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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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3 13:58

보드게임 전도사였고 영업은 진심이었다.

1. 보드게임이라는 게 생겼다며 여친에게 학교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자고 한다. 처음이라며 소개해 달랬더니 섬 사이사이 다리 놓고 남의 다리 파괴하다가 왔다. 서로 얼굴 붉히기도 했지만 무척 신기했다. 이런 게 있구나! 그 이후로 누가 네 취미가 뭐냐? 라고 물으면 보드게임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보드게임이 뭐지? 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2. 대학 선배, 동기, 후배들에게 이번에는 스타, 당구 말고 보드게임 카페 가자 한다. 소 판다고 난리가 났다. 아주 큰 소리가 났고 많이 즐거웠다.

3. M.T 때 술자리를 뒤로 하고 동아리 회원들 모아 놓고 암살자로 죽이고, 도둑으로 훔치고, 카드 빼앗고 그러며 몇 판을 계속했다. 화를 팍팍 냈고 또 많이 웃었다.

4. 명절날 할머니 댁에서 꼬마 육촌들을 모아 놓고 숫자카드 하나씩 내며 77이 되면 죽는다며 놀았다. 어른들이 기웃기웃 보고 갔고 동생들은 처음 해보는 놀이였지만 좋아했다. 어느 날 아직도 그때 받은 게임 가지고 있다며 그 어린 날이 기억 난다며 웃었다.

5. 아이들 시험도 끝나고 해서 길게 두 줄로 앉힌 뒤 늑대는 눈을 떠 서로 확인하라며 시간이 끝날 때 까지 밤 마다 죽이고 억울해하며 놀았다. 카드가 너덜너덜해져 새로 하나 살까 했다. 진행하며 보는 나도 즐거웠다.

6. 자취방에서 대학 후배들 모아놓고 숫자 타일을 놓으며 건물을 짓고 합병 당하면 돈 벌고 이제 합병이 안되네 라며 놀았다. 다들 이런 게임도 있냐며 신기해했고 즐거웠다.

7. 새로 얻은 전셋집에서 이제 같이 살게 된 동생, 사촌과 함께 지중해 무역하다가 해적 되었다가 주사위에 울고 웃으며 놀았다. 해볼까 하는데 이미 끝나버려 아쉬웠지만 즐거웠다.

8. 집에서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산까지 동생과 사촌동생 데리고 가 밤새 보드게임을 하고 왔다. 도시에 주민이 모였다가 도망갔다가 시설을 지었다가 깨졌다가 하며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많이 피곤했지만 즐거웠다.

9. 여자 친구 대학 동기들과 남녀커플 MT를 가서 내 콩 줄 테니 네 콩 달라며 흥정을 했다. 이거 너무 재밌다며 어디서 사냐고 물어도 봤다. 그 자리에서 보드게임을 주진 못했지만 모두 열심히 팔았고 즐거웠다.

10. 새로 들어온 여직원과 같이 세 세명이 모여 회사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음료 시켜놓고 열심히 주사위를 굴렸다. 양 두 마리줄께 라며 꼬시다가 망했다. 최대한 조용조용 놀았지만 많이 즐거웠다.

11. 사촌동생이 여친과 온다길래 보드게임 카페에서 모이자고 했다. 세 커플이 모여 내가 보스라며 깽판 놓다가 왔다. 다들 우릴 처다본 것 같지만 우린 즐거웠다.

12. 처가에 장인, 장모, 처형, 처남, 처제까지 모두 둘러앉아 그림 그리고 이게 뭔 그림이고 라며 다 같이 서로 비웃으며 한바탕 웃었다. 다들 재밌어했고 즐거웠다.

13. 아이들과 가림막 뒤에서 뭘로 죽였는지 어느 방에서 일어난 일인지 열심히 찾아다니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확인하지 않은 내가 이겼다. 씩 웃으며 참아야지! 했지만 우린 몇 번을 같이 했고 즐거웠다.

14. 처가에서 처남과 같이 서로 도시를 바꾸자며 부산역을 달라며 보드 없이 카드로 만든 게임을 이겨버렸다. 아쉬운 눈빛의 장모님을 보고 져줄걸 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15. 명절날 어머니 댁에서 동생부부와 아들, 딸 모여 카드 한 장 쓱 숨겨 내밀며 한마다 하곤 마음 맞춰보라며 토끼들 옮겨가며 놀았다. 난 도저히 못 맞추는데 동생은 제수씨 카드를 맞추네? 라며 신기해했다. 몇 판을 같이하고 즐거웠다.

16. 집으로 처남을 초대해 놓고 큰 테이블에 모두 둘러앉아 이미 술 한잔 된 정신으로 카드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자기 왕국을 건설한다고 하다가 뭘 했는지 모르게 끝나버렸다. 재밌네 라는 처남의 한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취했지만 즐거웠을 거다.

17. 처형과 우리 가족들이 둘러앉아 요호호 하고 카드를 모아가며 하하 호호 한바탕 시간을 보냈다. 한판 더? 하려다 말았지만 많이 웃는 가족들을 보며 흐뭇했다.

18. 캐나다에서 온 매제랑 조카랑 둘러앉아 모양, 색깔, 개수, 채움이 다르든지 같든지를 찾아보라며 놀았다. 난 처음 할 때 많이 재밌었는데 조카가 많이 당황해했다. 동갑인 딸아이가 머뭇거리며 기다려주긴 했지만 거의 다 찾아버려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이 게임은 처음 들이밀면 안되겠네 라고 반성했다.

19. 세 가족이 모인 캠핑 자리에서 자기 그림은 이렇게 팔면 돼 이때 시세가 결정 돼 다음엔 더 비싸겠지 라며 설명하고 한바퀴 도는 걸 보고 다시 술 먹으러 갔다. 그렇게 놀고 있는 게 귀여운지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20. 두 가족이 모여 지리산 계곡에서 물놀이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숨겨놓은 카드 한장씩 보여주고 가슴을 치고 바닥을 두드리고 두손으로 산을 만들곤 카드위에 손을 놓았다. 너무 웃어 배가 아팠다. 이게 뭐요? 라며 옆 모임 어르신이 와서 물어본다. 그때 우린 정말 즐거웠다.

21. 집으로 놀러 온 아들 친구에게 보드게임이 뭔지 알려줄게 라며 호기롭게 자리를 만든다. 세워놓은 검은색 하얀색 타일 뒤에 숨겨진 숫자를 맞추며 놀았다. 재밌는지 또 하자 하네? ㅎㅎ 그래~ 이거지!

22. 갑진년 설날이다. 이제 많이 늙으신 어머니를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가족들과 둘러앉았다. 아들, 딸이 팀장이 되고 남동생과 내가 한 팀, 아내와 어머니가 한 팀이 되어 남녀 대결을 한다. 동물,3 아들의 말에 동생이 바로 '이거!' 한다. 빨간색 타일이 놓인다. 이것도 동물인데? 라는 말에 아들은 웃고 만다. 딸아이의 아시아,2 라는 말에 어머니께선 놓인 카드의 단어를 찬찬히 살피시고 하나하나 맞춰 가신다. 우린 아주 오랜만에 보드게임을 했다. 그리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