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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으로 즐겁지가 않네요..

1,272 조회

2014.11.24 12:41

취미라는 건 즐거워야하겠지요.

전 보드게임이 좋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보드게임을 펼쳐놓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왁자지껄한게 좋습니다.

바둑이나 장기처럼 보드판을 사이에 놓고 경쟁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대 말이죠.. 이제는 취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네요.

올 한해 첫 시작은 좋았습니다.

설 연휴에 친구들을 만나서 실컷 즐겼습니다.

작년 한해 열심히 전파한 보람이 있어서, 이제는 친구들이 꼭 보드게임 가져 오라고 신신당부 했었죠.

그때만 해도 올 한해 재밌게 즐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

그러나 다시 제대로 즐긴건 9월 .. 추석때 였습니다.

인간의 4개 욕구.. 식욕 성욕 수면욕 보드겜욕인대..

반년간 보드겜을 굻었더니 게임이 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지요.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무릎 꿇으면서 안 선생님에게 메달릴 때의 마음을 알거 같았습니다.

추석때는 정말 좋았습니다.

지난 2년간 전파한다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는지.. 제가 낮잠자고 나온 사이에 친척들이 자기들끼리 보드겜을 돌리고 있더군요.

항상 규칙 설명하고 세팅해 주고 떠 먹여 줘야 했었는대 .. 정말 기분좋았습니다.

반년간 굶었던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갔지요.

한번 스트레스를 날린 덕분인지 거의 한달간은 보드겜을 못해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더군요.

게임 하고 싶을 땐 추석때 기억을 self-리뷰 하면서 혼자 미친놈처럼 피식거리곤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지요.

그러나 오늘이 11월 24일.

추석 이후로 보드겜을 돌려보질 못 했습니다.

친구들부부동반 모임, 처형네 집들이, 처제네 돌잔치..

모임은 여러번 있었는대 보드겜은 꺼낼 분위기가 안 되더군요.

다들 그렇겠지만 모임때 마다 혹시나 하고 열심히 챙겨서 갔습니다.

룰도 숙지하고 한 두개씩 게임도 계속 사고.. 에휴..

못 할거 뻔히 알면서도 사람이 왜 그렇게 되는지

주말에 모임이 있으면 일주일 내내 게임 세팅하고 룰 외우고 혹시나 하면서 준비합니다.

결과는 역시나 "꽝~" 이지요.

실은 이번 주말에 모임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7시 저녁 식사(친척)

가까이 형님네가 있는대 2주전에 '지나가는 말로' 그날 밥 먹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었죠.

전 당연히 자고 갈줄 알고 일주일 내내 준비에 매달렸습니다.

미뤄뒀던 한글화도 하고.. 룰북도 꺼내서 체크하고 가져갈 보드겜 선별..

"가서 자고 올꺼지?" 물으니 와이프님이 싫어하십니다.

언젠가부터 방 구석을 넘 사랑하는 저주에 걸려있는대 풀수가 없습니다.

약초학이라도 좀 배워둘 껄 ..

하다못해 일찍 출발해서 형님네서 놀다가 가자고 졸라봤지만

피곤한 와이프 보드겜 하려고 닥달하는 나쁜 남편으로 평판만 떨어집니다.

이번 판도 틀린 거 같습니다..

올 한해..

제대로 게임을 즐긴게 결국 "설날" "추석" 이렇게 두번 입니다.

여러번 기회가 있었는대

혼자 김치국만 배부르게 들여마셨습니다.

너무 마셔서 그런가..

어제밤에는 혼자 앉아 "먼치킨" 게임 매뉴얼을 읽으면서

내가 하지도 못 할거 왜 이러고 앉아있나 깊은 상념에 젖게 되네요.

퇴근후 아이 재워놓고 와이프랑 오손도손 이야기 하며 보드겜 하는 광경은 왜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지.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보드겜 돌리는 모습은 왜 내게는 머나먼 이상향 인지.

왜 얼마 안되는 용돈 쪼개가며 하지도 못할 보드겜은 사들이고 한글화하고 있는건지.

나는 보드게이머 인건가? 그냥 콜렉터 인건가?

재밌어서 시작했고 행복하기 위해 이 세계에 입문했는대

언제부터 이렇게 스트레스는 받게 됐는지

머리는 냉정하게 그냥 접는게 옳다고 하는대

가슴은 아직 좀더 해 보자고 속삭이네요.

작은 일상속의 행복은 아직도 파랑새처럼 잡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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