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데이의 배신
홍보 목적의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이벤트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보드게임에 애정과 관심이 많은 크리에이터들을 기껏 초청하여,
그들이 환호할 만큼 만족스러운 게임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영화와 비교를 해봅시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홍보를 위해 시사회를 개최하고,
기자, 평론가 등이 참석하여 감상한 후 영화에 대한 평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영화를 직접 본 파워블로거나 유튜버들의 후기가 훨씬 영향력이 크죠.
크리에이터데이는 출시 사전에 선보이는 것이므로 그 성격이 시사회에 가깝습니다.
보드게임계에는 기자나 평론가라고 분류할 직업군이 없으므로,
크리에이터들이 파워블로거 및 유튜버이자 기자 및 평론가도 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은 다른 문화 컨텐츠와 비교하여 특수성이 있습니다.
게임이나 영화에 대해 메타크리틱 점수를 사람들은 종종 언급하고 신뢰하는 편인데,
메타크리틱은 기자 등 직업적으로 해당 분야 작업물을 많이 접하는 사람들의 평점에 기반합니다.
세상에 컨텐츠는 넘쳐나고 시간은 부족한 일반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볼 수는 없기에,
그쪽 분야를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좋게 추천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실패 확률을 줄입니다.
보드게임은 대신 일반 이용자들이 게임을 평가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보드게임긱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보드게임긱 평점은 보드게이머들이 그 게임을 어느 정도 재밌게 즐겼는지 알려주는 유용한 척도입니다.
여기서 보드게이머의 의미는 보드게임 커뮤니티를 찾아서 구경하고 평점을 남길만큼의 적극성이 있는 사람으로,
IMDB 점수처럼 완전 일반인들의 평점이라기에는, 메타크리틱과 IMDB의 중간 정도 성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서 보드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일반인보다는 열정적인 보드게이머로 분류할 수 있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이들이 시사회 성격의 행사에 참여하여 작품을 접하고 소개하는 역할이 마냥 칭찬일색으로 끝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게임을 먼저 접한 기자와 평론가들은 해당 분야의 나름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평점과 그 이유들을 전달합니다.
보드게임 크리에이터에 대해서도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고 싶은데, 행사 후기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좋았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그런 게임들이 소개된 거라면, 크리에이터들의 반응이 쉽게 이해가 될 텐데,
최근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힘을 주는 게임들은 명작이다, 훌륭하다 이런 말이 나오기 어려운 게임들입니다.
쉬운 게임도 반짝반짝이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성 있는 게임들이 존재하는데, 커피 러시는 컴포넌트 말고는 너무 평범합니다.
크리에이터들이 보드게임에 크게 관심도 없었을 이세돌의 2인 추상전략 시리즈 3개를 경험하는 걸 기대하고 행사에 갔을까요?
윙스팬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안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하고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윙스팬을 만든 디자이너가 테마에 대한 애정과 함께 보드게임을 많이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추상전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모임에서 1:1 추상전략은 안 돌아가고, 지인들과 할 일도 없습니다.
단언컨데 보드게이머들이 기대하는 게임은 그런 종류의 게임이 아닙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도 그걸 모를 리는 없겠죠.
그런데도 시간 내서 참석한 크리에이터들에게 진심으로 박수칠만큼 즐길 만한 게임이 아닌 것들을 홍보하는 것은 배신입니다.
물론 항상 대단한 게임들만 소개할 수는 없고 범작들도 포함되기 마련이지만, 점점 갈수록 실망스럽습니다.
