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 워 오브 마인 : 디스 게임 오브 마인
이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충격을 남깁니다.
이것은 당신의 실력보다는 운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됩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보드게임과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의 공통점입니다.
피씨/콘솔로 게임을 즐기는 분은 많이들 알고 계실 This war of mine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게임의 표어는 ..
In war, not everyone is a soldier.
그렇습니다. 아래 트레일러에서도 나오듯이, 이 게임의 소재는 전쟁에 갇힌 민간인들입니다.
이 게임은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로 끔찍한 내전이었던 - 현대에 재발한 인종청소로 유명한 - 보스니아 내전중의 사라예보에 고립된 민간인들을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안전도시 고라즈데"라는 만화를 보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당시의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증언 글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못 찾겠네요.
폴란드의 인디 개발사에서 출시된 이 게임은 2015년 평단과 게이머 양쪽의 호평을 받았고, 킥스타터를 거쳐 2017년 보드게임으로도 출시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폴란드 회사인 Awaken Realms에서 개발을 담당했지요.
원작이 워낙 대단한 감정이입을, 아니 감정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던 게임이었기에, 킥스타터 펀딩을 하면서도 조금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 게임을 단순히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게임으로 바꿔놨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원작을 보드게임으로 대단히 잘 구현해놓았습니다. 충분한 몰입감과 감정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보드게임 개발진이 백커들에게 게임을 발송하면서 편지를 한 통 같이 보냈는데요.
중요한 내용만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게임이 나쁜 사람들에 의해 나쁜 일이 저질러진다는 이야기를 다루게 되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 자체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말입니다. "오늘날의 전쟁에서는 어떠한 희열도 명분도 없이 그저 개처럼 죽어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저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 후에 벌어진 2차대전과 보스니아 내전을 봤다면 아마 할 말을 잃었을 겁니다.
이 게임의 풀 시나리오는 기약없는 휴전 선언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생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생존을 위해 떠밀려다니다 우연히 버려진 집 하나에 정착한 이들입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생면부지의 존재들이죠.
학교 교장선생님, 수학교수, 축구선수, 소방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이 게임의 철학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한 캐릭터를 나눠맡아 이 캐릭터의 행동을 지배하고 생사를 결정하는 대신, 공동으로 그룹의 행동을 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애당초에 이 게임은 공정한 게임으로서 기능하지 않습니다. 내전 상황에서, 수학 교수는 너무나 무기력합니다. 육체적 능력은 부실하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식도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따뜻한 말로 사람들을 달래줄 수는 있지만 너무도 여린 사람입니다. 반면 반군 탈영병은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고, 창고 일꾼은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지요. 어떤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지는 순전히 운입니다.
아니 운빨 게임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아지트에 누가 숨어들어오는지는 실제로 운이니까요.
이 게임은 전략적이지 않고, 많은 부분 운에 좌우됩니다. 우리가 쥐덫을 놓아 볼 수는 있지만, 거기에 쥐가 들어와서 아사를 면하게 해주는지는 운입니다.
그러면 이 게임 클리어는 완전 행운에 달린 거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효율적인 행동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이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는 스크립트북과 카드에 의해 제시되며, 플레이어들에게 (주로) 도덕적 딜레마를 겪게 합니다.
추위로 인해 병이 걸린 동료를 두고, 소중한 항생제를 생면부지의 아이들에게 나눠줄 것인가?
게임의 초반부에는 플레이어들은 선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당장 목숨이 달려있지 않고, 자원도 있고.
그러나 상황이 진행되면서,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결과를 모르는 채로 행동하긴 하지만, 대체로 더 선한 선택은 우리에게 더 가혹합니다.
설령 우리가 살아남았다 한들, 그 결과가 우리의 남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일단 살아남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게이머는 게임을 클리어하고 남은 이야기들을 알고 싶은 욕구와, 학습된 도덕성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 그 어디쯤에서 줄타기를 하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악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살아남을 것인가, 선하고.. 전쟁 전의 소시민으로서 죽을 것인가.
이 선택에 더 많은 향신료 역할을 하는 것은 캐릭터들의 개성입니다. 냉혈한 변호사와 오지랖넓은 교장선생님의 선택은 다르겠죠.
다양한 이벤트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만약 플레이어들이 캐릭터에 이입하는 유형이고 게임 클리어에 목매는 타입이 아니라면,
여러분도 이 게임을 해보세요. '느낄 수 있는' 게임이고,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는' 게임이었던 원작을 보드게임으로 훌륭하게 이식했습니다.
다만 감정적 소비가 심해서 여러 판 연속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원래는 클리어 하고 나서 킥스타터 애드온을 좀 넣어서 다시 해보고 싶었는데, 좀 묵혀뒀다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min-max 재어가면서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게이머가 아니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 이 표현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할 수 있는 좋은 협력-테마틱 게임입니다.
쉐푸님 덕분에 모든 텍스트가 한글화되어 있고 룰 자체는 매우 단순하므로, 구할 수 있다면 꼭 해보세요.
p.s. 킥스타터 특전으로 비밀 봉투 하나가 들어있으니, 시나리오 클리어하자마자 꼭 뜯어서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