인빅터스'라는 시리즈로 확장되었습니다만, 국내에서는 같은 회사의 주사위 게임 'Birth'가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Birth'는 간단하면서도 초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략 게임으로 평가받습니다.
매직 더 개더링 부스앞 간판입니다. 현재 TCG 행사규모에 비해 좁은 공간에서 체험회를 갖고 있던걸로 기억합니다.
옐로 서브마린의 부스는 상당히 단촐해, 마치 리어카 판매장을 연상케 했습니다. 당시 주력으로 내세운 제품은 크툴루 다이스였고, 직원분은 크툴루 인형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규모 부스를 떠올리면, 그때의 풍경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룹SNE’는 당시 ‘cosaic’과 협업하여 블랙 스토리즈라는 추리 연상 게임을 일본어판으로 유통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행사에서는 'CV(이력서)'라는 게임을 선보였는데, 인생을 테마로 한 이 작품은 마치 콘셉트와 딕싯을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느낌으로 기억됩니다.
해외게임사도 출전한다는 게 신기했다.
외국 업체들도 참여했는데, 특히 Moaideas Game과 Swan Panasia 등 대만계 회사들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Moaideas Game은 일본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앞서 언급한 '튤립 버블'을 비롯해, 이후 일본 국내에도 '조라쿠(상락)' 등을 퍼블리싱하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통놀이가 맞긴 하지
역시 우리는 '광'이 있어야 해
'하나후다' 직역하면 꽃패. 왜 한국에 와서 '투'로 바뀌었을까?
아이들을 위한 게임 체험관과 더불어 하나후다 체험관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사이좋게 패를 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호객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일본인이라면 하나후다입니다!”라고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순간 한국인이라면 “화투입니다!”라고 외쳐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것도 떠오릅니다.
당시 오잉크사는 '맨덤의 던전', '해저 탐험', '트롤', '가짜 예술가 뉴욕에 가다'와 함께 신작 '라이츠(Rights)'를 선보였습니다. 이 게임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전통적인 문양에 대한 저작권을 두고 독점 경쟁을 벌이는 테마였지요. 이후 Rights는 룰과 디자인을 개정해 '스타트업스(Startups)'라는 게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오잉크게임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라 모든 작품을 구매했는데, 그때 옆에서 한국어로 '코바야카와'를 찾는 분을 보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첫 방문이라 “설마 한국인도 이곳까지 찾아올까” 생각했는데, 지금처럼 행사장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릴 정도로 많은 참관인이 모이는 모습은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개인 참가 부스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각 부스별 상품 진열이 점차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개인 부스 중 체험 부스는 별도로 신청해 따로 공간이 마련되었던 점이 차이였습니다. 당시에는 해당 게임을 구매한 관람객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어 접근성이 더욱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한정된 공간과 늘어난 참가자·관람객 수, 그리고 코로나를 기점으로 이러한 체험 부스가 거의 사라져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던 ‘고산수(돌과 모래로 자연 산수를 표현하는 일본 전통 정원 꾸미기를 보드게임화한 작품)’에는 테이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돌 컴포넌트의 질감은 석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한동안 높은 가격 때문에 구하기 어려웠지만, 연이은 재판과 재평가를 거쳐 지금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진짜 이걸 가지고 놀수 있어요?"
미니어처 게임은 역시 멋져 보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멀리해야 할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맹세를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자의반 타의반으로 말이지요.
헤어스타일만큼 대단한 언변
오후 1시부터 옥션이 시작되었습니다. 경매를 주관하신 분은 역시 달변가였는데, 본인도 과거에 7만5천 엔짜리 게임을 낙찰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부인께서 “종이쓰레기를 비싸게 사왔다”고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날은 “오늘은 최대한 싸게싸게 가자”라며 참가자들에게 심리적 안도감을 주는 멘트를 곁들였습니다.
체험 행사로는 ‘부유도시를 탈출하라’는 게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회장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모아 퍼즐을 푸는 방식이었지요. 이러한 체험 행사는 매번 테마를 바꾸어 관람객들에게 일종의 퍼즐 게임을 경험하게 합니다. 올해(2025) 가을에는 ‘수수께끼’ 자체를 테마로 삼아 개별 부스에서 진행된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외국인도 일본오면 만담꾼
이 날은 ‘7 원더스’, ‘하나비’, ‘타케노코’, ‘램페이지(저작권 문제로 테러 인 미플 시티로 변경)’, ‘고스트 스토리즈’의 작가 앙트완 보우자의 토크쇼가 열렸습니다. 유명 작가를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경험 자체가 신기했고, 작품 제작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정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후 사인회가 열렸는데, ‘미스터 잭 인 뉴욕’과 ‘캐시 앤 건즈’의 작가 루도빅 몽블랑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줄이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몰려 있었습니다. 나중에 대기표를 확인해 보니 앙트완 보우자의 이름만 적혀 있더군요. 주최 측의 실수와 더불어 정해진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일본인들의 성향도 작용한 듯했습니다. 앙트완 씨는 사인 때문에 분주했지만, 루도빅 씨는 나중에는 펜을 들고 한가하게 계신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대답도 잘하고 악수도 잘해줬던 착한 친구
'페퍼'(일본 대표 통신회사 소프트뱅크에서 개발한 로봇)가 호객행위중에 열심입니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로보트로 소프트뱅크 매장을 비롯, 많은 가게와 행사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행사장을 가득 메운 박수 소리와 함께 하루 동안의 열기가 차분히 식어가는 분위기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의 전리품은 지금 돌이켜봐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신중하게 구매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하비재팬 추첨 1등상품이었던 '미스터리 익스프레스' 신품을 우연치 않게, 천 엔에 손에 넣었을 때의 운과 캐리어에 걸어둔 봉투가 바닥에 쓸리면서 '바오밥' 박스 모서리가 심하게 손상된 악운이 합쳐, 밸런스 있는 정신상태를 유지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당시 사진 속의 적지 않은 게임들이 이미 제 곁을 떠났지만, '미스터리 익스프레스'는 여전히 제 책장에 남아 있고, ‘바오밥’은 이제 아이의 보드게임장에 자리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그 날의 풍경
참관 후 기록했던 메모를 다시 보니 이런 글을 적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번 행사에 한국 회사가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 다가오는 가을 행사에서는 더 많은 한국 회사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5년 지금, 많은 한국 업체와 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한국 보드게임업계의 새로운 도전정신과 열정이 행사장 곳곳에서 어울리고 있습니다. 과거는 기록으로 남아 있고, 현재는 생생한 현실 속에서 펼쳐지며, 미래는 또 다른 기대와 감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창작자와 참가자들이 이 무대를 채워 나갈 것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다시 첫 관람때 그 마음으로 다시 방문하길 고대하겠죠.
과거의 아쉬움은 현재의 성취로, 그 성취는 다시 미래의 가능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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