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8개월차 후기
리뷰에 에너지를 쏟다보니 후기는 좀처럼 안쓰는 편인데요.
오랜만에 여러가지 자잘한 생각+경험+썰이 담겨있는 후기를 남깁니다.
사진은 사진첩에서 무작위로 골라서 무작위 순서로 올린거라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어요.
또한 의식에 흐름에 따라 쓰는거라 이야기가 두서 없을 수 있습니다.
아, 별거 아니지만 대표게임으로 나이츠를 고른 이유는 모임 이름이 '밴쿠버 나이츠' 이기 때문이예요.
기사들이라는 뜻의 Knights 와 저녁~밤에 모임이다보니 Nights 의 언어유희죠.
어쨌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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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관련 글을 올린 것은 올해 1월 7일. 처음으로 모임을 개시한건 14일이었습니다.
영주권자로써 밴쿠버에서 한인들과 산다는건 때론 피곤한 일이예요.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온갖 루머 / 따돌림 / 뒷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것에 싫증을 느낀 저는 외국인들과 보드게임을 즐겨왔지만 내년에 약혼자가 건너오게 되니 사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자'는 생각으로 모임을 개최했지요.
모임을 만들 때 염두한 것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건
1. 서로의 나이를 몰라야 한다
2. 서로에게 반드시 존댓말을 해야한다
였습니다.
1번이 꽤 의외일텐데요. 나이가 많다고 / 적다고 하여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특별한 대우를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드게임을 하다보면 게임 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치고 받고 하는 일이 자주 생기는데, 나이가 결정에 영향을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죠. 단,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 나이를 공개하는건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모임의 규칙은 모임에서만! 이니까요. 8개월이 지난 지금 서로의 나이를 대강 알게 되었지만 다들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젠 첫 습관이 잘 들어서인지 모두들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의 의견을 잘 들어줘요.
2번은 1번과도 연관이 있는데, 모임 내에선 어떠한 이유로도 반말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를 모른다고 가정하고 만나기 때문에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언제나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반말은 날카로울 수 있기 때문에 놀리다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물론 동갑내기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반말을 하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그건 그들의 사생활 영역이니까요.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모두가 강제적으로 존댓말을 하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도 '형, 오빠, 누나, 언니'라는 관계를 잊고 편안함을 느끼는 듯 하더군요.
누군가 모임에 오고 싶다고 문자를 했을 때, 무조건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따로 카톡을 하며 흥미 / 원하는 것 / 싫어하는 것 / 보드게임 경험 등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판단을 내렸죠. 뭐... 판단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모임 홍보 글에 대한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보드게임에 정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꼼꼼히 읽으리라 생각했거든요. 그 외에도 개인적인 판단 기준은 여러가지 있지만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라 패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여성 회원은 많은가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특히 수많은 남성분들...)은 '현재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고 단칼에 잘라낸 적도 있었고, 게임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는걸 보며 '싹이 보인다'고 느끼고 자리가 없는데도 꾸역꾸역 자리를 만들어준 적도 있었습니다. 현재 멤버 중 하나는 '처음에 들어올 당시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라고 할 정도니... 그 당시의 저는 굉장히 신중했나 봅니다.
이렇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 멤버를 모으다보니 어느덧 11명이 모였고. 현재까지 모임 탈퇴율은 0% 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케미가 잘 맞아서, "어떻게 서로 잘 맞는 사람끼리만 모였냐"라고 서로 신기해 할 정도예요.
멤버를 정하는데 있어 보드게임 경험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면 되는거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2~3개쯤 아는 사람, 10개 넘게 아는 사람... 정말 다양했습니다. 다들은 초보티가 많이 났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경험으로만 치면 밴쿠버 내 한인 중 상위 3% 안에 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트러블이 없는건 아닙니다. 아주 드물게 트러블이 있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모임장으로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방치' 입니다. 모두가 성인이니까 알아서 할 수 있을거라 믿지요. 다만 모임장으로써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는데. 다른 회원들의 개입을 철저하게 막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히 해라.' 라고 말이죠. 두 사람의 트러블에 주변 사람들이 '누가 맞다. 누가 틀리다.' 식으로 줄을 서게 되면, 결국 편싸움으로 불길이 번지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생깁니다.
두 사람이 끝까지 화해/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제가 개입하려 합니다만... 지금까지는 서로 금방 오해를 풀고 화해하며, 다음 모임 때 미안하다며 맛있는걸 가져오는 좋은 모습들만 보여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개입에 대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위에 언급한 위엄있는 모임장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 권위는 바닥에 가깝습니다 -_-;; 평소에 '게임은 많이 알지만 이상하게 게임은 못하는 모임장' 정도의 편한(혹은 만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다분의 의도적인건데요(진짜예요!!!). 소개해주는 게임마다 제가 이기면 흥미도가 떨어질까봐 평소보다 느슨하게 해주는 것도 있고... 게임 하면서 온갖 트롤링 / 어그로를 끄는 편입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라는 말이 있듯, 제가 악역을 맡으면 모임원들이 '일단 모임장을 없애자' 라는 목표 아래 대동단결 하거든요. 그런 단합을 통해 좀 더 친해지길 바랍니다.
어쨌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임장이라는 타이틀은 최대한 내세우지 않으려 합니다. 너굴너굴이 이끌어가는 모임이 아니라 '우리'가 이끄는 모임이 되길 바라거든요.
모임장으로써 회원들에게 바라는 것은 크게 없습니다. 다만 자제하면 좋은 것이 몇가지 있는데...
1. 참가 여부를 2일 먼저 미리 확정 지을 것
보드게임은 인원에 민감한 취미라서... 인원이 바뀌면 게임 구성을 새로 짜야 합니다.
2. 하고 싶은게 있고 하기 싫은게 있다면 미리 말할 것
게임을 골랐는데 "아, 나 이건 별론데" 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약간 내려갑니다. 미리미리 말해주면 서로 어려운 게임을 피할 수 있으니 그날의 게임 구성을 짜는데 큰 도움이 되죠.
3.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줄 것 (읽씹하지 말 것)
카톡방에서 가끔 누군가가 말했는데 아무도 응답을 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쁘거나 / 문제가 있거나 / 당장 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응답정도는 해주길 바랍니다. 이런 작은 대화가 쌓여서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는 모임이 된다고 믿거든요.
제가 모임장으로써 하는 일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장소 주비, 게임 준비, 인원 확인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밖의 일도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편입니다.
멤버들에게 이것저것 개인 근황을 물어가며 요즘 기분은 어떤지,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없는지, 자리를 비울 일이 있는지, 모임에 바라는게 있는지 등 자주 체크하죠. 애인이 생겨서 모임에 나오기 힘든데 아직 모임원들에게 밝힐 수 없는 단계라면 일부러 말을 맞춰줍니다. 나쁜 일이 생겨서 기분이 나쁘다면 서로 비난/공격하는 게임의 비중을 크게 낮추죠. 좋은 일이 생겼다면 서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파티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좋은 소식을 공유하도록 게임을 구성합니다. 잊고 싶은 일이 있을 땐 고민을 많이 하는 게임이나 웃음이 많이 나오는 게임으로 준비를 하죠. 생일이나 큰 행사가 있는 멤버가 참가한다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게임을 구성합니다.
이렇게 모임원들을 중심으로 게임을 구성하다보니 제가 좋아하는 게임들은 돌리지 못하지만... 모임원들도 이걸 눈치 챘는지 내가 원하는 게임보단 남이 원하는 게임을 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주더군요.
재밌는건 이렇게 많은 관심을 쏟아부어도 딕싯 같은 마음 맞추기 게임에선 제가 언제나 꼴찌를 합니다. "너굴씨는 우리에게 참 관심이 많은데 왜 공감대가 형성 안되죠;;;" 하는 말도 들어요...ㅠㅠㅠㅠㅠㅠㅠ
평소에 좋아하는 게임을 유심히 봐두다가 맞추어서 게임을 준비하기 때문에 적중률은 높은 편이지만... 모든 게임이 다 먹히는건 아닙니다. 누군가 게임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면(당연히 말은 안하겠지만) 눈치채고 따로 기록해두었다가 그 멤버가 참가하는 날은 그 게임을 후보에서 아예 빼버리곤 합니다.
최근엔 결혼 준비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요. 맨날 이따구(...) 음식만 먹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 모임장이란 이유로 두들겨 맞는 일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이건 그냥 게임이야'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켜요. 정말 화가나면 "감히 모임장에게", "내가 모임을 이끄는데" 같은 권위 가득한 말을 뱉어버릴까봐 굉장히 주의를 기울입니다.
유일하게 모임장의 지위에서 벗어나 마음껏 크앙!!! 크앙!!!!! 하는 사람이 있는데... 최근에 넷러너로 제 배때지에 8연속 복부펀치를 날린 OO님이 있네요. 한번 이겨보려고 중고장터를 마구마구 뒤져서 넷러너 + 확장들을 4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요즘에 집에서 쉴 때면 이 카드들을 살펴보며 '어떻게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임의 방향에 대해선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도 하고, 한다면 어떻게 보강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 판단미스로 인한 분탕유입을 막고자 추천으로만 받지만요). 사람들의 취향을 좀 더 맞춰주기 위해 파티팀 & 전략팀을 나누어 세부 그룹도 만들어주어야 할까-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밴쿠버에서 1시간 3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여름엔 낮이 길고 겨울엔 밤이 긴 밴쿠버의 특성 상, 여름에는 모임 횟수를 크게 줄여 테니스 / 스쿼시 / 암벽등반 / 호수 근처에서 캠핑 / 야외에서 바베큐 / 등 내년부턴 다양한 작은 이벤트도 꾸려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역 특성상 전원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특성을 살려 좀 더 스토리 텔링이 가득한 게임 위주로 가볼까- 싶기도 하고, 강력한 덕력을 가진 멤버를 뽑아 D&D 모임을 꾸려볼까-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약혼녀가 캐나다로 넘어오는 순간 이런 결정권의 지분이 50% 정도로 훅 내려가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때 이것 저것 계획해두고 하나씩 실행하려고 합니다.
음...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고나니... 게임 이야기는 전혀 없네요 -_-; 글 마무리 하기 전에 최근에 터진 강운(?) 하나 공개.
요즘 9회말을 열심히 즐기고 있는데, 첫 타자에게 던진 두번째 공을 제대로 때려서 홈런을 쳤습니다. 제 첫 홈런이예요!!
그리고 찾아온기적같은 10연패 ㅠㅠㅠㅠ...
아참... 그리고 해골이 그려진 소중한 옷을 분실 했습니다... 몇 년간 일할 때 / 아플 때 / 힘들 때면 늘 입었던 옷인데...ㅠㅠㅠㅠㅠ...
그 이후 한동안 시름에 잠겨있다가 불현듯 매주 로또를 사며
"우주는 50% 행운과 50% 불운으로 이루어져있다. 옷 분실 반동으로 나는 로또에 당첨될거다. 갑자기 모임방을 폭파하면 로또 된 줄 알아라" 라고 하며 협박을 하는데...
협박이 잘 먹히는 것 같진 않네요.
그럼 후기 아닌 후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